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두번째 만남 '코로나도 Coronado'

사색거리들/책 | 2010. 11. 13. 07:00 | ㅇiㅇrrㄱi

지하철의 낯선 여성분의 중얼거림속에서 만났던 데니스 루헤인(2010/10/13 - [사색거리들/책] - 슬픈 살인자들. '살인자들의 섬 Shutter Island') 그와의 두번째 만남은 <코로나도>라는 낯선 서명을 통해 이루어진다. <살인자들의 섬>에서는 반전에 의한 여운,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극적전환에서 얻게 되는 쾌감보다는, 테디와 그의 아내 돌로레스간의 감춰진 사연으로 인한 슬픔의 여운이 컸던게 사실이고 그래서인가 세 아이와 아내를 읽은 한 남자의 고통스러움, 외로움 같은 것들이 격하게 와닿게 된다. 그러니 데니스 루헤인이란 작가는 심리극에 치중된 스릴러를 잘 쓰는 작가라고, 왠지 누구네가 겪곤 하는 지독한 외로움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들을 스릴러란 장르의 틀 속에서 잘 그려내는 작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코로나도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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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는 그의 단편집으로, <들개사냥>, <ICU>, <코퍼스 가는 길>, <독버섯>, <그웬을 만나기 전> 총 5편의 단편과 <코로나도> 라는 1편의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로나도>는 여기에 실린 <그웬을 만나기 전>이란 작품을 뉴욕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형 게리를 위해 각색한 것으로 당연히 동일한 내용이며, 분량상 더 길고 세밀해야할 희곡인만큼, 원작에서 생략되었거나 간단히 묘사되고 마는 부분들에 좀더 살이 붙게 된다. 

읽는 내내 왠지 영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화한 <셔터아일랜드>를 보자면, 테디 본인 자신이 겪은 생생한 전쟁의 상흔에 대한 묘사가 여럿인데, 세계대전 참전 당시의 수용소 진입, 죽여주길 바라는 수용소 소장을 고통속에 방치하거나, 순순히 투항한 독일병사에 대한 집단 학살이나 수용소에 버려진 시민들의 처참한 시체 등의 묘사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원작에서 집중하게 된 부분이 테디의 잊혀진 가족사인만큼 전쟁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듯 싶어 원작에 대한 일종의 훼손이지 싶은 불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도>에 수록된 첫 단편 <들개사냥>에서 중요하게 묘사되는... '월남전에서의 참극을 떠올리고 그에 시달리는 엘진이란 인물'을 따라가다보면, 어쩌면 데니스 루헤인이란 작가가 말하고픈건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사에 그치는게 아니라, 전쟁이든 사회적인 집단 따돌림에 의한 소외이든 사회적인·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라는 의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약력소개 첫 문구. 반전 운동가...라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스릴러라는 장르의 틀을 빌리기야 하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경쾌한 속도감 내지 반전의 묘미 아니면 가벼운 즐거움이란 외형을 하고 있을 지언정 자신이 속한 사회내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일 수도 있겠다는데 수긍하게 되는데... 표지에서 갖게 되는 첫느낌처럼, 정체모를 안개속에 갇혀 정처없이 휘휘 젖고 있는 양 손의 먹먹함이란게 수록작품 모두에서 느껴진다. 일종의 광기속에 살아가는 등장인물들 모두는 처참한 전쟁속의 생손자이거나, 막장 인생을 살아가는 하류(?) 계층이거나, 불륜 내지 살인의 틀 속에서 태어나고 연이 닿거나, 단 한번 찾아온 사랑을 구덩이속에 방치할 수 밖에 없었기에 삽날을 거칠게 휘두르게 되는 외로운 인생들이다.

극단적인 폭력과 애증의 칼날 위를 위태롭게 배회하던 그들의 삶이 마음 한켠을 묵직하게 하면서도 결코 과장되지 않는 현실감으로 느껴지는 건 <코로나도>가 데니스 루헤인에게 갖게 되는 스릴러 작가라는 선입견에서가 아니라 본격 문학 작가로서의 출중한 기예를 담고 있다는 각성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살인자들의 섬>에서 느끼게 되는 참담함의 연속이기야 하지만, 기발한 구상의 부산물로 얻어내는게 아니라 이 문제많은 사회란 놈을 발 아래 굳게 딛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려낼 줄 알고, 그들 중 어떤 부류가 갖게 되는 비극적인 삶과 그 안에 베어 있는 무엇가를 알아내기 위해 좀더 깊은 시선을 던질 줄 아는 진중한 작가...

지하철이 아닌 서가 사이에서 만나게 된 데니스 루헤인이란 작가의 두번째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