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일어나세요! '브로큰 윈도 The Broken Window'

사색거리들/책 | 2010. 7. 22. 12:32 | ㅇiㅇrrㄱi

누군가 '소설좀 추천해주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너무나 막연한 질문에 뭘 골라줘야 하나 고민하다, 속도감 있고 재미있으면 좋겠다라는 단서에 망설이지 않고 영미문학서가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주저않코 골라준 책이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본 컬렉터>, <코핀 댄서>, <곤충 소년>, <돌원숭이>, <사라진 마술사>, <12번째 카드>, <콜드 문> 그리고 최근작인 <브로큰 윈도>까지 총 8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사실, 스릴러 라는 생소한 장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어느 분이 제프리 디버라는 작가의 작품을 추천해준 일이 계기가 되었으니 좋건 싫건 간에, 제프리 디버는 내 근래의 책읽기에 있어 큰 방향을 잡아 준 작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이 갖는 특징 중 몇가지를 보자면... 우선, 속도감이다. 보통 사오백페이지를 간단히 넘기는 분량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으니, 그만큼 다양한 소재거리로 사건을 긴박하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다음으로 철저한 개연성. 링컨이 사랑한다는(?) 먼지 하나마저도 크로마토그래피나 챠트를 활용한 현장검증과 분석에 의해 증거화 되곤 하니, 간혹 행운섞이 우연이 겹치긴 해도 철저한 논리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곤 한다.

또 꼽을 수 있는게 스케일반전 정도. 살인사건도 그냥 치정에 의한 것 따위는 없다. 아마 움직일 수 없는 링컨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머리든 발로든 움직이는 총 거리를 따져보면 마라톤 풀코스는 몇 십번 정도 뛰었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의 반경이 큰 편이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범인이었다거나 범인과 링컨 진영(?)간에 벌어지는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의도를 갖는다는 식의 반전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에 있어서도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어, 제프리 디버를 '반전의 대마왕' 정도로 호칭해도 되지 않을까도 싶을 정도. 

브로큰 윈도
카테고리 소설 > 장르소설 > 추리소설
지은이 제프리 디버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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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윈도> 또한 이런 장점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편. 이야기는 살인청부업자 시계공(콜드 문에 첫 등장한 호적수로, 유일하게 링컨의 손아귀를 빠져나간 인물)을 추적하던 링컨이 한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그의 사촌 아서라임이 강간살인죄로 수감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명확한 증거물이 조작된게 아닐까 의심하는 링컨은 유사한 유형의 사건들이 있었음을 알아차리고 진범의 행적을 밟아가기 시작한다. 용의자 522는 전세계의 인간 데이터베이스를 넘나들며 피해자를 고르고 가해자 또한 조작해낼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나이'로 정보화시대의 '데이터에 대한 맹신'과 정신병적 '수집광'을 충족키 위한 광기를 드러낸다. 링컨은 데이터 마이닝 회사인 SSD의 이너서클이란 DB가 담고 있는 인간 정보가 범행에 활용되었음을 간파하고, 범인 추격에 나서게 된다. 

제프리 디버의 작품엔 그의 장점들이 십분 발휘되는 유사한 흐름이 있곤 한데, <콜드문> 이나 <소녀의 무덤>, <남겨진 자들> 그리고 <브로큰 윈도>에 이르면서부터는 약간은 색다른 변화가 느껴진다. 이전 작에 비해, 긴박한 사건전개와 반전의 묘미를 살짝 덜어낸 대신, 등장인물의 시선 즉 심리상태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일종의 메세지(작가가 말하고픈)를 심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이다. <브로큰 윈도>에서도 예전의 링컨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상황들, 예를 들어 범인이 희희락락 일을 벌여도 결국 링컨의 손아귀에 있게 된다는 식의 극적 전개에 있어서는 꽤나 무뎌져 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속수무책 범인에게 농락당하기까지 한다. 더나아가 링컨의 애제자이자 연인인 아멜리아 색스는 자력에 의해서도 링컨의 논리적 대응에서도 아닌... 제 3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식이다.

상대적인 느슨함 뒤에는... 정보화시대의 'DATA' 란 것이, 사실 그대로의 'FACT'로 존재하기 보다는 'FICTION'으로 충분히 왜곡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무서운 경고를 담아내고 있다. 오프라인적인 인간성보다 온라인적인 개인의 이력과 행적이 대접(?)받고 있는 근래의 생활상을 고려해보건데, 과장섞인 허구라 웃어버리기 보다는, 어쩌면...? 실현되고도 남을 미래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내가 살인자로 몰린다면...?'이란 전제하에서의 간접체험만으로도 수긍할 부분이 많게 된다.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된 'DATA'는 디지털의 장점 그대로 사실 그대로라는 논리적 장점 보다는, 'NOISE'가 가득한 'INACCRUACY'의 무기로서 예리한 날을 들이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누구에게나...!

마지막으로... 시리즈가 계속되며, 링컨의 건강회복(?)에 일말의 기대를 심어주는 대목들이 종종 언급되는데. 언젠가는 벌떡 일어나, 예의 격자방식의 현장검증을 실제 시연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아끼던 카마로를 잃어버린 아멜리아의 관절염도... 다음편부터는 차도가 있기를...!!!

그리고 그 멋진(?) 살인청부업자 코핀댄서도 명을 달리했는데, 시계공이란 놈도 어여 잡히기를... 아마도 다음편은 링컨과 시계공의 마지막 대결이 그려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