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성으로 인한 부조화 '악마의 눈물 Devil's Teardrop'

사색거리들/책 | 2010. 10. 28. 17:40 | ㅇiㅇrrㄱi

독서의 계절 운운...이란 말이 어색스러울만치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반전의 대마왕'격인 제프리 디버가 <악마의 눈물>이란 자극적인 제목으로 찾아왔다. 이번엔,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라임도 아닌, 동작학의 권위자 캐트린 댄스도 아닌 또 하나의 '슈퍼 수사관'으로 파커 킨케이드란 문서·필적 전문가를 내세운다. 물론, 디지털 개념이 아닌 고전적인 의미 그대로의 문서·필적이다. 워드프로세서, E-Mail 등의 디지털 문서작성작업이 보편화라는 별도의 수식어가 거북스러울만치 일반화 되어 있는 요즘, 일감이나 제때 얻을 수 있으려나 걱정스러운 직업의 킨케이드가 어떤 활약상을 보여줄까...?

악마의 눈물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제프리 디버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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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분위기에 젖어 모든 이들이 들떠 있는 섣달 그믐날, 지하철역에서의 무차별 총기난사로 수십여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고, 범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워싱턴 시청으로 전달된 범인의 편지엔, 2,000만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디거라는 자신의 수하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총기난사를 벌일 것임을 예고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연방수사국의 루카스 수사관은 협박편지의 분석을 위해 전직 연방수사국의 문서과장이자 미국 최고의 문서·필적감정가인 파커 킨케이드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약속장소로 돈을 가지러 가던 범인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이를 알리 없는 그의 수하 디거는 예정된 다음 학살을 준비한다. 킨케이드는 편지를 분석해 범인의 성향, 출신, 은신처 등을 밝혀나가는데... 루카스는 킨케이드의 도움으로 디거의 다음 범행장소를 예측하는데 수사력을 집중시킨다. 한장의 편지... 그 안에 범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예상대로, 반전의 묘미는 여전하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아니었어 라는 식의 상투적인 반전의 연장선이기는 하나, 단 하루라는 시간적인 제약 안에서 범행과 수사과정의 빠른 교차진행으로 느끼게 되는 속도감의 이득이 이를 충분히 만회한다. 

또,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만큼의 잔인한 폭력성(툭하면 수십여명이 죽어나가거나 연방수사관이 총알세례에 반으로 갈라져버릴 정도라거나), 마지막 학살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스케일의 총격전, 킨케이드와 루카스 수사관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매개체 역할의 불안한 가족관계 내지 암울한 기억들, 워싱턴 시장인 케네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치적 반목, 왠지 작가의 노림수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워싱턴 교육위원회의 교육비리와 내부 고발자에 대한 테러 등, 독자가 미처 반전의 언저리에 접근할 수 없게끔 하는 각종 장치들로 구현되는 복잡한 플롯 구성도 이를 상쇄하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해낸다.

완벽함을 꿈꾸며 행위 자체를 즐기던 범인과 온갖 제약 속에서도 그 뒤를 쫓는 수사진의 긴박한 활약. 그래... 모든 것들이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이 완벽한 범죄·수사과정의 마무리를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것은 우연성이다. 범인은 완벽함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단 하나의 패착을 하게 되는데, 완벽해보이는 범죄의 얼개를 깨어내는 킨케이드의 발상이란게 이리봐도 저리봐도 지나치게 우연적이라는 당혹감이 크게 다가온다. 여기까지만이었더라면 아쉬움이 덜했으려나... 다시금 완벽함을 전제로한 이 천재적인 범인의 몰아치는 무력시위(?)앞에서 킨케이드는 또 한번의 우연을 기회삼아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이 두번의 우연으로 인해 <악마의 눈물>은 지나친 부조화라는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하게 되는데... 로맨스 분위기가 다분한 두 등장인물의 소통, 붕괴 일보직전인 가족관계의 안정이라는 정감어린 장면 등으로 아무리 이를 만회하려고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맥 빠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게 된다.

아무튼... 킨케이드는 모호한 예측보다는 철저한 물적증거에 의해 범인에게 접근해 간다는 점에서 링컨 라임의 연장선에 있게 되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도 라임이 제시하는 화학적 분석결과를 토대로 범인의 은신처에 육박해간다) 하지만 그의 장기인 문서·필적 감정이 갖는 제약, 이미 제프리 디버의 작품 속에서도 디지털로의 전면 교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와중인데, 이 디지털의 역풍을 킨케이드가 어떻게 이겨내고 자리보전 할런지 무척이나 궁금해지게 된다. 킨케이드의 등장을 축하하면서, 다음 작품이 있기를... 적어도 육아문제는 해결하셨기를 기대해 본다.

아...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수수께끼 하나.
세 마리의 매가 농부의 닭들을 죽이곤 했다. 하루는 농부의 눈에 세 마리가 모두 닭장 지붕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농부의 총에 든 총알은 한 개뿐인데 매들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한 마리만 맞힐 수 있다. 그는 왼쪽에 앉은 매를 겨누고 총을 쏴서 죽였다. 총알은 다른 곳으로 튀어나가지 않았다. 지붕에는 매가 몇 마리 남았을까?
정답(?)은 제일 마지막 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