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콜린 쟈콥스의 일그러진 영웅 '어둠의 소리 The Voice of the Night'

사색거리들/책 | 2011. 2. 14. 13:32 | ㅇiㅇrrㄱi

이명(耳鳴)... 알 수 없는 소리들과 자릿자릿한 기운이 언제부터 귀 안쪽으로 들어차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알아차리는 게 간혹 일 정도로 이젠 일부가 되어 버린다. 의미 얹은 목소리가 실리지 않았다 뿐이지 고저(高低)와 강약(强弱)을 통해 늘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불치라는 판정이 일으키는 죽음으로의 연상만큼이나, 죽음 직전까지 동행해야할 거라는 무게는 병증과 별개로 따라오는 고통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이제는 절판되어 어느 도서관 서가구석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분명 회전초 마냥 굴러다닐 먼지 덩어리로 치장하고 있음직한 책 <어둠의 소리>에서 만난 14살 콜린 쟈콥스는 이명 환자에 다름없다. 어둠 속으로 도사려 있다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사악한 기운만이 느껴지는 어떤 존재의 중얼거림에 늘 떨어하지만 정작 다른 이에게 증명을 요청할 수 없는... 홀로 들어낼까 두려운 소리일 뿐이다. 다른 이가 같이 들어줄 수 없거나 함께 보아 줄 수 없는 의미를... 오로지 홀로 듣고 느껴 내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 소년의 외로운 현실 속으로 이명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뭘 죽여본 적 있냐?" 로이가 물었다.
"어떤 거 말야?" 콜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거나, 뭐든 죽여본 적 있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너는 뭔가 틀림없이 죽여 봤을 거야, 곤충은 안 죽여 봤냐?"
"그야 죽여 봤지. 모기나 개미, 파리 같은 건 죽여 봤어. 그게 어때서?"
"기분이 좋았니?"
"너는 곤충을 죽이는 게 좋아?"
"가끔씩은"
"왜?"
"그것은 진짜 죽여주는 일이니까, 곤충보다 큰 걸 죽여본 적 있냐?"
"뭐라고?"
14살 소년 콜린과 로이의 섬뜩한 대화로부터 시작되는 딘 쿤츠의 <어둠의 소리 딘 R. 쿤츠 지음, 이동민 옮김, 태일출판사, 1993>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며 허약체질과 비 사교성으로 끊임없이 주변 친구들의 놀림거리로 전락하는 속칭 '왕따' 콜린 쟈콥스가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자 부모들로부터의 호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속칭 '착한 일진' 로이 보든과 가까워지는... 피로 맺어진 형제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 벌어지는 참담한 성장의 기록이다.

장르작가 특유의 방식대로 살인과 폭력 등 일련의 급박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전개를 돕고 있지만... 읽다보면 콜린이라는 14살 소년의 세밀한 감정묘사가 주가 됨을 느끼게 된다.  외톨이 콜린의 친구 맺기 과정에의 빠르고 자연스러운 빠져듦으로 급박한 전개를 통한 기본적인 재미의 충족뿐 아니라 14살 소년의 내밀한 심리읽기라는 면에서의 경박하지 않을 만족스러움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혼한 부모의 틈바구니에서 본인만의 사적 공간에 들어앉아 공포물과 괴기물 그리고 낯선 상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외로운 마음 상태... 친구와의 관계 맺기에 전력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유일한 친구의 낯선 요구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이나 강권에 따라가면서 느끼게 되는 당혹스러움... 급작스럽게 성장해버린 듯 스스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영웅을 향해 쏟아내는 마지막 단말마적 절규는 처절함 뿐이다. 하지만, 결국 14살... 여전히 친구가 그립고 어른들의 잔혹함이 소름끼치는... 아직 14살 아이이기에 가능한 극적인 화해 그리고 슬픔을 전제로 한 깨달음... 이 가슴을 울린다.

콜린의 이명은 로이와 조우하면서부터 실체를 드러낸다. 오직 콜린만이 알고 있고 전전긍긍해할 유일한 친구의 끔찍할 행태가 더해지며 이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중얼거림이 아닌, 더 큰 외로움을 덧댈 고립으로 나타난다. 아무도 들어줄 수 없고 듣더라도 제대로 알아줄 이가 없다. 처절하게 감수해야할 소년의 과제만이 남고, 이명은 어느 순간 완벽히도 사악한 현실 자체가 되어 소년을 압박한다. 그러니 콜린에게 이명은... 외로움에 시달리던 중 얻게 된 아이의 환청일 수도 있겠지만, 주변과 소통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에 어긋나는 무관심과 왜곡, 방치나 편견에 의한 병증(病症)과도 같다.

한편으로 케케묵은 듯 오래된 이야기 그것도 다른 나라 아이의 경우에서 오는 생경함이란 게 있을 수야 있겠지만, 과거는 과거대로 현실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해내듯 아이의 처지와 심정 또한 읽는 이의 과거를 돌아보거나 주변의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리게 하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어 여러 개의 처지와 심정을 건너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콜린의 절박할 심정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는 동심이라는 만국 공용어에서 우러나오는 장점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니 마지막 콜린의 절규와 깨달음 속에선... 공포, 스릴러, 추리 등의 장르분야에 대한 선입견을 먼저 일으키는 이런 유의 소설(아마 장르작가로 굳어진 작가의 명성 탓이기도 하겠다)에선 얻어내기 힘들 깊은 여운까지 설핏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론이 부여하는 정황이 새삼 궁금하거나 그 귀결의 과정을 되짚고 싶어서가 아니라, 14살 소년의 울부짖음이, 그 몇 마디가 갖는 처연할 수밖에 없는 절절함 때문으로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눈을 감아보게 된다. 귀를 모아보게 된다. 14살의 나에게는 어떤 소리가 들렸을까...? 지금의 내가 듣고 있는 소리는 어떤 의미일까...?
콜린은 긴 언덕을 걸어서 주유소의 공중전화로 향하면서 더 이상 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구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언제나 밤 속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 낮고 음산한 중얼거림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사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소리는 없었다. 콜린은 몇 걸음 더 걸은 다음, 밤의 소리가 이제는 자신의 내부에 있고, 사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내부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스물네 시간 계속되는 어둠과도 같은 속삭임은 14살 녀석들의 평범한 낯 빛 뒤로 드리워진 그늘 속에 기생하는 사악함 자체였다. 14살의 어느 때를 넘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어둠 스스로가 검은 빛으로 충만해 있듯 사악한 중얼거림은 순도 높은 사악함으로만 채워져... 있는 듯 없는 듯한 묘한 울림으로 귀 속을 부유하는 중일 지 모른다. 

사악한 속삭임을 무시하거나 쫓아내고 듣기를 거부하는 게 평생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리라는 건 스스로 만들어낸 영웅을 아프게 허물어내면서 얻게 된 콜린 쟈콥스의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얻는 교훈은 순수함의 훼손에서 오는 상처를 바탕으로 하기 마련이다. 깨달음을 대가로 남게 된 상처는... 성장통의 상처 치고는 너무 아프다. 피딱지로 위로 새살이 돋기야 하겠지만 그 시간이 마음 아파진다.

작가 스스로가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 했다는데, 그 이후로의 작품까지 포함시킨다 해도 슬쩍 동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