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그리고 지독스런 씁쓸함... '아메리칸 사이코 American Psycho'

사색거리들/책 | 2010. 5. 4. 18:07 | ㅇiㅇrrㄱi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동명원작으로, 영화에서는 잘생긴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주인공 페트릭 베이트먼의 역을 분했다. 영화를 본지 10여년이 다 되어 가는지라 잔혹한 살인극 정도였다는 어렴풋한 기억 외에는 그다지 떠오르는 바가 없었고, 불현듯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책 읽기를 시작했다기 보다는 분명 누군가의 장난이 분명해보이는 표지 앞뒤로 촌스럽게 붙어있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 스티커가 우연히 눈길을 끌었을 뿐이니... 누가 이런 유치한 장난을 했을까...

책의 몇 페이지쯤이야 예사로 오려내 자기소유화 하는 무질서가 일상적인 분위기이다 보니, 또 근래의 소설 중 이와 유사한 경고 스티커를 붙이고 출간 된 경우도 거의 본적 없는 듯 해 장난질이라 속단했고, 망설임 없이 스티커 제거 작업에 돌입... 참으로 단단히도 붙였네... 투덜거리다 포기. 그냥 읽기에 매진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누군가의 장난질이 아닌 실제 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을 받아서 경고스티커가 부착되고 밀봉상태에서 판매되었단다... 판매금지의 수난까지 겪었다 하니... 왜?)

아메리칸 사이코(상)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브렛 이스턴 엘리스 (황금가지, 2009년)
상세보기

아메리칸 사이코(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브렛 이스턴 엘리스 (황금가지, 2009년)
상세보기

주인공 페트릭 베이트먼이 애인 애벌린네를 찾아가는 광경을 그린 초반부서부터의 어수선함은 상당하다. 의미 없는 대화가 나열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그가 자위 중 떠올리는 캘빈클라인 광고만큼이나 무의미한 관념들이 열거된다. 의미·줄거리 따라잡기 방식의 책읽기로는 읽었던 부분을 두서없이 돌아봐야할 지경이다.

뉴욕의 상류층, 여피족(yuppie)인 27살의 '나', 베이트먼의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가치가 물질로 표식화되는 당시의, 그리고 작금에도 만연한 물질주의 세태를 너무도 세밀하게 늘어놓는다.

독자는 '나'의 방과 거실이 어떤 초호화 명품기기들로 치장되어 있으며, 그 기기들은 어떤 스펙과 우수함을 갖는지, 어떤 메이커의 팩으로 피부를 진정하고, 어떤 치실과 칫솔로 이를 단장하는지, 한끼 식사비로 수백 달러는 예사인 고급레스토랑(반드시 Zagat에 등재된) 예약에 열 올리는 모습과 식사하는 광경, 그 와중에 나누는 무의미한 잡담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람들이란 그저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의 브랜드, 스타일링의 조화로움이 갖는 가치와 동격이다. '내'가 자랑스럽게 꺼내놓은 새 명함의 멋스러움에 만족스러워하다, 더욱 세련된 친구의 명함에 좌절 내지 분노하는 게, 그리고 몸짱인 여성에 대한 상스러운 잠자리 이야기가 그네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전부이니, 언스타일리쉬하고, 돈이 없거나, 무능력하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모든 가치를 상실 당했음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베이트먼의 모든 일상도, 주변 인물도, 그들과 나누는 대화조차에서도 감흥 없는 물질이 우선이다.
그는 카날리 밀라노제 아마포 양복에 이케 베아르 면 셔츠, 빌 블라스 실크 넥타이, 브룩스 브라더스의 캡토 가죽 구두 차림이다. 나는 가벼운 느낌의 아마포 양복에 주름 잡힌 바지와 면 셔츠에 물방울무늬 실크 넥타이 차림으로 모두 발렌티노 쿠튀르 제품이다. 해리스에 들어서자 맨 앞쪽 자리에 앉은 데이비드 밴 패튼과 크레이그 맥더모트가 눈에 띈다. 밴 패튼은 마리오 발렌티노의 안주름 잡은 양모와 실크 혼방 소재의 바지에 지트먼 브라더스의 면 셔츠에 빌 블라스의 실크 소재 물방울무늬 넥타이와 브룩스 브라더스 가죽 구두 차림이다. 맥더모트는 아마포 소재의 더블 브레스트 슈트, 실크 소재의 스포츠 코트, 단추로 앞을 여미는 양모와 실크 혼방 소재의 바지, 바질레의 면과 아마포 소재에다 단추로 채우는 셔츠, 조지프 아부드의 실크 넥타이, 수전 베니스 워렌 에드워즈의 타조 가죽 로퍼 차림이다....
이런 세심하고 구체적인 명품브랜드에 대한 소개는, 베이트먼, 그가 속한 세대가 물들어 있는 물질주의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베이트먼의 모든 가치판단엔 저런 시선이 전제되어 있기에, <아메리칸 사이코>의 시작과 끝 사이 쉴새도 없이 반복되는 대목 중의 하나다. 물질만으로 채워질리 없을 공허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반증이랄까, 적당히 즐기는 호사로움의 한 방편이 아닌 삶의 전부로 작용하는 이런 외양의 뒷 그늘을 베이트먼은 가학적인 섹스, 살인 그리고 식인으로 묘사되는 광기분열로 채워나간다. 독자 입장에선, 당혹스럽게도... 이런 광기로 가득한 분열의 과정에서조차 세심한 묘사에 주저없는 작가의 서술에, 그 광경을 눈 너머로 조망할뿐인 입장에서조차 참담함이란게 그 경계를 모를 지경에 이른다.

사실... 대부분의 공포영화, 특히나 잔혹한 묘사로 정평이 난 슬래셔(Slasher) 풍 영화들을 참 많이도 섭렵했다 싶었으니, 텍스트로 묘사되는 잔혹함이란게 영상물에 비할까 했는데... 1권의 후반부 돌연히 노숙자의 눈을 찔러대고, 개의 복부를 가르더니,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람(특히 여성)을 세밀히 절단해 내는데... 입술을 물어뜯고, 뇌를 파먹질 않나, 시간(屍奸)은 예사... 시청각 영상물이 아닌 텍스트가 선사(?)할 수 있는 잔혹함의 끝이 이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나버린 단락을 다시 거스른다는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잔혹하다. 잔혹하디 잔혹해서, 무미건조하게 살인을 행하는 베이트먼을 따라 가다보면, 혀 밑으로 잔뜩 고인 침을 알아챈다. 숨죽이고 멀거니 읽다보니 침 한번 삼키는 동작조차 부담스러웠을지도, 끝 간 데 없이 고약해져 가는 장면의 나열에 쓴물이 고이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게다. 실제 토악질이 느껴지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이니, 19세 미만 구독 불가가 아닌 <19세 미만과 더불어 건전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평생 구독 불가 / 본 작품이 갖는 문학적 교훈과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읽는 중이나 그 후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음>이라는 긴 경고 스티커로 교체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런 세밀한 묘사는 나, 즉 베이트먼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독자에게 조금 더 직접적으로 와 닿고, 달리 보자면 베이트먼의 황폐해지는 정신세계를 조망하기엔 최적의 요건이 되기도 한다. 그저 살인을 했다 라는 식이라면 냉혈한의 살인행각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살인을 해나가면서 벌이게 되는 너무도 친절한 신체훼손의 엽기적 행위에 같은 시선 즉 같은 느낌으로 동참하다보니, 베이트먼과 읽는 나는 일체화 되고 그를 단순한 살인자로 관찰하기 보다는, 그의 진정한 광기에 빠져들 테니까 말이다.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로 제반 가치를 평가하는 물질주의·배금주의 생활상은 비단 과거 1980년대 물 건너 미국에서의 일로 매듭지어지지 않고, 현재의 주변에서 혹은 내 자신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음을, 그 잔혹한 살육행위 가운데에서 적잖이 동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성을 위한 배려를 감안한다하더라도 평범人 대다수는 읽던 책을 덮어버릴 충동에 무척이나 시달릴지 모를 일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의 실재라는 게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돌연, 나가 아닌 베이트먼으로, 그리고 다시 나로 서술시점이 오락가락하면서, 잔혹한 살육극의 피해자였던 인물이 무탈히 살아있다는 게 밝혀지면서부터 격한 의구심이 치민다. 사실 100여건이 넘는 살인의 규모(?)를 감안할때 단 한 차례도 체포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허무맹랑함에서부터 진즉 눈치 챌 수도 있었을 게다. 경찰부터 시작해서 맞닥뜨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총알을 박아버리고도 태평스럽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태평스러움이란 게 가능이나 한 세상인가...?

앞서의 모든 것들이 한낱 망상이었을까? 정신분열증이 악화되어가는 병자의 참혹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있겠지만, 이 대목에서조차 굳이 이해를 목적으로 그간의 행적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없는 건, 이미 나, 베이트먼이 미쳐가는 수순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기에, 강박증과 같은 시선 속에선 온전한 인간의 형상으로 받아들여질 상대를 찾기란 것에 불가능하듯, 자아의 황폐해져감에도 끝간 데가 없을 것임을 동감하고 있기에... 실재였든 허상이였든 중요할 이유란 건 하나 없는 것이다.

숨 쉴 곳 없이 막혀버린 사각의 방, 정결한 하얀색 벽지로 사방이 도배된 그런 공간에 갇혀 살아가는 나에겐 출구란 애초부터 없었을 바램이고... 온통 벽일 뿐이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한 번 숨이 턱하니 막힌다. 여기는 출구가 아닙니다는 곧 어느 곳도 출구가 될 수 없음을, 출구란 애당초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우울한 증표인 것이다. 광기, 무미건조, 씁쓸함, 잔혹, 끔찍, 미쳐감, 분열, 쓴물, 울렁거림과 속쓰림, 토악질, 돈과 자본주의, 살인, 거짓, 가식, 동정, 환상과 망상, 외면, 허기와 외로움, 식욕, 지독함, 지독함, 지독함... 같이 따라오는 단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