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상처들에 대한 회상... '속죄'

사색거리들/책 | 2010. 10. 26. 14:58 | ㅇiㅇrrㄱi

<고백>이란 작품의 저자 미나토 나에, <속죄>의 저자 미나토 나에...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니라, 동일인이라는 지적. 출판사의 서로 다른 저자명 표기로 인해, 내가 있는 도서관에서는 각기 다른 인물로 검색이 된다는 오류. 일본작가들 특유의 기발한 구성과 빠른 전개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신예작가. 그의 작품을 읽고부터는 여타 추리소설에 손이 가질 않는다는 극찬.... 미나토 카나에의 첫 인상에 대한 소회는 그러했다.

속죄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미나토 카나에 (북홀릭,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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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은 외딴 마을. 일본 최고의 정밀기기 회사인 아다치 제작소의 공장이 신설된다. 회사 중역의 딸인 에미리가 학교에 전학을 오게 되고, 마을 토박였던 아이들... 사에와 마키, 아키코, 유카는 그녀와 어울리며 도회지의 새로움을 접하게 된다. 오봉을 하루 앞둔 날, 이들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5명은 학교 교정에서 배구놀이에 열중하다 낯선 남자의 제안을 받게 된다. 수영장 탈의실의 환기구 점검을 잠시 도와달라는 남자. 일행 중 단 한명... 에미리만이 남자를 따라 나서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던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범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증언 이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3년 후, 에미리의 엄마 아사코는 도쿄로 돌아가기전 아이들을 다시 부른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살인자라고...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범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복수를 하겠다고,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속죄를 하라고 다그치곤 마을을 떠난다.

<속죄>는 살해당한 피해자의 부모가 던진 한마디를 평생의 상처로 안고 살아가게 되는 네 아이들의 이야기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나름대로의 정신적 상흔을 갖게 된 아이들이 속죄해야한다는 강박을 풀어내기 위해 고단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옴니버스식으로 엮여 있다. 한참이나 어긋나 보이는 이들의 속죄가 거듭되면서,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에 실마리가 잡히게 되고... 아이들을 비정상적으로 성장케 하는데 결정적이었던 또 다른 누군가의 참회와 진범의 정체, 그리고 진정한 속죄의 의미에 대한 단상(斷想)이 그 뒤를 잇는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일말의 책임이 있다 느끼는 아이들이 죄책감의 방어기제로 부리는 건 회피와 외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어쩌면 아이들 누구라면 갖고 있는 절대적인 치유력으로... 최소한 시간에 의한 망각때문이라도 죄책감의 상처는 아물수도, 딱지에 덮힌 채 감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상력이 고갈되는 과정이라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죄책감이든 자책이든, 지나가는 시간의 양에 비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한때의 기억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사코의 피 토할 듯한 격분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저주 그 자체, 현실의 세계로 아이들을 내몬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떠올림 그리고 속죄의 의무라는 제한된 현실은 이들의 이후 삶을 더욱더 왜곡시켜버리는 것이다.

작가는 외상으로 어긋난 삶의 궤적들을 덤덤히 보여준다. 각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선엔 고단함이나 괴로움이 가득인 반면, 작가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엔 건조함이 가득이다. 깊히 상처받은 자들의 이야기속에서 따스함 같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얘네들은 너무 아프다고, 정작 속죄해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하게 죄를 덮어쓴거라고, 억울하다고... 나서 줄걸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를 찾게 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인물들의 제한된 시선만이 나열되는 듯 싶고, 속죄를 위한 순교자(?)적 삶을 선택한 아이들이 저마다 겪게되는 상황이란게 지나치게 가혹한데다 우연적이어서... 정서적 동의보다는 구성의 신선함에 대한 감탄만이 남는다. 작가는 딱 거기서 머물러 있다.

그래서인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세밀하다거나 짜임새있다거나, 작가의 깊이 있는 철학에 끌린다거나 하는 식의 감흥을 느끼기엔 부족하다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게 된다.

아무튼... 다시 한번 그 장소에 모여, 자신들에게 필요했던건 친구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15년전 필요했던 건 너무나 간단한 방식의 애도였을거라 씁쓸해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의미의 속죄란 삶의 형태로 갚아나가는게 아닌 그저 마음가짐 자체에 다름아닐 수 있다는 여운만을 힘겹게 찾아낸다.


도서관에서의 뮤직 비디오 촬영... 싸이의 'Rignt Now'

東國 | 2010. 10. 25. 13:58 | ㅇiㅇrrㄱi

뮤직비디오 장소섭외업체에서의 전화문의 한통. '중앙도서관에서 뮤직비디오를... 싸이의 신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싶습니다...' 라는 내용.

중간고사기간인데다, 정숙이 생명인 공간에서의 뮤직비디오 촬영이라니... 순간 이건 아니다 싶긴 했으나, 이용시간도 비켜가고, 이용자에게 아무런 피해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하기에 허가되기에 이른다.

새벽시간을 이용한 촬영이었기에 아무도! 현장을 목격할 순 없었고, 다음 날 아침에 확인한 자료실 상태는 평상시와 다름없었기에, 그냥 가벼이 몇 장면 정도만 담았겠구나 싶었고...

그렇게 잊고 있었다.

요 근래, 싸이의 정규 5집 <싸이 파이브>가 발표되었고, 수록곡 중 'Rignt Now'란 곡의 뮤직비디오에 도서관이 등장한다기에 확인해보니...





'정숙'이 미덕인 공간에서의 '난장판 댄스'이어선가 다소 신선하하기도 하고, 눈에 너무나 익은 곳이 보이는 즐거움도 있고... 아무튼 재미난 뮤직비디오인 듯...^^



산자들의 삶만 우울한.. '죽은 자는 알고 있다 What the dead know'

사색거리들/책 | 2010. 10. 18. 17:47 | ㅇiㅇrrㄱi

책을 읽다 보면 돌연 난독증에 시달리는 듯한 증세에 빠져들때가 있다. 괜히 분주히 앞장을 들춰보거나 한켠에 들고 있는 책의 존재에 괜히 무관심한 듯 멍한 시선을 즐기기도 하며, 언제쯤이면 마지막장을 덮으려나 엔딩에 대한 그리움(?)에 왈칵 시달리곤 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그런 만남을 가지게 된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 '매커비티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 '앤서니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 '배리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 이라는 화려한 장식들이 재미와 감동을 보증한다는 듯 표지에 달려 있는 로라 립먼의 <죽은 자는 알고 있다>가 그랬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로라 립먼 (영림카디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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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열다섯 살난 두 명의 베서니 가(家) 자매... 언니인 서니 베서니와 동생인 헤더 베서니가 쇼핑몰에서 유괴된다. 장기간의 수사와 온갖 제보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상태. 부모인 데이브와 미디엄은 슬픔으로 인해 깊어진 균열로 각자의 삶을 찾아나서게 되고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나간다.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뺑소니 교통사고의 가해자로 수감된 한 여인은 자신이 유괴되었던 헤더 베서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어디에 있었으며, 이제와 신원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길 꺼려하는데, 경찰은 교통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 진술이라 의심하지만, 그녀가 흘리는 어린시절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의 신빙성 때문에 지난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간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으며... 왜 이제야 나타났으며... 그리고 진정 누구일까...?

자신이 헤더라고 밝힌 이 의문의 여인이 나타나면서부터, 시간은 과거로 다시 현재로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며 종잡을 수 없는 순환을 계속한다. 뒤죽박죽인 시간의 순환 속에서 '인물과 사건의 뒤엉킴'은 그 정도가 더욱더 심해지는데... 베서니 가(家)의 행복해 보였던 일상들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데이브의 과거 또는 현재 그리고 두 아이를 잃고 난 후의 혼란스러움, 마찬가지로 어머니 미디엄의 외로움이나 외도, 타지에서의 새출발 등이 기본적으로 교차된다. 여기에 페넬로페 잭슨, 제인 도우, 루스 라이빅 등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이 의문의 여인이 지나쳐온 여러 형태의 삶과 고민들, 그녀가 단서로 던지면서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들의 과거... 심지어는 현재 그녀의 보호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사 케이의 일상, 수사를 주도하는 인판티 형사의 과거나 현재의 삶, 과거 유괴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던 윌로우비 형사의 노후 등이 여기저기서 시선을 어지럽힌다.

작가인 로라 립먼이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던지는 시선엔 결코 가볍지 않은 진중함이 서려 있다. 때문에 두 소녀의 실종과 관련해 빚어지는 온갖 등장인물의 우울하거나 절망스럽고, 때론 서글픈 심리 내지 일상에 대한 심정적인 울림이 가득해진다. 드라마(drama)적인 요소는 과할만큼 충분한 편이다. 문제는... 다양한 수상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 <죽은 자는 알고 있다>가 표방하고 있는 장르가 스릴러(thriller)라는 것인데, 스릴러란 장르에 대해 대개의 독자들이 주된 흐름으로 기준 삼는 건 바로 '사건의 전개과정'일테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면, 왜 그 사건이 발생했는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면 어떤 심리상태이고 그 영향으로 인해 어떤 삶을 살고 있거나 살아왔는지, 밝혀야할 비밀 내지 음모가 있다면 어떻게 접근해가는지 등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전개가 당연히 필요하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에서도 30여년전 실종된 두 소녀 중 하나라고 신원을 밝힌 의문의 여인이 나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게 되고, 당연히 그 이후의 흐름은 이 여인의 진술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밝히기 위해 접근해가는 과정, 결말이라고 한다면 여인의 정체 또는 실종사건의 진실 등이 주된 맥락으로 제시될게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최초의 문제제기 이후, 돌연 전개과정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 듯 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물론 의문에 대한 접근과정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읽는 이가 흐름을 놓칠 정도로, 이때부터는 '인물들에 대한 지나치게 세밀한 들여보기'만 일관된다. 그나마 역동적으로 의문에 접근해야할 위치에 있는 인판티 형사를 보더라도... 그가 벌이는 수사과정 보다는, 두번의 이혼과 전부인들과의 달콤 내지 씁쓸했던 기억들, 조금이라도 매력있다싶음 흡수해버리고(?) 싶다라고 은밀한 상상을 즐기는 여성편력 등 인판티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상념만이 이어지는 식이다.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에 대해 이리 진중한 시선으로 일관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스릴러라기 보다는 드라마 장르를 접하는 듯한 나른한 책읽기가 계속되고, 결국... 마지막 미디엄이 말 한마디로 밝히는 사건의 전모라는게 전혀 극적일 수 없게 힘빠지는 대목이 되어 버린다. 애초부터, 모든 일의 전모를 밝힐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 한 사람이 입을 열기 전까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으니, 작가가 인물 들여다보기라는 다분히 정적인 시점 외 다른 시점을 취하기엔 어려운 설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유괴, 아동성폭력, 그로 인한 가정의 파괴 등 인간이 가진 비열함에서 빚어진 사회적 비극과 이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의 고통에 그렸다라고 한다면 괜찮은 작품일 수 있겠지만... 속도감을 전제로 갖는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의 특성에 비추어 보자면, 다소 지루할 수 있을 듯...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들의 삶만 나열되기 때문이다.

슬픈 살인자들. '살인자들의 섬 Shutter Island'

사색거리들/책 | 2010. 10. 13. 01:32 | ㅇiㅇrrㄱi

두 가지 잡담...
어느 늦은 저녁, 텅 비어있다 시피한 지하철 좌석에 앉아 책을 읽던 중,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 앞에 나타난 한 여성분. 읽고 있던 책의 작가를 묻더니 자신도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을 꺼낸다. 사이비종교인이다 라는 확신과 달리, 어느 작가 이름을 호명하더니 짧은 추천사를 밝히곤 수줍게 내려버렸다. 당황스러움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 다시 들으면 알 것 같은데... 잊어버렸던 작가의 이름을 우연히 다시 접하게 된다. 바로 '데니스 루헤인'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센스> 이후였던가... '반전'이란 키워드가 영화감상의 키포인트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수많은 영화에서 '반전'이 누락된 플롯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스릴러적 요소 갖추기에 급급한 분위기란 게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용을 미리 알고 보는 것이 오히려 감상에 긍정적이라 느끼는 터라, 스포일러라는 경고문구 따위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책이라고 별다른게 있을까 싶었지만, 적어도 <살인자들의 섬>에서는 몹쓸 습성이었다는 안타까움이 뒤따른다.
살인자들의 섬과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슬픔'
정신이상 범죄자를 수용하는 셔터 아일랜드의 애시클리프 병원에 연방 보안관 테디처크가 도착한다. 자신의 세 아이를 살해한 전력의 레이첼 솔란도라는 여성수감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인데, 그녀는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힌 메모를 남긴채 안개처럼 증발해버린 상태. 수감자들의 정신치료 담당인 콜리박사의 도움을 얻어 테디와 처크는 그녀의 행적을 수사하고, 그녀가 남긴 암호의 일부가 섬에 수감된 환자 66명을 제외한 또 다른 인물의 존재를 알리는 단서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콜리박사를 위시한 섬 전체가 레이첼의 실종사건 은폐를 위한 모종의 음모에 동참하고 있을거라 불안해하던 테디와 처크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셔터 아일랜드에 고립되는데, 사라졌던 그녀, 자신만을 위한 환영에 갇혀 살아가던 레이첼 솔란도가 발견된다.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직감한 테디는 2년전 방화에 목숨을 잃은 아내 돌로레스가 등장하는 알 수 없는 상징으로 가득한 꿈과 편두통에 시달리던 중 또 하나의 단서가 아내를 죽인 앤드루 레이디스에 대한 것임을 깨닫고, 병원 어딘가에 수감되어 있을 그를 찾아내 죽여버릴 결심을 한다. 테디는 자취를 감춰버린 동료보안관 처크를 찾던 도중 절벽의 동굴속에서 한 여인과 마주치게 되는데, 자신이 진짜 레이첼 솔란도라 주장하는 이 여인은 애시클리프 병원에서 불법적인 생체실험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테디 또한 그들의 음모에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경고한다. 다시 만난 콜리박사 그리고 병원의 모든 관계자가 애초에 테디에겐 일행이 없었다고 말하는데, 아직 풀지 않은 마지막 암호! 그 안에 답이 있다.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클럽3)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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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은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늙수그레해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으로, 영화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여러 게시물을 얼핏 접했던 터라, '아주' 대강이긴 했어도, 큰 골격은 알고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영화를 미리 보지 않았음이 한편 다행스럽다. 알고 있는 것이 대강이었던게 다행스럽기도, 대강이어서 안타깝기도 하다. '재미있다'라는 감상평이 주류이기도 했고, 거장 감독과 특급 배우의 조우만으로도 어떤 기준에서든 일정 수준 이상의 감흥을 얻었을 전제가 되었겠지만, 스릴러란 장르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슬픔' 내지 '처연함'이란 생소한 울림이 덜했을 것 같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으려니...

영화라는 시청각매체가 선사하는 직관성만큼이나 텍스트엔 여백이라는, 독자가 채워나가야하는 공간의 광활함이라는 게 있고, 막연함에서 시작해 글 하나하나를 챙겨가며 진득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인지, 그 무언가의 형태엔 미묘한 차이가 있게 된다. <살인자들의 섬>의 그 무언가는 '충격적인 슬픔'이다. 뭐 이 따위가 있어! 라는 떨떠름한 기분 뒤로 채워드는 아픔이 여백 곳곳에 가득한 슬픔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사건의 전모에 대한 궁금증 대신 한 인간의 서글픈 삶에 급격히 젖어가며 느껴지는 속쓰림이고, 여자와 아이, 자신, 바라보던 이들과 지켜주려 했던 이들, 그들 모두의 바람이 이뤄지지 못한데 대한 푸념이기도 하며, 작게는 물결을 따라 흔들리던 통나무의 정체 앞에서 '누군가의 부모된 이'로서 수긍케 되는 안타까움일 테다.

레이첼 솔란드의 실종에서부터 시작되는 셔터 아일랜드란 섬 전체의 음모, 그에 맞서는 테디 보안관 일행. <살인자들의 섬>의 기본 골격은 전형적인 스릴러답다. 테디 일행의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알 수 없는 단서들, 그 안에서 감지되는 음모들... 이를 풀어가며 느껴지는 긴장감은 허리케인처럼 수위와 속도를 높이면서도, 점차 빈도를 높여 찾아오는 테디의 몽환적 세상처럼 여전히 풀리지 않는 상징들로 인해 극한으로 팽창한다. 그러던 중 찾아오는 충격적인 결말. '음모는 있기도 했지만, 없기도 했다'라는 합리적인 풀이를 저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다른 것이 차오른다. 몸을 잔뜩 부풀린 긴장이 순간 온통 한 인간에 대한 처연한 시선으로 바뀌어버린다.

데니스 루헤인의 작가적 능력. 현실과 몽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긴장의 끈을 계속 조여가는 탁월한 구성력, 전쟁이나 폭력이 인간에게 남기는 상흔에 대한 고찰 등으로 인한 재미는 더 이상 <살인자들의 섬>의 감흥일 수 없다. 그가 세밀하게 완성해내는 각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늘 물에 젖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테디의 가엾은 아내 돌로레스 샤날을 떠올려야 하고, 배에 뚫린 구멍 위에 얹은 누군가의 손길에 고맙다라고 회한하는 심정만이 남으며, 늘 공포에 질리고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녀의 절망과 너무 하얗게 밝아져 마주보기 힘들었을 그녀의 눈빛만이 슬퍼진다.

그리고...그녀를 사랑했지만... 사랑했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던 한 남자. 모든 걸 잃고, 과거마저 잃어버려 미래조차 확보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현실과 눈물과 그리고 마지막 태연함'이 여전히 먹먹해진다...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데니스 루헤인은... 그렇게 슬픔이란 첫 인상을 남겨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