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섬, 그리고 좀비'

사색거리들/책 | 2010. 8. 5. 11:00 | ㅇiㅇrrㄱi

좀비가 불러일으키는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 
좀비라고 하면 어린시절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으니 갓 코흘리게를 면한 초등학생 시절, 이웃에 사시던 어르신이 생각없이 틀어놓은 해적판 좀비영화를 무심코 기웃거렸더랬다. 80년대의 좀비영화가 뭐 그리 대단하겠냐마는 시체들의 흐느적거리는 걸음거리와 식인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포악성, 그리고 뜯겨져나가는 피해자의 내장덩어리 등등 정육점의 진분홍 조명빛을 바라볼때와 같은 건전할리 없을 감정적 울림 그 자체였고. 좀비라고 하면... 당시부터 잠재해왔을 묘한 호기심같은게 여전함을 느끼게 된다.

섬, 그리고 좀비 :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백상준 (황금가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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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 문학 공모전' 이란 생소한 공모전名, 여기에 <섬, 그리고 좀비>라는 신선한 서명에서 오는 호기심, 단 시간내 한권의 책 읽기를 끝낼 수 있을거라는 유혹(?) 등등으로 읽기 시작. 'ZA'는 '좀비 아포칼립스(Zombie Apocalypse)'의 약자로, 결국 이 책은 좀비가 서사의 주 대상이다. 해외 장르문학 작품 소개에 적극적인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나름 국내 장르문학 작가 육성을 위한 첫 발걸음을 뗀 것으로 보인다. 당선작인 백상준의 <섬>, 가작으로 펭귄의 <어둠의 맛>, 황희의 <잿빛 도시를 걷다>, 안치우의 <도도 사피엔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특별 추천작인 박해로의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 이렇게 총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잔혹묘사에 있어서 텍스트가 갖는 한계...
사실, 좀비를 효과적으로 묘사해낼 수 있는 매체로는 영화만한게 없을 것인데 그 유명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시작해서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 <레지던트 이블> 등등 수도 없이 많은 편이다. 인간의 뇌는 눈과 귀에 의한 시청각적 인지과정이 효과적일 수 밖에 없을테니 잔혹한 영상, 좀비와 죽어가는 이들의 울부짖음, 음산한 배경음이 더해진 영화라는 시청각 매체가 갖는 장점은 좀비 영화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텐데... 텍스트의 경우 상대적이기야 하겠지만 명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인지과정 태반은 그저 독자의 머리속 상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이자 작가의 무기는 둔하디 둔한 '텍스트 자체'로 제한된다는 한계가 있다. 

사실, 좀비라는 설정 자체가 갖는 식상함이란건 그닥 걱정하지 않았다. 이전에 충분히 다루어졌기 때문에 유발되는 식상함이라면 비단 좀비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주제나 형태의 것도 비켜갈 수 없을 약점으로 작용한다 볼 수 있고, 해당 주제가 주는 익숙한 연상에 대한 극복은 여러가지 방면에서의 신선한 비틀림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스러웠던 건 시청각 매체에 길들여져 있을 머리속에 마치 영화가 쉽게 선사하는 대상의 형상화를 가능케 하기 위해선, 문장력이라는 서사능력의 기본기, 짜임새 있고 개연성 있어야 할 서사구조 그리고 독자의 상상력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이를 거들 수 있는 생생한 묘사력 등이 균형잡혀 있어야 한다는데 있었다.
재미를 위한 첫걸음...
5편의 수상작품이 갖는 유리한 지점은, 독자가 서 있는 이 땅에, 지금의 현실에, 친숙한 지명과 정서에 기대어 있기 때문으로 얻게 되는 개연성의 여지가 기본적으로 확보되어 있다는데 있을테다. 하지만, 이 탁월한 장점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도 전에 대부분의 작품은 맥 없이 주저 앉는 형국이다.

물론 단편이 갖는 좁은 테두리의 걸리적거림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냥 눈떠보니 좀비가 되어 있고 나는 도망간다라는 식의 안일한 설정과 가벼운 묘사로 인해... 좀비를 피해 고립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표류기, 아이를 찾아 길을 나서다 좀비가 되어 버린다는 비극적인 모정, 일반인과 좀비의 어울리지 않는 동시대 살아가기 등 나름 작가가 식상함을 탈피하기 위해 내세웠음 직한 이야기의 커다란 골격이 살을 채우질 못한다. 결국 잊음직하다라는 개연성은 커녕... 재미라는 기본도 얻지 못한데다, 슬쩍 웃어버릴 수 밖에 없는 희극적 요소까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도도 사피엔스>라는 작품이 갖는 장점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심사평에서는 '병리학과 해부학 등의 전문지식을 이야기속에 능숙하게 녹여냈다라는 점에서는 돋보이나 지나치게 설명조인데다 흐름이 식상하다는게 약점이다' 라는데, 사실 장르문학에서 작가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은 파격적인 이야기 골격이나 급격한 전환보다는 해당 분야에 대해 작가가 갖고 있는 생생한 지식과 이에 대한 적절한 묘사가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스티븐 킹의 <셀 Cell>을 보자. 물론 좀비소설이다. 셀에서 독자가 얻게 되는 읽기의 즐거움이 단순히 장편이기에 갖는 작가의 넓은 사고범위때문이라 보이진 않는다. 당장 첫페이지부터 십여페이지까지만 잘라내 단편 분량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읽힌다 해도 위 공모전 수록작품 그 어느 작품보다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될텐데, 킹이 셀의 초반부부터 이끌어내는 흡입력은 핸드폰에 의해 인간의 뇌가 리부팅 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파격적인 전개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평범한 도시의 일상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에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을 완벽한 묘사와 그로 인해 독자가 느끼게 되는 개연성, 결국 이런 것들을 가능케하는 작가의 문장력이 전제되어 있고, 바로 그 지점이 출발점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도도 사피엔스>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오랜고민으로 가다듬었을 해당 분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있고, 이로 인해 작품은 개연성 내지 묘사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연성이 확보되기에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이 느끼게 되는 원초적인 과거의 쾌감이라는 섬뜩한 기운이 독자에게 전달될 여지가 큰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ZA 문학 공모전'의 당선작은 <도도 사피엔스>로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