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트린 댄스의 '잠자는 인형 The Sleeping Doll'

사색거리들/책 | 2010. 8. 19. 16:41 | ㅇiㅇrrㄱi

cult[kʌlt] 1. [주로 단수로] ~ (of sth) (생활 방식・태도・사상 등에 대한) 추종[숭배], 2. (기성 종교가 아닌 종교의) 광신적[사이비] 종교 집단3. (격식) (종교적인) 제례[의식]...
컬트(cult)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위와 같다. 컬트범죄라고 한다면 종교 또는 비종교적 목적으로 무리를 짓고, 생활방식과 태도, 사상 등을 공유하는 그 무리를 통해서 행하는 반사회적 행위 정도로 이해가 가능하다. 신앙과도 같은 공통의 의식을 주관하는 수장격 대표자가 있을테니, 특정 인물이 반사회적 행위를 전제로 동참할 대상들을 선별하는 과정 자체도 범죄의 한 단면이라 볼 수 있게 된다. 어린시절 화제가 되었던 '오대양 사건' 이나 근래의 'JMS' 사건 등을 떠올리면 될 듯.

잠자는인형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제프리 디버 (비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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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의 다니엘 펠 또한 컬트단체의 리더로, 상대의 상처를 보듬거나 마음의 흐름상태를 적절히 조율해내는데 있어 천재적인 능력의 보유자다. 자신의 패밀리를 이끌고 범죄를 저지르던 펠은 유망한 IT 사업가였던 크로이튼의 일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고, 장난감 사이에 잠들어 있다 펠의 눈에 띄지 않아 살아남은 크로이튼의 어린딸 테레사에겐 '잠자는 인형'이란 별명이 붙게 된다. 그로부터 8년 뒤, 또다른 범죄혐의로 조사를 받는 펠. 심문관은 동작학의 권위자로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란 별명을 가진 CBI 수사관 캐트린 댄스다. 팽팽한 심문이 이루어지고, 외부 조력자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 펠. 댄스는 전담팀의 리더가 되어 일주일간의 추격전을 이끄는 한편 잠적한 테레사를 수소문하는데...

캐트린 댄스는 작가인 제프리 디버가 창조해낸 그 유명 법의학자 링컨 라임에 이어 탄생한 인물로 동작학의 권위자다. 의도된 대화를 이끌고 상대의 미묘한 스트레스 반응, 예를 들어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손발의 위치를 달리하거나, 음조가 변한다거나 하는 등의 신체적 변화를 간파해 상대의 의중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디버의 전작 <콜드문>에서 링컨 라임의 조력자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댄스. <잠자는 인형>에서도 소량의 증거물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라임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근작 <브로큰 윈도>에서는 라임이 잠시 떠올리는 내용으로 댄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상호 조력하는 두 인물, 링컨 라임과 캐트린 댄스는 법의학과 동작학이라는 다소 어긋나보이는 각 분야의 권위자로 디버의 시리즈물을 이끌어가고 있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건, 제프리 디버가 가진 장점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일텐데. 꽤나 아귀가 잘 맞아들어가는 사건과 사건의 연결고리. 댄스 또한 라임이 미량의 증거물로 범인의 실체에 접근해가듯, 동작학 권위자로서의 재기(?)를 발휘해 탈옥수 펠의 심리를 예측하고 그의 뒤를 쫓게 된다. 전반적으로 허당치지 않고 제대로된 징검다리를 넘어가는 댄스의 추격과정은 위협이 되는 상대는 망설이지 않고 처단해버리는 펠의 악랄한 행위와 겹치면서 긴장감을 제대로 조성해내고 있다.

다만, 링컨 라임의 주 전공이 법의학. 그래서 그가 범인에게 접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사건이나 증거물들을 공통된 의미로 묶어주는 유일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 법의학적 지식이다. 때문에 크로마토그래피/챠트분석과 같은 과학적 분석방법은 되풀이 되고 반복되며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단초로 설정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댄스에게 있어 동작학은 마찬가지의 의미일텐데... 사실, 링컨라임 시리즈에서 법의학이 갖는 비중만큼에는 다소 모자란 감이 없지 않다.

초반부 펠과의 대화에서 보여지는 댄스의 동작학 관련 스킬이, 이후에도 그만큼의 크기로만 반복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서로에게 접근해가는 과정엔 동작학의 비중 만큼이나 일반적이라 할만한 수사기법의 비중 또한 적지 않아 보이기에, 댄스만이 가진 장점(?)이란게 두드러지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라임은 자신의 장기인 법의학 지식을 이후 시리즈에서도 여전히 발휘하겠지만, '댄스는 과연...?' 이란 걱정이 드는 부분. 더군다나 이번 편에선 상대가 사람의 심리를 조정하려드는 컬트리더였기에 댄스의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상대가 얼굴표정이나 대화기술 등은 고사하고 총부터 뽑아드는 역동적인 인물이라면 그땐 무얼 무기로 그들과 상대해 가려나...?

그리고, 등장인물의 심리가 주된 관찰대상이기 때문인지, 너무 많은 것들을 훑으려는 작가의 욕심 또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리얼 수사관님(극중 이름이 캘로그다 --;;)과 댄스 자신의 이야기 등등. 아마 다음 작품을 위한 포석으로 댄스라는 인물의 사생활을 구구절절 꺼내놓았을 수 있지만... 군더더기 같은 느낌이 없지는 않았고, 마지막의 이상스러운 반전(?)은... 차라리 없었더라면.

그냥 '단 한번의 반전'으로 펠과 댄스의 대립구도에 마침표를 찍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