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어긋나는 미로 속으로의 초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사색거리들/책 | 2011. 3. 5. 08:00 | ㅇiㅇrrㄱi

사라진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어디 있을까? 어떤 몰상식한 이용자 때문에 그 도서관의 신학이나 공학 서가에서 묵상에 잠겨 있을까? 아니면 날개라도 달려 다른 도서관으로?
어...? 사라졌다는 책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지금 내 손안에 들려있네...? 유감스럽게도 동네 도서관이 아닌 D 대학의 중앙도서관 구석진 서가에서 찾아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 뿐. 어쩌면 내용에 따라 책의 제목도, 출판사나 표지 디자인도 바뀌었을 거라더니... 제목 말고는 모든 형태가 바뀌어 버렸다. 온통 검은 색인 앞뒤 표지에 제목과 출판사 로고만 인쇄되어 있고 홍보문구나 추천사 그리고 가격 따위 등은 찾아볼 수 없어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를 연상케 한다던 소박한 디자인이 기괴한 화려함으로 거듭난 모양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최제훈 (자음과모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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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최제훈...? 신화, 문학작품, 가공의 인물 등을 <퀴르발 남작의 성>이란 단편집 속으로 우르르 끌어들여 난장의 향연을 만들어 내었던 바로 그 작가다. 갈고리에 절단된 팔과 몸통을 걸어놓았던 전작의 표지만큼이나 이번 표지도 한층 얄궂다. 얼굴 하나 덜렁, 안경의 모양새를 한 붉은 색 뫼비우스의 띠 위로는 북슬북슬한 송충이 여러 마리가 기어가고 있으며, 무한히 확장되는 값 π 형상의 입이 우스꽝스럽게 놓여 있다. 이번엔... 어떤 난장의 향연을 선보이려나...? 무슨 짜깁기된 상상력을 자랑하려나...? 골똘히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머릿속이 뫼비우스의 띠를 좇아 무한으로 회전하는 기분이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도입을 알리는 짧은 노래. 어둠 속에서 본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그런데 고양이는 세 마리뿐이라니 나머지 눈 하나의 주인공은 누구이려나? 차마 불을 켜지 못하는 화자의 으스스한 심정으로 읽기 시작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여섯 번째 꿈>, <복수의 공식>, < π >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뤄낸다. 각 중편이 시작되는 지점엔 QR코드를 삽입해 각 작품에 어울리는 이미지와 사운드트랙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데, 아쉽게도 스마트폰의 기본도 모르는 희대의 불량품 전지불능 제품의 유저인지라 그저 상상으로만 음미해볼 뿐.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왠지 흐늑거릴 듯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들려주는 <여섯 번째 꿈>은 어디선가 접해봤음 직한 밀실트릭 추리물을 연상케 한다. 연쇄살인 관련 온라인 동호회 실버 해머의 회원 6명이 주인장인 닉네임 악마의 초대를 받아 외딴 산장에 모인다. 정작 초대한 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폭설로 고립된 회원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고... 서로를 의심하던 와중 그들이 마주하는 건 각자가 꾸어내는 살인의 꿈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살아남은 자 중 하나이려나? 아니면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주인장이려나? 궁금하다. 그저 죽었을 뿐인 누군가의 꿈 자체일까? 범인은 누구지?

무수한 의구심을 뒤로 하고 작품의 말미는 도돌이표를 마주한 듯 이야기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딘가의 묘한 어긋남... 아귀가 맞아야할 지점으로 실금이 가버린다. 산장에 모였다는 사람은 여섯 명...! 산장에 모였다는 사람은 일곱 명...?

두 번째의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따라가게 된다. 인물이 등장하고, 명확한 사건이 진행되니 부분 부분에서의 또렷한 서사 탓으로 이해가 어려울리 없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긋나는 지점들이 차곡차곡 늘어만 간다. 멈춤 없이 읽어가면서도 앞으로 두툼해지는 읽어버린 분량이 부담스럽고, 점점 얄팍해지는 읽어야할 분량이 당혹스러운 건... 단 하나의 줄거리도 완성해내지 못할 듯싶은 불안감 탓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해 죽어나갔던 인물들이 과거의 한때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듯싶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고, 각자가 서로에게 나아가는 매개는 거듭되는 이야기 속에서 변질된다. 분명 아는 인물이었지만 알지 못하는 인물이게 되고, 명확한 사건 자체가 명확함을 간직하면서도 모호하게 변용된다. 이들을 엮어낼 사연과 단서가 늘 저편 어딘 가로 닿도록 손을 뻗고 있어 각자를 독립적으로 끊어내지도 못할 난처한 형국이다. 네 개의 중편이 어느 순간 전혀 별개가 되기도, 어느 지점에선 사소하지만 결코 같지 않게 이어져 있으니... 잔뜩 홀린 듯한 기분만 이어진다.

내가 본 게 뭐지...? 무엇에 대한 이야기지...? 수시로 앞의 등장인물을 확인하고, 여태 또렷해보였던 서사를 되짚는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퍼즐의 조합이 아예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쯤 되면 이런 엉터리 따위...! 책을 던져버려야 마땅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인 게 날줄씨줄로 교묘하게도 서로가 이어져 있어 엉터리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음을 인정할 밖에 없기 때문...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신세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이젠 지쳤어.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지만, 이 또한 다른 차원을 겹쳐내는 하나의 연결고리일 뿐이다. 분명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으며, 수시로 교차하며 평행을 달리는 다른 시선 또한 느껴낸다. 그렇게 누군가의 바람대로 완벽한 미스터리 한 편이 완성되어 책 속으로 삽입되고, 무한히 변주하며 지금 내 손에 들리어 있는 글의 제목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전작에서의 교묘하게 짜깁기된 상상력은 이제 작가의 기발한 트릭으로 변모하여 읽는 이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인간들 사이사이에 놓인 죽음과 욕망 그리고 윤회의 기제를 수려한 문장으로 건드려내고 있어 이에 대해 작가의 묵직한 시선을 할끔거릴 수 있다는 건 읽기에 수반되는 또 하나의 덤이다. 그래서인가 말미에 실린 해설에선 우리시대의 죽음에 대한 간단치 않은 화두를 던져내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을 소재삼은 본격문학과 미스터리에 준하는 장르문학이 절묘하게 균형 잡힌 뒤섞기의 결정(結晶)이라 하기엔 미로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 공들일 읽는 이의 두통이... 왠지 균형대의 한편을 무겁게 내려 누를 듯싶다. 그러니 혹자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였다 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생소함으로 인해 골치만 지끈거린다 투덜거릴지 모른다.

작가에 대한 여전할 기대가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글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