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어긋나는 미로 속으로의 초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사색거리들/책 | 2011. 3. 5. 08:00 | ㅇiㅇrrㄱi

사라진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어디 있을까? 어떤 몰상식한 이용자 때문에 그 도서관의 신학이나 공학 서가에서 묵상에 잠겨 있을까? 아니면 날개라도 달려 다른 도서관으로?
어...? 사라졌다는 책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지금 내 손안에 들려있네...? 유감스럽게도 동네 도서관이 아닌 D 대학의 중앙도서관 구석진 서가에서 찾아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 뿐. 어쩌면 내용에 따라 책의 제목도, 출판사나 표지 디자인도 바뀌었을 거라더니... 제목 말고는 모든 형태가 바뀌어 버렸다. 온통 검은 색인 앞뒤 표지에 제목과 출판사 로고만 인쇄되어 있고 홍보문구나 추천사 그리고 가격 따위 등은 찾아볼 수 없어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를 연상케 한다던 소박한 디자인이 기괴한 화려함으로 거듭난 모양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최제훈 (자음과모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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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최제훈...? 신화, 문학작품, 가공의 인물 등을 <퀴르발 남작의 성>이란 단편집 속으로 우르르 끌어들여 난장의 향연을 만들어 내었던 바로 그 작가다. 갈고리에 절단된 팔과 몸통을 걸어놓았던 전작의 표지만큼이나 이번 표지도 한층 얄궂다. 얼굴 하나 덜렁, 안경의 모양새를 한 붉은 색 뫼비우스의 띠 위로는 북슬북슬한 송충이 여러 마리가 기어가고 있으며, 무한히 확장되는 값 π 형상의 입이 우스꽝스럽게 놓여 있다. 이번엔... 어떤 난장의 향연을 선보이려나...? 무슨 짜깁기된 상상력을 자랑하려나...? 골똘히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머릿속이 뫼비우스의 띠를 좇아 무한으로 회전하는 기분이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도입을 알리는 짧은 노래. 어둠 속에서 본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그런데 고양이는 세 마리뿐이라니 나머지 눈 하나의 주인공은 누구이려나? 차마 불을 켜지 못하는 화자의 으스스한 심정으로 읽기 시작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여섯 번째 꿈>, <복수의 공식>, < π >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뤄낸다. 각 중편이 시작되는 지점엔 QR코드를 삽입해 각 작품에 어울리는 이미지와 사운드트랙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데, 아쉽게도 스마트폰의 기본도 모르는 희대의 불량품 전지불능 제품의 유저인지라 그저 상상으로만 음미해볼 뿐.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왠지 흐늑거릴 듯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들려주는 <여섯 번째 꿈>은 어디선가 접해봤음 직한 밀실트릭 추리물을 연상케 한다. 연쇄살인 관련 온라인 동호회 실버 해머의 회원 6명이 주인장인 닉네임 악마의 초대를 받아 외딴 산장에 모인다. 정작 초대한 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폭설로 고립된 회원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고... 서로를 의심하던 와중 그들이 마주하는 건 각자가 꾸어내는 살인의 꿈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살아남은 자 중 하나이려나? 아니면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주인장이려나? 궁금하다. 그저 죽었을 뿐인 누군가의 꿈 자체일까? 범인은 누구지?

무수한 의구심을 뒤로 하고 작품의 말미는 도돌이표를 마주한 듯 이야기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딘가의 묘한 어긋남... 아귀가 맞아야할 지점으로 실금이 가버린다. 산장에 모였다는 사람은 여섯 명...! 산장에 모였다는 사람은 일곱 명...?

두 번째의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따라가게 된다. 인물이 등장하고, 명확한 사건이 진행되니 부분 부분에서의 또렷한 서사 탓으로 이해가 어려울리 없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긋나는 지점들이 차곡차곡 늘어만 간다. 멈춤 없이 읽어가면서도 앞으로 두툼해지는 읽어버린 분량이 부담스럽고, 점점 얄팍해지는 읽어야할 분량이 당혹스러운 건... 단 하나의 줄거리도 완성해내지 못할 듯싶은 불안감 탓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해 죽어나갔던 인물들이 과거의 한때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듯싶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고, 각자가 서로에게 나아가는 매개는 거듭되는 이야기 속에서 변질된다. 분명 아는 인물이었지만 알지 못하는 인물이게 되고, 명확한 사건 자체가 명확함을 간직하면서도 모호하게 변용된다. 이들을 엮어낼 사연과 단서가 늘 저편 어딘 가로 닿도록 손을 뻗고 있어 각자를 독립적으로 끊어내지도 못할 난처한 형국이다. 네 개의 중편이 어느 순간 전혀 별개가 되기도, 어느 지점에선 사소하지만 결코 같지 않게 이어져 있으니... 잔뜩 홀린 듯한 기분만 이어진다.

내가 본 게 뭐지...? 무엇에 대한 이야기지...? 수시로 앞의 등장인물을 확인하고, 여태 또렷해보였던 서사를 되짚는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퍼즐의 조합이 아예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쯤 되면 이런 엉터리 따위...! 책을 던져버려야 마땅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인 게 날줄씨줄로 교묘하게도 서로가 이어져 있어 엉터리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음을 인정할 밖에 없기 때문...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신세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이젠 지쳤어.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지만, 이 또한 다른 차원을 겹쳐내는 하나의 연결고리일 뿐이다. 분명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으며, 수시로 교차하며 평행을 달리는 다른 시선 또한 느껴낸다. 그렇게 누군가의 바람대로 완벽한 미스터리 한 편이 완성되어 책 속으로 삽입되고, 무한히 변주하며 지금 내 손에 들리어 있는 글의 제목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전작에서의 교묘하게 짜깁기된 상상력은 이제 작가의 기발한 트릭으로 변모하여 읽는 이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인간들 사이사이에 놓인 죽음과 욕망 그리고 윤회의 기제를 수려한 문장으로 건드려내고 있어 이에 대해 작가의 묵직한 시선을 할끔거릴 수 있다는 건 읽기에 수반되는 또 하나의 덤이다. 그래서인가 말미에 실린 해설에선 우리시대의 죽음에 대한 간단치 않은 화두를 던져내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을 소재삼은 본격문학과 미스터리에 준하는 장르문학이 절묘하게 균형 잡힌 뒤섞기의 결정(結晶)이라 하기엔 미로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 공들일 읽는 이의 두통이... 왠지 균형대의 한편을 무겁게 내려 누를 듯싶다. 그러니 혹자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였다 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생소함으로 인해 골치만 지끈거린다 투덜거릴지 모른다.

작가에 대한 여전할 기대가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글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작은 나무와 동행하는 영혼의 산책길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사색거리들/책 | 2011. 3. 2. 15:00 | ㅇiㅇrrㄱi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퇴근길의 1호선. 머리 위로 가득 걸린 형광등의 푸르스름한 불빛이 부끄럽게도 밝은 시간이 이어진다. 조금 참아보자 했다. 도착역을 채 몇 정거장 남기지 않았으니 울컥 하는 마음 한편 추스르고 아무 일 없는 듯 가만히 있어보자 했다. 더 이상 읽어 내릴 수 없어 황급히 책을 덮는 심경이란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도 않으니... 감정의 울렁임과 닿아있을 즐거움 대신 아직도 이리 감상적인가 싶은 생소함이 일종의 굴욕감으로 이어진다. 참 나... 몇 장만 넘기면 되는데 그 몇 장을 넘기지 못하는 나약함이란....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책의 나머지를 덮어버리곤 지나치게 밝은 형광등 쪽으로 고개를 들어야만 했고 그리 바라보는 하얀 빛은 왠지 파르스레한 차가운 기운마저 머금고 있었다. 고개를 슬쩍이라도 원위치하면 눈물이 뚝 흘러내릴 것 같아 묘한 각도로 턱을 쳐든 모양새를 종착역에서 출입문이 열릴 때까지 유지한다.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다는 걱정은 막 열린 출입문을 빠져나와 지하철 객차 안 형광등 수십여 개를 뒤로 하고야 사라진다.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 한 문장 넘기지 못하고 그냥 덮는다. '아무래도 이 마지막 몇 장은 온전히 홀로 있을 때에나 읽는 게 가능하겠어...'
내 이름은 작은 나무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은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살배기 인디언 소년의 짧은 성장수기로 체로키족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숲속 생활의 이모저모다. 자연의 이치나 당시의 생활상, 무조건 옳다는 쪽으로 손을 번쩍 들어주고 싶은 삶의 방식 등이 시종일관 순박하고 정갈한 소년의 눈높이에서 펼쳐진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할 뿐인 할아버지와의 유쾌한 산책길에 빠져들고, 항상 웃음만을 머금고 있을 성 싶은 할머니의 살가운 가르침을 들으며, 그들 사이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이나 그 안에 놓인 여러 교훈을 접하다보면... 읽는 이의 마음이 작은 나무의 한쪽으로 자연스레 놓여 함께 경탄하고 깨닫고 웃고 즐기면서 다섯 살 소년의 심정에 포근히 동화되어 버린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국내도서
저자 : 포리스트 카터(Bedford Forrest Carter) / 조경숙역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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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유구한 역사 속에서 완성되었을 체로키 인디언만의 훈육이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작은 나무가 얻어가는 깨달음은 한 부족에만 내려오는 단편적인 가르침 보다는 오히려 철학에 가깝다. 탈콘 매의 사나운 발톱에 사로잡힌 메추라기의 죽음을 통해서는 약육강식의 원칙 속에도 한 개체의 성공적인 진화와 개체 간 균형에 대한 자연의 배려가 숨어 있음을, 함정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칠면조의 꽥꽥거리는 아우성에서 자신의 주변에 뭐가 있는지를 늘 내려다봐야한다는 겸손이 지닌 현명함을, 거짓 신호를 보낸 사냥개에게서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들면 결국 자신이 곤란함에 처하게 된다는 정직의 필요성을, 심지어 방울뱀에 목숨을 잃을 상황 속에서조차 가족 간의 애정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담아내는 등 체로키족 후세로서의 작은 나무에게가 아닌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울림이 크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이래야 저래야 한다는 식도 아니다. 무척이나 유쾌한 이야기 한편에 슬쩍 웃다 말고, 또 다른 이야기에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음 장에서는 답답함으로 욕을 내뱉고, 어떤 대목에선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춰내기 급급해하다가는... 결국 어느 순간 책의 제목처럼 내 영혼 또한 순박하지만 절절해 보이는 사랑 따위로 잔뜩 젖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교훈은... 그저 그 다음에 남는... 하지만 영혼의 따뜻함이 전제되었기에 좀 더 신랄하게 각인되는 부수적인 무엇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온통 교훈에 대한 감동적인 내용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1838년에서 1839년 사이 1만 3천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1,300킬로미터 너머의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를 위한 행진 중에 추위와 기아, 병, 사고 등으로 무려 4천여 명 정도가 죽었다는 '눈물의 여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서구문명이 발판삼은 게 도대체 무언지에 대해, 왜 인간이 과거를 이해하고 알아두어야 앞을 내다볼 수 있는지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자연훼손을 포함한 환경문제나 미국의 대공황 당시 처참했던 서민들의 삶 그리고 표리부동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 종교인들의 편협한 시각 등에 대한 지적 또한 묵직한 비중으로 스며들어 있다.

  무척 재미있다. 자연의 이치, 문명의 폐해, 인간적 삶의 고민, 정치의 이중성, 종교나 법의 모순, 이웃의 정겨움, 교육의 의미 그리고 사랑의 위대함과 영속성 등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 누르는 메시지들이 감동스러운 상황 속에서 줄줄 이어진다. 또한, 길을 걷다 마주한 가로수 한 그루에게 안녕...? 이라고 인사를 건네야하지 않을까 고민될 만큼 읽는 이의 마음을 앗아가는 저력이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너 자신과 더불어 너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 어쩌면 화단 위로 떨어진 나뭇잎 한 장부터도 너를 아끼고 있으며 머리를 스쳐가는 바람조차도 한줌 따스한 위로일 수 있으니 그런 이해 여럿만으로도 살아갈 가치는 충분함을 깨닫기 위해서... 읽어보라 하고 싶다.

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슬프고도 행복했던 시간 이후...
  끝 무렵에 도달해 울먹거렸던 심정으로 돌이켜보면 책을 읽다 울 것 같은 심정...? 아니 울어버린 심정에 다다랐던 게 언제 적인지 떠올려보기 힘들다. 아마도... 위다의 <플란다스의 개 A Dog of Flanders> 원작을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읽으며 네로와 파트라슈의 마지막 포옹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게 기억의 마지막쯤...? 서글픔 자체였던 결론만큼이나 생의 마감을 함께 맞이하도록 둘을 묶어놓았던 애정의 깨어짐이 안타까웠다. 보이지 않을 세계에서의 행복한 해후를 전제로 한 현세에서의 이별이었겠으나 책을 읽는 산 자의 입장에서야 죽음은 비극만으로 풀이될 테니...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은 가져보았지? 여기 아닌 저 세상에서는 행복하기를... 따뜻하기를... 그리고 아쉽게도 남겨놓은 것이 무어든 그건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콕 박혀 있기를...

  마찬가지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같은 심정을 가져 본다. 작은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디언 소년이 그간 만나왔고 사랑했던 존재들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별식은 터무니없이 짧은 현세를 건너뛰고 보면 별반 슬픈 일도 아닐 거라고... 밤하늘에 박힌 늑대별을 보며 교감을 이루어냈듯 여전히 영혼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중일 거라고...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왠지 부쩍 데워져 있는 것 같다고...


④ 의지는 그녀의 마지막 호흡과 같다 '호흡법 The Breathing Method'

사색거리들/책 | 2011. 2. 22. 17:00 | ㅇiㅇrrㄱi

스티븐 킹이 굴리는 건 축구공(?)이 아니다.
<스티븐 킹의 사계> 중 마지막 편에 해당하며 의지의 겨울이라는 부제의 <호흡법>은 내가 오로지 공포소설만 쓰냐며... 이 책을 읽으면 아닌걸 알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작가가 슬며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자 마음먹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티븐 킹 자신이 가진 큰 매력! 예를 들어 기괴함이나 음습함, 슬픔 등의 그늘진 구석에 대한 애정이 몽땅 배어 있는 작품이다. 스티븐 킹이란 공(?)을 아무렇게나 굴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분명 이 지점에서 정확히 멈춰 설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위치해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사계(가을/겨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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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뉴욕의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데이비드는 사장으로부터 이스트 35번가 249번지의 적갈색 사암(砂巖)건물에서 열리는 알 수 없는 클럽 방문을 제의받게 된다. 벽난로 위의 쐐기돌에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야기로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고, 스며들 듯 살금살금 다가오는 평안함이 가득한 그곳에서 데이비드는 술과 오래된 고전과 그리고 사람들이 전하는 소소한 이야기가 선사하는 아늑함에 빠져들어만 간다. 기묘한 분위기의 이 클럽의 메인 룸에서는 서로 돌아가며 들려주는 온갖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다만, 크리스마스 직전의 목요일 모임에선 늘 무서운 이야기만을 듣게 된다는 게 일종의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 직전 모임에서... 여든에 가까운 엠렌 매캐런이란 의사가 들려주는 믿을 수 없을 이야기 한 편... 그 제목이 다름 아닌 <호흡법>이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엠렌 매캐런은 조용한 탄생의 원리와 호흡법의 개념을 깨닫게 된다. 안정적인 출산을 위한 호흡법이 검둥이들이나 행하는 미신취급을 받던 당시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 호흡법의 개념을 설명해주곤 하던 중... 어느 날 미스 스탠스필드라는 여성과 대면한다. 그녀는 미혼모가 매춘부 취급을 받던 당시의 지배적이었던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홀로 아이를 낳겠다며 매캐런의 관심 속에 호흡법을 연습한다. 미혼모라는 이유만으로 직장과 세 들어 살던 집에서조차 쫓겨나는 핍박 속에서도 스탠스필드는 무사히 출산일을 앞두게 되는데... 크리스마스이브 날 진통이 시작되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그녀에게 돌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일종의 교훈을 정상적으로 이끌어내기 어려울 만큼의 난감한 전경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속까지 울렁거리게도 하지만 의지의 겨울이라는 부제에 지독하게도 맞아 들어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충격적인... 말 그대로 참담하고 비극적인 결말 앞에서조차 떠오르는 건... 위대한 모성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헌신일 수도 또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극한의 의지일 수도 있다. 스탠스필드 그녀의 기관차호흡 소리와 연갈색 눈동자에 서려 있을 의지 자체를 이런 상황에서 느껴야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쩌면 어느 괴담 집에나 실릴 법한 이야기 한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클럽의 묘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단순한 괴담이 지닐 가벼움까지 져버리고 묘한 매력이 잔뜩 베인 작품으로 돌변하는 덴 두 손을 들 수밖에...!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데이비드가 문지기 스티븐스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 앞으로도 클럽에서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스티븐스가 대답한다. '이곳에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니까요' 다시 말한다. '그렇고말고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죠. 안녕히 가세요' 라고... 스티븐스(스티븐 킹?)라는 이름도 그렇거니와 이야기가 무궁무진해 머지않아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거라는 데이비드의 독백에서... 스티븐 킹의 장난기(?) 마저 느껴지는데...

킹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묘한 클럽의 분위기처럼 내 머릿속은 온통 문학적 상상력과 이야기들로 가득하니... 독자들은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라는 독자들에 대한 다독거림의 당부이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아니었을까...?

여기에 <스티븐 킹의 사계> 마지막 편까지 읽느라 고생스러웠을 독자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덧붙인다.

아주 장난기 가득이다. 안녕히 가시라니...ㅡㅡ;

아... 스티븐 킹이 굴리는 게 축구공이 아닌 무어냐고...? 예전에 써 먹었던 답을 재활용하자면... 이렇다...

읽은 사람만이 안다!

끝...!!!


③ 기억은 사랑이 남긴 상처와 같다 '스탠 바이 미 The Body'

사색거리들/책 | 2011. 2. 21. 13:48 | ㅇiㅇrrㄱi

제일 중요한 일들은 말하기도 제일 어렵다
<스티븐 킹의 사계> 중 세 번째 편에 해당하며 자각의 가을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스탠 바이 미>는 레이 브라워라는 실종소년의 사체를 찾기 위한 소년들의 짧지만, 지울 수 없는 긴 여정이자, 12살에서 13살로 넘어가는 무더웠던 그해 여름과 맞물린 성장의 이야기다. 지금의 베스트셀러 작가 고든 라챈스는 친구들(번과 테디, 크리스)과 함께 했던 이틀간의 여정, 사체 찾기의 기억들을 곱씹어 본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말하기도 제일 어렵다... 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 이해하며 들어줄 사람이 없어 마음속 비밀로 가둬버린... 하지만 생소해진 고향의 풍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흐르는 강과 같이 여전히 존재하는... 고든 라챈스 자신의 삶 일부이자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형의 죽음 이후, 낙심한 부모의 외면 속에 유령 같은 존재로 살아가던 고든, 그리고 나름대로의 절박한 현실 속에 방치된 세 친구는 실종된 레이 브라워라는 소년의 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대한 대화를 우연히 엿듣고 첫 발견의 영예(?)를 얻고자 길을 나서는데... 쓰레기장 울타리를 넘으며 어린 날 신화속의 맹견 맷돌을 따돌리고, GS&WM 철도가 캐슬 강을 지르는 교각의 두 줄기 선로를 건너며, 숲속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몸서리치는 야영지의 밤을 보내고, 거머리 떼들과의 물질에 울음을 터뜨리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다다른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고든 라챈스가 그 시절 친구였던 크리스의 죽음을 전해 듣고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의 곁에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건... 계집애처럼 보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막상 꺼내놓으면 말의 크기만큼 줄어드는 기억의 초라함이 견디기 싫었을 뿐이다. 여전히 생생한 그 시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미래의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서...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들과의 본격적인 조우가 이어진다.
소설가가 작품을 쓰는 유일한 이유는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의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소설에서는 모든 동사가 '.....했다'로 끝나는 거죠.
두 줄기 선로로 대변되는 그해 여름 이들이 지나버린 이 통로는...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친구들, 그들이 마주할 미래의 죽음과도 이어지는 상징과도 같았다. 심장이 터지도록 앞으로 달음박질 칠 수밖에 없는 성장의 통로이기도 했지만, 목적지에서 맞닥뜨린 사체의 부릅뜬 눈이 암시하듯 그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죽음의 통로이기도 했던 것이다. 살인의 근처에선 살인의 악취에 물들 수밖에 없듯... 죽음의 현장을 목전에 두게 된 그들에겐... 죽음이 금세 찾아갈 수 있을 번호표가 등 뒤로 붙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사계(가을/겨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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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고, 안하고, 못하고, 해서도 안 되고,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해도 못하는' 레이 브라워라는 아이의 사체를 발견한 그들에겐 크리스의 형을 포함한 다른 일행과의 혈투가 남아있었지만, 지독한 후환을 감수하고라도 지켜내야 할 명분이 있었다. 뚜렷한 이유도, 그 이유를 반추할 필요도 없었다. 지난 이틀간 거룩한 의식처럼 먼 길을 통과해 다다랐던 어린 소년들이 그해 여름 가진 단 하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처음 마주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맹목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사랑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그 이빨로 물어뜯는다. 그렇게 생긴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사랑의 상처는 어떤 말로도, 어떤 말들의 조합으로도 아물게 할 수 없다.
기억의 끝 장면... 고든이 돌아가는 크리스의 뒷모습에 아무 말도 던져내지 못했던 건 마음속에 깃든 그 당시의 심정이... 어린 시절의 친구에 대한 사랑 또는 같이 했던 시간에 대한 사랑... 어쩌면 언젠가 그 유대라는 게 결국엔 비극적으로 파괴될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이었을 테다. 이제 현실의 고든에게 12살 그해 여름의 친구들은 지워져가지만 용케 상처내지 않은 기억일 뿐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그저 지나버렸기에 그래서 흐릿해진 글씨 자국마냥 소홀히 지나칠만한 게 아니다. 상처 낼까 두려워 가만히 방치하다 결국 망각해버릴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이빨로 물어 뜯겨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해도 분명 돌이켜야할 필요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과 마주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느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애처롭게 자신의 존재를 되새기고 지금의 나를 자각케 하는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스탠 바이 미'

누구나 미로 하나쯤을 갖고 있다. 이미 다 돌아 나와 앞으로 걸어가는 듯해도 내 일부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듯 제자리만 맴돌게 되는... 그런 시간과 그런 공간에 갇혀 있는 꼴이 반복된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을 가늠하거나... 어디로 가야할지 고개를 들고 둘러보려면... 설령 빠져나오진 못하더라도 왜 그런 곳에 갇혀 버렸는지 그리고 지체되고 있는 내 일부가 무언지를 돌아봐야할 때가 분명 있다.
 
그러나 종종... 내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뺑뺑이만 돌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울컥 짜증이 날 테다. 나를 자각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나를 인정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탓이다. 자각의 가을, 고든이 눈물 흘리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스탠 바이 미>에는 주인공 고든의 초기作 두 편이 실려 있다. <가식의 도시>와 <뚱보 호건의 복수>인데, 소설 속에서 또 다른 소설을 대하는 낯선 재미도 있겠지만, 이 단편들이 갖는 나름대로의 재미란 것도 대단한 편으로, 특히 <뚱보 호건의 복수>는 그야말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지하철 문가에서 꺽꺽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던 당황스러운 경험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식은땀이 날 지경... 그야말로 웃음을 토할 지경이라 하면 적당한 표현인가...?


※ <스탠 바이 미 The Body>는 영화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의 원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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