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버무려진 웃음...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Everything's Eventual'

사색거리들/책 | 2010. 9. 13. 19:13 | ㅇiㅇrrㄱi

이야기의 제왕? 상상력의 제왕? 하여튼 제왕...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는 스티븐 킹의 14개 단편을 상˙하 각각 7편씩 나누어 모은 단편집으로 오 헨리 문학상 수상작인 <검은 정장의 악마>외에도, 총잡이 롤랜드의 서부할극(?) <다크 타워>의 외전이 수록되어 있어 후속편이 번역되기만을 기다리는 나 같은 열혈독자들의 지루함 또한 꽤나 위로할만 하다. 또, 죽은 자의 차에 동승하게 된다는 <총알 차 타기>, 존 쿠삭이 주연한 영화 '1408'의 원작인 <1408> 등 스티븐 킹을 왜 이야기의 제왕라 칭하는지, 그가 지닌 상상력과 이를 글로 표현해내는 능력이 왜 경외스러울 수밖에 없는지를 절감케 하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스티븐킹 단편집 :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상)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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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킹 단편집 :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하)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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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단편마다 집필하게 된 배경이나 감상 등을 킹 본인이 적어놓고 있는데, 일종의 작품해설을 작가 본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는 생소한 친절함에도 놀랍지만 독자로 하여 더욱 힘 빠지는 건 그가 언급한 이야기의 시작점이 지극히 사소하다라는 점이다. 때문에 사소한 소재거리가 한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비약적인 거리감에 대한 감탄은 물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떠올리는 좁혀지지 않을 열등감마저 괴로울 지경으로 다가온다.

예로, 할아버지가 숲속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소재로한 <악마를 보았다>, 휴게소 화장실의 낙서를 모으던 습관을 담아내고자 써내려갔다는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한 젊은이가 자기 집 배수구에 잔돈을 버리는 장면을 문득 떠올리고 썼다는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아내가 선물한 그림 한편에서 착안한 <로드 바이러스, 북쪽으로 가다>, 식당을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지배인의 시니컬한 눈짓을 보고 바로 써내려갔다는 <고담 카페에서의 점심식사> 등등 누구나 여러 번 듣거나 겪었을 일상의 소소함이, 이 킹이란 작가에겐 대단히도 문학적인 반찬거리(?)가 되고 있음을 다소 황망히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방식이 단편소설이다라고 말하는 집필의지에서 볼 수 있 듯, 킹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상대적 강렬함이란게 도드라지는데, '저 놈은 나쁜 놈이야' 라는 정서를 에둘러 표현하기 보다는 '이런 개새끼!' 라는 직설화법조차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짧은 분량의 글에서 그의 장기인 공포, 시니컬한 유머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까지 담아내기 위한 나름대로의 처방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14편의 작품에서 공통되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인데...
두려움의 종류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킹을 공포소설 작가라고 치부하는 편리한 구분 그대로, 공포... 즉 특정대상에 갖는 인간이 느낄 두려움에 대한 묘사와 유도는 여전하다. TV속 두려움과 진짜 두려움. 킹은 우리가 삶의 대부분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란 TV속 두려움이라고 설명한다. 화장실 안 그늘 속에서 소복 입은 처녀귀신의 음영이 어른거리지 않을까? 건강진단 결과로 암 말기 판정이 나오지나 않을까? 라는 식의 두려움 속엔 처녀귀신이란 존재도 없고, 암 판정을 받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고 그런 극적 상황은 TV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기에 진정한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두려움은 정말 뭔가 일어나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뒤로 물러서봐도 다른 여지가 없을 때나 느끼는 것이라는데, 결국 킹의 작품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건, 책속 두려움일테니 TV속 두려움이라는 절박함이 결여된 가짜 두려움의 한 유형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자인하고 있는 셈일 수도 있겠지만, 'TV속 두려움과 진짜 두려움'의 사잇길에서 독자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드는게 작가의 능력이라면,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에 수록된 단편들에선 절박했을 상황, 또 그 상황과 맞물려가는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한 킹의 작가적 능력이 어떤 경지를 넘어서있음 또한 느끼게 된다.

여기엔 모호한 상황과 뚜렷한 심리묘사가 한 몫을 하는 듯 싶은데, 대부분의 작품은 '두려움의 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풀이'에 인색한 편이다. 반면, 두려움에 잠식되어 가거나 이를 벗어나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해석은 잔뜩 날이 서 있는 칼날과 같아 기괴함 내지 공포감 조성에 마구 덧칠을 해대고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또... '죽어도 아가리를 닥치지 않을 망할 놈의 개새끼. 그리고 이웃집 사람들' 이라고 격분의 감정을 단촐한 어투로 풀어내는 어느 등장인물의 상념에 대한 서술에서 알 수 있 듯, 얌전히 돌아가기 보다는 직격탄을 날리는 듯한 표현이 유난히도 많음을 목격하게 되는데... 다른 예를 들어, '게다가 더욱 역겨운 건 놈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숭배하고 있었다. 아무한테나 깽깽 짖어대고, 심지어 이 세상을 구원할 선지자의 무릎까지 물어뜯으려고 덤벼드는 멍청하고 천박한 개자식들'이란 대목에 이르고 보면, 비평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비난의 시선을 그저 소심하게 내비치던 이전의 예의 같은건 아예 포기한 듯 노골적인 쏘아붙임을 아끼지 않는다. 

작품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이와 같은 대목, 도대체가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도 노골적이어서 민망한 웃음을 흘리게 되는 '시니컬한 유머'가 장면에 대한 극적 이해를 높이거나 인물의 심리변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결국엔 단편이 갖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극복해내는데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해내게 된다. 

이처럼 공포와 유머의 적절한 조화라는게 단순한 균형감 정도라면, 온전히 공포와 유머뿐만이라면,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는 계절과일처럼 무더위를 틈타 출간되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어가는 여타 기담집 정도의 취급을 감수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이란 족속들이 살아가는 일상이나, 일상 속 어느 부근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 내지 공포, 말 그대로 '인간과 삶'이란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깊이 있는 시선이란게 근저에 있다보니, 단지 재미나서 읽게되거나, 소름끼쳐서 매혹적이거나, 노골적인 직설화법이 통쾌하다거나 하는 등의 얄팍한 책읽기의 교훈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접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눈길을 주는 방향 자체가 나의 것이고 정답이라는 건 분명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전엔 감히 느끼지도 못했을 깊이 있는 시선에 대한 새삼스러움 내지 각성 자체만으로도, 최소한 킹이 무서운 이야기에만 일가견이 있진 않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것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는 것이 그 의미를 점점 더 축소시키거나 일상화시켜 그저 싸구려로 전락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총알 차 타기>편의 주인공 앨런 파커의 고민이란게, 킹이란 작가 자신에겐 불필요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