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들의 삶만 우울한.. '죽은 자는 알고 있다 What the dead know'

사색거리들/책 | 2010. 10. 18. 17:47 | ㅇiㅇrrㄱi

책을 읽다 보면 돌연 난독증에 시달리는 듯한 증세에 빠져들때가 있다. 괜히 분주히 앞장을 들춰보거나 한켠에 들고 있는 책의 존재에 괜히 무관심한 듯 멍한 시선을 즐기기도 하며, 언제쯤이면 마지막장을 덮으려나 엔딩에 대한 그리움(?)에 왈칵 시달리곤 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그런 만남을 가지게 된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 '매커비티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 '앤서니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 '배리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 이라는 화려한 장식들이 재미와 감동을 보증한다는 듯 표지에 달려 있는 로라 립먼의 <죽은 자는 알고 있다>가 그랬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로라 립먼 (영림카디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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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열다섯 살난 두 명의 베서니 가(家) 자매... 언니인 서니 베서니와 동생인 헤더 베서니가 쇼핑몰에서 유괴된다. 장기간의 수사와 온갖 제보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상태. 부모인 데이브와 미디엄은 슬픔으로 인해 깊어진 균열로 각자의 삶을 찾아나서게 되고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나간다.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뺑소니 교통사고의 가해자로 수감된 한 여인은 자신이 유괴되었던 헤더 베서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어디에 있었으며, 이제와 신원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길 꺼려하는데, 경찰은 교통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 진술이라 의심하지만, 그녀가 흘리는 어린시절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의 신빙성 때문에 지난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간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으며... 왜 이제야 나타났으며... 그리고 진정 누구일까...?

자신이 헤더라고 밝힌 이 의문의 여인이 나타나면서부터, 시간은 과거로 다시 현재로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며 종잡을 수 없는 순환을 계속한다. 뒤죽박죽인 시간의 순환 속에서 '인물과 사건의 뒤엉킴'은 그 정도가 더욱더 심해지는데... 베서니 가(家)의 행복해 보였던 일상들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데이브의 과거 또는 현재 그리고 두 아이를 잃고 난 후의 혼란스러움, 마찬가지로 어머니 미디엄의 외로움이나 외도, 타지에서의 새출발 등이 기본적으로 교차된다. 여기에 페넬로페 잭슨, 제인 도우, 루스 라이빅 등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이 의문의 여인이 지나쳐온 여러 형태의 삶과 고민들, 그녀가 단서로 던지면서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들의 과거... 심지어는 현재 그녀의 보호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사 케이의 일상, 수사를 주도하는 인판티 형사의 과거나 현재의 삶, 과거 유괴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던 윌로우비 형사의 노후 등이 여기저기서 시선을 어지럽힌다.

작가인 로라 립먼이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던지는 시선엔 결코 가볍지 않은 진중함이 서려 있다. 때문에 두 소녀의 실종과 관련해 빚어지는 온갖 등장인물의 우울하거나 절망스럽고, 때론 서글픈 심리 내지 일상에 대한 심정적인 울림이 가득해진다. 드라마(drama)적인 요소는 과할만큼 충분한 편이다. 문제는... 다양한 수상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 <죽은 자는 알고 있다>가 표방하고 있는 장르가 스릴러(thriller)라는 것인데, 스릴러란 장르에 대해 대개의 독자들이 주된 흐름으로 기준 삼는 건 바로 '사건의 전개과정'일테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면, 왜 그 사건이 발생했는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면 어떤 심리상태이고 그 영향으로 인해 어떤 삶을 살고 있거나 살아왔는지, 밝혀야할 비밀 내지 음모가 있다면 어떻게 접근해가는지 등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전개가 당연히 필요하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에서도 30여년전 실종된 두 소녀 중 하나라고 신원을 밝힌 의문의 여인이 나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게 되고, 당연히 그 이후의 흐름은 이 여인의 진술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밝히기 위해 접근해가는 과정, 결말이라고 한다면 여인의 정체 또는 실종사건의 진실 등이 주된 맥락으로 제시될게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최초의 문제제기 이후, 돌연 전개과정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 듯 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물론 의문에 대한 접근과정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읽는 이가 흐름을 놓칠 정도로, 이때부터는 '인물들에 대한 지나치게 세밀한 들여보기'만 일관된다. 그나마 역동적으로 의문에 접근해야할 위치에 있는 인판티 형사를 보더라도... 그가 벌이는 수사과정 보다는, 두번의 이혼과 전부인들과의 달콤 내지 씁쓸했던 기억들, 조금이라도 매력있다싶음 흡수해버리고(?) 싶다라고 은밀한 상상을 즐기는 여성편력 등 인판티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상념만이 이어지는 식이다.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에 대해 이리 진중한 시선으로 일관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스릴러라기 보다는 드라마 장르를 접하는 듯한 나른한 책읽기가 계속되고, 결국... 마지막 미디엄이 말 한마디로 밝히는 사건의 전모라는게 전혀 극적일 수 없게 힘빠지는 대목이 되어 버린다. 애초부터, 모든 일의 전모를 밝힐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 한 사람이 입을 열기 전까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으니, 작가가 인물 들여다보기라는 다분히 정적인 시점 외 다른 시점을 취하기엔 어려운 설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유괴, 아동성폭력, 그로 인한 가정의 파괴 등 인간이 가진 비열함에서 빚어진 사회적 비극과 이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의 고통에 그렸다라고 한다면 괜찮은 작품일 수 있겠지만... 속도감을 전제로 갖는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의 특성에 비추어 보자면, 다소 지루할 수 있을 듯...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들의 삶만 나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