경찰서에서 만난 북유럽의 종말 '북유럽신화 The NORSE MYTHS'

사색거리들/책 | 2011. 2. 9. 14:18 | ㅇiㅇrrㄱi

여기 XX경찰서인데 인터넷 사기혐의로 고발 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나 이후 각 왕조의 건국신화, 국외로는 그리스·로마신화 정도가 익숙한 신화의 전부인 일상으로 북유럽신화가 불쑥 끼어든 건, 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서 걸려온 담당 형사의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영문에 조서를 꾸미려 출두했더니만 7년여도 더 전에 호기심으로 가입하고 잊었던 게임 아이템 거래사이트에서 누군가 내 명의로 접속해서는 거짓 매물로 돈만 받아 잠적했다는데... 라그나로크? 아이온? 생전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대한 시시콜콜한 질문이 끼어든다. 접속 지점이 중국즈음인걸로 확인되니 누군가 어찌어찌해서 유출된 계정을 도용해 8만여 원어치 수익을 챙기고 만 모양이었는데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서를 작성하고 간인(間印)을 찍다 보니 부아가 치민다.
 
북유럽신화(현대지성신서013)
카테고리 역사/문화 > 신화 > 유럽신화
지은이 케빈 크로슬리 홀런드 (현대지성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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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귀에 익숙한 게임 명 때문인지 호기심 또한 문득이다. 라그나로크??? 분명 들어봤다. 찾아보니 온라인 게임이기도 하고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세상의 종말이기도 하다는데... 볼만한 책 찾기가 힘들다. 그리스·로마신화 등은 관련 책자만 수백을 넘는데 반해 북유럽 신화는 손에 꼽을 정도... 케빈 크로슬리-홀런드(Kevin Crossley-Holland)가 쓴 <북유럽 신화, 현대지성사, 서미석 옮김>나 안인희 씨가 쓴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2, 웅진지식하우스> 정도가 읽을 만한 듯싶다.
라그나뢰크! 최후의 전투이자 새로운 시작!
북유럽 신화 속 세상은 9개의 세상으로 구성되고, 이들 세상이 3개의 수평면에 위치해 있는 형태다. 첫 번째 수평면엔 에시르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 바니르 신들이 살고 있는 바나헤임, 밝은 꼬마요정들의 알프헤임이 위치해 있고, 바로 아래의 수평면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중간세상 미드가르드, 난쟁이들의 니다벨리르, 검은 꼬마요정들의 땅인 스바르탈프헤임, 거인들이 살고 있는 요툰헤임이 위치해 있다. 마지막 수평면엔 죽은 자가 거쳐 가는 헬과 죽은 자의 세계인 니플헤임이 위치해 있어 보통 9개의 세상이라 하면 아스가르드, 바나헤임, 알프헤임, 미드가르드, 니다벨리르, 스바르탈프헤임, 요툰헤임, 헬과 니플헤임을 지칭한다.

대부분의 관련 책자에서 라그나뢰크로 표기하고 있는 용어는 이 9개 세상이 소멸하는 최후의 전투를 의미하는데 인간계에 지속되는 전쟁과 반목을 기점으로 가장 혹독한 겨울인 핌불베트르(Fimbulbetr)가 3년 동안 지속된 이후 최후의 전쟁인 라그나뢰크가 시작된다. 거인족을 위시로, 그간 신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모든 존재가 한편이 되어 신과의 전쟁을 벌이는 와중... 신과 더불어 죽은 전사의 영혼마저 다시 죽으며, 모든 인간과 꼬마요정, 난쟁이들과 거인들이 죽고, 괴물들과 지하 세계에 살던 모든 생물들 그리고 지상의 짐승들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태양도, 별도 사라진 라그나뢰크 속에서 9개의 세상은 불타버려 재만 남기고, 대지는 바다 속으로 침전하고 만다.

물론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고, 완벽한 소멸 이후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몇 신과 두 인간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신화가 득세했을 당시엔 동시대인들의 삶과 사상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분야 등에 신화에서 비롯된 종말론적 세계관의 영향이란 게 컸겠지만 지금은 신들의 흔적(?)을 발견하기 힘든 여건이니 라그나뢰크가 실제 있었더라도 이미 끝나버려 그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를 일...? 
낯설면서도 친숙한 북유럽 신화 속 세상 그리고 교훈...!
다른 신화에 비해 상당히 낯선 내용들이어서 북유럽 신화만의 독창적인 체제를 이해하는 덴 다소 지리한 시간이 필수적일 테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내용들의 많음 또한 곳곳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저 유명한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족 유닛인 발키리는 인간계의 전쟁에서 죽은 자 중 용맹한 전사를 골라 주신(主神) 오딘에게 데려다주는 여전사 발키리에(Valkyries)의 차용이고, 지혜의 물 한잔에 눈 하나를 맞바꾼 신중의 신이자 지혜를 사랑하는 오딘은 얼마 전 특집으로 진행된 예능프로그램 <오딘의 눈>에 등장하며,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에서는 난쟁이 안드바리가 거짓말의 신 로키에게 빼앗기며 파멸의 저주를 걸어버린 황금반지 이야기를 주요 출전으로 활용한다. 그라비티의 롤플레잉 게임 <라그나로크>는 최후의 전쟁인 라그나뢰크를 , 넥슨의 3D게임 <아스가르드> 신 화속 신들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오딘의 창 궁니르, 천둥의 신 토르의 망치 묠니르, 전사들의 궁 발할라 등 많은 대목들이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는데, 심지어 미드가르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는 만화책의 제목으로도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신화의 재미라고 하면 그 안에 배어 있는 당시 인들의 삶에 동참해볼 수 있다는 것, 독창적인 저들만의 사유세계에 대한 탐닉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바이킹의 시인들이 원형을 만들었다는 북유럽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해볼 수 있는 사항이다. 인간 종족의 탄생 비화 이면으로는 당시의 계급구조와 더불어 위로는 전사나 귀족, 아래로는 농노계층에 이르기까지 저들만의 상세한 생활상을 조명해볼 수 있고, 각각의 신들에게 투영시킨 시대적 사상 내지 규율, 전통 등의 이면을 엿보는 재미가 덤으로 얹힌다.

북유럽 신화는 고대 북유럽 인들이 지녔을 정신과 자신감, 극단적인 용맹성, 배타적인 충성심, 교활함과 냉혹한 잔인함 등이 어우러지며 인간 존재의 기원과 설명해낼 수 없는 여러 현상에 스스로들 답해가려는 극적이고 독특한 노력의 과정 자체라 할 수 있을 테다. 수백 수천 년을 거쳐 덧대어진 상상력의 광대함을 느껴보고 그 안에서 도덕과 정의, 용기, 열망, 배반 등 신화 속에서나 지금 현실 속에서나  무한히 반복되는... 난쟁이 안드바리의 황금반지처럼 돌고 돌아 이어지는 인간 속성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신화가 주는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또한... 수천 년도 더 된 상상 속 이야기 곳곳으로 기생(?)해 살아가는 우리네 주변을 보자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내가 아는 모든 시대이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대 전체라는 오만에 빠져 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겸양의 마음까지 느끼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중국으로 건너 가 원정 사기 친 적이 절대 없다...ㅠㅠㅠ


애물단지(?) 옴니아2의 네이버캘린더, 주소록 ActiveSync 설정 방법

가전제품/모바일 | 2011. 2. 8. 17:00 | ㅇiㅇrrㄱi

작년 가을 경, 네이버에서 본격적으로 모바일싱크 서비스를 개시하기 전, 베타 테스트 요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네이버캘린더오 모바일 싱크를 이용해 이런저런 일정을 동기화하며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옴니아2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설정 값이 다 날아가 버렸네요.

네이버의 모바일 싱크 안내코너로 가보면, iPhone · iPad · iPod touch(iOS 3.0X이상)에서 이용하실 수 있으며 Android 단말기는 지원 준비 중입니다. 그 외 단말기는 지원 검토 중입니다. 라는 문구 외에 별 도움말이 없습니다.

공식적인지 비공식적인지야 몰라도 분명 싱크는 정상작동하고 있으니... 알아내려 아무리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아래 자료는 네이버 고객센터 쪽에 요청해 받은 옴니아2의 모바일 싱크 설정 방법입니다.


기본적으로 Windows Mobile 기기에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니 혹 필요하신 분들은 잘 활용하셨으면 하네요. 개인적으론 네이버의 미니캘린더를 데스크톱에 설치해놓고, 아웃룩과 옴니아2 이렇게 삼자간 일정만 싱크하며 사용 중인데... 쓸만합니다...ㅠㅠ (참고로 주소록 싱크는 오류가 많으니 가급적 사용하지 마시길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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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두려움에 호소하는 힘 '쿠조 CUJO'

사색거리들/책 | 2011. 2. 7. 13:31 | ㅇiㅇrrㄱi

  뜬금없는 얘기로,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각종 전자기기로 눈길을 던지는 중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한 요즘, 오프라인적인 취향 최후의 성역으로 몰려가는 책 한권을 들고 있다는 건 때론 스스로에 대한 흐뭇한 생경함을 넘어, 시대를 역행하는 중인 자신이 일면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싫지 않은 자존감의 고양으로까지 이어지곤 한다. 터벅거리며 길을 걷거나, 버스의 흔들림에 기우뚱하면서, 지하철에서의 자리다툼 와중에서도 내가 다른 사람의 낱낱을 곁눈질하며 그만의 취향을 가늠해보듯, 상대 또한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 한권으로 나에 대한 무언가를 짐작해내려고 들 하지 않을까... 어찌 보면 터무니없을 마음가짐은 이제 제 멋대로 수를 늘려버린 나이와 하등 관련 없다는 듯 여전한데... 이 책을 들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으려나...? 애완동물 애호가...? 괴수 매니아...? 아니면 사서(司書)...?

Cujo
카테고리 문학>소설>미스터리/스릴러/호러
지은이 King, Stephen/ Menini, Maria Antonia (TRN) (RandomHouseEspanol,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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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킹 코너의 책 읽기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를 '모두'로 바꾸어내는 작업이 다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서가 제자리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몇몇의 경우... 표지의 구태의연함이 선사(?)하는 촌스러움을 덩달아 덮어 쓸까 봐, 지독히 낡은데다 서가 구석 신세를 면하지 못해 풀풀 날릴 먼지 덩어리들을 가득 머금고 있다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숙해져 있어 그들과 같은 정도의 식견을 지녔다 오해받을지 몰라서... 심지어 읽고 싶을 때 더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을까봐... 아무튼 별 시답잖은 이유를 꼽아가며 읽은 셈 치자 비켜가는 대상들에 이들을 포함시키곤 한다. <쿠조>도 물론 그 중 하나였다.
캐슬록으로 이주한 비트 트렌튼네 가족의 4살 난 외아들 테드는 벽장의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호박 빛 안광을 한 괴물의 존재에 잠자리를 설친다. 아빠 비트가 만들어준 괴물 쫓는 문구로 간신히 두려움을 달래는 테드, 비트의 아내 도나 마저 어떤 불길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외로움의 공포에 시달린다. 자동차공업소를 운영하는 조 캠버는 자동차수리비 대신 세인트버나드 종의 개를 받아 길러오고 있다. 200파운드에 달하는 거대한 개 쿠조는 주인남자, 여자, 소년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토끼몰이에 나섰다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된다. 도나는 테드와 함께 자동차 수리를 위해 조의 외딴 집을 방문하게 되고... 피 냄새에 사로잡힌 야수와 마주치게 되는데...
  <쿠조>의 경우는 엉뚱하게도 번역서 책 앞뒤 페이지에 자리 잡고 있는 절대 쿠조 일리 없을 개 사진 때문에 피했으려니 싶다. 세인트버나드 종을 실제 본적이야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우리세대의 명작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등장한 인명구조견이 그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의 착각인가 했다. 앞뒤에 인쇄된 호박 빛 털에 충혈 된 눈동자의 개는 아무리 봐도 셰퍼드 종이었으니까... 인상적인 쿠조의 사진은 내가 기이한 괴수소설애독자로 비춰질까? 혹은 개 조련사쯤으로 보이진 않으려나?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낯선 눈동자> 그리고 <쿠조>
  여하튼... <쿠조 CUJO>는 예전에 읽었던 쿤츠의 <낯선 눈동자 Watchers>와 슬쩍 견주어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리라. 완벽히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 한쪽은 유전자조작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아인슈타인이란 골든 레트리버의 행복 지향 고난극복기에 다름없지만 다른 한쪽은 평범한 지능의 쿠조란 세인트버나드의 처절한 파멸 그리고 가족의 붕괴라는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존재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로 이끄는 끌림에 순응하는 존재가 대비되는 부분이다.

  쿤츠와 킹이 글을 전개해나가는 능력에는 단순히 장르분야 작가일 뿐이라는 평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단하달 수밖에 없다고 인정할 작가로서의 기운이 놓여있다. 신선할 아이디어를 밑바탕 삼은 비약적인 상황에서든, 등장인물 자체와 주변에 대한 내밀한 묘사에서든 간에 절절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천재적인 화가로서의 능력까지 보게 되는 것이다. 다만, 쿤츠는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저주받은 가문의 존재나, 시공간을 뛰어넘는 능력 등 낯설거나 혹은 근래의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탓에 공감키 어려운 거북스러움을 종종 갖게 한다. 사실 <낯선 눈동자>만 하더라도, 천재적인 지능의 ''에 대한 일말의 개연성에라도 긍정하지 못한 상태에선 더 이상의 책읽기는 무의미했을 테니까. 즉, 똑똑한 ''의 존재가 모든 이야기의 전제이자, 전체가 되어버린다.
일상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힘...!
  이에 반해 킹은 가끔의 상상력비약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 벽장 속 미지의 존재(?)에 대한 실체규명은 중요치 않다. 불안한 잠자리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만의 심정으로 이겨내려 하는 테드의 두려움, 낯선 공간으로의 이주와 버림당할지 모른다는 격한 외로움에 불륜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가정에 연연해하는 도나, 아내의 외도라는 현실 앞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비트의 당혹스러움... 심지어 제 주인인 소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도 멈춤 힘든 광기에 침전하는 쿠조의 슬픈 심정... 죽어가는 자와 살아가야할 자들의 회한 등을 모아내었으니... 그 모든 등장인물·동물들의 속내가 책 한권이지 절대 벽장 속 괴물이야기나 미쳐버린 괴력의 야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쿠조>는 공포소설·괴수소설 따위로 대하기보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일상 속의 소소한 두려움에 대한 열거 정도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가려진 그늘 속에선 늘 무언가가 튀어나올 만반의 태세를 하고 있을 성 싶어 몸을 사려봤다거나... 욕실에서 머리를 감다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는 섬뜩함에 따끔거리는 눈을 억지로 떠봤거나... 아이의 침대 밑 어두운 빈 공간에서 번득거리는 눈빛의 존재와 마주칠지 몰라 손 넣길 망설였다거나... 책장 한편으로 올려놓은 인형이 이죽거리는 웃음을 실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러웠다거나... 잠결에 모로 고개를 돌렸을 때 산발한 아낙네(?)가 마주보고 있지 않을까 눈 뜨기가 힘들었다거나... 사무실을 소등하고 승강기를 기다리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온 신경이 예민해졌다거나... 형광등이 점멸하며 꺼져가는 찰나의 순간 어둠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달음박질 해봤다거나... 문득 유리창 건너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어떤 존재의 묵직한 시선을 알아차렸다거나... 옆 자리에 앉아있던 와이프가 내가 당신 부인으로 보이냐... 라고 허튼소리를 하는데 왠지 아닌 듯싶어 종종 돌아봤다거나... 등등 사소하지만 일상의 곳곳으로 배어 있어 그 소소함에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심정에 잠깐이나마 시달려본 적이 있다면... 킹이 잡아내는 그 일상 속 두려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듯... 이상... 챌... 끝...!


딸아이는 일곱 번째 생일날 살해되었다 '살인위원회 Kill Clause'

사색거리들/책 | 2011. 1. 31. 14:23 | ㅇiㅇrrㄱi

사랑스런 딸아이의 일곱 번째 생일날 나는 유가족이 되어 아이의 신원을 확인했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감히 이해한다고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고 내지 감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제한된 이해일 뿐이다. 다른 말로 이해의 정도란 당시 처해있을 상황에 따라 언제든 그 범위를 넓힐 수도 혹은 좁힐 수도 있는 융통성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지 않을까. 언젠가 관람했던 영화의 한 장면. 유괴범이 어린아이를 납치해 목에 올가미를 걸고는 멀찍이 떨어져 아이를 지탱하고 있던 의자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는 광경. 범인 스스로가 녹화해놓은 이 상황을 피해아동들의 가족이 지켜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관람객의 입장에서 무심히 바라보았던 장면이었건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위치에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의자가 치워져버리는 그 순간 덜컥 거리며 무너져 내리는 마음 한켠이란 게 있었고, 급격한 분노 따위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더랬다.

살인위원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그렉 허위츠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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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도 아이 가진 부모마음을 내려앉게 만드는 연장선위에 있다.

연방법원 집행관으로 근무하는 팀 랙클리. 레인저 부대 출신의 전직 육군 중사이며 다양한 전투훈련을 모두 익힌 전문가인 그가 들은 소식은 외동딸 지니가 강간당한 후 토막 살해당했다는 비보였다. 그것도 일곱 번째 생일날을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던 중... 아내 드레이는 주저 앉아버리고 팀은 아이의 사체를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범인 킨델은 바로 검거되고 개인적인 단죄의 기회조차 미루며 팀은 법의 처분에 그를 맡긴다. 하지만 체포과정에서의 법적 결함을 이용한 킨델은 풀려나고, 그간 맹신했던 법의 한계에 회한을 느낀 팀의 앞에 낯선 이들이 나타난다.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사회악에 대해 자체적인 처단을 내리자는 라이너 교수의 제안으로 팀은 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고 기동부대 소속이었던 매스터슨 형제, 전직 FBI 요원이었던 에디, 전직 경찰출신인 듀몬 등과 함께 사회악에 대한 즉결처분에 나서게 되는데... 

집필을 위해 해군의 특수부대 작전에 참여하거나 잠입수사에 동행하는 등 실감나는 체험을 통해 스릴러의 사실감과 긴박감을 생생하게 묘사하려 노력한다는 작가답게, <살인위원회>는 법의 한계나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 등에 대한 진지한 제안만큼이나 빠른 활극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랑하는 딸의 처참한 죽음과 함께 팀의 앞으론 슬픔이나 분노 따위가 왜곡하는 모든 것들은 또 다른 시련으로 급하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부인 드레이와의 서먹서먹해지는 거리감, 집행관으로서 갖고 있던 법에 대한 가치의 혼동 등 평생 누릴 것 같았던 일상들을 잃어가면서 팀은 위원회의 권유에, 직접 법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참담한 현실에 기꺼이 뛰어들고야 만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풀려는 시도... 그건... 너무 절망적인 표시이니까...
<살인위원회>는 위원회가 진행하는 상당히 불법적인(?) 법 정의의 실현과정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절차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법 자체의 한계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과연, 불법에 대한 각 개인의 자경단식 처단이란 게 나름대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하소연처럼 헌법에 대한 존중, 형법에 대한 준수 등은 단순히 규약으로서의 필요성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판사나 검사, 경찰, 정치인 등 관리감독의 위치에 있어야할 이들까지 하찮게 여기는 대상이기도 한 게 현실이다.  

아이들을 포함해 86명의 무고한 시민을 단지 정치적 신념을 위해 신경가스로 살해한 제더디아 레인, 아동 성추행 혐의가 있는 도빈스, 어린 소녀를 제물로 희생 부두교의 사제 드부피어,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보릭, 팀의 어린 딸을 강간 살해한 킨델...
 
아마, 독자들 머릿속에서도 수십 번 사형을 최종선고하고도 남을 이들의 무죄추정 자체가 법의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팀이 직접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기도 하지만... 제도적인 결합을 보완하고자하는 개인들의 노력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위험성을 지닌다.

실제, 팀은 참회의 삶을 살고 있는 위원회의 공격 대상을 마주하고 고민에 빠져든다. 그를 죽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법은 오랜 기간 그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의 합의과정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제도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가 있겠지만, 결국 그 대상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가치를 지닌다. 이 합의과정을 무시한 주관적인 판단과 집행은... 절망적인 표시일 수 있다. 누군가의 권리를 하찮게 느낀다는 것은, 하찮은 대상을 전체로 확장시킬 수 있는 위험성 또한 내재하고 있음이 아닐까? 과장된 상황이긴 하지만 로버트와 미첼 형제의 폭주는 주관적 정의실현의 위험성 또한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범인 킨델의 집에서 발견된 딸의 양말 한짝... 그 앞에서 주저 앉아버릴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 킨델의 집 밖 어둠 속에서 그를 향해 서늘한 총을 겨누고 심호흡 하는 부모의 숨가쁨 등... 법이니 정의니 하는 사회적 고민 보다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더욱 씁쓸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