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일곱 번째 생일날 살해되었다 '살인위원회 Kill Clause'

사색거리들/책 | 2011. 1. 31. 14:23 | ㅇiㅇrrㄱi

사랑스런 딸아이의 일곱 번째 생일날 나는 유가족이 되어 아이의 신원을 확인했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감히 이해한다고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고 내지 감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제한된 이해일 뿐이다. 다른 말로 이해의 정도란 당시 처해있을 상황에 따라 언제든 그 범위를 넓힐 수도 혹은 좁힐 수도 있는 융통성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지 않을까. 언젠가 관람했던 영화의 한 장면. 유괴범이 어린아이를 납치해 목에 올가미를 걸고는 멀찍이 떨어져 아이를 지탱하고 있던 의자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는 광경. 범인 스스로가 녹화해놓은 이 상황을 피해아동들의 가족이 지켜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관람객의 입장에서 무심히 바라보았던 장면이었건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위치에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의자가 치워져버리는 그 순간 덜컥 거리며 무너져 내리는 마음 한켠이란 게 있었고, 급격한 분노 따위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더랬다.

살인위원회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그렉 허위츠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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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도 아이 가진 부모마음을 내려앉게 만드는 연장선위에 있다.

연방법원 집행관으로 근무하는 팀 랙클리. 레인저 부대 출신의 전직 육군 중사이며 다양한 전투훈련을 모두 익힌 전문가인 그가 들은 소식은 외동딸 지니가 강간당한 후 토막 살해당했다는 비보였다. 그것도 일곱 번째 생일날을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던 중... 아내 드레이는 주저 앉아버리고 팀은 아이의 사체를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범인 킨델은 바로 검거되고 개인적인 단죄의 기회조차 미루며 팀은 법의 처분에 그를 맡긴다. 하지만 체포과정에서의 법적 결함을 이용한 킨델은 풀려나고, 그간 맹신했던 법의 한계에 회한을 느낀 팀의 앞에 낯선 이들이 나타난다.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사회악에 대해 자체적인 처단을 내리자는 라이너 교수의 제안으로 팀은 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고 기동부대 소속이었던 매스터슨 형제, 전직 FBI 요원이었던 에디, 전직 경찰출신인 듀몬 등과 함께 사회악에 대한 즉결처분에 나서게 되는데... 

집필을 위해 해군의 특수부대 작전에 참여하거나 잠입수사에 동행하는 등 실감나는 체험을 통해 스릴러의 사실감과 긴박감을 생생하게 묘사하려 노력한다는 작가답게, <살인위원회>는 법의 한계나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 등에 대한 진지한 제안만큼이나 빠른 활극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랑하는 딸의 처참한 죽음과 함께 팀의 앞으론 슬픔이나 분노 따위가 왜곡하는 모든 것들은 또 다른 시련으로 급하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부인 드레이와의 서먹서먹해지는 거리감, 집행관으로서 갖고 있던 법에 대한 가치의 혼동 등 평생 누릴 것 같았던 일상들을 잃어가면서 팀은 위원회의 권유에, 직접 법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참담한 현실에 기꺼이 뛰어들고야 만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풀려는 시도... 그건... 너무 절망적인 표시이니까...
<살인위원회>는 위원회가 진행하는 상당히 불법적인(?) 법 정의의 실현과정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절차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법 자체의 한계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과연, 불법에 대한 각 개인의 자경단식 처단이란 게 나름대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하소연처럼 헌법에 대한 존중, 형법에 대한 준수 등은 단순히 규약으로서의 필요성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판사나 검사, 경찰, 정치인 등 관리감독의 위치에 있어야할 이들까지 하찮게 여기는 대상이기도 한 게 현실이다.  

아이들을 포함해 86명의 무고한 시민을 단지 정치적 신념을 위해 신경가스로 살해한 제더디아 레인, 아동 성추행 혐의가 있는 도빈스, 어린 소녀를 제물로 희생 부두교의 사제 드부피어,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보릭, 팀의 어린 딸을 강간 살해한 킨델...
 
아마, 독자들 머릿속에서도 수십 번 사형을 최종선고하고도 남을 이들의 무죄추정 자체가 법의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팀이 직접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기도 하지만... 제도적인 결합을 보완하고자하는 개인들의 노력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위험성을 지닌다.

실제, 팀은 참회의 삶을 살고 있는 위원회의 공격 대상을 마주하고 고민에 빠져든다. 그를 죽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법은 오랜 기간 그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의 합의과정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제도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가 있겠지만, 결국 그 대상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가치를 지닌다. 이 합의과정을 무시한 주관적인 판단과 집행은... 절망적인 표시일 수 있다. 누군가의 권리를 하찮게 느낀다는 것은, 하찮은 대상을 전체로 확장시킬 수 있는 위험성 또한 내재하고 있음이 아닐까? 과장된 상황이긴 하지만 로버트와 미첼 형제의 폭주는 주관적 정의실현의 위험성 또한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범인 킨델의 집에서 발견된 딸의 양말 한짝... 그 앞에서 주저 앉아버릴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 킨델의 집 밖 어둠 속에서 그를 향해 서늘한 총을 겨누고 심호흡 하는 부모의 숨가쁨 등... 법이니 정의니 하는 사회적 고민 보다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더욱 씁쓸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