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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25 두려움의 두가지 종류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5' 22
- 2010.12.23 관계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존재... '용의자 X의 헌신' 42
- 2010.12.22 죽음이란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26
- 2010.12.21 은근한 두려움의 아쉬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30
공포나 두려움 등의 단어에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지라, 이런 키워드를 다루는 문학작품들의 경우 일부 마니아의 기호를 위한 별도 영역이라 외면당하기 일쑤다. 무섭거나 끔찍한 게 막연히 싫다는 개인적 취향도 이유 중 하나일 테고, 대중들에게 좀더 다가갈 수 있는 적절한 매체의 부족이란 출판계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칠 테다. 또, 우리네 살아가는 현실이 공포 그 자체인데 뭘 더 무섭겠다고 그런 것들을 가까이하느냐고 손사래 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 5편의 경우 이전 시리즈에 비해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강하다. 지금 당장는 아니더라도, 내게 일어날 수도 있는... 어쩌면 스치는 옆 사람에게 있어났음 직한, 언론매체를 통해 한두 번은 접해봤을 현실의 일부가 낱낱이 까발려지는 공포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일지언정 잘 아는 동네 인근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일 것 같은 조바심마저 배어 나온다.
김종일의 <놋쇠황소>에서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남자가 동창회에서 만난 가해자 친구를 배웅하며 떠올리는 지난 기억을 통해 학교폭력이란 사회문제를 언급한다. 뒤늦은 복수극이지만 1인칭 고백을 통해 드러나는 학창시절의 절절한 고통이 가슴 아플 수 밖에. 이종권의 <오타>에서는 이메일에 삽입된 오타 한 단어 탓에 빚어지는 끔찍한 스토킹이 소재로 활용된다. 급격한 상황전개에 지나치게 의존해 등장인물들의 광기에 대한 설득력은 다소 미진해도, 생사의 기로 그리고 광기의 폭증이 흔히 사용하는 메일 한통으로 유발된다는 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장은호의 <고치>는 잘 만들어진 전설의 고향 한편을 보는 듯싶을 정도로 기괴한 분위기 조성이 멋들어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네 한켠에 그런 저주 받은 마을이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이 으스스하고, 유산과 임신 사이로 삽입된 인간의 식욕과 광기 간의 연관이 수려하게 전개되고 있다. 류동욱의 <시체 X>에서는 흔하게 겪은 부부간의 불화를 소재로 하여, 극단적 분노 앞에서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봤을 저주의 상상이 만일 실현된다면... 이란 끔찍한 경우를 가정한다.
모희수의 <기억변기>에서는 어둡게 그늘진 기억들이 한 인간에게 주입되는 상황을 전제해, 기억과 추억거리의 소중함을 각인시키기도 하고, 우명희의 <늪>에서는 독재정권하 악명높았던 고문기술자와 그의 후임이었던 형사간 대결을 통해 우울했던 현대사·개인사의 비극을 되새긴다.
임태훈의 <네모>와 엄길윤의 <벗어버리다>는 독특한 SF적 상상력 탓에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비춰지지만, 현대인들이 각박한 삶을 슬쩍 빗대놓고 있고, 황태환의 <살인자의 요람>에서는 외딴 오두막에 고립된 주인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의 접근을 두려워하다 어떤 결단을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일종의 괴담같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는 사회문제에 대한 묵직한 비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종호의 <오해>에서는 왕따 당하는 딸아이와 아이를 도우려는 가장의 고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신뢰 제로의 풍토를 비웃고 있다.
이렇듯 <한국공포문학단편선> 5편에서 주목하는 건 익숙한 현실에서 마주칠 여지가 많은 두려움이니 구분하자면 진짜 두려움쪽으로 조금 더 다가서 있다. 결국, 일종의 도피처로 삼곤 했던 했던 책 속 가상공간이란 게 더 이상 거짓된 두려움의 근원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불쑥 맞닥뜨릴 수도 있을 거라는 배신(?)의 출발점이 되어 버린다. 즉 공포, 두려움, 광기, 폭주... 죽음과 같은 암울한 키워드들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공포라는 딱지를 크게 걸고 있어, 거릴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가까이 끌어당기지는 못하겠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제자리를 찾아가는 작가들의 행보를 엿보는 재미 또한 작품 외적인 소득 하나일테고... 연말이니...
우리 사회 구석구석 서린 여러 가지 두려움의 그늘에 한 발 슬쩍 들여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냥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맞아... 삶 자체가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일 수 있다.정지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따박따박 내려가다 어지러운 듯 앞으로 쏠리는 헛걸음이 두려울 때가 있다. 불 꺼진 방구석에 철퍼덕 엎드려 잠들어 있는 아이 녀석의 등이 제대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지 궁금해질 때의 찰나가 무섭기도 하다. 머리를 감다 샴푸기운에 닫아버린 눈꺼풀 너머 은근한 낯선 시선이 느껴져 움찔하기도 하고, 퇴근길의 아빠를 놀래려 집안 어딘가에서 몸 사리고 있을 아이의 흔적이 서리 앉은 안경너머로 짐작되지 않을 그 잠깐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신발 밑으로 납작히 눌려진 개미의 사체위로 숨이 끊어질 당시의 압박감이 어른거려 소름이 돋기도 하고, 순서대로 퍽퍽 꺼져가는 형광등의 마지막 불빛을 가늠해 출입구로 달음박질치는 퇴근시간의 일상 앞에서는 늘 결심을 새로이 해야 한다... 심지어 흙냄새가 그리운겐지 늘 땅만 파헤치려는 모 인사가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동네 뒷산마저 허물지 않을까 하는 망상까지 더해지곤 하는데... 허나...
두려움의 종류엔 두 가지가 있다. TV속 두려움과 진짜 두려움...혹자가 표현했듯 TV속 두려움은 가짜이자 거짓 두려움이다. 그런 일들은 실제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알 수 없는 존재나 걱정하는 일들... 내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들 태반은 모두 TV나 책 속에서의 일일뿐 실재로는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일말의 기대 섞인 순도 낮은 짝퉁이다. 진짜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는 진땀 흘림이나 아랫배 싸한 복통, 온몸이 부들거리는 포기와 순응만이 있을 것임도 짐작된다. 하지만 거짓이거나 하찮을지언정 두려움의 꺼리들이 하나둘 하나둘 늘어만 가는 일상이다 보니... 이참에 내가 느끼는 것이 절대 실재할 수 없음을... 나의 그로테스크한 망상이 별 것 아닌 수준임을 상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재학습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도 아니면 단 몇프로 현실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에 대한 나름의 단련 과정일 수도... 그래서 무섭다는 책을 펼치는 걸까?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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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포문학단편선> 5편의 경우 이전 시리즈에 비해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강하다. 지금 당장는 아니더라도, 내게 일어날 수도 있는... 어쩌면 스치는 옆 사람에게 있어났음 직한, 언론매체를 통해 한두 번은 접해봤을 현실의 일부가 낱낱이 까발려지는 공포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일지언정 잘 아는 동네 인근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일 것 같은 조바심마저 배어 나온다.
김종일의 <놋쇠황소>에서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남자가 동창회에서 만난 가해자 친구를 배웅하며 떠올리는 지난 기억을 통해 학교폭력이란 사회문제를 언급한다. 뒤늦은 복수극이지만 1인칭 고백을 통해 드러나는 학창시절의 절절한 고통이 가슴 아플 수 밖에. 이종권의 <오타>에서는 이메일에 삽입된 오타 한 단어 탓에 빚어지는 끔찍한 스토킹이 소재로 활용된다. 급격한 상황전개에 지나치게 의존해 등장인물들의 광기에 대한 설득력은 다소 미진해도, 생사의 기로 그리고 광기의 폭증이 흔히 사용하는 메일 한통으로 유발된다는 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장은호의 <고치>는 잘 만들어진 전설의 고향 한편을 보는 듯싶을 정도로 기괴한 분위기 조성이 멋들어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네 한켠에 그런 저주 받은 마을이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이 으스스하고, 유산과 임신 사이로 삽입된 인간의 식욕과 광기 간의 연관이 수려하게 전개되고 있다. 류동욱의 <시체 X>에서는 흔하게 겪은 부부간의 불화를 소재로 하여, 극단적 분노 앞에서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봤을 저주의 상상이 만일 실현된다면... 이란 끔찍한 경우를 가정한다.
모희수의 <기억변기>에서는 어둡게 그늘진 기억들이 한 인간에게 주입되는 상황을 전제해, 기억과 추억거리의 소중함을 각인시키기도 하고, 우명희의 <늪>에서는 독재정권하 악명높았던 고문기술자와 그의 후임이었던 형사간 대결을 통해 우울했던 현대사·개인사의 비극을 되새긴다.
임태훈의 <네모>와 엄길윤의 <벗어버리다>는 독특한 SF적 상상력 탓에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비춰지지만, 현대인들이 각박한 삶을 슬쩍 빗대놓고 있고, 황태환의 <살인자의 요람>에서는 외딴 오두막에 고립된 주인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의 접근을 두려워하다 어떤 결단을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일종의 괴담같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는 사회문제에 대한 묵직한 비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종호의 <오해>에서는 왕따 당하는 딸아이와 아이를 도우려는 가장의 고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신뢰 제로의 풍토를 비웃고 있다.
이렇듯 <한국공포문학단편선> 5편에서 주목하는 건 익숙한 현실에서 마주칠 여지가 많은 두려움이니 구분하자면 진짜 두려움쪽으로 조금 더 다가서 있다. 결국, 일종의 도피처로 삼곤 했던 했던 책 속 가상공간이란 게 더 이상 거짓된 두려움의 근원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불쑥 맞닥뜨릴 수도 있을 거라는 배신(?)의 출발점이 되어 버린다. 즉 공포, 두려움, 광기, 폭주... 죽음과 같은 암울한 키워드들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공포라는 딱지를 크게 걸고 있어, 거릴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가까이 끌어당기지는 못하겠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제자리를 찾아가는 작가들의 행보를 엿보는 재미 또한 작품 외적인 소득 하나일테고... 연말이니...
우리 사회 구석구석 서린 여러 가지 두려움의 그늘에 한 발 슬쩍 들여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냥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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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한편...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으로, 남들의 집중적 이목을 이끌어낸 일명 베스트셀러 읽기에 동참하는 걸 꺼리는 일종의 불치병(?) 탓에, 좀처럼 손대지 못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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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상의 장르는 추리소설에 속해있을 지 몰라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전해오는 강한 여운, 이시가미의 혼을 토해내는 울음과 비명소리로 시끄러워지는 마음 한켠이란 게 비극적인 멜로드라마 한 편에 빠져있었던 듯싶다. 어찌 보면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순애보와 다름 아니니, 추리소설 작가를 표방하고 일련의 추리소설을 내놓으면서도 전통적인 기법을 파괴하고, 드라마적인 인간의 일상사에 치중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의 장점이 진득이 배어 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붉은 손가락> 등 일련의 작품을 대하면서 단순한 재미수준의 유희적 쾌감에 반해 이 작가가 남달라 보였던 것도 이런 따뜻한 시선 때문이니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나 잃어버린 삶에 대한 애착, 남녀 간의 사랑 등 추리소설에 있어 주(主)가 될 수 없어 잔가지처럼 그저 언급되고 말 뿐인 소재들이 주(主)가 된다는데 있다. 여기에 추리소설에 빠질 수 없는 소재거리인 범행 그리고 범인 찾기 과정이 절묘한 반전의 트릭과 함께 어울려 있어, 여운은 여운대로, 읽는 재미는 재미 나름대로 찾을 수 있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집중하는 인간의 욕망...범행은 애초에 드러나 있다. 범인도 누구인지 알고 있다. 반전이라는 신선할 아이템이 숨어 있기야 하지만, 작품의 진행과정 자체를 부인하게 되는 충격요법으로서의 반전은 아니니, 이전의 작품에서 보이듯, 사랑했다면 더 사랑했다는, 아끼고 배려했다면 그 마음이 배가되고, 절절한 마음이 더해 속이 쓰릴 여운으로 다가올 뿐이다. 범행과 범인을 드러내, 속칭 차 떼고 포까지 떼 수세에 몰렸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살아생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할 사랑과 희생으로... 절대 악이란 걸 방치하지 않고 모두를 화해케 하는 비장의 카드 한 장으로 수세를 만회하고야 만다.
소위 소설이란 것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일 테지만, 등장인물의 다양한 인간적 욕망이란 게 각각으로 반영되곤 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인간적 욕망의 깊은 부분을 절절히 묘사하진 않는다. 글 사이를 쉬어가고, 깊이 심호흡케 하는 식의 세밀한 접근 대신 인물들의 심경에 대한 단출한 묘사와 더불어 일련의 사건과 전개과정만으로 얽혀있는 욕망들의 표현과 해소를 극대화해내고 있으니 이런 부분이 작가로서의 남다른 능력일 듯... 이번 작품에서는 살인과 은폐에 대한 욕망보다는 사랑과 헌신에 대한 욕망의 울림이 남다르다.
그 남자가 아름답고 멋있을 뿐...인상적인 두 남자가 등장한다. 데이도 대학시절 인상적인 인연을 맺었던 이시가미와 유가와 그들이니, 완벽한 수학의 논리로 살인사건을 은폐하려던 천재적인 수학자 이시가미에게 천재적인 물리학자 유가와의 등장이란 불행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완벽하게 조성된 알리바이, 완벽하게 가장된 범죄공간에 대한 이시가미의 답을 어느 누구도 재검증 할 수 없었으나, 이런 논리와 논리와의 싸움에 있어 이시가미 측의 유일한 허점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 야스코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야스코 본인이 지켜낼 수밖에 없었을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가 그것이다.
유가와는 예리하게 이시가미의 마음 속 연정을 눈치 채고 그 지점에서부터 모든 것들을 되돌이키기 시작한다. 멋있는 호적수가 될 수 있었을 두 등장인물 중 하나가 하차해버려 다소 아쉽기까지 한데, 진상을 꿰뚫는 유가와의 논리나 친구에 대한 인간적 배려보다는 이시가미의 짐승 같은 사랑이 좀더 애틋하다. 그래서 그 남자가 멋있고... 그 마음이 아름다우며... 그의 하차가 아쉽고... 울부짖음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야스코가 뚱뚱하고 대머리기운이 역력한 이시가미의 외모가 아닌 진정한 마음에 눈을 돌려 퍽이나 다행스럽기까지 한 이유다.
누군들... 마지막 장을 덮게 되면 떠올릴 듯싶다...
내가 이렇듯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를 위해 이렇게 헌신해줄 사람이 있을까...? 평생 한번 만나볼 수 있기라도 하려나...?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숭고히 여겨지는 존재'란게 나에겐 있을까...?
뒤돌아선 이시가미의 어깨 위로 올려놓은 유가와의 손등 위... 내 손 하나를 더 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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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재미라면... 아무래도 읽을 페이지의 분량이 두툼함에서 도톰하게, 다시 얇게, 그리고 마지막 장... 의 순으로 변해가는, 끝냄의 묘미를 빼놓을 순 없다. 진도가 잘 나가느니 안 나가느니 하는 표현을 빌어,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은 재미나 교훈, 작품성, 여운의 정도를 떠나 무언가든 가뿐히 얻어냈다는 홀가분함 하나만으로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최고점을 받아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책 읽기의 속도내기, 면에선 최적의 작품이라 할만 하다.
추리소설 작가답게, 이들이 복원(?)을 원하는 기억에 대한 단서를 작품 곳곳에 흩어놓았는데, 참으로 완벽히도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단서들의 정반합(正反合) 과정이 주요 플롯이 되고, 그 조합의 결과물이 작품 나름대로의 결론이 되어 버린다. 빠르게 읽히지만, 결코 단 하나 사소할 수 없는 건... 각각의 단서들이 갖는 결론에로의 방향성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결론에 접어들면, 그 이전에 넘어왔던 것들이 갖는 연결고리를 단 한 번에 꿰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야 읽기의 속도감만큼이나 명확한 내용이 장점일 수 있겠지만, 앞전에 접하게 되는 복선들의 의미가 갖는 명징함이란 게 다소 어색스러울 수도 있다. 구색이 너무 잘 맞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부감이랄까... 한편, 친절한 작품이라 느껴지는 건...
보통의 추리소설, 주로 서구 작품들을 보자면,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이란 작자가 해결을 여기저기 몸을 던지기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해내는 과정의 고단함에 비해, 상당히 간단할 결론 즉 사건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천재적인(!) 주인공일 밖에 없으니, 그 사고과정에 독자가 관여할 부분은 지극히도 좁은 편이다. 하지만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서는 조합의 과정에 독자의 능동적인 동참이 가능한데, 멋진 콧수염의 포와로 탐정이 지닌 천재적인 귀납법적 사고력이 없더라도, 차근차근 여정 길을 좇아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흔히 말하는 반전이란 걸 짐작해낼 수 있게 된다. 작품 속 상황이야 독특하지만, 결국에 우리들 살아가는 양상과 그리 다른 면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니, 이는 작가의 주된 관심대상이 사건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혼한, 헤어진 옛 애인 사야카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버지의 유품으로 발견한 의문의 약도와 열쇠 하나로,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는 여정 길에 나카노는 동참하게 된다. 사람의 자취는 있지만, 살았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외딴 곳의 집. 유스케라는 이름의 한 소년이 수십 년 전에 작성했을 흰색 표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유스케의 오래전 흔적들을 되짚어가는 가운데, 사야카는 이미 죽어버린 기억들의 단편들과 마주친다.현실세계에서의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할 그 어떤 경우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 라는 예상과 달리, 표지나 제목에서 유도하는 것처럼 미스터리한 약간의 괴기, 약간의 공포... 예를 들어 귀신과도 같은 소재거리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는 달리,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되찾거나 또는 잊고 싶은 기억을 가진 한 여자와 그를 돕게 되는 한 남자의 짧은 여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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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답게, 이들이 복원(?)을 원하는 기억에 대한 단서를 작품 곳곳에 흩어놓았는데, 참으로 완벽히도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단서들의 정반합(正反合) 과정이 주요 플롯이 되고, 그 조합의 결과물이 작품 나름대로의 결론이 되어 버린다. 빠르게 읽히지만, 결코 단 하나 사소할 수 없는 건... 각각의 단서들이 갖는 결론에로의 방향성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결론에 접어들면, 그 이전에 넘어왔던 것들이 갖는 연결고리를 단 한 번에 꿰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야 읽기의 속도감만큼이나 명확한 내용이 장점일 수 있겠지만, 앞전에 접하게 되는 복선들의 의미가 갖는 명징함이란 게 다소 어색스러울 수도 있다. 구색이 너무 잘 맞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부감이랄까... 한편, 친절한 작품이라 느껴지는 건...
보통의 추리소설, 주로 서구 작품들을 보자면,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이란 작자가 해결을 여기저기 몸을 던지기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해내는 과정의 고단함에 비해, 상당히 간단할 결론 즉 사건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천재적인(!) 주인공일 밖에 없으니, 그 사고과정에 독자가 관여할 부분은 지극히도 좁은 편이다. 하지만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서는 조합의 과정에 독자의 능동적인 동참이 가능한데, 멋진 콧수염의 포와로 탐정이 지닌 천재적인 귀납법적 사고력이 없더라도, 차근차근 여정 길을 좇아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흔히 말하는 반전이란 걸 짐작해낼 수 있게 된다. 작품 속 상황이야 독특하지만, 결국에 우리들 살아가는 양상과 그리 다른 면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니, 이는 작가의 주된 관심대상이 사건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역시 낡은 그 집에 죽어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죽은 내가, 그 집에서 줄곧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곳에 누워 있을 게 분명한 자신의 사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하는 것일 뿐...결국, 이들이 마주치게 되는 죽음이란 건, 사체라는 건... 이미 겪어 왔지만 그 쓰라림으로 인해 잊어야만이 후세를 살아갈 정도인 과거의 어느 시기, 기억이 아닐까. 집이 갖는 의미는 물질적 공간인 건축물로서의 의미보다는, 어느 시기를 함께 보낸 기억 속 공간일 수 있고, 기억이나 추억이나... 그게 아프든, 아니든,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어떻든 간에 그 시기를 담아내고 있는 저장소에 다름 아니다.
마주치게 될 대상이 이미 죽어 있는 혹은 죽여야 할 내가 될지... 아니면, 지나버린 애틋함에 떠올릴 그저 그런 내 과거가 될는지는 그 어느 누구에게나의 각자만이 알 수 있는, 각자에게 일임된 과제일 뿐이다. 다만, 죽음과 같았던 기억은, 기억과 함께 공존했던 집은... 죽음 자체이기 때문에 떠올리려야 떠올릴 수 없어 삶의 끈을 놓기 직전에나 다시 한 번 회상해낼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 가만히 내려앉도록 지켜보는 것도... 현명하단 소릴 들을 삶의 자세 중 하나가 아닐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되살리는 것이 불가능 한 것과 달리, 죽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다시 죽어버릴만큼 상처받게 되는 건, 잊혀진 것들의 되살림에 대한 환희만큼이나 이제는 진정 죽어야만 할 것 같은 눈물 같은 심정만이 남을 위험스러운 과정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카노에겐 그 몇 년 전의 경험이 잘 한 짓인지... 잘못된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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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은? 의도한? 외도성 책읽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드시 읽겠다고 모아놓은 책 무더기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공포, 두려움 그리고 긴박함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장르소설들이 불량해 보이는 기울기로 겹쳐 서서는 어이 도대체 왜 그러는데? 퉁퉁거리는 듯 머릿속이 소란스럽다. 왠지 모를 책임감과 안타까움에 잠시 둘러보다가는 슬그머니 다른 방향으로 손길을 내밀고는 도망치듯 길을 나서는 건...
날이 추워서일까? 추워서 몸이 오돌오돌 거리는데 마음 한켠에라도 뜨뜻한 자연발화 난로 하나 넣어 다니자 싶은 심정이려나... 그래도 오랜만의 은근한 조바심, 공포나 두려움의 어둔 구석을 더듬고픈 욕망 같은 건 여전할 테다, 단지 날씨탓으로 미루어두었던... 죽음 빛, 핏 빛이 교차하는 표지로... 그것도 두툼해 보이는 책 한권을 오랜만에 골라낸다. 그리곤 순식간에 읽어버린다.
날이 추워서일까? 추워서 몸이 오돌오돌 거리는데 마음 한켠에라도 뜨뜻한 자연발화 난로 하나 넣어 다니자 싶은 심정이려나... 그래도 오랜만의 은근한 조바심, 공포나 두려움의 어둔 구석을 더듬고픈 욕망 같은 건 여전할 테다, 단지 날씨탓으로 미루어두었던... 죽음 빛, 핏 빛이 교차하는 표지로... 그것도 두툼해 보이는 책 한권을 오랜만에 골라낸다. 그리곤 순식간에 읽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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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포문학단편선> 그러니까 시리즈 1편과의 첫 대면은 그저 우연이었다. 도서관 서가사이를 거닐다 공포라는 명확하고도 노골적인 키워드가 박힌 책등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국내 장르문학의 취약성이야 외국의 스릴러물, 추리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도 빈곤한 출간 양을 고려치 않더라도 대강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고, 이런 취약성은 작품의 질적인 측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해서 사실 제대로 된 작품 접하기가 꽤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시리즈물로 자리를 잡아가는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 거는 기대란 게 남다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적절한 참여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참여 즉 독자와의 대면을 통해 단련과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기회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작가만이 아닌 독자에게도 기쁜 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열혈이라고 하긴 뭣해도... 공포니 스릴러니 하는 분야를 참 좋아하는 입장이다 보니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시리즈를 접하며 느끼는 기대와 실망이 즐겁기까지 한데, 이번에 읽게 된 건 4편이다. 소재도 다양하거니와 재미도 있다...!
장은호의 <첫 출근>은 오직 전화회선으로만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전달해주는 첫 번째 업무에 혼란을 겪는 사회초년생의 끔찍한 경험이다. 코드명과 짧은 지시사항, 전화 등으로 획일화된 업무 속에서 자신의 인간성마저 놓아버리는 미래의 어느 때가 빠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건조하게 와 닿는다. 김종일의 <도둑놈의 갈고리>는 피핑 톰(Peeping Tom)이란 단어의 유래를 차용해 집단 관음증에 중독된 지금의 사회문제를 빗대 한 개인의 연애감정이 살의로 바꾸어버리는 처절한 과정을 보여준다. 1인칭 독백으로 일관해 가쁜 호흡에 빠져들 수 있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소재를 어우 누르는 기교가 좋아 보인다. 다만, 주제의 시사성이 워낙 커서 잘 그려낸 개인의 절망감과 공포 또한 이에 휩쓸리는 아쉬움이 있다.
이종호의 <플루토의 후예>에서는 결혼을 앞둔 한 남자가 어린 시절을... 기괴한 체험을 통해 가족을 잃은 기억을 꺼내놓는다. 저주받은 집, 고양이, 낯선 방문객, 저주 등 공포소재를 잘 섞어놓고 있지만, 이런 류의 대칭점에 서게 되는 포우의 <검은고양이>에 반한 상투성이란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황태환의 <폭주>는 운석으로 지구멸망이 예고된 시점, 폭력과 살인이라는 광기에 휩싸이는 보통인간들의 심리를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에 치중해, 광기에 대한 공감보다는 슬래셔풍의 단막극 하나를 들여다본 느낌뿐이다. 참혹함이란게 광기의 결론으론 충분하겠지만... 누군가를 동참시킬 과정이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우명희의 <불귀>에서는 한국적인 한(恨)이란 소재를 고부갈등과 결합해 낸다. 죽은 남편의 유언 탓에 자신을 죽을 만큼 증오하던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자청하는 며느리.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어야 하는 시어머니는 죽지 않고 자신과 딸에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 고부갈등, 마을에의 저주 그리고 알 수 없는 아이의 눈빛... 전형적인 소재들을 활용해 분위기 조성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뿐이다. 유선형의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어느 날 술에 취해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도축장에서 겪는 기묘한 체험이다. 탈출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무언지 모를 고기를 다듬으며 어디인지? 왜 그곳에 와 있는 건지? 무엇의 고기인지?를 차례차례 해결해나간다. 근사한 상상력에 반해 빤히 예상되는 앞 대목들이 약간은 싱겁다.
최민호의 <더블>은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발생한 더블 즉 도플갱어의 자아를 찾기 위한 싸움이다. 나와 한치 다를 바 없는 다른 존재를 등장시켜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언급하는 상상력이 근사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 있다. 김유라의 <배심원>에서는 가정불안과 왕따 그리고 인터넷의 폐해라는 사회문제를 짜임새 있게 고발한다. 시사성있는 소재는 공감대 형성에 효과적이긴 하나 지나친 극단만을 담아내다보니 작위적이라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권정은의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오세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좀비들이 나타나고 내가 사랑하는 이마저 좀비가 되어버려 고립된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전형적인 장르소재인 좀비를 차용해 구구절절 개연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편의를 살렸지만,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상투성을 감수한다는 위험부담이 클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간의 애정이 절절하긴 하지만 상투성을 벗어내진 못한다. 전건우의 <배수관은 알고 있다>는 나카타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 느껴지는 아파트란 공간의 으스스함에 기러기 아빠의 현실적인 고충이 더해져 있다. 상투적으로 마무리될 뻔한 이야기를 반전 아닌 반전으로 수습해 묘한 울림을 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공포라는게 대놓고 '무섭지!'를 연발해 부지불식간 탄식을 이끌어내는 단순한 방법도 분명 효과적이긴 하나 이런 노골적인 드러냄은 거부감을 끌어내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보편적 정서 밑바닥을 헤집기 보다는 무언가의 외피만 건드리다보니 식상함이나 유치함을 넘어서 우습다 라는 배신과 같은 감정까지 느끼게 될 위험이 있다. 밑바닥에 닿기 위해서 육탄으로 파헤치는 것도 나름의 묘미가 될 수 있겠지만, 은근하게 접근하며 느끼게 되는 분위기... 슬며시 어둑어둑한 공간속으로 한걸음 발을 내딛으며 얻게 되는 느릿한 감정이입이 좀 더 진득거리지 않으려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소재들의 나열이나 끔찍함에 대한 탐닉은 정서를 건드리기보다 사고력을 움직이게끔 한다. 이쯤 되면 공포 비스 무례한 정서적 공감은커녕 이래선 아니 되겠구나 또는 이래야겠구나 하는 식의 교훈 내지 호불호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만이 남게 되니 내가 읽고 있는 게 무얼 내세우려는 것인가 싶은 의아스러움이 더해진다.
공포 비스 무례한 정서로 독자를 이끌기 위해 작가에게 필요한 건 감추는 능력... 은근함의 미덕을 깨닫는 게 아닐까? 여기에 처절함에 대한 설계력 하나 보태면 그럴 듯 하지 않으려나...? 물론 처절함과 단순한 끔찍스러움과는 다른 문제일 듯... 끔찍함은 외면이라는 거부의 반응으로 이어지기 일쑤이지만, 처절함에는 공감이라는 자연스러운 수긍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일부는 다음이 기대되고, 일부는 그저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열혈이라고 하긴 뭣해도... 공포니 스릴러니 하는 분야를 참 좋아하는 입장이다 보니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시리즈를 접하며 느끼는 기대와 실망이 즐겁기까지 한데, 이번에 읽게 된 건 4편이다. 소재도 다양하거니와 재미도 있다...!
장은호의 <첫 출근>은 오직 전화회선으로만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전달해주는 첫 번째 업무에 혼란을 겪는 사회초년생의 끔찍한 경험이다. 코드명과 짧은 지시사항, 전화 등으로 획일화된 업무 속에서 자신의 인간성마저 놓아버리는 미래의 어느 때가 빠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건조하게 와 닿는다. 김종일의 <도둑놈의 갈고리>는 피핑 톰(Peeping Tom)이란 단어의 유래를 차용해 집단 관음증에 중독된 지금의 사회문제를 빗대 한 개인의 연애감정이 살의로 바꾸어버리는 처절한 과정을 보여준다. 1인칭 독백으로 일관해 가쁜 호흡에 빠져들 수 있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소재를 어우 누르는 기교가 좋아 보인다. 다만, 주제의 시사성이 워낙 커서 잘 그려낸 개인의 절망감과 공포 또한 이에 휩쓸리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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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희의 <불귀>에서는 한국적인 한(恨)이란 소재를 고부갈등과 결합해 낸다. 죽은 남편의 유언 탓에 자신을 죽을 만큼 증오하던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자청하는 며느리.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어야 하는 시어머니는 죽지 않고 자신과 딸에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 고부갈등, 마을에의 저주 그리고 알 수 없는 아이의 눈빛... 전형적인 소재들을 활용해 분위기 조성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뿐이다. 유선형의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어느 날 술에 취해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도축장에서 겪는 기묘한 체험이다. 탈출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무언지 모를 고기를 다듬으며 어디인지? 왜 그곳에 와 있는 건지? 무엇의 고기인지?를 차례차례 해결해나간다. 근사한 상상력에 반해 빤히 예상되는 앞 대목들이 약간은 싱겁다.
최민호의 <더블>은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발생한 더블 즉 도플갱어의 자아를 찾기 위한 싸움이다. 나와 한치 다를 바 없는 다른 존재를 등장시켜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언급하는 상상력이 근사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 있다. 김유라의 <배심원>에서는 가정불안과 왕따 그리고 인터넷의 폐해라는 사회문제를 짜임새 있게 고발한다. 시사성있는 소재는 공감대 형성에 효과적이긴 하나 지나친 극단만을 담아내다보니 작위적이라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권정은의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오세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좀비들이 나타나고 내가 사랑하는 이마저 좀비가 되어버려 고립된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전형적인 장르소재인 좀비를 차용해 구구절절 개연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편의를 살렸지만,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상투성을 감수한다는 위험부담이 클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간의 애정이 절절하긴 하지만 상투성을 벗어내진 못한다. 전건우의 <배수관은 알고 있다>는 나카타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 느껴지는 아파트란 공간의 으스스함에 기러기 아빠의 현실적인 고충이 더해져 있다. 상투적으로 마무리될 뻔한 이야기를 반전 아닌 반전으로 수습해 묘한 울림을 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공포라는게 대놓고 '무섭지!'를 연발해 부지불식간 탄식을 이끌어내는 단순한 방법도 분명 효과적이긴 하나 이런 노골적인 드러냄은 거부감을 끌어내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보편적 정서 밑바닥을 헤집기 보다는 무언가의 외피만 건드리다보니 식상함이나 유치함을 넘어서 우습다 라는 배신과 같은 감정까지 느끼게 될 위험이 있다. 밑바닥에 닿기 위해서 육탄으로 파헤치는 것도 나름의 묘미가 될 수 있겠지만, 은근하게 접근하며 느끼게 되는 분위기... 슬며시 어둑어둑한 공간속으로 한걸음 발을 내딛으며 얻게 되는 느릿한 감정이입이 좀 더 진득거리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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