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할 수 없어 생기는 슬픔 '그린마일 Green Mile'

사색거리들/책 | 2011. 3. 18. 18:00 | ㅇiㅇrrㄱi

  무료한 일상. 대부분의 것들은 반복되고 있어 새로운 시간 앞에 서 있다는 감동적인 소회를 부러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매번 울리지도 않을 전화기를 손가락 끝으로 까딱거리는 다르지 않을 자신과 늘 마주할 밖에 없다. 언젠가는 집으로 향하며 터벅거리는 발놀림이 과장스러운 의심에 휩싸인다. 언제까지 걸어갈 수 있을는지, 결국 오도 가도 못하는 처량함으로 주저앉아버리겠지...? 언제가는...? 우리가 평생 걸어가는 그 길의 끝엔 과학적 논증이나 예술로의 구현 따위로도 실체화라는 게 어려울 죽음이란 반품불가의 선물단지가 놓여 있을 테다.

  죽음을 목적지 삼은 여정 중엔 신의 은총이니 기적이니 하는 초현실적 대상에 의한 충격이 못내 반갑기까지 할 터... 스티븐 킹은 죽음에 근접해 있는 인간군상 그리고 그들이 맞닥뜨리는 비논리적인 무언가를 <그린마일>에 담아내고 있다. 

 

그린 마일
국내도서
저자 : 스티븐 킹(Stephen King) / 이희재역
출판 : 황금가지 200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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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드마운틴 교도소엔 그린 마일(Green Mile)이라 불리는 길이 있다. E동에 수감 중인 사형수를 고철 스파크라는 별칭의 전기의자로 최종 인도하는 일이 간수인 폴의 업무이니 누군가에겐 단 한번 찾아온다는 죽음이 그에겐 수십여 차례나 반복되는 일상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극악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흉악한 범죄의 대가로 수감된 사형수들이기에 그린 마일 위를 걷게 되는 죽음으로의 인도는 그저 그의 일상일 뿐 죄책감이나 자괴감에 사로잡힐 무엇은 아니었다. 그런 폴에게, 그의 E동으로, 잊지 못할 손님 여럿이 찾아온다.
죽음이란 단 한번뿐일 체험을 겪어낸 사람들은 같은 낯빛을 하고 있다.
  폴을 비롯한 간수들... 해리, 브루터스, 딘에게는 사형수들 또한 죽어서 같은 낯빛을 할 인간일 뿐이니 죄의 흉악성이야 어떻던 평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 그에 반하는 간수인 퍼시가 있다. 약함 앞에서는 한없이 폭압을 부리는 기질 탓에 사형수들을 산송장에 다름없이 취급한다.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인간적인 마음가짐만큼이나 퍼시가 보이는 마약과도 같은 비열함 또한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의 정서라 눈감아버릴 수는 없을 테니 오히려 더욱 인간적인 모양새에 가까운 형상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사형수인 들라크루아가 딸랑 씨라 이름 붙인 쥐 한마리가 출현한다. <그린마일>이 사형수감방의 뒷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 아닌 픽션으로서의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추는 지점이 바로 딸랑 씨의 출현이다. 애완동물처럼 제 주인을 알아보는 선을 넘어, 인간에 준하는 판단을 하거나 그리움을 표현하며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자체가 무척이나 소설적인 상황이어서, 킹의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는 비현실적인 기괴함이 이 조그마한 쥐 한 마리에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쥐 한 마리의 생사에 전전긍긍 하는 살인범의 모습이라니... 들라크루아의 뜬금없을 애정을 타자(他者)에 대한 존중감의 회복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역설일 수 있다.

  어린 소녀 둘을 무참히 강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또 하나의 흑인 사형수 존 커피가 있다. 그는 병균일 수도, 아니면 하느님에 반하는 고약한 존재일 수도 있는 그 무엇을 들숨과 날숨으로 정화시킨다. 일종의 치유다. 사람의 속내를 읽거나 지난 죄를 감지하고, 그 죄에 대해 단죄를 내릴 수 있는 초인간적인 능력 또한 지니고 있다. 인종차별의 굴레에 씌어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한 형벌을 감수하려는 이 흑인이야 말로 신의 형상이다. 십자가와 함께 인간의 죄를 짊어지려는 예수의 형상이고, 기적을 행하다 처형당한 성서 속 선각자들의 발현이다.

  또 한명의 사형수 와일드 빌이 있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도 결코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존재로 퍼시의 또 다른 연장선이다. 퍼시와 와일드 빌, 이 둘은 같은 존재이기에 서로를 두려워하고, 경멸하며, 증오했는지도 모를 일. 와일드 빌로부터 수모를 당한 퍼시는 들라쿠르와의 사형집행 전 그가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애착을 느끼는 딸랑 씨를 무참히 밟아 버린다.
딸랑 씨의 등뼈가 부서지면서 뚝 소리가 났고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검고 작은 눈이 눈구멍에서 불룩 솟아올랐다. 거기에서 나는 인간과 너무도 비슷한 놀라움과 고통의 표정을 보았다...
  한낮 미물의 검고 작은 눈에서도 보이는 인간의 고통이라니... 하지만 존 커피는 이 생쥐에게 다다를 그린마일의 짧은 길마저도 틀어버린다. 이제부터가 숨 가쁜 이야기의 시작이다. 뇌종양으로 참혹하게 삶을 마감하던 교도소장의 부인 멜린다, 존 커피의 결백과 그의 능력을 믿는 간수들의 인간적인 고뇌, 들라크루아의 예정되었지만 너무나 참혹한 마지막 순간, 퍼시와 와일드 빌에 대한 누군가의 단죄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회환...

  시간은 흘러... 모든 사람이 그린마일 위를 걷게 된다. 오직 폴만이 살아남아 이 모든 것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가 찾는 외딴 오두막... 그곳엔 언젠가부터 찾아온 그 옛날의 친구, 딸랑 씨가 있다. 여전히 실패를 굴리며 재롱을 부리는... 노쇠해 빛깔마저 바래버린 이 쥐 한 마리도 결국 숨쉬기를 멈춘다. 폴의 말마따나 죽음이든 뭐든 그 나쁜 놈이 모두를 해치고야 만 것이다.
어떨 때는, 후, 그린 마일이 너무도 길기만 하다.
  이 모든 상황에서 비켜나 있는 폴... 어떤 기운이 그를 지켜준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홀연히 나타난 존 커피의 환영 앞에서 폴은 자신이 받은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다. 어둠을 남기는 시간의 흐름에 거스르는 힘... 하느님의 존재만큼이나 선명한 고약스러운 존재들을 물리치는 어떤 힘...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여태 자신을 지켜주는 신비한 힘을 느낀다. 누구나 걷게 될 그린마일의 길. 길든 짧든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회피할 수 없을 그 길이 그에게는 너무나 길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신비스러운 힘은 그린마일로 향하는 발걸음을 한없이 더디게 하지만... 주변 모든 것들이 시간이 만들어낸 어둠에 휩싸여 있으니 그저 저주와 다름없지 않았을까?

  <그린마일>은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법과 사회제도의 불합리에 대한 항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존 커피로 재림한 예수나 신성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성선설이나 성악설에 관한 철학적인 화두를 던질 수도 있다. 다만, 마지막 장을 덮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폴의 짧은 한숨이니 언젠가는 단 한번 갚아야할 부채처럼 남아있는 죽음으로부터 멀어져 있지만 기를 쓰고 다가서고 싶었을 심정...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떠나보낸 소중한 대상들에 대한 그리움의 여운이 쓸쓸하다.

  딸랑 씨의 검은 눈에 나타난 놀라움과 고통의 표정처럼... 한숨을 쉬는 폴의 눈빛엔 망각할 수 없어 생기는 슬픔이 진득하게 배어 있을 것 같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다시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폴의 한숨 앞으로 조금은 새삼스러운 것들이 생겨났을까...? 망각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