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두려움에 호소하는 힘 '쿠조 CUJO'

사색거리들/책 | 2011. 2. 7. 13:31 | ㅇiㅇrrㄱi

  뜬금없는 얘기로,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각종 전자기기로 눈길을 던지는 중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한 요즘, 오프라인적인 취향 최후의 성역으로 몰려가는 책 한권을 들고 있다는 건 때론 스스로에 대한 흐뭇한 생경함을 넘어, 시대를 역행하는 중인 자신이 일면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싫지 않은 자존감의 고양으로까지 이어지곤 한다. 터벅거리며 길을 걷거나, 버스의 흔들림에 기우뚱하면서, 지하철에서의 자리다툼 와중에서도 내가 다른 사람의 낱낱을 곁눈질하며 그만의 취향을 가늠해보듯, 상대 또한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 한권으로 나에 대한 무언가를 짐작해내려고 들 하지 않을까... 어찌 보면 터무니없을 마음가짐은 이제 제 멋대로 수를 늘려버린 나이와 하등 관련 없다는 듯 여전한데... 이 책을 들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으려나...? 애완동물 애호가...? 괴수 매니아...? 아니면 사서(司書)...?

Cujo
카테고리 문학>소설>미스터리/스릴러/호러
지은이 King, Stephen/ Menini, Maria Antonia (TRN) (RandomHouseEspanol,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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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킹 코너의 책 읽기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를 '모두'로 바꾸어내는 작업이 다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서가 제자리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몇몇의 경우... 표지의 구태의연함이 선사(?)하는 촌스러움을 덩달아 덮어 쓸까 봐, 지독히 낡은데다 서가 구석 신세를 면하지 못해 풀풀 날릴 먼지 덩어리들을 가득 머금고 있다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숙해져 있어 그들과 같은 정도의 식견을 지녔다 오해받을지 몰라서... 심지어 읽고 싶을 때 더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을까봐... 아무튼 별 시답잖은 이유를 꼽아가며 읽은 셈 치자 비켜가는 대상들에 이들을 포함시키곤 한다. <쿠조>도 물론 그 중 하나였다.
캐슬록으로 이주한 비트 트렌튼네 가족의 4살 난 외아들 테드는 벽장의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호박 빛 안광을 한 괴물의 존재에 잠자리를 설친다. 아빠 비트가 만들어준 괴물 쫓는 문구로 간신히 두려움을 달래는 테드, 비트의 아내 도나 마저 어떤 불길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외로움의 공포에 시달린다. 자동차공업소를 운영하는 조 캠버는 자동차수리비 대신 세인트버나드 종의 개를 받아 길러오고 있다. 200파운드에 달하는 거대한 개 쿠조는 주인남자, 여자, 소년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토끼몰이에 나섰다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된다. 도나는 테드와 함께 자동차 수리를 위해 조의 외딴 집을 방문하게 되고... 피 냄새에 사로잡힌 야수와 마주치게 되는데...
  <쿠조>의 경우는 엉뚱하게도 번역서 책 앞뒤 페이지에 자리 잡고 있는 절대 쿠조 일리 없을 개 사진 때문에 피했으려니 싶다. 세인트버나드 종을 실제 본적이야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우리세대의 명작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등장한 인명구조견이 그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의 착각인가 했다. 앞뒤에 인쇄된 호박 빛 털에 충혈 된 눈동자의 개는 아무리 봐도 셰퍼드 종이었으니까... 인상적인 쿠조의 사진은 내가 기이한 괴수소설애독자로 비춰질까? 혹은 개 조련사쯤으로 보이진 않으려나?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낯선 눈동자> 그리고 <쿠조>
  여하튼... <쿠조 CUJO>는 예전에 읽었던 쿤츠의 <낯선 눈동자 Watchers>와 슬쩍 견주어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리라. 완벽히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 한쪽은 유전자조작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아인슈타인이란 골든 레트리버의 행복 지향 고난극복기에 다름없지만 다른 한쪽은 평범한 지능의 쿠조란 세인트버나드의 처절한 파멸 그리고 가족의 붕괴라는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존재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로 이끄는 끌림에 순응하는 존재가 대비되는 부분이다.

  쿤츠와 킹이 글을 전개해나가는 능력에는 단순히 장르분야 작가일 뿐이라는 평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단하달 수밖에 없다고 인정할 작가로서의 기운이 놓여있다. 신선할 아이디어를 밑바탕 삼은 비약적인 상황에서든, 등장인물 자체와 주변에 대한 내밀한 묘사에서든 간에 절절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천재적인 화가로서의 능력까지 보게 되는 것이다. 다만, 쿤츠는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저주받은 가문의 존재나, 시공간을 뛰어넘는 능력 등 낯설거나 혹은 근래의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탓에 공감키 어려운 거북스러움을 종종 갖게 한다. 사실 <낯선 눈동자>만 하더라도, 천재적인 지능의 ''에 대한 일말의 개연성에라도 긍정하지 못한 상태에선 더 이상의 책읽기는 무의미했을 테니까. 즉, 똑똑한 ''의 존재가 모든 이야기의 전제이자, 전체가 되어버린다.
일상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힘...!
  이에 반해 킹은 가끔의 상상력비약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 벽장 속 미지의 존재(?)에 대한 실체규명은 중요치 않다. 불안한 잠자리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만의 심정으로 이겨내려 하는 테드의 두려움, 낯선 공간으로의 이주와 버림당할지 모른다는 격한 외로움에 불륜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가정에 연연해하는 도나, 아내의 외도라는 현실 앞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비트의 당혹스러움... 심지어 제 주인인 소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도 멈춤 힘든 광기에 침전하는 쿠조의 슬픈 심정... 죽어가는 자와 살아가야할 자들의 회한 등을 모아내었으니... 그 모든 등장인물·동물들의 속내가 책 한권이지 절대 벽장 속 괴물이야기나 미쳐버린 괴력의 야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쿠조>는 공포소설·괴수소설 따위로 대하기보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일상 속의 소소한 두려움에 대한 열거 정도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가려진 그늘 속에선 늘 무언가가 튀어나올 만반의 태세를 하고 있을 성 싶어 몸을 사려봤다거나... 욕실에서 머리를 감다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는 섬뜩함에 따끔거리는 눈을 억지로 떠봤거나... 아이의 침대 밑 어두운 빈 공간에서 번득거리는 눈빛의 존재와 마주칠지 몰라 손 넣길 망설였다거나... 책장 한편으로 올려놓은 인형이 이죽거리는 웃음을 실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러웠다거나... 잠결에 모로 고개를 돌렸을 때 산발한 아낙네(?)가 마주보고 있지 않을까 눈 뜨기가 힘들었다거나... 사무실을 소등하고 승강기를 기다리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온 신경이 예민해졌다거나... 형광등이 점멸하며 꺼져가는 찰나의 순간 어둠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달음박질 해봤다거나... 문득 유리창 건너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어떤 존재의 묵직한 시선을 알아차렸다거나... 옆 자리에 앉아있던 와이프가 내가 당신 부인으로 보이냐... 라고 허튼소리를 하는데 왠지 아닌 듯싶어 종종 돌아봤다거나... 등등 사소하지만 일상의 곳곳으로 배어 있어 그 소소함에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심정에 잠깐이나마 시달려본 적이 있다면... 킹이 잡아내는 그 일상 속 두려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듯... 이상... 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