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수의를 벗은 보슈 '유골의 도시 City of Bones'

사색거리들/책 | 2010. 9. 28. 18:30 | ㅇiㅇrrㄱi

"명품 작가 코넬리,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_ 보스턴 선데이 글로브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또 다시 손에 잡힌 책이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보슈 시리즈인 <유골의 도시>였다. 원서출간연도는 2002년으로 16편 정도(2010년 현재)까지 출간된 해리보슈 시리즈의 절반인 8편째에 해당된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모두 읽은 셈이니,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 또한 다음 신작을 애타게 기다려야 할 개인적인 '명품작가'의 반열에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유골의도시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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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스릴러의 대가란 칭호까지 얻은 코넬리는 저널리즘 전공자, 저널리스트 및 경찰출입기자라는 경험에서 기인했을 현실감이 넘쳐 흐르는 작품 전개를 큰 장점으로 갖고 있는데, 물론 세밀한 자료수집작업이 선행되었겠지만 이번 작품 <유골의 도시>에서도 범죄의 현장과 검증, 범인추격과정의 생생함에 힘을 불어넣는 배경이 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경찰서 상황실로 경찰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시민들이 가져다주는 도넛, 경찰에 대한 몰이해와 멸시 등으로 생겼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도넛 한상자의 위력에 대한 보슈의 상념이나 범죄와의 전쟁은 밤에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대국민 메세지(?) 전달을 위한 경찰국장의 경찰서 소등 금지령 등등 실제의 체험(내지 간접체험)이 전제되지 않았다라면 결코 문장으로 묘사되기 어려웠을 수사관들의 디테일한 일상 자체가 곳곳에 배치되어 범죄발생-해결이란 크라임스릴러의 주요맥락을 더욱 기름기 있게 해주는 한편 해리 보슈란 털털하면서도 묵직한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독자가 느끼게 되는 현실감에 고려, 즉 작가의 이러한 배려는 차곡차곡 누적되었을 작가적 경륜에 힘입어 이전과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그의 작품은 어느 걸 골라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무한한 개인적 신뢰와는 별도로, 문장이... 즉 주인공과 사건이 부여받는 개연성에 있어서 초기작과 근작 사이에서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소소한 책읽기의 재미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살인사건은 저마다 도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골의 도시>는 암매장된지 20여년도 더 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한 소년의 유골이 우연히 발견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골에 남아있는 오래된 학대의 흔적 앞에서 반드시 범인을 잡아낼거라 약속한 보슈. 자신이 죽은 소년의 누이라는 쉴러 들라크루아의 제보전화를 통해 신원을 밝혀낸다. 유골 발생지역 인근에 거주하던 아동성추행 전과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지만, 용의자의 신원이 언론에 새어 나가고, 갑작스럽게 자살하면서 보슈는 곤란에 처하게 된다. 보슈는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지으려는 경찰상부의 압력에 맞서 유골의 주인공이 겪었을 참혹한 성장과정에 얽힌 또 다른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유골이 담고 있을 도시의 이야기... 또 다른 삶의 이야기가 드러나는데...

스릴러 장르를 자주 접하면서 흔히 듣게 되는 일종의 질책(?) 중 하나가 있는데, 그런 섬찟한 내용에 끌리는 이유에 대한 지적이자 질문이다. 살인, 유골, 공포 등등 내용에 대한 속단이 가능하다 싶은 자극적 문구를 타이틀로 내걸고 있는 탓도 있겠고, 책 읽기엔 교훈/교양이 뒤따라야 한다는 수순에서 꽤나 비켜나게 될거라는 단정이 질책의 전제로 느껴지곤 하는데, 추리나 SF, 스릴러, 공포 등의 장르문학이 교훈/교양습득의 매체로서 부적합하다라는 케케묵은 논쟁이야 별로 관여할 바 없을 듯 싶고, 끌림의 이유에 대해선 간단한 대답이 가능할 듯. 역자가 언급한대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의 원인이야 작가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에서의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재미'다.

물론, 내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에야 수십여년전에 묻혔을 유골에 흥미를 느끼거나, 유골의 주인에게 저질러졌던 가학적 행위 또는 어느 가족의 참담한 해체기 자체가 재미있을린 없을게다. 그저 사건을 해결하거나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 사고하고 움직이는 해리보슈와 같은 주인공들의 가쁜 호흡에 쉽게 동참할 수 있다는... 손쉬운 간접체험의 묘미라는게 재미 중 하나일테고, 또, 사랑이나 슬픔, 증오나 공포니 하는 등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선에 어렵지 않게 접촉할 수 있다는 것도 지루하지 않을 요인이 될 것이다. 본격문학작품에서 에둘러 찾을 것들이 대중문학작품에서는 비교적 친절히 제시된다는 것... 때문에 여운의 묘미나 깊이의 정도야 어떨지 몰라도 읽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선 큰 장점이 있는 편이다.

<유골의 도시>에도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다. 전개의 주 흐름이 되는 유골에 얽힌 사연 찾아내기 외에도 보슈형사와 새내기 경찰 브래셔와의 사랑, 브래셔의 괴기한 행동, 법인류학자 골리어와 보슈의 논쟁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질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된 현실이든, 누군가의 일상 내지 개인의 이상심리든, 보편적 정서든 간에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바라보는 재미 내지 '생각할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편에선 그 각각의 에피소드가 특히 무게감있게 다뤄지고 있는데, 이는 결국 주인공 해리 보슈로 하여금 어떤 결단을 내리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살인사건이 저마다 도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느꼈을 보슈의 고단이란게 너무 무거워 보인다. '어디에도 없어' 라는 한 마디를 외치며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결론내리는 보슈의 행동이 경솔해 보이지 않는 묵직함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아무튼... 배리상[각주:1]과  앤서니상[각주:2] 최우수 소설 부문 수상작 답게, 재미있기도 때론 무겁기도 하다.


  1. 1997년 창설되었으며, 미스터리 전문잡지인 데들리 플레저 미스터리 매거진(Deadly Pleasures Mystery Magazine)이 주관한다. 장편, 신인, 영국 미스터리, 페이퍼 백 부문 등에 시상한다. 상의 이름은 데들리 플레저 미스터리 매거진의 편집장이었던 배리 가드너(Barry Gardner)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본문으로]
  2. 1986년 제정되었으며, 매년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미스터리 컨벤션인 바우처콘(Bouchercon)이 주최한다. 상의 이름은 1968년 작고한 작가이자 평론가인 앤서니 바우처의 이름을 딴 것으로 바우처콘 참가자의 투표에 의해 수상작이 선정되며, 장편, 단편, 신인, 페이퍼백 오리지널, 평론, 특별상 부문 등에 수여된다. 추리소설 독자가 직접 뽑은 만큼 대중성도 높은 편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