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씨의 UCR 방문기...! - 미국 ②

사색거리들/여행 | 2013. 3. 18. 14:40 | ㅇiㅇrrㄱi

 

지난 번 스토니브룩에서도 그랬었지만, UCR도 마찬가지로 생소함 자체였지. 다들 'UC+뭐시기'라고 학교 명칭을 부르는데... 왠지 '비콤C'란 비타민 생각도 나고, '무한도전'의 MC인 유모씨(?) 생각도 나고 그랬던 거야. 정문쯤이라고 부를만한 곳 앞에서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란 풀이를 접하고 나서야 대강 눈치 챘지. 아하... 'UC'가 대학명칭에 붙는 곳들은 University of California의 지역별 캠퍼스 쯤에 해당되겠구나...!

 

 

U.C. Riverside의 첫 인상이 왠지 생소했던 건 위 사진에서의 풍경때문이었어. 무슨 학교가 정문이 없는거야. 우리는... 정문이 있고, 중문이 그리고 후문 내지 쪽문 등등까지 대단한 존재감(?)을 갖잖아? 몇 개의 문만으로 대학 캠퍼스 전체를 감싸앉을 수 있으니 대단할밖에. 그런데 그럴듯한 외양의 문은 고사하고,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라니...!

 

 

 

한참을 걸으니 대학캠퍼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더군. U.C. Riverside는 UC 계열 중 학생 수가 제일 적은 편이기도 해. 물론, 학생 수와 상관없이 다른 UC계열 학교들처럼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야. 이 대학은 1970년에 남 캘리포니아의 농업 문제를 다루는 연구소가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1954년 문학계와 과학계 학부가 창설된 후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의 한 학교로서 현재 약 9,000명의 학생과 50여 개의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종합 대학으로 성장하고 있다지?

 

 

드디어 U.C. Riverside의 Thomas Rivera Library를 만나게 됐어. U.C. Riverside의 도서관은 Thomas Rivera Library, Raymond L. Orbach Science Library, Music Library, Media Library 의 4개 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어, 200만여 권의 단행본, 28,000여 건의 인쇄 및 전자저널, 170만 건의 마이크로폼, 30만 건에 달하는 정부기관 자료 및, 165,000건의 eBook 자료 등을 소장하고 있고... 주 도서관격인 Thomas Rivera Library는 4대 총장이었던 Thomas Rivera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는군...?

 

 

Thomas Rivera Library를 탐방하면서 상당히 생소했던 부분은, 우리의 경우 불교학 자료를 우리만의 특징적인 장서구성의 하나로 내세우는 것처럼 8만 여권에 달하는 과학 소설 및 판타지 소설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었어. 해당 분야에 대해서만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소장 중이라는데, 학문적 또는 보존 차원에서 가치 있는 자료들을 도서관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우는 여타 대학도서관의 경향에 비추어 보면 의외라고 할 수 있지. 여기에 수 만 종에 달하는 동호회지(fanzines), 만화책(comic books) 등도 이 도서관의 특색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인데, 실제 상당량의 서가가 관련 책자들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

 

 

어찌 보면 국내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었지만, UC 계열의 대학 도서관이 지역 사회에 대한 문화적 공헌을 위해 외부인에게 전면 개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익한 평을 얻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

 

 

자료의 대출까지 전면 허용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주 당국의 세금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 만큼 허울만이 아닌 실제적으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장서 구성을 보인다는 점은 국내의 경우와 사뭇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었어. 일례로 국내의 국공립 대학 도서관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도서관 출입을 허용하고 있는지 몰라도, 정작 도서관의 핵심자원이라 할 수 있는 장서 구성의 과정에는 외부인들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야.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Thomas Rivera Library의 이러한 장서 구성은 외부인의 도서관 이용을 유발시켜서, 기부를 통한 대출허용제도를 활성화하는데 한 몫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전 세계 사서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 책 놓을 공간은 넉넉하세요?

어딜 가나 사서들의 첫 번째 질문은 '공간부족'의 현실과 그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 UC 계열의 대학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U.C. Riversade는 SRLF(Southern Regional Library Facility)를 부족한 자료 수장 공간에 대한 대책으로 활용하고 있더라고.

 

그럼 UC계열의 대학도서관들이 공간부족에 대처하는 자세(?)를 자세히 알아볼까? 바로 지역도서관시설(Regional Library Facilities), 약어로 RLF라고 불리우는 시설이 그들의 해답이었지. 일종의 공동보존서고라고 이해하면 돼. RLF는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열 개의 UC 캠퍼스 도서관과 캘리포니아 주립도서관(California State Library)의 자료를 위한 공유시설로, 북부 캘리포니아지역의 리치몬드시(Richmond)에 소재하고 있는 NRLF(Northern Regional Library Facility)와 남부 캘리포니아지역의 UCLA 캠퍼스내에 소재한 SRLF(Southern Regional Library Facility)의 두 개 시설로 구성되어 있어.

 

NRLF는 UC의 버클리, 샌터크루즈, 샌프란시스코 및 데이비스 캠퍼스, 그리고 2004년부터 새로 생긴 머세드 캠퍼스 도서관까지 지원하고 있고, SRLF는 UC의 로스앤젤레스, 샌디에고, 어바인, 샌타바바라 그리고 이번에 방문하게 된 리버사이드(Riverside) 캠퍼스를 지원하고 있는거야. SRLF와 NRLF의 두 보존서고에 소장된 장서는 모든 캠퍼스의 운영과 서비스에 완전히 통합되어 광범히 사용되고 있고, UC시스템 전체의 공유 정보자원으로 관리 및 운영되고 있다는군. 이용자들이 안보는 자료들을 폐기차원(?)에서 모아놓는게 아니라 지속적인 이용을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  

 

SRLF는 1987년에 1단계 건축이 완료되었고, 1995년에 2단계 건축 완료시, 서가구성은 적어도 6백만 권에 해당하는 수용능력을 제공하도록 마련되었다네...? 건물은 서가 공간 뿐 아니라 직원 및 열람자 공간을 가지도록 설계되었고, 추가의 공간이 필요하게 될 때 새로운 서가를 구축할 수 있는 융통성까지 부릴 수 있다는군. 다시 말하지만, 이 공동보존서고에 보관 중인 자료들은 버려지는게 절때루! 아닌거야. 공동보존서고의 모든 자료를 통합 검색해낼 수 있도록 UC의 열 개 캠퍼스 도서관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종합목록인 MELVYL에 포함시키고 있고, 소장정보를 확인하거나, 열람 신청하거나, 문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관련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는거지.  

 

전 세계 사서들이 다음으로 궁금해하는 것! 근래의 디지털화 흐름엔 어찌 대응하시나요?

이 질문을 던지고나서 뭔가 복잡다양한(?) 답을 들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간단하더군. CDL(California Digital Library)로 끝...! CDL은 U.C. Riverside를 비롯한  UC계열 대학 도서관이 학술지원, 장서와 서비스 구축, 기술혁신과 협력촉진을 위하여 1997년에 11번째  UC 도서관의 일원으로 설립된 전자도서관이야. 1997년 Califomia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Emeritus Richard Atkinson에 의해 설립 되었고, 자원과 소장 자료를  좀 더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계열 대학 도서관을 지원하고 도서관의 장서와 서비스 개발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수 있도록 강력한 리더십을 기관 자체에 부여하기 위해 총장실 산하 직속 기관으로 설정되어 있다는군.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y)이라고 하니 전자책이나 전자저널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거야. 이 CDL는 별도의 독립부서답게 단순히 전자적 매체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었어. CDL의 업무적 활동을 살펴볼까? 

 

① UC계열 도서관이 전자 자료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접근 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장서의 통합적인 디지털화 작업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② UC계열 도서관 뿐 아니라 타 대학 도서관이 자관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각종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개발을 위해 도서관 간 상호 협력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④ 대학과 대학 도서관이 서비스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관심을 반영하는 학술정보 시장에 대한 연구 작업에 투자하고,

⑤ 캘리포니아 주 정부 관련 데이터와 통계를 one-stop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으며,

⑥ 다양한 형태의 전자 자료에 대한 장기간의 보존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으며,

디지털화된 학술정보 자료들을 일반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고,

⑧ UC계열 도서관 뿐 아니라 산하 각 부서들이 생산하는 디지털 형태의 자료들에 대한 저장소를 제공하여 이들 정보의 재가공 및 출판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⑨ 각 도서관을 대표하여 각종 정기간행물, 논문, 데이터베이스 등에 대한 라이선스를 구매해, 산하 대학들의 자료 구매비용을 연간 수백 만 달러씩 절약케 하고,

⑩ 캘리포니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각종 도서관, 연구기관 등의 자료를 통합적으로 검색하고 접근할 수 있는 통합 목록을 생산 및 제공하고 있으며,

⑪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생산되는 비도서 자료(필사본, 사진, 그림 등의 각종 예술품)에 대한 유일한 접근점을 제공하고... 등등등...! 

 

우리 중앙도서관도 그렇지만 국내 대학도서관의 경우 각종 디지털화 작업은 각 대학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자료 이용을 위한 접근점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단기간의 사업으로 끝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자료 가공 및 보존 대책이 전무한 게 현실이지. 이에 대한 보완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국가 통합적인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대부분 석박사 학위논문, 학술지 등으로 그 작업 대상이 제한되어 있고, 작업 과정 또한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않는다는 단점을 드러내고 있지.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미국 전체 도서관을 관할하고 있진 않으나 CDL을 통해 도서관의 주요 업무 방향을 통합하고, 통일성 있으며,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부러운 대목 중 하나였어. 우리의 경우에도 정부의 프로젝트성 사업 수주를 통한 불교 관련 아카이빙 구축 작업을 넘어서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불교종립대학의 일원인 만큼 최소한 불교관련 자료만을 대상으로라도 해서 전국적인 관련 장서수집, 자료변환 및 보존, 디지털화 등에 대한 구심점을 마련하고, 장기적인 계획 하에 관련 업무가 진행될 수 있다면 불교종립대학, 불교종립대학 도서관으로서의 내실을 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장기적인 안목의 필요...!!!

아무튼...  RLF라고 하는 공동보존서고를 통한 공간부족문제 타개, CDL을 통한 자원의 디지털화와 접근점 제공 등이 UCR을 방문과정에서 인상깊게 접한 대목이었어.

 

사실... 이런 구체적인 해법(?)보다 더 감탄했던 건... 이미 1980년대 후반에 공동보존서고에 대한 계획마련 수준을 넘어서 실제 공동보존서고를 마련했다는 점이지. 국내 대학도서관에서는 이제야 공동보존서고에 대한 절실함 속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거든... 우리보다 무려 25년여를 앞서 있다는 생각...! 

 

CDL도 마찬가지였어. 전자도서관이란 가상의 개념을 넘어서 실제 존재하는 또 하나의 부서로 만들고, 모든 관련 서비스를 통합관리하고 있다니까... 왠지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IT기술은 우리가 한참 앞서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당면과제에 IT기술을 접목시키고, 우리의 삶에 맞춰 IT기술의 방향을 잡아가는 쪽은 한참 뒤쳐져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

 

조바심을 내거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따라잡기 보다는 공간문제 해결이든 전산화든... 모든 일을 진행함에 있어 늘 멀리 보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UCR에서 가장 크게 배운 건... 이런 장기적인 안목의 필요가 아니었을까...?  

 

 

아무개씨의 스토니브룩 대학교 방문기...! - 미국 ①

사색거리들/여행 | 2012. 8. 27. 10:41 | ㅇiㅇrrㄱi

수니...? 순이...? 스토니...? 뭐...? 난로...?

무슨 말이냐고...? STONY BROOK UNIVERSITY 란 곳에 대한 약칭을 생전 처음 듣는 순간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던 단어들인 게지. 다들 그게 대학이라고 하는데 분명 미국에 있는 대학이라면서 수니, 스토니...? 진정 창피할 이야기이지만, 막상 알아보기 직전까지도 '순이 대학', '난로(스토브) 대학'은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싶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나중에 어느 이가 스토니브룩이라 할 때는 '브룩(BROOK)’을 '북(BOOK)'으로 알아듣곤 직업적인 경륜을 발휘하야 '아... 책(BOOK)이 많거나 상징물인 대학인가'라고 엉뚱한 결론까지 내버렸지 뭐야... ㅠ

 

 

마찬가지로 순이, 스토브 정도를 떠올리는 분들을 위하야 간단히 정리해보면... 'SUNY'는 뉴욕 주립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의 이니셜인거고, 'STONY'는 스토니브룩이란 동네를 의미하는 거야. 이 스토니브룩에 있는 캠퍼스가 버펄로캠퍼스, 올버니캠퍼스, 빙엄턴캠퍼스와 함께 뉴욕 주립대학교를 구성하는 거지. 스토니브룩캠퍼스의 모체는 1957년 롱아일랜드에 설립된 주립 유니버시티칼리지(State University College)인데, 1962년 어느 사업가가 캠퍼스 부지를 기증해 스토니브룩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군. 그러면서 학교 명칭을 지금처럼 변경했는데... 요즘은 간단히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라고 부른데.

 

아차, 스토니브룩이란 명칭이 더없이 친근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근래 국내의 여러 신문기사에서 접했을 걸...? 올해 송도에 한국캠퍼스, 즉 한국뉴욕주립대를 개교했거든...!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전경

 

각설하고, 이번에 학교에서 직원 해외 행정연수라는 좋은 기회를 얻어서 스토니브룩 대학을 방문할 수 있게 되어 두근두근한 마음(왜냐고...? 영어, 영어, 영어...ㅠ)에 가게 됐지. 이제부터 할 얘기는 일종의 방문기록쯤이라 보면 돼. 고리타분한 이야긴 집어 치울 테니 그냥 가볍게 읽어주면 고맙겠어.

 

사실, 비즈니스 차원의 공식적인 방문도 아니었고, 자유일정으로 캠퍼스나 둘러보고 관심 있는 몇 개 부서만 방문해볼까 싶었던 바람이 컸었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캠퍼스 방문 이전 일정 중에 E-Mail이 한통 도착해 있기에 확인해보니... 귀빈방문도 아닌데 무슨 처장님, 부총장님과의 오찬, 각 부서별 책임자와의 공식미팅... 심지어 기차역까지 마중과 배웅 등등이 시간대별로 빠듯하게 채워져 있는 일정표가 날아와 있네. 에구, 에구...ㅠ

 

스미스 요원의 대변신...!

스미스 요원...?

 

아무튼, 맨해튼의 펜실베니아 역에서 스토니브룩행 기차표를 끊을 때부터 어찌나 긴장되는지 장장 두어 시간의 지루한 기차여행(?) 와중 눈도 붙이지 못했다니까. 드디어 스토니브룩역. 일정표대로라면 누군가 마중을 나와 있어야 하는데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처럼 짙은 선글라스를 낀 노인네(?) 한분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네...? 연세가 너무 많아 보여 저 사람은 아니겠지 하고 지나쳐버렸더니.. 울리는 일행의 전화벨소리...! 지나쳤던 사람이 스토니브룩 대학 관계자였던 거야. 손님맞이만 전문적으로 하는 운전기사인가보다 싶어 대강 인사드리고 준비된 차에 올라탔지. 반전이었던 거야. 바로 그 순간이...!

 

선글라스 벗고 계신 William Arens 국제처장님

 

안내하는 대로 세미나실에 들어가 보니, 우리를 태우고 왔던 운전기사분이 갑자기 공식적으로 인사말을 꺼내는데... 이런... 직함을 보니 국제처장이네. 처장...? 처장...! 감이 안 오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하면 여기나 거기나 비슷한 직제거든. 여기서도 처장은 몇 되지 않는 최고위직(?)인데 그런 분을 앞에 두고 운전기사 아닌가? 했던 거야. 크게 결례한 거야 없었지만, 한국식 특유(?)의 오버액션으로 인사하지 않은 게 왠지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William Arens 국제처장님이 시종일관 위트 넘치는 진행을 하셔서 딱딱했던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았지.

 

너무나 반가웠던 한글...ㅠ

 

첫 30분은 너무나 반가웠던 한글(!) 파워포인트 자료를 통해 스토니브룩 대학의 개요를 들을 수 있었어. 무엇보다 한국의 송도를 포함해 세계 각 지역에 이미 개교했거나 준비 중인 캠퍼스 소개와 함께, 교육의 글로벌화, 즉 교육을 매개로한 사업영역 확장에 대한 강조가 인상적이었지. 교육이란 기치에 근간을 두긴 하지만, 여타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영리적인 영역확장과 근간 마련에도 매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 아마, 저 멀리 한국에 있는 D대학의 아무개가 잠시 들른다는데도 이렇게 철저하게 응대하는 건 잠재적 고객확보작업의 일환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 (D대학 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으니...^^)

 

공식적인 취업률 통계가 필요 없다고...???

CAREER CENTER

 

이렇게 해서 30분의 첫 미팅이 끝나고 급히 향한 곳은 CAREER CENTER, 우리로 치면 취업지원센터에 해당하는 곳이지.

 

부러 초저속 영어를 구사해주신 Marianna Savoca 팀장님...!

 

비디오 저배속 재생처럼 느릿느릿 말씀해주셔서 우리의 영어 귀(?)를 활짝 열어주었던 Marianna Savoca 팀장님의 배려가 우선 인상적이었음...^^ 취업관련 책자로 구성된 문고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외부로의 반출은 안 되고 안에서만 볼 수 있지. 특이한건 말이지... 국내의 취업 자료실이었다면 어학서, 수험서 등으로 가득했을 텐데, 주로 경력개발이나 직업소개 등과 같은 내용의 개론서들 위주였다는 점이었어.

 

취업자료 코너

 

아무개씨가 가장 부러웠던 건.. 미국의 경우 취업률 조사업무가 거의 비중이 없다는 사실이었어. 우린 거의 난리잖아. 취업률 조사의 한계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무리한 방법으로 조사케 해서 대학을 줄 세우는 국내 현실이 다소 비효율적으로 비춰지기도 했지.

 

CAREER CENTER내 PC시설

 

또 하나 부러웠던 건... 수시로 열리는 기업설명회의 진행 방식이었어. 국내의 경우엔 기업체 인사 담당자를 만나서 비용 대준다며 섭외를 해야 할 판인데, 미국의 경우... 기업체 쪽에서 취업박람회 내지 기업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일정 비용을 기부하고 진행한다네...? 대학이 잘 키워준 인재들 모셔 가는데 그 비용은 우리가 내겠다... 뭐 이런 식인거지.

 

인터뷰 룸

 

미국의 취업과정에서도 인터뷰 비중이 꽤 높은지, 곳곳에 인터뷰 룸이 마련되어 있었고, 은밀한(?) 상담실도 여럿이었고...!

 

역시 대한민국은 IT강국...!

Division of INFORMATION TECHNOLOGY

 

그 다음 방문한 부서가 Division of INFORMATION TECHNOLOGY, 우리로 치면 정보관리실에 해당하는 곳이지. 연세 지긋하신 Fran Dykstra 팀장님 설명 하에 스토니브룩 대학의 정보시스템 여건에 대해 이것저것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어.

 

Fran Dykstra 팀장님과의 미팅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그다지 감흥이 크지 않았던 건, 대한민국하면 IT 강국으로 통하잖아. 우리에 비해 다소 뒤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 많았지. 스토니브룩 대학은 아니지만 직전에 들렸던 어느 주립대학에선 인터넷 증명서 발급시스템이 도입된 게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교내 모든 전산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방식은 다소 시사 하는 바가 있었어. 예를 들어, 근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도서관쪽의 전산시스템 관리를 위해, 사서직 전산인력 외에도 두 명 정도의 전문 인력을 파견 근무시키는 방식은... 관련 부서간 업무영역 확보 문제를 넘어선 괜찮은 절충안이구나 싶었거든.

 

MAC...!!!

 

스토니브룩에선 보지 못했지만, 여러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맥 컴퓨터 정도를 제외하곤 진정 부러운 거 하나도 없었음...^^

 

드디어 대망의 도서관...!

도서관 조형물

 

Andrew White 관장님과 함께...!

 

멀쑥한 정장차림의 Andrew White씨는 Dean급, 우리로 치면 도서관장님인거지. 짧은 시간 속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도서관 사서직의 업무 내용에 대한 설명이었어. 대출반납, 상호대차, 안내 등 도서관의 일상적인 업무는 Student Staff 이라고 하는 별도의 인력풀에서 대부분 해결하는 거야. 근로장학생 뭐 이런 직급인거지. 그럼 정규직 사서들은 무얼 하냐... Andrew White 관장님 표현을 빌리자면, 제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게 한다는군. 대부분의 사서들은 '교원'이나 '대학원생' 즉 대학의 교육자산 확보에 있어 핵심이 되는 연구 인력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셈인거지. 요즘 국내에도 확산추세에 있는 주제서비스인 셈인데, 사서라고 하면 일단 자료를 찾거나 정보를 가공하는 작업엔 도사들이니, 이들의 전문성이 대학 연구 활동의 토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업무적으로 담보하는 셈인거야. 사실, 모르고 있었던 내용도 아니고... 인력이나 관련예산 지원, 사서직에 대한 재교육, 인사제도상의 보완 등 산적한 문제로 현실화되지 못하는 한계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화되고 있는 곳의 이야기를 들으니 많이 부럽더라구.

 

또 하나 충격(?)이었던 건, 둔화되고 있는 책 읽기에 대한 답변이었어. 모바일 기기가 확산되면서부터 책 읽는 풍경을 접하기 힘든 시기잖아. 2012년이 국민독서의 해니 어쩌니 해서 여러 가지 행사 중이지만 별다른 반향도 없는 편이고. 국내 도서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편이거든. 그런데 이 멋쟁이 관장님은 말이지. 아주 명쾌하게 답을 하시더군. 그건 '하나의 트렌드'인데 어쩌겠냐는 거야. 도서관이 나서서 그런 보편적 흐름 자체를 거스르긴 힘들다는 거지. 억지스럽게 흐름을 막기 보다는, 도서관의 전산환경을 개선하고, E-Book이나 전자저널, WebDB 등의 디지털자료 구매를 확대하는 한편으로 관련 교육을 수시로 진행한다거나 해서 근래의 흐름에 편승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이게 매장이냐 백화점이냐...?

스토니브룩의 기념품들

 

시간에 쫓겨서 급히 미팅을 마무리하곤 스토니브룩의 기념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어. 전경 사진을 담진 못했는데... 미국 대학의 대부분은 기념품 매장이 무슨 백화점 같더구먼.

 

스탠포드 대학의 기념품 매장 (1)

 

스탠포드 대학의 기념품 매장 (2)

 

스탠포드 대학의 기념품 매장 (3)

 

스탠포드 대학의 기념품 매장 (4)

 

위 사진은 스탠포드 대학의 기념품 매장인데 책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종의 기념품들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지. 유명 메이저 업체와의 계약을 통한 제품의 품질 향상도 사고 싶은 기념품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중요해 보였지만, 동문들로 하여금 기념품을 사도록 유도하려면 그 무엇보다 소속감 고취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됐어.

 

Dexter Bailey 부총장님과의 오찬

 

다음으론 즐거운 식사시간... 여기에 짠하고 나타나신 분이 Dexter Bailey 부총장님이었지. 좀 우스운 일이 하나 있었는데... 학생이나 직원들의 식사 자리에 부총장급 인사가 나타났다고 하면 어떨까...? 상상해봐. 여기서는 당연히 예의차원에서 다들 기립하지 않겠어? 아무개씨를 포함해 일행 모두가 후다닥 기립했더니... 동석했던 스토니브룩의 국제처장님 그리고 도서관장님 등이 너무나 멋쩍어하는 거야. 우리도 일어나야 하는 건가? 순간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지...^^ 엉거주춤 일어나다가 다시 앉더라고.

 

아무튼... 이 부총장님이란 분은 발전기금 쪽을 담당하고 계셨는데,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 상황이더라고. 일반 기업체나 동문들을 대상으로 학교 재원을 마련하는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는 거지.

 

'Personalized Legacy Brick' 홍보화면

 

값 비쌀(?) Brick으로 구성된 인도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UCR(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의 재미난 기금마련 사례를 보면... 위에 보이는 보도블록에 이름을 넣어주는 대가로 동문들에게 돈을 받고 만드는 거야. 그걸로 인도를 치장하는 거지. 결국, 이런 재원확보를 위한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의 비중이 앞으론 더욱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었어. 기발하지...?

 

도서관 여기저기...

도서관 서가 측면의 안내문

 

펜실베니아역 행 기차시간을 앞두고 잠깐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급히 도서관 여기저기를 뒤져봤어. 이건 의외다 싶었는데 보통 우린 도서관에서 안내할 때, 서가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들 안내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여긴 북트럭에 놓고 가라고 권장하더군. 책의 잘못된 배열을 방지하기 위한 사소한 방편인 것 같았는데... 나름 괜찮은 접근 같았어.

 

도서관 개관시간이 재미나더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열고, 금요일은 단축운영을 하더라고... 여기에도 불금이 있나? 싶었지...ㅋㅋㅋ 토요일은 더 단축이고. 획일적으로 평일과 주말 이렇게 나누기보다는 이용자가 많이 몰리는 요일과 아닌 요일로 구분해서 운용하는 방법인데... 나름 괜찮은 방식이었어.

 

각종 벌금 안내문

 

 이건 연체나 분실 관련된 안내문이었어. 대출유형을 세분화하고 있는 게 특이했어. 예를 들어 우린 지정도서를 보존서고에서 꺼내줄 때 그냥 꺼내주잖아. 어차피 대출이 안 되는 자료이니 도서관 안에서 하루 종일 봐도 괜찮고, 그런데 이걸 시간제한을 걸고 정식 대출 처리하는 거야. 그리고 분 단위로 연체료를 적용하는 거지. 연체료 상한액이 책 당 약 9만 원...!!! 이외에도 1일 대출, 2일 대출, 7일 대출 등 다양한 대출유형이 있었어. 음... 스토니브룩 대학의 도서관도 그렇고 한국의 여타 대학도서관도 마찬가지지만, 연체료는 무조건 납부가 의무지. 우리처럼 날짜 지난다고 감해지거나 소멸되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말씀...!

 

자료실 입구

 

주 자료실의 입구인데 좀 이상하지...? 다른 곳도 비슷하더구먼... 국내 대학도서관에서 수억 원을 들여서 갖춰 놓는 별도의 게이트 장비가 없더라고. 오로지 분실방지장치만 설치해 놓는 식이지. 외부인들도 자료실 접근이 가능한 거야. 이거 너무 개방적인 거 아냐? 싶었는데 엉뚱한 곳에 보완장치가 있었어. 요즘은 자료 찾으려면 도서관 홈페이지 접속이 기본이잖아. 당연히 PC를 사용해야하고. 그런데... 오로지 학생이나 교직원에게 부여되는 별도 계정을 입력해야 PC 사용이 가능한 식인거지. D대학에서도 도입하면 어쩌려나? 자료 검색해달라는 요청에 데스크쪽이 북새통이겠지...?

 

자료실 내부

 

자료실내 열람테이블

 

실내 전경인데... 방학 중이긴 했지만... 정말 도서관답게 조용한 분위기가 무지무지 부러웠지. 우리도 도서관 안에선 좀 조용해줬음 하는 바람...! 제발...! 

 

위 두 장의 자료실 전경과 D대학 중앙도서관을 볼 때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이 무얼까? 난 공간 활용이라고 봤어. 상대적인 관점이긴 하지만 미국의 대학도서관은 정말 큰 편이었거든. 건물도 크고 널찍널찍해서 공간이 그리 부족하진 않을 듯 보였어. 그런데 말이지... 대부분의 빈 공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더라고. 군데군데 테이블, 소파, PC, 전시대 등을 설치해서 '여긴 도! 서! 관! 이거등?' 이란 분위기를 끌어내는 식이었어.

 

우리로 치면 어떤 공간을 그리 활용할 수 있을까? 도서관 정문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도서관 로비, 대출반납실과 경비실 사이의 로비, 각 층의 검색PC와 중앙 계단 사이 공간, 4층 열람실 앞의 로비 등등이 있겠지. 그런 곳에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집기들을 적당히 배치하면 지금보다 좀 더 정숙한 분위기가 유지되지 않을까 싶었어. 그러니까 이런 거지... 도서관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누군가들이 책 읽는 중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웬만한 철면피(?) 아니고선 알아서 입을 다물지 않을까...?

 

  마무리...

 

무료셔틀버스

 

기차시간이 다 돼서, 어쩔 수 없이 스토니브룩역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탑승... 짧은 방문이긴 했고... 어찌 보면 방문 직전에 이미 접해 들었던 내용들을 다시 반복 청취한 구석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무척 유익한 시간이었어. 인력이나 예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회문화적 풍토 차이로 선진적인 사례라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할거야. 하지만 도서관을 포함해 여러 부서의 사소해 보일 방침들 하나하나를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물론... 그럴듯해 보이는 정책이나 제도 하나하나를 '무작정' 따라하는 건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 예를 들어 학생들의 책 읽기 저하가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라는 부분에 동의하고, 디지털 자료 확충이란 걸 그에 대한 반대급부적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야! 우리도 내일부터 해보자' 이런 식은 아니라는 얘기야.

 

제일 필요한건 말이지... 오랜 시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고집스러움과 우직함이 아닐까? 다른 말로, 일종의 발전 계획 내지 개선 계획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거지. 그 안에 어떤 외부환경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업무 기조를 포함시켜야 할 테고, 그 기조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사소한 점검 및 개선 작업들이 뒤따라야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지막으로... 요건 부총장님과의 만찬 때 먹었던 식사...! 한국의 대학에서도 외국 손님들이 찾아오면 킹사이즈 접시에 된장찌게랑 밥, 김치 등등을 뒤섞어서 대접하면 어떨까? 다들 기겁하려나...ㅋㅋㅋ

 

자... 그럼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가 끝...! 다음 번엔 좀더 가벼운 이야길 들려줄테니 기대하시라...!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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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거리의 풍경 '메인 The Main'

사색거리들/책 | 2011. 4. 28. 09:00 | ㅇiㅇrrㄱi

심호흡을 해 본다. 그 사이로 사람의 냄새가 맡아질 때가 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누군가의 체취가 그렇다. 습기가 눅진하게 베인 땀 냄새일 때도 있고, 여운 가득한 영화 말미처럼 질기게 따라오는 향수 냄새일 때도 있다. 둘째 아이에게 장난스럽게 발라주는 베이비 로션의 친숙한 냄새도 종종이거니와 대중목욕탕에서 가끔 바르는 그 흔한 스킨 냄새가 섞여들기도 한다. 아마, 이 남자에게도 그만의 냄새가 있으려니. 메인이란 거리의 수호자 클로드 라프왕트 경위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려나? 

32년간 거리의 순찰을 도는 내내 걸치지 않았을까 싶은 볼품없는 외투의 퀴퀴한 찌든 내? 즐겨 마시는 커피의 쓴 내 아니면 늙고 지친 몸뚱이에서 새어나옴직한 생명력의 비릿한 내음? 아니. 그건 코끝이 아닌 머릿속에서나 감지되는 외로움의 냄새다. 누군가 어떠한 것이냐 묻는다면 이 남자와 주변을 훑고 있는 텍스트의 냄새가 그런 것이라 얼버무릴지도 모를 일이다. 라프왕트에게도, 그가 걷고 있는 메인의 거리나 언뜻 지나치는 모든 이들에게도 외로움의 악취가 물큰 묻어난다 할밖에. 

외로움의 냄새. 그건, 메인이란 거리가 담고 있는 패배의 정서 탓인지 모른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통과 혼잡스러운 길목, 누구의 얼굴에나 비치는 밤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 등은 수호자의 출현을 고대하며 퇴폐의 끝을 향하던 어느 영화 속 도시와 닮아있다. 거리를 채운 이들 또한 노인들이거나 패배자 그리고 신세를 망친 사람들뿐이라니. 그 전부에겐, 빛을 잃기 전 형광등이 점멸(漸滅)하며 자아내는 위태로움이 덧씌워져 있는 듯하다. 
  

메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트리베니언 (비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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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은 몬트리올의 생 로랑 거리와 주변 뒷골목이 뭉뚱그려진 지명이다. 프랑스계와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에 위치하며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자들의 물결이 가장 먼저 닿는 곳. 낯선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공한 삶에 대한 희망이 뒤엉킨 곳. 노숙자, 좀도둑, 포주나 매춘부, 폭력배 등의 삭막한 아우성이 일상 속으로 난무하는 곳. 그들의 삶이 끝장나기 직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거리다. 어느 날, 칼에 찔려 살해된 이탈리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라프왕트와 신참내기 형사는 단서를 찾기 위해 거리 곳곳을 헤집기 시작한다. 

트리베니언의 장편소설 <메인>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완벽한 느와르니 최고의 미스터리물이니 하는 식의 추천사에 기대한 바 있다면 그렇다. 속도감이나 반전에 매진하는 기존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작품들에 익숙해져있다면 혼란의 정도는 더 클 테다. 행여 어린 날 열광했던 더티 해리의 강렬한 인상을 겹쳐볼 수도 있겠지만, 몇 번의 단출한 몸싸움을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정극(靜劇)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은커녕 범인 찾기의 긴박감도, 역동적인 인물유형도 없는 탓이다. 살인사건이나 범인의 실체는 서사의 중심에 있기보다 장치노릇만 일관한다. 메인의 거리 곳곳을 비춰내려는 보조재일 뿐이다. 

라프왕트와 함께 메인의 거리 여기저기를 훑는 작가의 시선은 꽤 무덤덤하다. 다만, 무덤덤이라 함은 굴곡 없이 일관되다는 의미이지 편향자체를 갖지 않은 무심함과는 다르다. 시선은 별다른 일탈 없이 메인의 뒷골목이나 사람들의 핍진한 인상 자체에만 줄곧 맞춰져 있다. 사건해결이라는 명목아래, 벽에 다다르면 문을 열고, 문이 없으면 다른 길로 돌아가며 거리의 각자들이 갖고 있을 삶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그것도 서늘하게, 어둡게, 골똘히. 한결같이. 

그리고 라프왕트의 삶이 있다. 동맥 류머티즘으로 인해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남자. 아내의 죽음 이래 신에 대한 격심한 증오로 모든 감정을 태워버렸으며 공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딸들과의 일상을 즐기는 남자. 에밀 졸라 전집을 되풀이해서 읽거나 파시즘적 정의 구현에 매진하는 남자. 하지만, 그가 부리는 강권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보이는 자신의 것, 외로움 따위를 보듬기 위한 나름의 격한 저항이다. 결국 그도 꿈을 잃은 거리 메인과... 거리의 사람들과 닮아있는 약자일 뿐인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서 어쩌겠다는 건가? 바보짓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아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편이 좋다.

수습형사 거트먼과 매춘부 마리 루이즈가 그의 삶에 끼어들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온기가 스미는 듯 보인다.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으며 상처 따위는 드러내지 않겠다지만 그건 일종의 반어다. 시간이나 열정, 사람,.. 그 무엇에 의해서든 치유에의 바람은 숨을 쉬듯 찾아오기 마련이려니. 그러고 싶다는 바람에 대한 의구심일 뿐이다. 다만, 사람을 잃어 생긴 공동(空洞)을 다시 사람으로 채운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니 라프왕트에게 찾아갈 죽음이 더디고 더디게 발걸음을 떼길... 바라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별 생각이 없다. 불편하다. 그건... 읽는 내내 들여다봤던 메인의 거리 곳곳이 철저하게 주변부의 삶으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크게 상처입어 패배의 거리로 내쫓긴 각자들의 사연은 읽는 이를 힘들게 한다. 거리너머라도 둘러보고 싶지만 눈 돌릴 곳이 없다. 선과 악, 정의 등에 대한 선문답에 솔깃하다가도 불현듯 제 자리, 꿈을 잃은 자들의, 꿈을 잃은 거리 한복판에 던져진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심호흡을 해 보자. 여러 체취가 코끝으로 스밀 테다. 혹, 라프왕트를 비롯한 메인의 거리에서 보았던 외로움 비슷한 기미에 맞닥뜨리면 돌아보자. 상대를 그리고 내 자신을! 

알아차린다는 것. 그건 이미 내가 외롭거나 외로웠거나... 꿈을 잃었거나 그 중 하나일 테니.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살육의 추억 '동물들의 생존 게임 Im Fadenkreuz des Schützenfischs. Die raffiniertesten Morde im Tierreich'

사색거리들/책 | 2011. 3. 29. 09:00 | ㅇiㅇrrㄱi

  선뜻한 밤기운에 얼굴의 남은 온기마저 휘발되는 자정 무렵,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치곤 한다. 음식물 분리수거라는 옹색한 핑계 아래 서둘러 채비하고 나서는 짧은 밤 마실. 고단한 하루를 매듭짓기 위한 의식마냥 매일 되풀이되지만 실상은 담배 한 개비의 분량만큼 주어지는 매캐할 여유시간일 뿐이다. 라이터와 담배 등 잊은 준비물이 없는지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가끔은 매의 눈길처럼 뒤꼭지에 꽂혀드는 불편한 시선도 느껴내지만 고집불통으로 집을 나선다. 그런데 정해진 나의 동선 언저리에서 숨죽여 배회 중인 불청객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사방으로 뒤섞인 음식물 냄새에 이끌려 왔다 인기척에 놀라 얼음처럼 굳어 버린 고양이 한 마리. 까닭 없이 미운 고양이 한 마리. 집을 나서며 받아낸 눈길에 몇 배 더한 위협의 신호까지 보태 눈싸움을 벌여보지만 결론은 없다. 어차피, 모종의 승부를 가려보기엔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 턱없이 짧으니까.

  그러고 보면, 자연과 멀찍이 거리를 둔 도시인의 삶을 살면서도 종종 동물들과 같은 호흡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이 이성의 기운을 빌어 자연에 기생할 뿐이라는 미약한 자존감을 극복하는 와중, 동물들은 오히려 인간의 삶에 기생하거나 자연에 부속하는 미물 따위로 평가절하 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간만의 시선이 그러한들, 그들은 도시 친화적인 존재로든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피조물로든 나름대로의 삶을 영민히도 잘 살아내는 편이다. 가끔 공동세대원이라는 주인의식에 도취해, 감히 잠자리를 공유하겠다며 베개 근처를 서성이다 생을 마감하는 집 거미의 안타까운 삶 따위도 있기야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위치에서 현명한 삶의 자세를 모색하는 것이다. 

동물들의 생존 게임
국내도서
저자 : 마르쿠스 베네만(Markus Bennemann) / 유영미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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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쿠스 베네만의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다양한 동물들이 보이는 현명한 삶의 목격담이다. 또는 살육을 소재삼은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s) 여러 편과 같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 선악의 가치판단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살육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들의 삶에서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며 냉철하고 계산된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죽이기는 본능에 의한 이끌림이기보다 또렷한 의도를 갖는 살육의 추억에 가깝다. 누군가가 악(惡)할뿐인 의도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살인의 추억>이 그렇듯 말이다.

  본문은 '기획력이 생존력이다', '호모파베르가 살아남는다', '가장 나약한 것은 욕망' 등으로 명명된 총 14항목의 생존전략 아래 각기 3개씩의 세부 전술이 딸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역을 맡아 여러 번 등장하는 청어나 군대개미 등을 제외하자면 펩시스 말벌, 타란툴라거미, 혹등고래, 침팬지 심지어 간충과 같은 기생충 등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을 총망라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살육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무대 위에서 살육자나 피살육자로서의 수행하는 역할엔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가득이다.

동물... 참혹하지만 유쾌한(?) 그들만의 생존전략...!
  허기로 인해 동면 중 깨어난 아시아흑곰이 인도엘크사슴떼를 만나게 되면 몸을 공처럼 말고 눈 덮인 언덕을 구르기 시작한다. 내려갈수록 더 커다란 눈덩어리로 변하는 곰은 장난감처럼 눈공에서 튀어나와 갑작스러운 눈사태에 어리둥절해하던 사슴 떼를 덮친다. 사막의 독사 사막데스애더는 모래 위로 꼬리만 삐죽 내어놓아 허둥거리는 벌레 흉내를 내곤 이에 이끌린 파란혀도마뱀을 습격한다. 해오라기는 인간이 버린 빵 쪼가리를 연못에 던져 여직 야생에 적응치 못한 관상용 잉어를 사냥하고, 침팬지 무리는 콜로부스 원숭이를 잡아먹기 위해 도주로까지 계산한 몰이식 추격사냥에 나선다. 독 생산능력이 없는 뱀 유혈목이는 부파디에놀리데라는 독성물질을 피부에 갖고 있는 아즈마두꺼비를 먹어 독을 갖춰낸다.

  작가인 마르쿠스 베네만은 생물학 전공자답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도감 따위에서 느껴질 만한 건조한 투의 설명을 지양하는 한편 인간들의 삶까지 돌아볼 매개 점까지 제시하고 있어 시종일관 씁쓸하거나 유쾌할 공감대까지 이끌어낸다. 살육과 피살육의 관계에 놓인 동물들의 특징을 인간사회에서나 통용될 교훈으로 묶어낸 발상도 주효했지만, 더욱 돋보이는 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이다. 아마도 영문학·역사학까지 전공한자로서 갖추고 있을 나름의 식견, 5년여 간의 기자 생활, 그리고 자연에 열광하고 친화적이라는 취향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어느 한쪽의 죽음이라는 참혹함이 전제된 상황에서도, 등장하는 동물들의 생생한 심리상태가 덧붙여진 이야기는 사실의 나열에서 오는 지루함을 효과적으로 피해낸다. 동물들이 갖는 생태학적 학명이 무엇이든, 그들의 관계를 에워싼 과학적 견해가 어찌되었든 독자의 눈은 어느 순간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하나씩, 서두르지 말 것' 편을 보자. 생물학적 시선은 정육점 주인이란 학명을 가진 붉은등때까지의 시체수집행위를 향한다. 하지만 작가는 과학적인 톤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시작은 꽃들이 만발한 봄의 들판에서 한가로이 일광욕 중인 도마뱀의 시선이다. 도마뱀은 봄날 전원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그리고 따스한 햇살의 유쾌함마저 즐기는 중이다. 퍼덕이는 날개소리에 놀라지만 위장 색을 믿고 버텨본다. 다가온 새는 살진 잎벌레를 낚아채간다. 새는 오고가며 메뚜기와 귀뚜라미, 푸른머리되새 새끼와 꿀벌, 들쥐 등을 차례대로 낚아채간다. 마지막은 도마뱀 자신이다.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능력은 도마뱀의 심리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앞서 잡혀간 동물들이 가시나무의 가시에 꽂혀 있는 광경을 목격하곤 경악해하거나, 이런 정신병자와 이웃하여 사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는 때늦은 회한의 대목에선 안타까운 웃음을 참아내기 힘들다.
그렇게 높이높이 올라가면 육지거북은 무서워서 혹은 놀라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게 되어 있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크레타 섬의 가파른 산세를 공중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백수를 누리고자 했던 고향을...
  딱딱한 등껍질의 견고함을 믿고 오만을 부리던 헤르만육지거북이 검독수리에 의해 하늘 높이 올라가는 상황의 묘사다. 상대의 가장 강한 곳을 공격하라는 살육자의 전술적 가치보다 거북이의 마지막 고갯짓이 슬프다. 단 한 번도 볼 수 없을 광경을 하필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보게 되는 그 심정이라니... 그렇게 보면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단순히 살아남은 동물들의 현명한 깨달음에만 집중하진 않는다. 작가는 죽어가는 동물들의 비애까지 포함해 내는 공평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을 통해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유익함과 재미 때론 씁쓸한 슬픔까지 포함해낸 단편 소설의 느낌까지 자아내는 편이다.

  인간과 함께이든, 자연과 함께이든 동물들에겐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다. 창조주의 고뇌였든 오랜 진화의 결과였든 스스로 체화해낸 방식 속엔 현명한 깨달음의 교훈이란 게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이성이라는 무한 융통성의 잣대로 동물들의 삶과의 영원한 분리를 꾀하곤 한다. 동물을 본능이라는 테두리로 옭아매 존재 자체를 평가절하 하려는 못난 의도다. 하지만 인간 또한 동물임을 감안하면 그 둘의 분리는 어색스러울 수 있다. 같은 크기로 갖고 있을 동물스러움에 비춰 보자면, 본능이라 폄하해 마지않는 동물들의 삶의 방식은 인간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그들의 사랑과 질투,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잔혹해 보이는 약육강식의 실상에서조차 인간의 그것을 느껴낼 수 있게 된다.

  오늘 저녁, 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조금은 따뜻한 미소를 담아 눈을 마주쳐야겠다. 어쩌면 음식물 분리수거 봉투에서 쓸 만한 건더기 하나를 골라 던져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슬쩍 물어보련다. 너의 생존전략은 무엇이냐고? 지능적이고 매혹적이진 않더라도 고충 섞인 삶의 방식이 있지 않겠냐고?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련?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 끝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녀석이 앞발 하나를 번쩍 들어 감자를 먹일지 모를 일이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