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키, 사랑에 빠지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 Dead Until Dark'

사색거리들/책 | 2010. 10. 5. 22:27 | ㅇiㅇrrㄱi

수키 스택하우스란 스물다섯의 여성분이 계시다. 여즉 처녀성을 지키고 있는 처녀다. 처녀... 이게 왠지 중요하다. 처녀이기 때문에 늘 근사한 로맨스의 아릿함이 베어있는 시선으로 상대를 살피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일까? 직업은 멀롯스란 주점의 웨이트리스.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며 누가 자신의 첫 상대가 될지, 사랑의 꿈을 현실로 그림 그려낼 능력을 갖고 있는지 바쁜 시선을 보내기 일수다. 이런 수키에겐 별다른 능력이 하나 있다. 늘 애써 드리우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누군가의 생각에 귀 기울이면 그 생각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맞다. 텔레파시 초능력자다. 이 별종스러운 능력 탓에 초능력자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하는 주변인들에겐 기분나쁜 장애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어두워지면일어나라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샬레인 해리스 (열린책들, 2006년)
상세보기

수키가 살아가는 세상엔, 뱀파이어가 관에서 커밍아웃하는 희안한 일이 있었다. 상대적 소수자인 뱀파이어들이 인간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고 거리를 활보하는데, 그들을 위해 맛대가리 없는 합성 혈액이란 것도 개발된 상태다. 아직 인간 피맛에서 느껴지는 맛깔스러움을 잊지 못해 어둠의 존재로 남길 자처하는 부류도 있으나, 상당수는 인간으로의 삶에 편입하려 애쓰는 중이다. 이 뱀파이어 중 하나가, 갈색눈동자의 소유자이며 창백하지만 빛나는 피부를 가진 빌이란 뱀파이어가 멀롯스에 나타난다. 사랑에 빠진 수키. 곤경에 처한 빌을 도우면서, 일종의 저주라 괴로와하던 텔레파시 능력이 그에겐 전혀 소용없다는 천국과도 같은 상황에 매혹당하면서부터 위험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그러던 중 돈과 모뎃이란 여성 그리고 수키의 할머니까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시신에 남아있는 뱀파이어의 흡혈흔적으로 빌을 비롯한 뱀파이어 일행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고... 뱀파이어에 대한 그리고 뱀파이어와 인간의 연애행각에 대한 편견이 극에 달하는 주민들, 멀롯스 주점의 주인 샘의 알 수 없는 속내, 오빠 제이슨의 방탕한 생활, 또 다른 뱀파이어들의 출현... 모든 것들이 얽히며 살인사건의 범인찾기도, 수키와 빌의 사랑도 점점 곤란에 처하게 되는데...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코지 미스테리 전문작가 샬레인 해리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중 1편에 해당한다. <피아노>, <아름다운 비행>의 유명 아역이었던 안나 파킨(엑스맨 시리즈에서 상대와의 피부접촉만으로 기운을 흡수해버리는 로그역으로 더 유명할 듯)이 수키 역에 분한 미드 <True Blood>의 원작이기도 하다.  

역자의 설명대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뱀파이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마늘냄새에 역해하거나 빛이나 은에 민감하고, 심장이 관통당하면 그 생을 마감한다는 식의 고대(?)로부터의 해석은 여전하지만 인간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얻었다거나, 인간과 연애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사업체를 운영한다거나, 보양식 얻듯 피를 노리는 인간들의 습격에 불멸의 생을 마감한다거나 하는 등 참신한 발상들이 돋보인다. 여기에 변신인간, 초능력자 등에 대한 상상력이 더해지며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장르의 대혼재 양상을 띄게 되는데, 온갖 장르가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각 장르의 특색을 잃지 않는 대단한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어도, 뒤섞여 있다는 자체엔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살인사건과 범인찾기라는 미스테리 내지 스릴러의 주 골격에, 수키와 빌을 중심으로한 로맨스의 특성이 살을 입히고, 공포, 판타지, SF 등이 다양하게 섞여들어간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읽는 내내 어떤 불편함이 뒤 따른다. 개연성이 안느껴진다. 뱀파이어가 등장한다는데 무슨 개연성이냐고 되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거창한 개연성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시선 내지 품고 있을 심정에 도통 공감되질 않는다는 답답함이다. 신선한 발상들이 반영된 인물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 도통 무슨 생각으로 어떤 괴로움이나 고민으로, 어떤 감정으로 그러는지를 공감해낼 수 없다는 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에서야 떨리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대한 묘사가 충분하겠지만 소설은 다르지 않을까? 오래도록 기다리던 나만의 뱀파이어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는 수키의 애정어린 경탄이란게 뒤를 잇는 여러 상황속에서도 감정적으로 보충되질 않으니 남는 건 바스락거리는 지면위의 텍스트 자체, 건조함 뿐이다. 수 많은 대화와 사건들이 나열되지만, 독자가 그 안에 개입할 여지가 꽤 배제되는 편인데 어찌보면 딱 요만큼만 접근해! 라며 선을 그어져 있는 듯 하다.

한편, 코지 미스테리라는 장르적 특성에 대해 떠올려보게 된다. '코지 미스테리'는 잔인한 내용없이 소도시에 사는 밝고 명랑한 그리고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사건에 휘말려 좌충우돌하다 사건을 해결한다는게 주 내용이란다. (Cozy mysteries are a subgenre of crime fiction in which sex and violence are downplayed or treated humourously. The term was first coined in the late 20th century when various writers produced work in an attempt to re-creating the Golden Age of Detective) 영문설명까지 참고해보니, 범죄소설의 근간을 가지면서도 가볍게 상황들이 전개된다는 걸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장르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보면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기운이란게, 당연히는 아니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장르적 특성 탓이려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극단적인(?) 수준의 미스테리물에 반해, 잔인함과 폭력성 등이 저하된 명랑하고 즐겁기까지한게 특화된 장르라니... 뭐 그렇다라고 한다면야, 이런 식의 살짝 달뜬 분위기도 작가의 한계 탓이 아닌 의도된 부분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문하게 된다. 어쩌면 읽는 내내 느껴지는 짜증은 오랜만에 접하는 다른 장르, 다른 분위기의 작풍에 대한 반감일까...? 순정만화와도 같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적인 못마땅함일까...? 어쩌면, 어떤 재해석하에서도 공포의 대명사로서 존엄함을 잃지 않았던 흡혈귀란 존재가 합성혈액 따위로 연명하는 우스꽝스런 꼴로 지상위를 배회한다는데 대한 일종의 배신감일 수도 있으려나...? 

아무튼... 코지 미스테리물을 즐기는 독자들에겐 꽤나 괜찮은 작품일 수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적응이 필요한 작품일 수도...!

참고로, 본편보다는 <뱀파이어-주연에서 조연으로, 악마에서 연인으로> 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 일종의 뱀파이어 문학 연대기편이 더 흥미로웠다. 놓치지 않도록 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