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슈형사의 넘치는 매력 '블랙에코 The Black Echo'

사색거리들/책 | 2010. 9. 14. 13:41 | ㅇiㅇrrㄱi

마이클 코넬리의 2010년 신작이자, 이전 <시인이 계곡>에서 은퇴한 강력반 형사로 등장해 맹활약하셨던 해리 보슈가 등장한다는 걸 알고는 읽기 시작. 스릴러물이 득세하는 여름이란 계절의 특성 탓인가? 마이클 코넬리 열풍(?)이 부는 건가? 열심히도 신작을 내놓는구나 싶었으나 마지막에 소개된 마이클 코넬리 작품 연보를 보는 순간, 적어도 신작은 아니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블랙에코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드라마/영화소설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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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에코>는 1992년도에 출간된 코넬리의 데뷔작이자 해리 보슈 시리즈 1편으로 1996년도에 국내에 번역판이 소개되었으니 원서 출간연도로부터 근 20여년에 가까운 지금 재출간된 셈이다. 또 2010년도까지 총 16편의 해리 보슈 시리즈 중 국내에 번역된 건 고작 3편 뿐이니 코넬리나 보슈의 팬들에겐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되겠다...--;;

전작에서 느꼈지만, 해리 보슈 이 남자... 꽤나 근사하다. 그래서인지 어느 편에서나 매력적인 여주인공분들께서 보슈에게 흠뻑 빠져버린다. 물론 연배에 어울리지 않게 불장난(?)이 태반이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골목길 포장마차 외진 구석에서 갈라진 음성으로 탁주 한사발을 외치는 거친 분위기의 중년 남자,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멋스럽게 섞여있고, 니코틴에 물든 누런 앞니와 얼굴의 반 이상을 덮고 있을 무절제한 턱수염이 첫 인상으로 다가올 것 같은 남자. 하지만 날카롭고도 매력적인 눈빛 탓에 함부로 말 걸긴 힘든 분위기 등을 떠올리면 적당하겠다.

한마디로 거친 매력을 잔뜩 머금은 보슈 형사, 이 데뷔작에서부터 조직 부적응자로 몰려 한직으로 좌천된 신세다. 남들이 모두 약물중독자의 말로라 단정내린 한구의 시신이 다름아닌 베트남전에서 땅굴쥐(베트콩의 주 이동통로였던 땅굴에 폭탄을 설치하는 군인)로 같이 복무했던 메도우스임을 깨닫곤, 사인을 찾기 위해 나홀로 동분서주한다. 물론 저 혼자 타살이라 결론내리곤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데, 1년여전 있었던 대형 은행강도 사건과 그의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눈치채고야 만다. 갑작스러운 FBI의 개입, 이번 참에 보슈의 경찰인생을 끝장내려는 LA경찰국 내사과의 집요한 간섭, 수사정보의 알 수 없는 유출 등으로 그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크라임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호칭에 적당하게, 코넬리가 그의 데뷔작에서 다루는 내용 또한 외톨이 형사의 투박한 범죄해결과정이 시작이자 끝이다. 몇 가지 증거나 우연적인 정황들로 미루어 짐작해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다양한 방향에서의 수사전개와 그에 따르는 결과물에 의해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인데, 철저한 인과에 의해 진행되다보니 그 짜임새 하나만으로도 관망하는 독자의 재미가 쏠쏠한 편이다.

이번에도, 저널리스트 출신이라는 코넬리의 배경은 '범법을 저지른 자'와 '정의를 행하려는 자' 사이의 단조로운 추격전을 풍성한 이야기거리로 채우는데 있어 여지없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 한데,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 태반에서 느끼게 되는 큰 매력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어쩌면 뻔해보이는 상황임에도 영화 한편을 보는 듯, 눈앞에 형상화되는 범죄의 윤곽 그리고 오밀조밀한 수사과정, 여기에 실제 그럴 것 같다 싶은 경찰이나 언론의 행태 등이 덧대어지며 긴박감을 늦추지 않는다. 물론, 수도 없는 것들을 끌어다모으면서도 글 전개에 전혀 지장이 되지 않도록 적절히 배치해내는 작가의 능력엔, 기본이라 할 수 있을 글재주도 한 몫 하는 듯 싶은데...

결국, 이런 기본기 탓인지... 이 데뷔작이나 한참의 연륜이 쌓인 뒤에 나왔을 다른 작품이나 큰 차이가 없는 편으로, 독자 입장에선 아무 거나 골라봐도 코넬리의 작품일 성 싶고, 명성에 모자라지 않는 재미를 챙길 수 있게 된다.

다만... 초반부의 평이한 수사과정 이후 일종의 충격요법(?)을 줘야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건지 나름대로의 반전이란걸 심어놓긴 하는데, 범죄소설에서의 반전이라 해봐야, '알고 보니 엉뚱한 인물이 범인이었다' 라는 수준을 넘어설 수 없으니, 온갖 사연을 부여한다해도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다소 군더더기 같은 결말...? 단 하나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