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향하는 아름답고 슬픈 기차여행 '곰스크로 가는 기차 Reise nach Gomsk'

사색거리들/책 | 2011. 1. 17. 13:49 | ㅇiㅇrrㄱi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기차여행에는 모든 탑승객을 아이마냥 진득한 설렘으로 달뜨게 하는 목적지가 있기 마련이다. 여태 키워왔던 소소한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은, 예상치 못했더라도 흐뭇하게 웃음 지을 수밖에 없는 눈요깃거리들로 가득일 풍경에 대한 기대 그리고 기다림이 뒤범벅되는 심정이란 게 있다. 아마... 여행이 가진 속성일 수 있을 테다. 적어도 기차에 올라 덜커덩 거리는 진동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자신은 출발지에서 기차에 오르기 직전까지의 자신과 조금은 다른 존재인 듯... 어딘가로 가까워져 가는 만큼 어딘가로 부터는 멀어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플랫폼 뒤로 남겨 두고 온 자신은 묘한 이물감으로 슬며시 갈라서 버린다.
 
버리고 소외시켜 놓아도 개의치 않을... 하찮아 보이면서도 구체적인 짜증으로 이어지는 우리 자신의 일상종착역인 그곳이 갖게 되는 이상(理想)의 사이로 선택의 문제가 주어진다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올 그 순간... 그간의 모든 가치와 맞바꾸어야할 값비싼 특급열차 티켓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면...? 가야할까... 지금 여기에 머물러야할까... 가게 된다면 그곳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그 남자의 목적지인 '곰스크 Gomsk'...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릎위에 앉아 들었던 그 도시는 멀고도 멋진 도시일 뿐, 어떤 곳인지... 가게 되면 무얼 하게 될지 알지는 못한다. 출발해 언젠가는 반드시 가야할 운명과도 같은 무게로만 담겨져 있을 뿐...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가 이 운명에 동의할지 않을지, 여정 길의 동반 석에 동행할 이가 함께일지 아닐지 또한 알 수 없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프리츠 오르트만 (북인더갭,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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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엔 곰스크가 인생의 목표인 그 남자 그리고 그의 부인인 한 여자의 여정길이 오롯한 슬픔으로 그려져 있다. 곰스크가 실재하는 곳인지 아닌지, 무얼 실현해줄 곳이기에 한 남자의 삶의 목표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반드시 가야한다는... 평생에 단 한번은 가고 싶다는 필연가득한 바람이 집약된 상징적인 공간이며 이전의 삶과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해 남자가 가야할 곳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슬픔은 곰스크행 여정을 포기한 남자의 귓가에 늘 사라지곤 하는 열차의 기적소리로 맴돌게 된다. 

남자는 결혼직후 아내와 곰스크행 특급열차를 타고,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여정 길에 오른다. 경유지에 내렸다 마을의 풍경에 취한 나머지 열차를 놓치는데... 이제부터 또 다른 현실이 되어버린 외딴 마을에서의 일상 탓에 곰스크행 기차여행은 기약 없이 미루어진다. 티켓 살 돈이 없어서... 아내가 마련한 안락의자를 싣지 못해서... 태어난 아이 때문에, 정원 딸린 새 집과 새로 구한 안정적인 직업 탓에 삶의 목표는 점점 희미해진다. 여전한 꿈의 크기에 시달리는 남자에게 마을 노(老) 선생님의 기이한 한마디가 던져진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삶의 목표를 져버리고 눌러앉아버린 삶이 결코 나쁘다거나 의미 없는 삶은 아니라는 그 한마디에 남자는 자신의 운명이 곰스크란 저 머나먼 곳에 있기 보다는, 이미 결행한 몇 번의 선택과 선택 사이로 주어지는 소소한 현실위에 놓여있음을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락방에 올라 홀로 곱씹는 미루어진 꿈의 미련과 알 수 없는 쓸쓸함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엔 이 외에도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지금 누군가들이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을 현실럼주차처럼 달콤하게 안겨들 꿈 사이의 긴 단절을 애잔한 톤으로 그려내는 편인데,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하려던 양귀비꽃을 잿빛으로 말라붙어 하나의 꽃잎만 남겼을 때야 건네게 된다는 <양귀비>편이나, 인생이 시시하다는 철학자와 당장의 선택과 선택에 의해 살아갈 수 있었다는 화가를 대비시킨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편에서처럼 꿈과 희망이 갖는 모호함보다는 당장의 현실이 갖는 순간순간의 소중함에 더 호소하는 편이다.

곰스크에서 느끼게 될 '삶의 목표가 갖는 가치'와 안락의자에서 상징되는 '현실의 안락함 내지 비루함' 사이에서 결국엔 곰스크로 가야할거라는 이상의 실현에 무게가 쏠려있진 않다. 안락하거나 비루할지 모를 현실로의 선택 또한 결코 나쁘다 할 수 없는 선택된 운명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으니... 처음엔 곰스크로 상징되는 삶의 목표 내지 꿈 저편으로 가보겠다는 바람마저 망각한 이들에 대한 힐난일까 싶다가도... 꿈이고 뭐고 간에 그냥 주저 앉아버린 수많은 현대인들에 대한 프리츠 오르트만의 진심어린 위로 한 말씀이 아닐까도 싶다. '당신의 선택 또한 틀리지 않았어.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너무 괴로워는 말게' 라는...
그러나 당시에 곰스크에 걸었던 희망을 나는 거의 잊어버렸다. 곰스크로 가려 했던 이유조차도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져 더 이상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곰스크를 향한 열망이 식은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는 그 도시에 도착한다는 명백한 확신이 시들해진 것뿐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곰스크란 도시는 수도 없이 서로 다를 이름으로 분명 자리 잡아 있을 테다... 언제부터 가야한다고 꿈꾸고 있었는지, 가고 있다 무얼 볼모잡혀 중간에 내렸는지, 혹 다시 열차에 오를 수 있다면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는지... 중간에 내리지 않고 끝가지 갈 수나 있을는지 모를 일이지만...

행여 중도에 내려 기약 없이 경유지에 머물러 있다 해도, 그 정체(停滯)가 제 아무리 환멸스러워도... 그 열정을 놓아버리지 않았던 순간순간의 삶이었다면 나쁜 삶이었다 스스로를 폄하할 일은 아닐 테다.

무릇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가보지 못했기에 신물처럼 문득 치밀어 오를 '곰스크로의 그리움'이 썩 유쾌하진 않을게 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