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레이첼 월링요원... '허수아비 The Scarecrow'

사색거리들/책 | 2010. 8. 7. 14:49 | ㅇiㅇrrㄱi

맥커보이 기자님보다 반가운 월링요원
비련(?)의 여인 레이첼 월링요원이 등장한다. 반갑기도 한편 아슬아슬한 인물이기도 한데, 코넬리의 전작인 '시인'에선 기자인 존 맥커보이, 후속인 '시인의 계곡'에선 은퇴경찰이자 탐정인 헤리 보슈와 함께 연쇄살인범 시인의 뒤를 좇다 잠자리까지 같이 하게 되는, FBI 수사관으로서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한직으로 내몰리는 안타까운 여인네다.

크라임 스릴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전작들의 충만한 재미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내심 못마땅했던 부분에는 월링요원의 안타까운 처지가 한몫을 했다. 맹활약하는 남성들만큼이나 FBI 프로파일러로서의 출중한 근성을 보여주지만 하룻밤 잠자리 이후 그네들과의 이별은 그렇다쳐도, 활약에 대한 보상은 커녕 한직으로 밀려나는 수모까지 당하고야 마는데... 월링에 대한 작가 코넬리의 홀대(?)가 공평치 못하다 느꼈었나 보다. 이번에는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과 기대...

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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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에 부합(?)한 요원은 결국 FBI 수사관직을 내놓게 되는 궁지에 몰리게 되니, 순간 여타 전작에서처럼 일회성 러브라인의 한 축으로 남고 마려나 싶은 안타까움은 더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맥커보이를 지원해주는 선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랑이든 일이든, 스스로의 문제를 잘 이겨내준다.
디지털 사회에 뒤쳐져가는 아날로그 세대에 대한 슬프고 정직한 연민이 드러난 작품
'시인'편에서의 활약으로 유명세를 치룬 잭 맥커보이는 LA타임즈로 스카웃되기까지 하는데,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엔 해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높은 연봉과 디지털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리타분함으로 인해 신입기자 쿡에게 업무 인수인계후 퇴직할 것을 통보받은 것이다. 얼마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된 자신의 손자가 무죄라는 항의전화를 받은 후 멋진 은퇴기사가 될 것임을 직감한 그는 유사사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돌연 신용카드와 휴대폰이 정지되고, 통장의 돈이 임의출금되는 등 알 수 없는 위협을 받게 되는데 결국 FBI 수사관 레이첼 월링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연쇄살인범의 흔적을 쫓게 된다.
 
혹, 제프리 디버의 '브로큰 윈도'를 읽었다면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 범인은 누군가의 삶이 기록된 RAW DATA에 대한 접근권한을 갖고 있는 자 그리고 해박한 지식으로 DATA를 조작해낼 수 있는 자, 결국 제프리 디버의 작품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나이'로 호칭되는 IT 종사자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상생활 태반을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디지털'이란 키워드가 갖는 위험성 또는 허점이 일련의 장르작가들에겐 위협적인 범행도구로서 다가가는 매력이란게 꽤나 큰 듯 싶은데... 앞으로도 '디지털에 대한 맹신'이란 일상들이 그들의 작품속에 종종 나타날 수 있을거라 쉽게 짐작해낼 수 있는 부분이다.
다 알고도 느끼는 재미
마지막 반전이 스릴러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겐 안타깝게도,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처음부터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점차 드러나기야 하지만 불우한 어린시절로 인한 살인의 동기도 그리고 범행과정 또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재미를 소홀히 하진 않는다.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저널리스트로 근무하며 퓰리처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LA타임즈의 범죄 담당 기자로 근무했던 작가의 전력에 걸맞게... 잭 맥커보이를 빌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신문사 데스크에서의 역동성을 고스란히 작품내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점차 디지털매체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기성언론사의 위기 또한 슬그머니 들추어내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연쇄살인범 웨슬리 카버가 잭 맥커보이를, 얼마뒤엔 레이첼 월링까지를 제거대상으로 설정하고부터 전개되는 일종의 경쟁구도 또한, 범인을 찾아나가는 추리의 묘미 못지 않게 속도감 내지 아슬아슬한 재미의 축이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제프리 디버의 '브로큰 윈도'의 경우, 디지털의 위협 자체는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로만 활용된다는 느낌이 강한데, '허수아비'의 등장인물들이 디지털에 대한 개개인의 적응력과 별개로 이를 커다란 흐름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인 엑셀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거나 필요할때 배우면 된다라는 식의 인식에서 알 수 있듯, 광범위한 일상의 대변이라 느끼기엔 모자란 나름대로의 선이란게 '브로큰 윈도'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일 듯. 

범죄행위 자체를 그 주체를 미리 드러냈음인가, 큰 모양새의 활극도 극적 반전도 보이질 않지만 그렇다고 지지부진할 기미조차 드러내지 않는 코넬리의 역량이 느껴지는 작품인데, 작가의 사실적인 체험이 고루 반영되어 있기 때문인지 독자와 작품간 거리폭을 크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레이첼의 귀환 자체가 무척이나 반갑고... 짧은 해후로 마무리되지 않고 차후를 기대할만한 로맨스로 이어진다는 것 또한 기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