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공포영화관'

사색거리들/책 | 2010. 11. 1. 12:20 | ㅇiㅇrrㄱi

이럴 수가... 맞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당시는 중학교 1학년 정도였고, 수련회를 주최한 곳은 재학 중이던 중학교, 주변 또래들은 같은 학년 학우들이었으며, 무서운 인상으로만 남았던 어르신들은 모두 선생님이었다. 이런 무책임한 교육자분들 같으니라고...--;; (이유는 바로 뒤에)

자정 무렵의 담력테스트. 한 조씩 실외로 이동해서, 산 중턱에 있는 무덤을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다녀오는 과정보다 충격이었던 건 영화 한편이었다. 무서움에 무서움을 보태기 위한 '공포영화' 상영. 영화를 보며 긴장감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순서대로 무덤을 향한 공포의 등산길에 올라야만 했다. 내가 속한 조는 비교적 뒤쪽에 있었던 터라 다행히(?) 영화엔딩을 볼 수가 있었는데... 당시엔 말할 것도 없고 여즉 정서적 충격이 감지되는 걸 보면, 어린 나에겐 그 영화로 인한 반향이 적진 않았다... 라고 회상할 밖에.

지옥 인간
감독 스튜어트 고든 (1986 / 미국)
출연 제프리 콤스,바바라 크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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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가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 인간 From Beyond> 이었다. 연소자 관람불가일게 뻔했을 영화를 보여준 선생님들의 과격한 교육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되질 않지만, 공포영화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스튜어트 고든' 감독을 그 어린시절에 대면케 해준 계기가 되었으니 한편으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부모님에게만큼 감사(?)할 일도 없을 듯 싶으니. 그보다도 오래전, 유치원생이거나 국민학교 1학년 무렵. 지금은 사라진 미아삼거리의 대지극장에서 부모님과 영화 한편을 관람하게 된다. 극장에 데려가셨음 영화를 보여주셔야 마땅했지만, 이상스럽게도 눈을 가리거나 억지로 눕히거나 해서 정상적인 영화관람이 불가능하게 지속적인 방해공작을 벌이셨는데, 그 영화가 숀 커닝햄의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이었으니, 아마도 딱히 애를 맡길 곳이 없어 무작정 데려가시고는 어떻게든 보지 못하게 그러셨으리라는 고충이 새삼스럽게 안타까운데...

13일의 금요일
감독 숀 S. 커닝햄 (1980 / 미국)
출연 벳시 팔머,애드리언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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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의자 사이로 볼 건 다 봐버렸으니... 형, 누나들이 왜 이상스러운 육탄전을 벌이려는지도 모르겠고, 사람 목이 날아가 버리는 이유도 짐작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손가락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과 공포'는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데몬스
감독 람베르토 바바 (1985 / 이탈리아)
출연 나타샤 호비,우라노 바베리니,바비 로즈,미셸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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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감사드려야할 몇몇 분들이 계신데... 해적판 비디오를 늘 대여섯개씩 구해 놓으셨던 삼촌들... 덕분에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 Demons> 같은 공포영화뿐 아니라,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와 같은 대작들도 거의 개봉연도 즈음해서 볼 수 있었으며, 아래층에 세들어 비디오샵을 하던 형들도 참 고마운 분들로 늘 술과 주정으로 밤을 지세우던 불한당들이었지만, 그 틈에 끼어 해적판 비디오를 밥먹듯 얻어 볼 수 있었다.

후라이트 나이트
감독 톰 홀란드 (1985 / 미국)
출연 아만다 비르세,윌리엄 라그스데일,크리스 서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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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동네 곳곳에 풀질되어 붙어있던 영화포스터 앞을 감히 지나지도 못하면서, 부모님 몰래 동시상영관을 찾아 톰 홀란드의 <후라이트 나이트 Fright Night>를 즐기는 등의 파격·탈법행위(당연히 연소자 관람불가)도 무릅쓰곤 했으니... 이쯤이면 공포영화 매니아로서의 기본 소양은 어느정도 닦았다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모든 영화는 드라마(Drama) 장르여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소소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따스한 시선들의 교환이 마냥 감동스러울 때였다. 대부분 재미없다 욕하는 <억수탕>의 마지막 장면, 목욕탕 안의 평범人들을 정감있게 훑는 카메라의 동선이 감동스러웠고,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에서 생소한 음식들을 우물거리다 멋적게 행복감에 휩싸이는 시골사람들의 어색한 웃음에 눈물을 글썽이기까지도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영화취향은 서서히 괴팍하게(?) 바뀌어간다.

무언가에 빠져드는 원인에는 나도 모를 정서적 상태가 깊히 관여할 수도 있음을 힘들게 지나서야 깨달았던 시기였다. 음울하거나 끔찍스럽고,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가능성 탓에 불현듯 몸과 마음을 사리게 하는 오싹함. 스크린에 드리우는 불길한 그림자 따위에 매혹당하게 되는데... 정말 미친듯이 영화만 그것도 공포영화만을 찾아보게 된다. 이제서야 안타까운건 즐거운 유흥거리로 영화를 감상했던게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 감지되는 피폐한 분위기에 그저 젖어있기만 했던 점이다. 그저 마음속 황량함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의 처참한 죽음과 기괴한 존재의 출현, 숨이 턱하니 막히는 충격 그리고 언짢은 여운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와서 남는 건... 감독도, 배우도, 줄거리도, 거창한 영화사적 의의도 아닌 음울함에 대한 막연한 매혹 그저 이 정도일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공포영화관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영화 > 영화감상
지은이 김시광 (장서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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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외치는 작가의 영화감상 연대기다. 공포영화를 즐기는 희귀인(?)으로서 갖게 되는 고충(마지막에 언급된 아내분과의 일화에선 극심히 공감되는 부분이어서 왁~ 웃어버렸다)과 더불어, 그간 섭렵했던 1,000여편 이상의 영화감상을 토대로 했을 직관적인 분류(흡혈귀, 좀비, 오컬트, 몬스터, 망령, 귀신들린 집, 로맨스, 가족, 정체성, 이성의 한계 등) 내에서 각각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영화와 감독 또 그 주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영화 몇편에 대한 리뷰 정도의 수준이 아닌 건, 각각의 영화가 공포영화의 특정 분류내에서 갖게 되는 영화사적 위치나 의의에 접근하는 작가의 전문가적 식견때문이다. 장르영화에 대해 갖고 있는 깊은 애정과 노력으로 갖춰졌을 작가의 식견은 전문적인 영화평론가를 무색케할만큼 진지하기도 해, <공포영화관>은 공포영화에 대한 입문서일 수도, 기존 매니아들의 자기결속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지침이 될 수도, 무언가에 진득히 빠져버린 한 인간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가벼운 수필 한편이거나 해당 장르의 유명감독과 영화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참고서적 또한 될 수도 있다. 

한편 다행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작가가 언급한 영화 거의 대부분을 보았기에 대강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 공포영화를 즐긴다는 이유하나로 가끔 주변의 이상한 시선에 견뎌야 한다는데 대한 동지의식과 자기변호의 발견일테다. 안타까운 건... 작가만큼의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관람한 적은 거의 없었기에 왜 스스로는 느껴내지 못했을까 하는 일종의 자책이다. 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건, 식구들 잠깨우지 않게 홀로 조용히 영화를 봐야하는 쓸쓸할 뿐인 심정이었고, 동의하기 힘든 부분은 작가가 언급한 영화 중 몇몇 작품이 그토록 심오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느냐는데 대한 비전문가로서의 당연한 의구심 탓일게다.

사실... 무서운걸 싫어한다. 겁이 많다. <주온>에서 가야코가 뒤틀린 몸짓으로 계단을 내려올때 들리는 그 삐걱거리는 소음 앞에서는 귀를 막아버렸고, <장화홍련>에서 싱크대 아래 귀신이 등장할때 쯤에는 DVD를 멈춰놓고는 같이 보자고(봐달라고) 와이프 뒤를 쫓아다니는 꼴이라니... 물론 아직도 진행형인 상태...--;; 그럼에도 언제적부터 시작했을 공포영화에 대한 끌림은 지고지순하게 유지되고 있으니 스스로를 돌아봐도 일종의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작가가 언급한대로, 너무나 겁이 많은 내 자신의 변호를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의 연장선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걸 다 접어두고...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외치며 애정을 발산하는 열혈 매니아 뒤편으로 슬며시 붙어 서서는... 나도 공포영화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위안과 든든함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도 공포영화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