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사색거리들/책 | 2010. 12. 22. 13:55 | ㅇiㅇrrㄱi

책 읽기의 재미라면... 아무래도 읽을 페이지의 분량이 두툼함에서 도톰하게, 다시 얇게, 그리고 마지막 장... 의 순으로 변해가는, 끝냄의 묘미를 빼놓을 순 없다. 진도가 잘 나가느니 안 나가느니 하는 표현을 빌어,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은 재미나 교훈, 작품성, 여운의 정도를 떠나 무언가든 가뿐히 얻어냈다는 홀가분함 하나만으로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최고점을 받아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책 읽기의 속도내기, 면에선 최적의 작품이라 할만 하다.
이미 결혼한, 헤어진 옛 애인 사야카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버지의 유품으로 발견한 의문의 약도와 열쇠 하나로,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는 여정 길에 나카노는 동참하게 된다. 사람의 자취는 있지만,  살았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외딴 곳의 집. 유스케라는 이름의 한 소년이 수십 년 전에 작성했을 흰색 표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유스케의 오래전 흔적들을 되짚어가는 가운데, 사야카는 이미 죽어버린 기억들의 단편들과 마주친다.
현실세계에서의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할 그 어떤 경우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 라는 예상과 달리, 표지나 제목에서 유도하는 것처럼 미스터리한 약간의 괴기, 약간의 공포... 예를 들어 귀신과도 같은 소재거리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는 달리,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되찾거나 또는 잊고 싶은 기억을 가진 한 여자와 그를 돕게 되는 한 남자의 짧은 여정일 뿐이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창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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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답게, 이들이 복원(?)을 원하는 기억에 대한 단서를 작품 곳곳에 흩어놓았는데, 참으로 완벽히도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단서들의 정반합(正反合) 과정이 주요 플롯이 되고, 그 조합의 결과물이 작품 나름대로의 결론이 되어 버린다. 빠르게 읽히지만, 결코 단 하나 사소할 수 없는 건... 각각의 단서들이 갖는 결론에로의 방향성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결론에 접어들면, 그 이전에 넘어왔던 것들이 갖는 연결고리를 단 한 번에 꿰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야 읽기의 속도감만큼이나 명확한 내용이 장점일 수 있겠지만, 앞전에 접하게 되는 복선들의 의미가 갖는 명징함이란 게 다소 어색스러울 수도 있다. 구색이 너무 잘 맞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부감이랄까... 한편, 친절한 작품이라 느껴지는 건...

보통의 추리소설, 주로 서구 작품들을 보자면,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이란 작자가 해결을 여기저기 몸을 던지기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해내는 과정의 고단함에 비해, 상당히 간단할 결론 즉 사건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천재적인(!) 주인공일 밖에 없으니, 그 사고과정에 독자가 관여할 부분은 지극히도 좁은 편이다. 하지만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서는 조합의 과정에 독자의 능동적인 동참이 가능한데, 멋진 콧수염의 포와로 탐정이 지닌 천재적인 귀납법적 사고력이 없더라도, 차근차근 여정 길을 좇아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흔히 말하는 반전이란 걸 짐작해낼 수 있게 된다. 작품 속 상황이야 독특하지만, 결국에 우리들 살아가는 양상과 그리 다른 면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니, 이는 작가의 주된 관심대상이 사건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역시 낡은 그 집에 죽어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죽은 내가, 그 집에서 줄곧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곳에 누워 있을 게 분명한 자신의 사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하는 것일 뿐...
결국, 이들이 마주치게 되는 죽음이란 건, 사체라는 건... 이미 겪어 왔지만 그 쓰라림으로 인해 잊어야만이 후세를 살아갈 정도인 과거의 어느 시기, 기억이 아닐까. 집이 갖는 의미는 물질적 공간인 건축물로서의 의미보다는, 어느 시기를 함께 보낸 기억 속 공간일 수 있고, 기억이나 추억이나... 그게 아프든, 아니든,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어떻든 간에 그 시기를 담아내고 있는 저장소에 다름 아니다.

마주치게 될 대상이 이미 죽어 있는 혹은 죽여야 할 내가 될지... 아니면, 지나버린 애틋함에 떠올릴 그저 그런 내 과거가 될는지는 그 어느 누구에게나의 각자만이 알 수 있는, 각자에게 일임된 과제일 뿐이다. 다만, 죽음과 같았던 기억은, 기억과 함께 공존했던 은... 죽음 자체이기 때문에 떠올리려야 떠올릴 수 없어 삶의 끈을 놓기 직전에나 다시 한 번 회상해낼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 가만히 내려앉도록 지켜보는 것도... 현명하단 소릴 들을 삶의 자세 중 하나가 아닐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되살리는 것이 불가능 한 것과 달리, 죽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다시 죽어버릴만큼 상처받게 되는 건, 잊혀진 것들의 되살림에 대한 환희만큼이나 이제는 진정 죽어야만 할 것 같은 눈물 같은 심정만이 남을 위험스러운 과정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카노에겐 그 몇 년 전의 경험이 잘 한 짓인지... 잘못된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