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한건 알겠는데...? '결백 The Innocent'

사색거리들/책 | 2010. 8. 6. 18:15 | ㅇiㅇrrㄱi

스릴러 거장의 최신작
할런 코벤은 미국의 3대 미스터리 문학상으로 꼽히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최초로 모두 석권하였을만큼 전 세계적인 스릴러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 흔하게 추천받던 작가 중 하나였으니 그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골라내도 적어도 재미라는 면에 있어서는 명성만큼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할런 코벤 최고의 역작이란 극찬까지 얻고 있는 '결백'은 '당신은 그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라는 기묘한 문구를 첫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신은 그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
여기서 당신이라 함은, 스무살의 젊은 청년 '맷 헌터'를 의미한다. '결백'의 주인공인 '맷 헌터'가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함인지, 일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발하기까지의 초반부에서는 '그와 독자'를 '당신'이라 호칭하고 있다. 이후의 모든 내용은 3인칭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마지막 결론부에서는 다시 한번 '당신'을 언급하며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나서의 평화로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할런 코벤의 최신작 '결백'은 우발적인 사고로 살인을 하게 된 주인공이 출소후 만난 아내와 새로운 삶을 꿈꾸던 중 위험한 음모에 빠져들어가고 이를 극적으로 헤쳐나오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아내 올리비아의 성화에 마련한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 어느날 휴대폰으로 낯선 남성과 함께 있는 올리비아의 사진과 동영상이 전송된다. 출장중인 아내와는 연락이 두절되고, 불륜을 의심한 맷 헌터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아내의 비밀을 캐는 한편, 자신을 미행중인 정체불명 사나이의 신원을 확인해 낸다. 이후 모든 것들이 것잡을 수 없이 엉키면서 또 다른 살인누명을 쓰고 도망다니게 되는데... 올리비아의 고백으로 밝혀지는 그녀의 아픈 과거, 그 안에 실마리를 두고 있던 위험한 음모가 다시 시작된다.
복잡하게 엉켜들어가는 실타레
할런 코벤의 작품 대부분, 보통의 스릴러 대부분에서 그렇듯 주인공은 터무니없는 모함 내지 함정에 빠져 도저히 탈출구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 주변인물을 위주로한 또 다른 갈등구조가 더해져 전지전능한 신의 도움이라도 없다면 어느 누구라도 빠져나오지 못할 깊이로 미로의 규모가 한층 더해지게 된다.
 
결백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할런 코벤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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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에서도 예외는 없다. 우발적인 살인과 9년의 복역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맷 헌터를 중심으로 휴대폰으로 전송된 아내와 외간 남자의 사진에 대한 의문, 그를 미행하던 사나이의 정체, 맷이 죽인 스티브의 부모 맥그래스 부부와의 앙금, 살인이란 전력을 앉고 시작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감, 스트리퍼 키미를 찾아간 소녀의 정체, 소녀의 엄마이자 키미의 절친이었던 캔디의 죽음에 대한 비밀, 카톨릭 학교 안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수녀의 정체, 형수인 마샤와 맷의 미묘한 관계, 맥스라는 전직 형사의 의문의 죽음, 맷의 동창이자 수사관인 로렌과 엄마 사이의 갈등, 자취를 감춰버린 악덕업주 클라이드와 엠마의 소재 등등 외에도 수도 없는 과제들이 엉켜든다. 주인공 맷과 조력자들이 온몸을 던져 해결해야할 일종의 과제들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결되려나 내지 해결이 될 수 있을 문제인가 싶은 기대감과 걱정이 반반이다.
재미는 있지만... 너무 극적이어서 느끼게 되는 거부감
최초, 맷의 우발적인 살인부터 시작해 수도 없이 가지치기를 시작하는 각 사건과 감춰진 비밀들은 분명 어떤 연관성 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 연관성을 바탕으로 어느 하나의 가지라도 내버려두지 않고 작품이라는 나무 하나로 끌어안는 건 분명 작가가 보여주는 특출난 능력때문이다. 그야말로 어느 것 하나도 서로 연관되지 않은 건 분명 없다. 더욱 기가 막힌 건, 그 어느 것 하나도 일관된 흐름에서 놓치지 않고 살뜰히 챙겨내 갈등관계에서 해소시켜 버리는 조합의 능력인데... 마지막, 그간 등장한 '잔가지들의 정체 내지 의도'가 밝혀지는 과정은 굴곡의 정도가 심한 반전과 반전의 이어짐으로 나타난다. 

어느 순간 슬핏 웃음이 나와 버리는 건, 마치 수천개의 부품으로 분해되어 있는 전자제품을 누군가 완벽하게 재조립하는 과정을 목전에서 목격했을 때의 황망함과도 같다. 씁쓸한 웃음은 조립의 능력에 대한 경탄의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극적인 조립과정에 대한 거북함의 표현일 수도 있게 된다.

수습의 범위에서 아예 벗어나 있을성 싶은 것들까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자면 급박한 마무리의 휘몰아치기에 대한 거부감은 그렇다쳐도 지나치게 완벽한 수습국면이란게 왠지 너무하다라는 느낌까지도 들게 되니, 예를 들어 살인이란 일종의 원죄를 품게 된 주인공은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것 같던 살인의 회한마저 극적인 과정을 거쳐 냉큼 덜어내게 되고, 아버지의 자살에 대한 책망으로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가던 로렌의 고민 또한 어떤 깨달음을 거쳐 앙금을 떨쳐내는 식으로 '틈 하나 남겨두지 않는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결국,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원래의 위치로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을 보자니 기교가 대단하다라는 감탄스러움만큼이나 과하다는 거부감도 그만큼이 되어버린다.

결백한 건 분명 알겠는데... 왜 그리 사소해 보이는 것들까지 결백의 틀에 맞춰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거북스러움... 결백을 드러내는 과정이 건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