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고 또 보고 싶으오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사색거리들/책 | 2011. 1. 24. 13:38 | ㅇiㅇrrㄱi

어금니가 알아차리는 냉기...
양 어금니가 저릿해지는 추위가 연일이다. 지독스러운 냉기는 시린 발이나 얼어버린 귓불보다 어금니가 먼저 알아차린다. 시린 바람이 채 와 닿기도 전, 참아보자! 우악스레 어금니를 마주 물고 발걸음을 놀리다보면 바람에 잔뜩 실린 냉기와 비례해 악력에 힘을 보태곤 하니... 속수무책의 포갬 질에 시달리는 어금니 무리들이 절절매는 것이다.

냉기를 알아차린 어금니처럼 그저 제 몸 일부가 먼저 알아채는 책 읽기가 있다. 도대체가 곧장 들어오질 않아 눈 주위가 빡빡한 읽기가 있고, 에둘러 우겨넣어 본들 이해와는 멀고 먼 탓에 뒤통수만 어뜩할 읽기가 있으며, 넙죽 받아들임에 경황이 없어 뇌 속 시냅스 따위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새로 머리 전체가 욱신거릴 읽기도, 반전이나 속도감 등의 쾌감에 따르는 오금의 저릿한 읽기도 있을 테다. 무료하고 지루해 연신 하품질이니 애꿎은 턱관절만 뻐그극 하는 읽기도 매한가지다.

그리고... 흔히 마음이라 하는 저 안 깊숙이 지적질 당하는 묘한 저릿함의 읽기란 게 있다. 김진규의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에서는 그 한가지만을 느껴낸다. 그것만으로도 족하긴 하다.
맺힌 게 많은지 하늘이 연일 비만 뿌리는 조선 영조시대. 기청제(祈晴祭)에도 불구한 빗속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왕의 악의로 인해 대역 죄인들이 호야나무 가지에 목 매달리고, 호역(戶疫)으로 애꿎은 이들이 널려 나가며... 인간지사 속 잡다한 이기와 트집으로 일상의 죽음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이승세계엔 일가 잃은 소녀 연홍이 한 많은 제 어미의 마지막 길을 통곡중이고, 왕의 성심으로 참수 대신 혀를 잃은 정혼자 수강은 왕실의 염색공장으로 내쫓긴다. 저승세계 한편에선 수습차자 화율이 이승으로의 첫 넋걷이 채비에 한창인데... 이승도 저승도 아닐 중간 어딘 게에 마음 걸치고 있는 염색장 채관 또한 있다. 이들의 이승과 저승에서의 삶이, 전생과 후생에서의 기억 그리고 슬픈 회한이 현생의 앞뒤로 얽히고 얽혀든다.
마음을 지적질 하는 덴 사랑이나 죽음, 어긋난 관계 등 누구나 공감하기 쉬울 소재거리들로의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천하의 목석이나 외곬수가 아닌 이상에야 직접 겪어봤거나 혹여 겪지 못했더라도 익숙히 들어 감 잡고는 있을 테니, 보편적인 정서만을 건드리겠다! 작정한 작가에겐 한결 수고가 덜어질 수밖에... 애틋할 시선교환 두어 차례 정도면 그게 남녀(男女) 간이든 남남(男男) 간이든 죽고 못 사는 관계로 맺어버릴 수 있으니, 사랑이 무얼까 되물을 요량의 철학·심리서가 아닌 그저 보이고 싶을 뿐의 소설류라면 사랑을 개입시키는 게 작가에겐 그리 극단의 기교를 요구하는 작업은 아닐 테다. 그에 대한 정의 따위야 각자가 하나쯤 갖고 있을 경험이나 지식의 전폭적 지원에 맡겨놓고는, 형태를 각색하고 정도의 깊이만 조율하면 될 일이다. 각색과 조율의 방법만이 남는다.

본래 절절한 사이였소... 라고 유형화된 인물을 앞세우는 막무가내식 전제로 일관할 수도, 구체적인 언행으로 밑그림을 마련해주곤 빈 곳을 채워나가라 책임지울 수도 있다. 파격적이거나 절절한 정황을 동원해 치명적의 수준을 한껏 높일 수도 있을 테고, 시대적 상황에 적절하게 온갖 치장을 일삼거나 약간은 달리 보이도록 눈을 속여 낼 수도 있다. 그 외에, 수도 없을 방법들은 모두 작가의 능력이고 소관이고 이해의 정도겠지만... 이리하나 저리하나 최대한으로도 사랑은 남을 테고, 최소한으로도 사랑 따위는 남을 테니, 작가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다. 해보지 않은 이에겐 한번쯤 해보고 싶고, 하고 있다면 더욱 하고 싶고, 했더라도 다시 하고 싶거나, 이왕이면 이 정도까지는 하고 싶다는 누구나 들의 바람 정도는 남길 테니 말이다.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은 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연홍의 사랑, 수강의 사랑, 화율이라는 사명(使命)을 갖는 저승차사 황우재의 사랑, 염색장 체관의 사랑, 궁녀 가시의 사랑, 별관인 어느 남정네의 사랑, 또 누구의 사랑과 또 다른 누구의 사랑이 줄곧 이어져 시작부터 끝까지 꽝꽝 채워져 있다. 저마다의 곡절이 이리저리 겹치고 겹쳐서 다소 혼란스럽기는 해도 그것 또한 사랑일 뿐이고, 죽음과 윤회 그리고 삶이나 희생 등에 대해 무겁게 던져지는 물음도 그저 사랑에 따르는 부산물로만 남게 된다. 하나가 더 있긴 하다. 슬픔...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진규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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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수도 없이 많은 그 시대만의 것들이 등장한다. 당시 사회와 문화에 대한 묘사의 능력이 탁월하다 인정할 밖에 없는 옛 것의 연이은 등장은 여전히 이채롭다. 정치나 경제, 각종 풍습이나 문화 일체에 대한 것은 기본이고, 이번은 소리, , 나비, 저승이나 , (恨) 등에 대한 나열이 보태진다. 의붓아비에 의해 한 노인에게 팔려, 치질 앓던 노인의 헌데를 핥아주다 똥 찌꺼기에 독이 올라 죽었다는 수습차자 곤주의 이야기에서처럼 평민들의 삶 또한 지독하게 생생하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2010/12/31 - [사색거리들/책] - 공처가 드디어 득남하나?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전작의 경우, 내내 들고 있어야 할 문제가 하나 주어졌다. 대체 공생원 마나님을 수태케 한 이가 누구인가? 라는 중대한 물음. 작가가 세밀하게 보여주는 당시의 삶은 이 물음에게 가까이 붙어, 자체를 풍성하게도 하고 보태기도 하는 지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아마도... 물음과 그에 대한 답 자체가 당시 인들의 삶 전반을 통하는 가운데로 위치해있기에 가능할 성 싶었을 테고, 물음이 극을 이어가는 힘을 갖고 있었을 테다. 반면, 이번은 끝까지 이어 갈 중대한 물음이 없거니와, 있다 해도 편편이 사방으로 있는 듯 보이기에, 작가의 공부한 이력은 어디로도 방향을 잡아내질 못하고 배회하는 장치수준의 신세에 머무른다. 문장은 여전하지만, 문장을 돋보일 힘을 놓아버린 태세다.
사랑이 너무나 많고, 하나같이 진심들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벅차 보인다.
어쩌면... 사랑 이야기일 뿐이고, 하나를 더 보태, 영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어서 남게 되는 슬픔의 이야기일 뿐인지라... 나머지는 치장에 불과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저승차자 화율의 마지막 선택이란 것도 그저 사랑일 뿐이라 치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쉽다. 하지만 마음의 저릿함은 있다. 사랑이니까... 그것도 지독하게 슬픈 사랑이니까... 참람하다는 넋걷이의 때, 짙은 청색의 쇳빛부전나비로 변이한 수습차사들의 하늘하늘할 날갯짓이 애처로울 따름이고, 등장하는 이 누구나 진심에 매진하는 진정의 소유자인지라 답답하면서도 안타깝고, 이승에서 못한 사랑이 저승에서 어긋나는 걸로 모자라, 전생에서도 현생에서까지도 겉돌고 있으니... 사랑과 슬픔의 정도를 측정할 지표가 있다면 이들의 것은 분명 측정 불가 수준이다.

아무튼, 나 또한 사랑해보았거나 사랑하는 중의 사람일 테니, 그들의 것이 내 것에 비해 불행하다면 위로하는 마음으로, 내 것에 비해 어긋남의 정도가 크다면 재회를 바라는 기대로, 내 것에 비해 열렬하다면 부러운 듯 시샘으로, 그들의 것이 내 것에 비해 숭고하다 못해 아름다울 지경이라면 무릎 꿇음의 경탄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냥 '보고 싶다...' 가 아니라 '보고 싶으오...' 라서 느끼는 뻔한 사랑에 대한 색다를 정서와 그 와중의 마음 속 묘한 저릿저릿함 뿐이지만... 왠지 따스해질 듯싶은지라 그거로도 충분하지 싶다. 자연발화난로 하나쯤이 절실한 시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