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a True story'

사색거리들/책 | 2010. 12. 7. 14:55 | ㅇiㅇrrㄱi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각종 흉악범죄. 보편적인 문명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살기 좋아진 건 맞을 텐데, 살기 진력날 만큼의 끔찍스러운 범죄행위들이 그 어느 때보다 증가추세에 있음을 쉽게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도대체 좋아졌다는 게 뭔지 의문스러운 세상이다. 이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분노의 심정을 극한으로 이끌어 내는 대상이란 게 있다. 바로 가해자, 범죄자, 피의자 등의 단어로 지칭되는 바로 그들이다. 그들을 향해 내뱉는 고함소리에 마음 한켠의 살의까지 보태 증오를 불태우기도 하고, 눈물 흘리는 피해자 주변의 분위기에 눈물을 글렁이기도 한다.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슬픔은 피해 당사자와 주변이 느낄 슬픔과 고통에 다다를 바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들의 일탈행위에 대한 분노는 내가 미처 겪지 않았더라도 지워지지 않는다. 별 다르게 꾸밀 필요도 없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버금가는 단죄를 내려야 한다는 게 보통人으로서 떠올리는 심정의 대부분이니 죽여라! 죽여라! 날선 외침만이 맴돌게 된다.

그런데... 그들 살인자와 같은 범죄자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카테고리 정치/사회 > 법학 > 법학일반 > 법학일반서
지은이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갤리온,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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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는 독일 베를린의 형법 전문 변호사인 프로디난트 폰 쉬라크의 사례담으로, 자신이 변호하거나 목격했던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약자의 편에 서서 활약한 경험을 묶었다고는 하나 아무리 돌아봐도 살인자들까지 약자로 분류하는 어폐에는 동의하기 싫은 심정이란 게 있으니 이 독일 변호사가 들려주는 '‘살인자 그들'과 '변호사 자신'의 이야기에 따라붙을 성 싶은 어떻게? 라는 선입견은 어쩔 수 없다.

50주 이상이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전 세계 25개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으로 데뷔작의 판권이 이렇게 많은 나라로 수출된 사례는 독일에서도 최초라는데... 인기몰이에 성공한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던지는 어떻게? 라는 화두에 무슨 답을 하고 있으려나?

꽤나 궁금해지는데 의외로 그의 답은 간단하다. 변호사니까!

프로디난트 폰 쉬라크는 재판에 두 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피의자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가라는 문제로 도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순전히 법적인 절차상의 판단 부분이다. 두 번째는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었다면,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범죄행위 자체가 갖는 일탈·반사회성의 위중 정도를 판단하는 것으로 이때에는 도덕이 끼어들어 피의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문제를 겪어 왔는지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차원으로 어떻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다. 피의자의 경우 형이 확정되기 이전에는 살인자로 추정하는 것이 법 절차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법 집행 절차상 객관성을 따져봐야 할 부분을 주도면밀히 살펴야 하는 건 당연히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범죄행위가 명확하다고 판단된 경우라도 적절한 형량결정을 위해선 범죄자의 지난 인생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드러난 굴곡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가 필요하니... 이 두가지를 해내는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이다.
주변에서 성자라 여겨질 만큼 후덕한 노의사는 일흔두 살의 나이에 수십여 년을 동거 동락해 오던 아내의 머리를 도끼로 갈라버린다. 유명한 건축업자의 딸은 자신의 친동생을 욕조에서 익사시키고, 창녀와 홈리스는 시체를 토막 내고 유기한다. 기차역 앞에서 시비를 걸던 두 악당은 허술해 보이는 중년의 남성에게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기고, 또래 친구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청년의 방에선 일그러진 눈알이 발견된다...
인용된 총 11편의 이야기엔 두 가지 차원의 문제를 토대로 법 절차상의 허점을 발견하거나, 굴곡 심한 피의자들의 인생을 되짚으며 그들의 무죄를 이끌어 내거나 형량을 줄이려는 프로디난트 폰 쉬라크 변호사의 노력이 담겨 있다. 첫 번째 문제야 변호사가 갖추어야 할 업무능력이 전제되어야 할 일일 테지만, 두 번째 문제 즉 도덕적 잣대를 갖고 피의자의 삶속으로 한걸음 들어서기 위해서는 직업적 소신과 결부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수적일 테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는 단지 사건조서의 삭막함... 픽션이기에 가지게 될 딱딱한 현실감이 주가 될 내용이었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인간관으로... 범죄자를 그저 한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애정 그리고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이 건조함의 틈을 슬쩍 메워낸다.

읽다 보면 어떻게? 라는 화두 외에도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우리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각종 흉악범죄. 돌아볼 것도 없이 사형이 마땅할 만치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도 연민과 애정을 갖고 형을 덜어주어야 하냐고... 아니! 프로디난트 폰 쉬라크 변호사가 말하는 건 성인군자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걸 사하여 주자! 라고 외치는 건 아니다. 형벌의 두 가지 필요성, 즉 범죄행위의 해악성을 일반대중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해 그리고 해당 범죄자로 하여 다시금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 형벌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얼마만큼의 효력을 지닐 수 있는지 법의 엄정한 집행 중에 살피자는 것 뿐이니 무조건적인 변호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그저 접근방식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변호사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직업윤리에 관한 주장일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우리네 살아가는 모양새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는 걸 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수록된 모든 사례가 살인자의 처참한 범죄행위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행정착오로 수십여년을 한 자리에서 근무하며 정신병에 다다르게 된 기막힌 사연의 박물관 경비원의 이야기도 그렇고... 특히 마지막 편에 코끝이 찡해지는 은행털이범의 이야기를 배치해놓은 걸 보면... 판사도 배심원도, 방청객도... 모든 이가 울어버리는 재판정의 광경이라는 게 상상이나 되나...?

결국 이 세상에 단순하게 진행되는 건 없다는... 우리들 각각의 삶 자체가 드라마 한편의 훌륭한 극본이 될 수 있을 만큼 온갖 사연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걸 그저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무조건적인 비난이란 게 어쩔 수 없는 사례가 태반이기야 하지만, 우리가 전해듣는 사례들의 사이사이엔 거대하지만 알 수 없는 사연이란 게 가득일 수 있다는 새삼스러움도 잊지는 말아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