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누군가...

사색거리들/산(山) | 2016. 7. 4. 19:06 | ㅇiㅇrrㄱi

  1994년... 당시 역대 최악이라 하는 무더위가 기승이었던 6월 현역으로 입대를 했다. 매일 정제된 소금 알맹이가 배급되었고, 훈련 도중 앞뒤에서 쓰러지는 젊은 덩치들이 부지기수였으며, 농업이 가입인 훈련병들에겐 특별 휴가가 주어지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차인표라는 낯선 연예인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훈련소 밖 소식 사이로는 멀쩡한 계란을 자동차 보닛 위에 올려놓고 익히기 경쟁을 하느라 분주했던 뉴스가 종종 끼어들기도 했다. 열기 때문이었을까? 전염병이 돌았지... 자대배치 후, 매일 눈 시뻘건 감염자들을 만들어낸 아폴로 눈병 탓에, 연병장 구석 창고를 활용한 임시거처로 내몰려 노숙자와 다름없는 신세를 보내기도 했다. 건강한 이들이 사는 연병장 윗 나라에서 매끼니 때마다 내려오는 식판이 그리웠던... 1994년의 여름이었다.

 

  입대 후 6개월 지나 나오는 일병 진급휴가를 갈 수 있었고... 무기한 연기를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소중한 첫 휴가에 대한 바람을 연기했던 건, 입대 한 달 여전, 홀로 다녀왔던 지리산 산행에서의 약속 때문이었다. 군대 가기 전 혼자 여행이나 다녀와봐... 라는 선배의 조언에 대학 1, 2학년 여름 방학 때 단 두 번 가보았던 지리산을 떠올렸고,  종주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했던 약속이 있었다. '곧 다시 오마... 건강한 모습으로 조만간 다시 오마...' 뭐 그런 결연한(?) 내용이었지. 남원에서부터 한참을 굽이굽이 이어지는 지리산 펼친 자락을 좇으며 슬며시 눈시울을 붉히며 까지 했던 약속인지라 지켜야만했던 것이다. 사실, 한 번의 경험도 없었던 겨울 산행은 엄두가 나질 않아, 꽃 필 무렵의 봄으로 휴가를 미루고 있었던 게다. 4월 말이면 철쭉 핀 화려한 지리산을, 세석의 만개한 철쭉을 직접 볼 수 있겠다는 바람이 있었던 건데... 요즘 같이 검색 한 번으로 온갖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무지의 소산이었을 뿐... 아무튼, 4월 말경에 휴가를 나오자마자 바로 서울역으로 가서 남원 행 밤 기차표를 끊었다. 가족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당일 23:50 밤기차로 출발. 주능선 종주는 이미 해보았으니, 남부능선 종주를 해보자 즉석에서 산행계획도 잡았다. 쌍계사에서 출발해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를 보고, 세석산장에서 1박, 다음 날 천왕봉에 들렀다가 한신지계곡 쪽으로 하산, 밤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복귀!

 

  남원에서 쌍계사까지 버스로 이동했고, 산행 초입 길에서 본격적인 등산준비를 시작했다. 군대에서 축구할 때나 입던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티로 갈아입고, 물을 뜨면 준비 끝...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당시 갖고 다니던 등산용 수통 뚜껑에 고무이음새가 빠져있는 걸 발견했는데, 그 상태로 물을 담으면 줄줄 흘러내릴 터였다. 준비할 때 분명 있었으니 배낭 저 아래 처 박혀 있는 게 확실했지만, 텐트까지 포함해 그 많은 짐들을 다 들어낸다는 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냥 출발했다. 이래봬도 육군 일병인데, 물 없다고 무슨 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누구 만나면 얻어 마시거나 하면 되겠지... 라는 무지한 생각이 있기도 했고... 물만큼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상징인마냥 자랑스레 목에 걸고 있던 군번줄을 몇 번 부지작거렸던 것 같다.

 

  산행 길 초입부터 고역의 연속이었다. 우선 체력문제였는데... 큰 훈련이나 운동 없이 보낸 겨울 탓에 몸이 다소 불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배낭 무게와 함께 경사 자체를 감당할만한 체력이 아니었던 게다. 걷다 힘들면 쉬고, 잠시 걷다 또 쉬고, 도대체 내가 여길 왜 왔나 하는 한탄 속에 지난 약속의 결의와 육군 일병으로서의 자존감은 가쁜 숨 속에 금방 소진됐다. 다음으로, 식수 문제... 식수를 준비 안한 게 얼마나 무지하고 미련스러운 일이었는지는 계곡이 끝나고 본격적인 종주 길에 들어선 다음에야 알게 됐다. 식수를 동냥할만한 등반객 하나 만날 수 없었다. 결국 그날 산행 종료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질 못했으니... 봄철 산불로 인한 통제기간임에도 나를 입장시켜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의 무책임에 대해 한참을 투덜거렸던 시간이었다. 아무튼, 지도를 보니 세석산장 바로 아래 음양수샘 그리고 산장 조금 못 미친 곳에 샘물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때까지만 참자 싶었다. 나무뿌리에서 떨어지는 눈 녹은 물을 받아 마시다가, 밑반찬으로 싸간 김칫국물을 마셔가며 갈증을 버텨내려했고... 소금기 가득한 김칫국물이 더 큰 갈증을 유발한다는 일상의 지혜따위는 애시당초 없었으니까.

 

  눈 녹은 물...! 또 하나의 난관은 날씨였다. 4월 하순이면 지리산 전체가 철쭉을 비롯한 봄꽃으로 만발할 줄 알았는데... 꽃은커녕 이파리 달린 나무 하나 보기 힘들었다. 눈이 녹다 만 얼음덩어리들이 보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능선 길에서의 바람과 추위는 정말 대단했고, 반바지와 민소매 차림이었으니 추위와 함께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기는 여기저기 늘어만 나고... 너무 힘들었다. 아팠다. 그러던 중... 너무 추워서 싸구려 등산점퍼를 꺼내 입고 걸었다. 잠시 걷다보니 어지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걷다보면 몸에서 후끈후끈 열이 나는데, 열이 방출되질 못해 그러려니 해서 벗고는 걷고, 그렇게 걷다보면 너무나 추워 다시 입고, 그런 와중에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반복이었다. 능선 어디에서인가 다시 어지럼증이 생기기에 바위에 걸터앉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경... 지도를 보며 어림짐작을 해보니 앞으로 2-3시간 정도면 산장에 도착하겠네? 빨리 걸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누군가가 나를 흔든다. '일어나, 빨리 일어나!' 눈을 떴다. 주위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일찌감치 진 상태였고, 한 밤 중이었다. 잠깐 앉아 있는 다는 게 그만 잠이 들었던 게다. 그 사람(?)이 또... '빨리 일어나! 어서 가야해!' 재촉을 했고, 바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계속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가야해! 빨리!' 하나, 둘, 셋 하면서 뛰고 있는 걸음 수까지도 맞춰주었다. 그렇게 10여분 넘게 뛰다가 그제야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 봤고... 아무도 없었다. 어둠속엔 아무도 없었다. 달빛에 기대 산죽나무 무성한 등산로를 훑는 숨 가쁜 한 사람... 나 뿐이었다. 오싹했지만, 그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랜턴을 꺼내들곤 뛰다시피 걸었다. 음양수 샘을 만나 종일 갈증났던 몸덩이를 채우고 걷다 보니 여기저기 텐트 터와 가는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어지럼증이 나타나는데... 코 앞의 산장까지 갈 힘 따윈 남아있지 않다 판단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급히 요기를 하고 잠을 청했다. 너무 지쳤더랬다. 힘들었고... 졸렸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는 없었으니... 도대체 누구였을까? 하는 궁금증만 잠들기 직전 슬쩍 지나쳤던 기억이다.

 

  그날 밤 추위는... 끔찍했다. 가벼운 홑이불 하나로 이겨낼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질식해 죽을 수 있다는 거 뻔히 알고 있었지만, 텐트 안에 버너를 켜놓고 그냥 자버릴 정도였다. 가스버너에 불이 켜지자마자 훈훈해지는 열기에 만족해하며 죽어도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 위 세석산장의 쓰레기 수거차 들렸음 직한 헬기의 요란한 소리에 깨어나... 텐트 밖을 내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4월 말인데... 텐트 터 사이로 흘러내리던 물은 모두 얼어 있었다. 세석산장 편에서 텐트 터 사이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물줄기들이 꽝꽝 얼어 있었다. '텐트 칠 곳도... 물을 구할 곳도 없었던 그 능선 길에서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 이 추위에 큰일 날 뻔 했구나, 그 누군가가 날 깨워주지 않았다면 얼어 죽었겠구나' 싶었다. 신 내지 미지의 존재를 믿지는 않는 터였으나... 그 때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구나... 나를 살려줬구나... 산이 나를 도왔구나...' 싶었을 뿐... 수분 부족과 극심한 피로 또는 해지기 전 산장에 도착해야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환각 같은게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리 치부하기엔 흔들어 깨우고 따라오며 재촉하던 그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했다.

 

  그 날부터의 산행은 원활했다. 세석산장부터는 등반 객들이 한두 명씩 보였고, 몸도 이상스레 개운했다. 천왕봉에 들려 지리산 구비구비를 조망하고, 한신지계곡 쪽으로 하산하는 길... 미끄러지거나 나무둥치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할 때마다, '아... 산이 나에게 조심하라는 가보다...' 하곤 머리를 조아렸고, 산행이 마무리되던 계곡 말미에서는 과일 하나 돌 위에 올려놓고, 한참동안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지리산에서의 3번째 산행을 끝냈다. 상병 휴가 때도, 병장 휴가 때도 지리산을 찾았고, 산행 길 매순간순간 산에게? 또는 그 무엇에게? 감사를 드렸다. 누군가 또는 어떤 존재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탓인지... 지리산의 능선과 계곡, 사소한듯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 한그루까지도... 내겐 영험의 대상일수밖에 없었다. 문득 의문이 치밀때가 있긴 하다. 당시 학교 산악회 활동하던 선배는 '산신령’이 지켜준거다... 라고 해기해주었는데... 신령이든 귀신이든 또 다른 무어든... 그냥 '산'이란 존재 자체가 신성한 대상이 되어 버린 계기였을 뿐... 명확하진 않다.

 

  도대체...? 누가 나를 깨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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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영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기억속 소중한 이 | 2016. 7. 4. 18:41 | ㅇiㅇrrㄱi

  휴일날이었던 기억이 있고... 잠이 덜깬 아침부터 이게 왠 장난질들인가 싶어 인터넷 매체의 무례할만큼 생략이 가해진 기사들에 잠시 분개했던 기억이 있다. 오보이거나 그저 가벼운 병환 정도겠지 하는 바램섞인 마음이 있었고, 입원에서 사망으로 그리고 서거라는, 익숙한 듯 낯선 단어들이 오락가락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아파트 복도로 나가 한참동안 피운 담배에 속이 텁텁했었고, 이른 아침 늦봄의 하늘은 쾌청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저 황망히 웅크리고 있었던 한참동안의 기억이 있고, 사뭇 다른 표정과 반응에 겁에 질린 딸아이를 보면서 대통령 아저씨가 돌아가셨데, 돌아가셨데... 맞아, 하늘나라로 가신거야... 그렇게 설명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왠지 나가야할 것 같아 서둘러 외출준비를 하고 무작정 의정부 고개쪽으로 차를 몰았더랬다. 사위가 어둑해지는게 꼭 비가 쏟아질 것 같았고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마치 그 언젠가 영월역 앞에서 나를 밟고 넘어서는 교도대 전투경찰의 등쌀에 눈앞에 내동댕이쳐진 큼지막한 금테안경을 주으려 무심히도 손만 뻗었던 때 마냥 긴장감 약간, 두려움과도 비슷한 극심한 분노 같은 심정에 흠씻 지쳐버린 기억이 있다. 유명만화에 소개된, 언젠가 연애시절 찾았던 부대찌게집엘 들려, 라면사리 하나를 넣고 와이프와... 딸아이와 점심식사를 했더랬다. 휴일임에도 번잡하지 않아 한산한 식당분위기에 안심했던 듯 싶고, 익숙한 만화의 몇 컷이 걸린채 홍보물 역할을 하고 있기에 신기한 듯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별일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시큼한 찌게 한술에, 잠시 충격이었을 그 일은... 그래... 잠시의 혼란스러움이나 슬픔 그 비슷한 감정이었을 뿐, 나와는 너무 먼거리에서, 다른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일일뿐이니 무사히 지나쳐갈 것 같다며 내 자신에게 위로 비슷한 걸 했던 기억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배회할 곳이 마땅찮아 장암삼거리부터 시작되는 고질적인 교통정체에 운전석 등받이로 잠시 몸을 편히 기대 네비게이션의 지상파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추모분위기로 돌아서, 고인의 옛모습 찾아내기에 여념없음은 채널을 어디로 돌리나 마찬가지였고, 고정시켜놓았던 채널은 YTN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른 오후임에도 낮게 가라앉은 햇살에 덩달아 주변의 공기는 무거웠고, 잠깐의 소나기가 자동차 지붕위를 두들겨 우르릉 소리가 일었던 것 같다. 이른 새벽 삶을 마감하셨다는 분은 조그만 LCD안에서 통기타 반주에 맞춰 애창곡이었다는 양희은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끝도 없는 교통정체를 뚫고 들려오는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어쩌면 그때까지 그게 무어든간에 참고만 있었나 보다. 수십년간을 웃음이나 울음과 같은 지극히 본능적이라할 감정표출은 나 홀로, 내 자신만을 상대한 의사수단이라 여기며 살았던 탓에 웃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자연스러운 동작조차 얼굴근육에 수이 반영되지 않은 나였더랬다. 남들보다는 한걸음 뒤쳐져 반응하거나 아예 반응하지 않는게 상책이라 여기기에 그간의 오해도 많은 나였더랬다. 그렇게 꾹꾹 누르고 눌러, 일상의 여느때와 다름없이 그 시간을 버티려 애쓰는 셈이었고... 그 노래소리... 통기타를 치며 어수룩히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자하니 다스릴 수 없게 울컥하는 심정이었던 기억이 있다. 가벼운 울컥임이 아니었기에, 와이프와 딸아이는... 의정부에서 서울로 넘어오는 고개 어느 지점이었던가, 참질 못하고 통곡하고 울어버리는 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었더랬다. 지독스런 교통체증에 길가로 차를 멈춰 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1차선으로 여전히 가다 쉬다 운전은 하면서도 그냥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있다. 겁에 질려 조그마한 목소리로 제 엄마에게 아빠가 왜 우냐고, 백미러 너머 눈물 그렁그렁한 눈길로 묻는 질문에, 대통령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슬퍼서 그런거라고 괜찮은거라고 달래는 와이프의 목소리에 더 서럽고 서럽게... 목놓아 운다는게 이런거구나 싶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눈물은 또한 느닷없이 사라져갔다. 홀가분함이라 가장된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고 그렇게 집으로 향해버린 5월의 어느 날이... 끝없이 밀려있던 데루등처럼 지나치도록 길게 이어졌다. 마침 들른 마트에 딸아이와 와이프를 들여보내고는 다시 쏟아지는 비를 피해, 주차장 아래층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있다. 휴대폰 너머 어머니는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데... 못난 사람이다라고 하셨고, 정말 돌아가신거다라며 한마디 돕던 차에 다시 목이 메었던 기억이 있다. 또 그렇게 느닷없이 울어버렸던 몹쓸 기억이 있다. 고객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준다며 펑펑 옥수수알을 튀겨내는 팝콘기계의 번잡스러움과 팝콘의 단 냄새가 근방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날이었나, 또 다음의 날이었나... 대학동기와의 침통한 대화가 있었다. 몇 달만의 만남은, 몇 년만에 찾아가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이루어졌고, 그날도 하늘이 무겁게 가라앉았던 것 같다. 혹은 무더운 열기에...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이거나, 호기심 또는 추모의 분위기속에 길게 이어져간 서로 비스무레할 마음의 열기이거나... 한 여름때마냥 더운 땀에 눅눅해져갔던 기억이 있다. 다른 복장에, 다른 얼굴로... 같아보이는 마음으로 쉬지않고 지하철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떼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질서를 유지시킨다 반듯이 줄을 세우고, 누군가는 국화꽃 한송이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어느 어린 학생은 갈증을 이기라 생수 한잔씩을 수줍게도 따르고 있었다. 흘러버린 옛 추억마냥 녹화된 테이프에서 살아나온 고인의 덤덤한 목소리가 있었고, 사방을 도배한 노란색의 리본들이 날리었으며, 누군가들이 적어내려간 추모의 한구절이 아스팔트길 바닥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 동기와는 그렇게 두어 시간을 단 한마디만을 나눈채 외면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한마디는 많이 울었냐... 라는 녀석의 뜬금없는 질문이었고, 내 뒤통수가 답이라는 듯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던 기억이 있다. 당황스러울만치 짧은 시간동안의 분양이 있었고, 대학 동기와 인근의 횡단보도를 건너다, 길을 막아서며 돌아가라는 전경녀석의 안내에 오던 길을 거슬러 돌아갔더랬다. 기다리는 사람들과... 지나치는 사람들, 무엇때문에 그리도 무거운 복장으로 숨막히게 길을 막고 정렬해 있는지 몰라 발로 한번 걷어차버릴까 싶은 전경들을 지나쳐 광화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여전히 대학 동기와는 걷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느닷없이 있지도 않을 성 싶은 가래를 모아 어느 건물의 정문 앞에 시원스럽게 뱉어버리는 녀석때문에, 그 곳이 조선일보 건물이었음을 알게 됐던 기억이 있다. 시원한 맥주한잔 마실까라는 대학 동기의 제의에 오늘은 말자라고... 가볍게 거절하고 헤어져, 무작정 종로길을... 뒷 골목을 한참 걸었더랬다. 조문이 이어지고, 조문이 또 이어지고... 울어버린 사람이 있지만,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고... 잘 죽었단 사람들도 있었더랬다. 평생 마주칠 일 없을,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모르는 한 인간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조문하는 TV속 광경에... 저 새끼가 분명 대국민 유감표명이라도 한답시고 지껄였던 기억이 있었는데, 정말 그리했는지 가물거리는 기억이 있었더랬다. 쥐새끼라는 별칭은, 전통적인 욕의 범주로 포함되질 않아 그 상스러움이 부족하다며, 저 새끼는 개새끼다 라고, 개새끼여야 한다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추도사를 낭독하는 목소리... 대통령님, 대통령님, 대통령님 하는 부르짖음은... 누군가가 청명히 하늘을 가르고, 심장마저 가르는 듯 파고드는 소리라던 일렉기타의 울림과 같았고... 얼마전마냥 통곡하진 않았으나... 눈물이 그렁그렁해 울어버릴 지경이었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기억이... 떠나보내거나 그리워하거나, 또는 분개해 하거나 하는 등의 잡스러운 기억이 있었더랬다... 모든 기억은 이제 오랜 시간속의 기억이 되었고, 기억속 어느 날... 덕수궁 담길 한켠에서 받아 양복 윗저고리에 걸었던 근조 리본은, 여전히 사무실 컴퓨터 앞 구석에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다. 그만 치워버리라는 직장 상사의 권유가 있었지만, 계속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며... 설령 치워진다 한들, 그 한때를 보낸 내 마음 속 그의 리본은 늘 달려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영원히 대통령일, 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만든 공간 ③ - IF Zone...

東國 | 2016. 4. 19. 20:00 | ㅇiㅇrrㄱi

  결국에는 내 의사와 상관 없는 이런 저런 높은(?) 결정들이 개입되긴 했지만... 비교적 설계에 충실하게 진행된 IF(Information Forest) Zone.

  가상화를 적용하지 못해 아쉽고, 윈도우 10  기반 PC들의 불안정성이 아쉽고, 예상보다 지나치게 아담한 사이즈의 Presentation Room이 아쉽고... 카펫이 아닌 텍스 재질의 바닥이 역시 아쉽고, AV실을 뒤엎지 못해 아쉽고, 체계적이지 못했던 AV설계 쪽이 아쉽고... DID 활용성이 떨어져서 아쉽고, 나무기둥에 설계대로 조명을 박아내질 못해 아쉽고...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긴 한다.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중앙도서관의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폰피플이 되지 않는 법 '셀 Cell'

사색거리들/책 | 2013. 4. 10. 17:01 | ㅇiㅇrrㄱi

   지하철 객실에 올라 둘러본다. 형광등 아래 수 없이 떠 있는 얼굴빛은 하나같이 시체 빛이다. 눈언저리만 천연색의 반사광에 번득인다. 도대체 몇 명이나...? 하나, 둘, 셋... 두 자리 수에 접어들며 헤아리기를 포기한다. 너무 많다. 신문을 읽고 있는 한 인간 그리고 이제 막 책을 꺼내려는 나란 인간, 단 둘을 제외하곤 객실 안은 그들뿐이다. 전 지구적 현상인지는 장담하기 힘드나 적어도 대한민국은 완벽하게 점령당한 것이다.

셀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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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2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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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에 잠식당한 우리네 현실을 우회적이지만 섬뜩하게 돌아보게 하는 소설, 스티븐 킹의 <Cell>은 2006년경 국내에 발간되었다. 천부적 이야기꾼이라는 작가의 명성 탓에 잠깐 동안 인기도서 란을 차지했을지 모르지만, 접한 이가 거의 드문 편이다. 장르문학을 다소 경시하는 국내 풍토도 이유겠으나, 무엇보다 작가에게 늘 따라붙어 소수 마니아층의 읽을거리라 편견을 갖게 하는 '공포소설의 제왕'이라는 수식 탓도 없지 않다. 아무튼, 이 외톨이 책을 다시 들춰보자는 이유는 무얼까?

   엄밀히 말하자면 <Cell>에는 스마트폰이 등장하진 않는다. 주로 인간의 '시각'을 소진하는 스마트폰(smart phone)이 아닌 '청각'에 의존하는 셀룰러폰(cellular phone)이 대상이니, 펄스라는 인류대재앙이 보는 것이 아닌 듣는 전화통화행위를 통해 발발하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클레이튼 리델이 보스턴 공원 근방에서 목격하는 펄스의 시작, 즉 전화통화음에 감춰진 특정 신호가 인간의 뇌를 말끔히 지워버려 발생하는 재앙을 생생히 전하며 시작한다. 뇌가 포맷되어 원초적 광기에 사로잡힌 데다 초능력까지 겸비한 절대다수 '폰피플 무리'에 맞서며 아들의 생사확인을 위해 떠나는 고단한 여정길이 펼쳐진다.

문명은 부드러운 피의 강물을 타고 두 번째 암흑기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지만, 그 속도는 비관적인 미래주의자들도 눈치 못 챌 만큼 느렸고, 지금껏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웠다.

   셀룰러폰이 재앙의 근원이 된다는 발상에서는 기술 지향적 문명발전에 대한 의구심을 떠올려보거나, 이성이 지워진 폰피플의 잔악한 행태 속에서 인간정신의 근원에 침착해 볼 수도 있을 테다. 참혹하게 그려낸 스티븐 킹 식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암울해할 수도, 아들을 위해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클레이튼 리델의 부성애에 감동할 수도, 단순히 인간과 좀비간의 흥미로운 한판 대결을 즐겨볼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Cell>이 울림을 갖는 부분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접하게 되는 일상에 대한 돌아봄에 있다. 어떤 책이 자신과 사회, 사상 등에 대한 돌아봄을 담고 있지 않겠냐마는, 그 대상이 그저 고개만 들면 접하게 되는 더더군다나 일체의 고민 없이 습성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네 일상이라면 울림의 여파는 남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셀룰러폰으로 나누는 전화통화가 생소하던 때를 넘어서, 스마트폰에 코 박고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 행위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이전에 마치 들숨날숨을 내쉬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 버렸다. 나서서 경고하는 이 하나 없기에 자연스럽게 그리 되어 버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전염된 것이다. 펄스와 같은 파괴적인 대재앙까진 아니더라도 이 집단전염병의 결말엔 무언가 흉측한 게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짐작되지 않는 그 파국을 피해가기 위해서 스마트폰 들여다보기를, 전화통화하기를 삼가야할지 모르는 것이다.

   결국 극소수가 되겠지만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고, 살아남은 자만을 위한 집결지에 모이기 위해서라도 들고 있는 그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 한 권을 펼쳐보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셀룰러폰과 스마트폰은 다르지 않냐 는 지적은 못들은 걸로 하겠다.

   아무튼, 오늘도 나는...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예비 폰피플 무리' 사이에서 책을 읽거나 멀거니 사색이라도 즐길 테다. 책이라도 없다면 두 손은 어느 순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더듬고 있을 테니 모두들 지금 당장 근처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달려가 한권 챙기길 바란다.

   폰피플이 점령한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고 싶다면 말이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