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너머 밤의 향기... '언더베리의 마녀들 Nocturnes'

사색거리들/책 | 2010. 8. 26. 16:03 | ㅇiㅇrrㄱi

모든 것이 조용하기만 하던 밤을 떠올린다. 저 아래 어둠 속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순간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문 건너편에 몸을 감추었다 와락 달려드는 딸아이의 반가운 몸짓에도 순간 내려앉는 내장의 무게감마저 느끼는 심약한 나이지만 어둠의 이미지가 일으키는 매혹엔 고개를 돌려버리기 힘든 무언가가 여전함을 안다.

머릿니를 잡겠다고 모기약을 뿌려달라던 초등학교 친구... 녀석의 집에서 열어본 하드커버 책 한권 속에는 악령으로부터 밤새 몸을 지키려는 누군가의 사투가 있었고, 기괴한 날개를 달고 밤하늘을 부유하는 요괴와 두터운 지하실 벽 속에서 광기를 토해내는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 어린시절부터 고래했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끌림.

그건 마치... 멀리서부터 무성해지는 재래식 화장실의 분뇨 냄새를 맡을 때와 같다. 코끝에서부터 맡아지는 고약한 냄새는 검은 빛을 발하는 화장실 창문 하나를 조만간 목전에 두게 될 것임에 다름 아니지만, 결국엔 조금 더 다가서고야 마는... 되돌릴 때를 놓쳐 묵직해진 발걸음과도 같다. 진득해져가는 분뇨냄새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기까지 그 어느 순간에도, 창문 너머의 그림자처럼 더 진한 어둠을 들여다볼 용기는 차마 끌어내지 못한다. 그 안에는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왔을 무언가가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야 마는데... 오렌지 빛 안광이나 극단적으로 탈색된 빛의 손가락 몇 개가 이쪽을 향해 있을 거라 믿어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분뇨 냄새가 평범한 저녁공기 아래로 희석되는 지점... 드디어 찾아오는 안도감 속엔 '들여다보지 못한 창문 너머로 언젠가는 눈길을 던지리라... 나를 기다리는 그 어떤 미지의 존재 또한 없을 것이라'는 쓴 되새김질이 주렁주렁이다. 하지만 결코 그러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다시 다가가기 위한 어떤 시도의 매혹 또한 여전할 것임을 알아차리는 모순이 있다.
  
언더베리의 마녀들
카테고리 소설 > 장르소설 > 추리소설
지은이 존 코널리 (오픈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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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널리의 <언더베리의 마녀들> 속엔, 어둠 속 재래식 화장실 창문 너머 속에서나 어울릴 무수히도 많은 이미지... 뱀파이어나 마녀, 알 수 없는 목소리 심지어 긴 머리칼 그녀의 꿈틀거림마저 담겨 있다.
신화가 있고, 현실이란 게 있다. 하나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고, 하나는 우리가 숨기는 것이다.
<얼킹>, <새로운 딸>, <언더베리의 마녀들>, <반사되는 눈:찰리 파커 소품집> 등 16개의 중단편과 부록으로 3개의 단편이 실린 존 코널리의 중단편집은 '공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밤 선풍기 바람의 서늘함과 함께 하면 비교적 근사한 조합(?)을 이룰만한 내용들로 비록 동양적이지 않은 서구의 생소함이 거슬리기야 하겠지만,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음산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사뭇 경외스럽기까지 한편이니, 에드거 앨런 포의 미스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든지 스티븐 킹에 견줄 만하다는 언론매체의 헌사가 그리 과장되지만은 않은 듯싶어 보인다.

'', '어둠 속'... '그 안의 무엇'이 소재거리이긴 하지만, 존 코널리는 일관된 공포와 잔혹감 만을 독자에게 강요하진 않는데... <흡혈귀 미스 프롬>편에서 남자들이란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피조물들이라고 되뇌는 흡혈귀 프롬양의 한 마디에 씁쓸히 웃어버리게 되는 식의 시니컬한 유머 또한 곳곳에서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코널리가 스릴러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찰리 파커의 활약상이 담긴 <반사되는 눈>편에서는 사설탐정의 범인 찾기 과정을 주된 흐름으로 내세우는 한편 살인범의 정령이 갇혀버린 거울이란 비현실적 소재를 배치해 '신화'와 '현실'의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거나 뒤섞어버린다, 독자가 느끼는 것이 결국 '공포'일지 몰라도 결론으로서의 '공포'에 다가서기 위해 여러 경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신화와 우리가 숨기는 현실...?
신화 속에서 창조된 괴물들과, 괴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헤쳐나 갈 교훈이 있기를 희망하면서도, 정작 신화의 사소한 일부라도 현실 속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건... 공포와 마주해 인간이 갖게 되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대한 부연이기도 하다. 어둠이 선사하는 이미지로부터 창조하고 가공하며 쉽게 주절거리는 재래식 화장실 내부의 음산한 무언가가 있겠지만, 단순히 어둠에 갇혀버린 화장실 창문 너머를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를 거두게 만드는 데에는 그 미지의 존재가 현실 속으로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는 두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싶은 것들이지만 또 하나의 신화로 가공되기도 하고, 방문 너머에서 나를 놀래기 위해 숨어 있는 딸아이처럼 현실의 어느 부분으로 와락 안겨들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늘 숨을 가다듬고 있어야 한다. 코널리는 두려움으로부터의 교훈... 공포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쾌감 탓으로 거리를 두고 싶어도 마냥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인간의 미약한 정서를 두드리며, 두려움의 존재들이 우리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덤덤히 보여주고 있다.

아직 국내에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인물들의 대화를 간결하게 이끌어가는 한편 그네들이 느끼는 심적인 동요감에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을 지경으로 사실적인 분위기를 유지해내는 작가의 능력 탓에 그 주제가 '공포'가 아니더라도 관심가질 작가목록에 이름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포우가 그려내는 기괴한 고양이 울음소리에 끌렸다거나 가끔 머리를 감다가도 섬뜩한 기운에 거품 낀 눈을 억지로라도 뜨고 위를 올려다봐야 하거나... 아파트 옥상 위 피뢰침이 순간 기괴한 모양으로 변해 손을 흔드는 착시에 몸을 떨었다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보다 몇 배로 극심한 두려움에 한발, 한팔 슬쩍 담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언더베리의 마녀들> 첫 장을 넘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