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와 동행하는 영혼의 산책길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사색거리들/책 | 2011. 3. 2. 15:00 | ㅇiㅇrrㄱi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퇴근길의 1호선. 머리 위로 가득 걸린 형광등의 푸르스름한 불빛이 부끄럽게도 밝은 시간이 이어진다. 조금 참아보자 했다. 도착역을 채 몇 정거장 남기지 않았으니 울컥 하는 마음 한편 추스르고 아무 일 없는 듯 가만히 있어보자 했다. 더 이상 읽어 내릴 수 없어 황급히 책을 덮는 심경이란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도 않으니... 감정의 울렁임과 닿아있을 즐거움 대신 아직도 이리 감상적인가 싶은 생소함이 일종의 굴욕감으로 이어진다. 참 나... 몇 장만 넘기면 되는데 그 몇 장을 넘기지 못하는 나약함이란....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책의 나머지를 덮어버리곤 지나치게 밝은 형광등 쪽으로 고개를 들어야만 했고 그리 바라보는 하얀 빛은 왠지 파르스레한 차가운 기운마저 머금고 있었다. 고개를 슬쩍이라도 원위치하면 눈물이 뚝 흘러내릴 것 같아 묘한 각도로 턱을 쳐든 모양새를 종착역에서 출입문이 열릴 때까지 유지한다.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다는 걱정은 막 열린 출입문을 빠져나와 지하철 객차 안 형광등 수십여 개를 뒤로 하고야 사라진다.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 한 문장 넘기지 못하고 그냥 덮는다. '아무래도 이 마지막 몇 장은 온전히 홀로 있을 때에나 읽는 게 가능하겠어...'
내 이름은 작은 나무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은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살배기 인디언 소년의 짧은 성장수기로 체로키족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숲속 생활의 이모저모다. 자연의 이치나 당시의 생활상, 무조건 옳다는 쪽으로 손을 번쩍 들어주고 싶은 삶의 방식 등이 시종일관 순박하고 정갈한 소년의 눈높이에서 펼쳐진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할 뿐인 할아버지와의 유쾌한 산책길에 빠져들고, 항상 웃음만을 머금고 있을 성 싶은 할머니의 살가운 가르침을 들으며, 그들 사이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이나 그 안에 놓인 여러 교훈을 접하다보면... 읽는 이의 마음이 작은 나무의 한쪽으로 자연스레 놓여 함께 경탄하고 깨닫고 웃고 즐기면서 다섯 살 소년의 심정에 포근히 동화되어 버린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국내도서
저자 : 포리스트 카터(Bedford Forrest Carter) / 조경숙역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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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유구한 역사 속에서 완성되었을 체로키 인디언만의 훈육이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작은 나무가 얻어가는 깨달음은 한 부족에만 내려오는 단편적인 가르침 보다는 오히려 철학에 가깝다. 탈콘 매의 사나운 발톱에 사로잡힌 메추라기의 죽음을 통해서는 약육강식의 원칙 속에도 한 개체의 성공적인 진화와 개체 간 균형에 대한 자연의 배려가 숨어 있음을, 함정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칠면조의 꽥꽥거리는 아우성에서 자신의 주변에 뭐가 있는지를 늘 내려다봐야한다는 겸손이 지닌 현명함을, 거짓 신호를 보낸 사냥개에게서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들면 결국 자신이 곤란함에 처하게 된다는 정직의 필요성을, 심지어 방울뱀에 목숨을 잃을 상황 속에서조차 가족 간의 애정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담아내는 등 체로키족 후세로서의 작은 나무에게가 아닌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울림이 크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이래야 저래야 한다는 식도 아니다. 무척이나 유쾌한 이야기 한편에 슬쩍 웃다 말고, 또 다른 이야기에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음 장에서는 답답함으로 욕을 내뱉고, 어떤 대목에선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춰내기 급급해하다가는... 결국 어느 순간 책의 제목처럼 내 영혼 또한 순박하지만 절절해 보이는 사랑 따위로 잔뜩 젖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교훈은... 그저 그 다음에 남는... 하지만 영혼의 따뜻함이 전제되었기에 좀 더 신랄하게 각인되는 부수적인 무엇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온통 교훈에 대한 감동적인 내용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1838년에서 1839년 사이 1만 3천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1,300킬로미터 너머의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를 위한 행진 중에 추위와 기아, 병, 사고 등으로 무려 4천여 명 정도가 죽었다는 '눈물의 여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서구문명이 발판삼은 게 도대체 무언지에 대해, 왜 인간이 과거를 이해하고 알아두어야 앞을 내다볼 수 있는지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자연훼손을 포함한 환경문제나 미국의 대공황 당시 처참했던 서민들의 삶 그리고 표리부동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 종교인들의 편협한 시각 등에 대한 지적 또한 묵직한 비중으로 스며들어 있다.

  무척 재미있다. 자연의 이치, 문명의 폐해, 인간적 삶의 고민, 정치의 이중성, 종교나 법의 모순, 이웃의 정겨움, 교육의 의미 그리고 사랑의 위대함과 영속성 등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 누르는 메시지들이 감동스러운 상황 속에서 줄줄 이어진다. 또한, 길을 걷다 마주한 가로수 한 그루에게 안녕...? 이라고 인사를 건네야하지 않을까 고민될 만큼 읽는 이의 마음을 앗아가는 저력이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너 자신과 더불어 너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 어쩌면 화단 위로 떨어진 나뭇잎 한 장부터도 너를 아끼고 있으며 머리를 스쳐가는 바람조차도 한줌 따스한 위로일 수 있으니 그런 이해 여럿만으로도 살아갈 가치는 충분함을 깨닫기 위해서... 읽어보라 하고 싶다.

내 영혼이 따뜻해지는 슬프고도 행복했던 시간 이후...
  끝 무렵에 도달해 울먹거렸던 심정으로 돌이켜보면 책을 읽다 울 것 같은 심정...? 아니 울어버린 심정에 다다랐던 게 언제 적인지 떠올려보기 힘들다. 아마도... 위다의 <플란다스의 개 A Dog of Flanders> 원작을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읽으며 네로와 파트라슈의 마지막 포옹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게 기억의 마지막쯤...? 서글픔 자체였던 결론만큼이나 생의 마감을 함께 맞이하도록 둘을 묶어놓았던 애정의 깨어짐이 안타까웠다. 보이지 않을 세계에서의 행복한 해후를 전제로 한 현세에서의 이별이었겠으나 책을 읽는 산 자의 입장에서야 죽음은 비극만으로 풀이될 테니...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은 가져보았지? 여기 아닌 저 세상에서는 행복하기를... 따뜻하기를... 그리고 아쉽게도 남겨놓은 것이 무어든 그건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콕 박혀 있기를...

  마찬가지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같은 심정을 가져 본다. 작은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디언 소년이 그간 만나왔고 사랑했던 존재들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별식은 터무니없이 짧은 현세를 건너뛰고 보면 별반 슬픈 일도 아닐 거라고... 밤하늘에 박힌 늑대별을 보며 교감을 이루어냈듯 여전히 영혼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중일 거라고...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왠지 부쩍 데워져 있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