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남자의 망신스런 책 읽기...--;;

사색거리들/책 | 2010. 11. 12. 07:00 | ㅇiㅇrrㄱi

나는 B형 남자. 개인적으로 혈액형별 성격 운운 하는 글에 신뢰도 0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흔히 B형 하면 떠올리는 여러 가지 유형들... 싸가지, 괴팍, 외골수, 심한 감정기복, 소심, 뜬금없는 다혈질, 한 우물 파기, 뒤 끝 심함 등등의 실제 증거물라는 배우자님의 핀잔을 반박할 근거 또한 하나도 없다. 이젠 배째라다...!

그 중 가장 심한게 '한 우물 파기'인데,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고, 싫어하는 것으로부터는 슬금슬금 멀어지고픈 게 사람들 공통된 마음이라 해도, 싫어하는 것 또한 필요에 따라 돌아봐야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라 한다면 이 부분에선 완전 젬병 수준의 상태다.

싫은 건... 주위에서 뭐 거의 와이프님이지만... 줄기차게 잔소리해도 헤~ 웃으며 그 순간만 모면하지 결국 관심을 던지진 않는게 나란 사람의 실체이니 그저 관심가는 것, 좋아하는 것, 당시에 하고 싶은 것에만 관심과 애정을 주는 옹고집과 이를 교화시키려는 와이프님과의 티격태격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편.

이 한 우물 파기는 책 읽기에서 또한 마찬가지인데...!

언젠가, 도서관 서가에 재테크 관련 서적이 기하급수적으로 그야말로 폭증하던 시기. 1억으로 10억 벌었다느니,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느니, 재테크 방법 알려줄게 라는 등의 노골적인 타이틀이 넘쳐나던 때였다. 그럼에도 난 관심없어~ 라며, 좋아하는 소설류 읽기에 매진 하게 되는데, 그 어떤 책을 들고 다녀도 와이프님 눈에는 그저 공포소설에 다름 아니다. 영화 <스위니토드>에서 조니뎁이 선보인 면도칼 검무에 매혹당하는 인간이니만큼, 그런 인간이 읽는 책 또한 그만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 단정을 내린 듯 싶었다. 내 스스로도 한 몫 거든건 책 태반에서 살육, 살인, 죽음, 공포 등등의 위협적인 단어들을 키워드로 뽑아내기는 너무도 쉬었으니까.

아무튼... 어느 날, 책을 하나 대출해 달라길래 건네 주었는데... 물론 그 와중에 내용은 고사하고 책 표지 또한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제목이 <내 안의 부자를 깨워라>

내 안의 부자를 깨워라
카테고리 경제/경영 > 재테크/금융 > 재테크 > 부자되는법
지은이 브라운스톤 (오픈마인드,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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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불쑥 그 책을 내밀더니 읽으란다.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운운하시며 책을 읽어도 이런 실용서좀 읽으라며 건네는데 당연 뿌리칠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들춰보는 시늉이라도 했으려는지 몰라도, 손이 가질 않으니... 그로부터 이삼일 정도를 출퇴근길에 읽고 있다며 가방 바깥 주머니에 책이 보이게 꽂아놓고는(읽는다는 티는 내야 했으니) 들고만 다니게 된다. 물론... 단 한 장도 들춰보진 않았다...--;;

사건 당일

<와이프> : 그 책 다 읽었어?

<남편> : (ㅠㅠㅠ) 응, 다 읽었지...!

<와이프> : 어땠어, 내용을 보니 뭐 참고할만한게 있어?

<남편> : 어? 어... 그게... 요즘 나오는 비슷한 류의 책들과는 좀 다른 내용인 것 같지만... 음...

<와이프> : (눈치가 이상해지며) 뭐가 다른데...!

<남편> : (순간 작가명이 눈에 들어온다! 브라운 스톤!!!) 어... 작가가 외국사람이어서 그런가, 아직 국내 경제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구. 지금 국내 현실은 이런데 말이지 (주저리) 뭐 경제라는게 외국이나 국내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주저리) 결론은... 외국사람의 생각이어서 잘 와닿지 않는게 많았다는 말이지! (휴~)

<와이프> : (표정이 이상하다) 작가 이름이 뭔데?

<남편> : (기쁘게) 외국사람이잖아. 브라운 스톤...!

<와이프> : (분노의 화신으로 변신해서) 브라운 스톤? 그럼, 그 사람 이름이 갈색돌이냐!

<남편> : (어리둥절) 갈색돌?

...

내가 무슨 오류를 범했는지 깨닫고 미친 듯이 굴러다니며 웃어대기야 했지만... 그냥 못 읽었다고 하면 됐을 걸...

브라운스톤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닉네임/필명 정도였다는걸 그 찰나의 순간에 잡아내지 못한 불찰로 한동안 부끄러움에 고개를 못들 지경이었다.  

아무튼... 책 취향이란게 쉽게 바뀌진 않는다. 여전히 편향된 책읽기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책 만큼은 그저 손가는대로 읽고 싶다라는 욕구도 있지만, 정서적인 호소나 실용서를 위주로한 지식함양의 교훈이나 모두 책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일테니, 이젠 슬쩍 시야를 넓여야 할 듯 싶기는 하다.

좀 읽어보라는 강력한 권유로 육아관련 책을 떠밀려 들고 나온 날... 떠오르는 상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