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인 자화상... '허수아비춤'

사색거리들/책 | 2010. 11. 9. 07:00 | ㅇiㅇrrㄱi

늦가을이어서인가, 온갖 상념들의 뒤엉킴으로 급격한 감정기복을 이끌어내는 '조울증'과 같은 계절이어서인가 책을 읽다보면, 별 관련 없을 잡다한 기억들이 '이번엔 내 차례'라며 끼어들곤 한다.

조정래씨를 첫 대면한건, 근무 중인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일종의 주최측이었기에 강연을 듣는 둥, 사진을 찍는 둥, 사인회를 준비하는 둥... 그저 그 분을 만난다는 이유 하나 탓에 둥둥 떠다니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문학이란 결국 우리 한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치부에 대한 자화상일 수 밖에 없기에 좋은 건 좋은대로, 부끄러운 것 또한 창피할지언정 드러내야할 연장선에 작가와 작품의 사명과 위상이 놓일거라는 말씀.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하나의 작품을 쓰기위해 들인 격한 노력의 과정들과 결과로 지면에 인쇄된 문장들의 수려함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만족감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멋진 표현이 어디 있는가?'라는 자화자찬격인 수사에도 동의하며 웃을 수 밖에 없는건, 만면에 베어있는 자존감에 나 또한 휩쌓였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안타까운건... 정말 고심에 고심을... 수차례의 망설임끝에 사진 한장 같이 찍으시길 부탁드리고 카메라를 회사동료분에게 건넸는데, 결과물을 보니...--;; 흔들려도 너무 흔들렸는지라 하지만 촬영자가 상사이자 선배인지라... 그냥 '끙' 하는 신음으로 실망감을 되삼킬 수 밖에 없었던 일.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참... 할말이 없다... 얼마나 어렵게 부탁드리고 포즈 취한건데...--;;


아무튼... <허수아비춤>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 자체에 대한 평이야 온갖 글들을 통해 제공되고 있는 탓에 더 덧붙일 것도 없겠지마는... 요 근래(적어도 1년 이상) 읽었던 책 중, 등장인물이 한국인인, 배경이 한국이며, 저자가 한국 사람인 장편소설은 <허수아비춤>이 처음이기에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이다. 책 읽기의 취향이라는 게 그리 쉽게 방향선회될 건 아닐 테니 등장인물 이름에 익숙해지려 애써야 할 서양서쪽으로 손길이 다시 가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국내서 저자가 조정래씨여서 반가운 마음이란게 있다.

허수아비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조정래 (문학의문학,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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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작품 앞에서는, 작가를 대면하기 전에는 일종의 신고식을 치루 듯 숨을 가다듬어야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 첫 장으로 눈을 떨어뜨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이다...의 상태에 돌입해야 감히 표지를 넘길 수 있는 마음상태. 왠지 손도 깨끗이 닦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해서 몸도 마음도 정화해야할 것 같고, 감히 책을 접는 행위 따위는 시도할 수도 없을 듯 싶은 일종의 긴장증 초기증세라 하면 되려나.

달리 말하자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 갖고 있어 왔거나 지금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깊은 치부에 대한 건드림새로운 각성을 요할 것이라는 시대의 과제를 목전에 두게 될 것 같은... 거창한 의무에 대한 외압이 예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언젠가 추악한 것들을 다 까발리고 방향을 제시하는게 문학하는 자로서의 당연한 입장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울림이 새삼스레 떠올랐던 게 아닐까?

정치민주화(지금이 완성된 단계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의 그림자 속에서 그 몸집을 부풀려온 비민주적인 경제영역 특히 대기업의 비민주적 행태와 관행에 대한 고발이 너무나 익숙한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 사회조직 전 방위로 진행되는 로비,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불법승계, 해야 할 소리보다는 돈을 위주로 할 수 있는 소리만 내뱉는 언론 등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는 이걸 허구라 치부하고 넘겨버리기엔 지나치게 세밀한 탓에, 바로 어제 들었거나 어쩌면 지금 당장 만천하에 슬쩍 드러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일임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오래전 과거가 아닌 진행형이기에 좀더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왠지 카우보이 모자 하나 얹혀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인물들이... 술과 여자, 권력과 동물적 본능, 결국 돈을 향해 바지런히 이합집산하는 광경들을 통해 상당히 건조하게 묘사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이정도 기본은 있겠지...' 라며 동정할 여지 없이 표피화된 인물들로 오로지 경제 비민주화의 주역들로 부여받은 특성... 특히, 남성적 마초기질이 날숨으로 뿜어나올 것 같은 역한 호흡으로 살아가는 대상일 뿐이다. 작가는 그들을 딱 그만큼의 존재로만 그려내고 있어 독자는 그들이 판을 벌이고 있는 허수아비춤의 천박함을 간단히 알아차리는 동시에, 나는...? 이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달게 된다.

사실, <허수아비춤>은 새로울 게 없다. 참신한 등장인물도, 기발한 전개구조도, 멋들어진 반전의 결말로 매듭지어지는 즐거움도 없다.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정치·경제구조상 최상위층의 이전투구'라면 직접 체험하진 않았어도 익히 들어 다 아는 얘기에 다름 아니고, 대강 민주화되었다는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그런 '질곡으로 충만한 비민주화 된 영역을 서성이는 방관자들에 대한 질타'라면 속 쓰리지만 인정할 밖에 없는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새로울 것이 없다. 이건 소설이니 허구일 뿐이야 라며 흘려버리거나, 싫지만 나 또한 정치·경제적 노예근성으로 '허수아비춤'을 신명나게 추고 있었다는 하기 싫은 인정이 수순으로 주어진다. 그렇게 보면 조정래 선생님... 참 잔인한 분일 수도 있겠다. 이전의 대하소설류에서는 이미 지난 일이야 라며 빠져나올 자기위안의 여지라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몇 안 되는 예시를 주곤 반드시 그 안에서만 선택하라며 예의 그 주름 가득한 얼굴에 더욱 깊은 골을 드리우며 눈을 부릅뜨기 때문이다. 모른 채 하고 넘어가거나, 알면서도 그냥 길들여져서 살거나, 최소한 반항은 하며 헛 춤사위를 그만두거나 선택하라는 일갈이다. 

다 읽은 책을 반납하지 못하고 흘낏거리며 돌아보게 되는 건, 아마도 더 하실 말씀이 남았지나 않았나 하는 걱정스러움 때문이려나.

괜히 무섭고 창피하다.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