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소품 모음집 '교통경찰의 밤'

사색거리들/책 | 2010. 6. 23. 10:06 | ㅇiㅇrrㄱi

이 책이 간행된 것은 약 10년 전 일이다.  
'10년만의 후기'란 제목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덤덤히 데뷔 초기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데, 이 후기를 작성한 시점이 2001년이다. 그러니 이 단편 모음집에 실린 글이 탄생(?)한 시점은 근 20여년전이 되는 셈이다. '공포의 향연'이니 뭐니 하는 온갖 찬사로 덧칠된... 이 20여년도 더 된, '교통경찰의 밤'이란 작품은 어떤 내용일까...

교통경찰의 밤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바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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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은 교통사고와 관련된 내용의 단편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 정황의 흐름과 소리를 매칭시키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앞못보는 소녀가 사고의 진위를 밝혀낸다는 '천사의 귀', 트럭운전자의 전복사고를 조사하다 교통법규의 맹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분리대', 장난삼아 초보운전자를 위협하는 일이 그들에겐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위험한 초보운전', 사소한 불법주차로 인해 한 가족의 삶 자체가 뒤틀려버릴 수 있다는 '불법주차', 창밖으로 무심코 버린 빈캔 하나로 인해 완전범죄를 꿈꾸는 한 남자와 행복한 결혼을 앞둔 남녀가 겪게 되는 치명적인 이야기를 담은 '버리지 마세요', 교통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씁쓸한 비밀을 밝혀낸다는 '거울 속에서' 등 6편의 이야기에는 교통사고에서 찾아낸 소재를 다룬다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소재의 친숙함
불법주차, 위협운전, 무단투기, 사고위장 및 가해자/피해자간의 시시비비 등등 태반의 소재거리는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직·간접 체험했을 일상적인 소재들로, 그안에서 오고가는 인간들의 감정이란 것도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르지 않은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다. 친숙한 소재와 보편적인 정서라는 이 두가지 무기만으로도 '교통경찰의 밤'이 갖는 재미는 쏠쏠할 수 있다. 

경찰(교통경찰)이 등장해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가거나 또는 조연 차원에서 거들고 있는 장면이 많을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 본연의 작풍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반전에 다름없을 전환의 기점도 여럿 나타나고, 음모가 드러나며, 결국 범인/악(惡)이 처단받는 권선징악적 요소도 여전하고, 다소 애틋한 감정을 자아내려는 인간애(人間愛)적 시선도 마찬가지다. 
 
다만, 책 여기저기서 베어나는 분위기... '말라붙은 핏빛'으로 치장된 표지와 공포 운운하는 소개글과는 달리... 그저 소품일 따름이니 작가에게 관심있을 독자들에겐, 현재의 필력과 대비한 초기치가 어땠을지 짐작케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력적일지 몰라도, 즉 작가/작품에 대한 '이력조사 차원'에서는 의미있겠지만, 20여년도 더 되어버린 세월탓인지 그다지 긴박하지도, 발상이 신선하지도 않은데다, 절대 공포스럽지도 않으니, 향연이라는 찬사어구엔 비웃음을 날릴 수 밖에...

계속 중첩되는 두 이미지 탓에 더한데... 중고등학교 시절 문고판으로 읽었던 여타 괴담모음집에 비해 그닥 나을 게 없고, 언젠가 읽었던 국내의 젊은 공포소설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시리즈물에 비해서는 더더군다나 나을게 없으니, 순전히 '핏빛 공포'를 기준으로 하자면, 읽기를 물리는게 마땅한 수준이다. 표지나 소개글에 현혹되지 말자는 말...!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불현듯, 눈에 들어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 손을 대곤 있지만, 그를 비롯한 일본작가들이 보여주는 국내 도서시장에서의 선전(?)은 여전히 의아스럽기만 하다. 도서관 대출순위의 상위권을 휩쓸어 버리고, 늘 대출 중이니 한참이나 순서를 기다려야 읽어 볼 수 있는 경우가 태반인데다, 여러 출판사에서 맺힌 걸 풀어버리 듯 줄줄이 신간을 소개해내고... 입수일 대비 훼손정도가 가장 급격하게 심해지는 현장(?)의 상황만을 보더라도 열광하는 젊은 독자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재미있나...?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열풍이 유지될 만큼...? 글쎄... 더더군다나 20여년도 전에 출판된 이런 소품집까지 발굴해 소개해야할 만큼이라는데 대해선 더욱더 회의적.

한 작가의 모든 저작물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는 건, 그 작가에 열광하는 독자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인 출판사의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인기의 단면을 이용한 각 출판사의 상술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난 받을 일은 결코 아니지만, 여타 외국에 비해 장르소설이란 분야가 극히 위축되어 있는 국내 시장의 상황내에는, 관련 작가에 대한 발굴이나 지원, 장기적 투자에 소홀한 국내 출판계의 구조라는게 연결되어 있으니 마냥 편하게 바라볼 수만 없게 된다.

태생적인 반일감정 탓에 드는 거부감도 일부 있을테고, 별 생각없어야 하고, 잘 읽히면서 동시에 재미있어야 한다는 식의 간편함에 먼저 관심을 갖는 요즘의 얄팍한 독서취향에 대한 반발심일 수도 있을테지만... 아무튼... 마냥 좋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