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날아오르고 싶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MR MERCEDES'

사색거리들/책 | 2016. 7. 21. 15:55 | ㅇiㅇrrㄱi

잠자리가 허공을 메우기 시작했다

  돌계단에 가까워지자, 빠른 날갯짓의 잠자리가 한두 마리씩 날아오른다. 순식간에 그 수가 불더니만... 어느덧 시야 너머 하늘은 수많은 잠자리 형상들이 만들어 낸 짧은 궤적으로 추상화 한 점이 그려진다. 책을 잡고 있던 오른 손을 하늘 위로 뻗어서는 궤적 사이로 휘휘 젖는다. 뭐랄까...? 고만고만하게 생긴 그네들의 자유로운 비행이 부럽기도 했거니와 그 중 어느 한 개체와 우연이라도 닿기만 한다면 둥둥 낮은 하늘을 같이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발칙한 상상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허기를 채우려고 들 저러는 건지, 짝짓기에 혈안이 된 상황인지 알 턱은 없으나, 부럽기는 하다. 나도 날고 싶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국내도서
저자 : 스티븐 킹(Stephen King) / 이은선역
출판 : 황금가지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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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책을 손에 잡아보자 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당연히 '스티븐 킹'... 열혈 팬임을 자처하던 시기에는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신간이었는데, 책을 떠나 있던 사이 앞으로 몇 주 정도는 버틸 정도의 소설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으셨더라. 참으로 뜻밖인게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추리물이라니... 마이클 코넬리가 은퇴한 보스턴 경찰 해리 보슈를 주인공으로 크라임 스릴러를 만들어 냈듯, 스티븐 킹도 호지스라는 은퇴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보슈 보다 호지스가 훨씬 연배 높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매 사건마다 만나게 될 연인과의 잠자리가 몹시도 부담스럽다는 차이가 있을 뿐.  

형사반장에서 갓 퇴직한 호지스는 늘 자살을 떠올리는 일상을 살고 있다. 입속에 힘들게 밀어 넣곤 하는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길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피폐한 노년이다.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조롱 가득한 스마일마크가 붙어 있는 그 편지의 발신자는 자칭 '미스터 메르세데스'라는 인물이다. 훔친 메르세데스 차량으로 사람들을 치어 아기를 비롯해 8명의 희생을 내고 도주한 범인! 희대의 살인마인 나조차 검거하지 못한 주제에 명예로운 은퇴라고 할 수 있냐는 신랄한 비웃음에 호지스는 단신으로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한다.

  추리물을 표방하곤 있으나 숨겨진 범인과 뒤통수를 치는 반전 따위는 없다. 하나의 사건과 사건 사이, 한 명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수십에서 수백여 장으로 메꾸고도 남을만한 작가 특유의 경륜을 과신했나보다. 약 600여 페이지를 통해, 주인공과 범인이 맞닥뜨리는 과정을 느릿느릿 보여주고 있다. 은퇴한 경찰이 왜 총부리를 자신의 입속에 밀어 넣는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범인이 왜 저 하늘 높이 닿기 위해 다른 이들을 향해 차로 돌진해야했는지... 소소한 공감 속에 이사람 저 사람의 시선과 삶을 따라가게 될 뿐이다.

 

  그런데 그 소소함이 아쉽다. 그의 작품 <쿠조, CUZO>에서 보이듯 개 한 마리도 어떤 고통과 고뇌 속에 광견(狂犬)으로 바뀌어 가는지를 그려내는 세밀함이 작가의 매력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덜 한 감이 크다. 여러 밤을 함께 보낸 연인의 덜컥거리는 팔 덩어리를 목도하고도 적당한 슬픔과, 적당한 분노, 알맞은 수준의 앙갚음만이 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동화되는 대상은 개성 뚜렷한 살인마 브래디다. 동생의 목에 걸린 사과 조각 하나로 피폐해진 그의 삶이 안타깝고, 두 눈 감지 못하고 침대위에 누워있어야 했던 하츠필드 부인의 부패가 몹시도 고약하게 느껴지는 연유이기도 하다.

 

  브래디는 왜? 그런 방식으로 하늘에 닿고 싶었을까? 누구나 살다보면... 물리적인 주변 환경이든 내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내밀한 상상이든... 스스로는 저지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치는 그런 게 있을테다.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싶어도 그러질 못해 안달 난 짝사랑 남정네들의 연정처럼 말이야. 매일 밤 비틀거릴 때까지 뛰어도 출차할 기미 없는 흰색 차처럼 말이야.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받아들여도, 정리됐다 싶지만 다시 코앞으로 다가오니, 너희들은 너희들 방식대로 다가오라 하고, 나는 저 높은 곳으로 훌훌 털고 가버리고 싶다는 충동쯤이야 일상적이게 된다. 실행에 옮기고 그러지 못하고의 차이가 있겠지. 그는 실행에 옮긴 것이다.

언젠가는 날아오를테다...

  돌계단 바로 앞에서... 내딤 발을 높이 들었다 아래 계단으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계단 한개, 계단 두개와 세개, 네개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갈 뿐이다. 날지 못하는 신세의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내려가는 신세의 나는 참으로 처량 맞고 기운 없다. 하지만, 두 눈 감기 전까진 비행을 꿈 꿀 테다. 심지어 잠자리조차 부러운 이유다. 누구나가 그럴 테다.

 

  아마, 브래디도 단지 날고 싶었을 뿐일 거야. 타인들의 희생이 필요했을 뿐...

 

  그렇게 생각하고야 만다.

 

 

 

삶의 어느 때와 화해하는 저녁 만찬 '바베트의 만찬 Anecdotes of Destiny'

사색거리들/책 | 2016. 7. 16. 23:07 | ㅇiㅇrrㄱi

누구에게나 한때의 아픈 기억들이 있기 마련이다

  허름한 뒷 골목 비디오가게에서 생소할밖에 없는 덴마크 영화 한편을 고른 그날은 지나치다싶게 추운 겨울날이었다. 내 안 어느 구석이 추위 때문이 아닌 냉기로 굳게 얼어있었던 시기였다. 어두움만을 좇아 다니던 그때의 마음이란 게 어떤 저장소에 고대로 남아있다면 물기에 짓뭉개져 찢겨진 담배꽁초마냥 시커먼 진액으로 범벅돼 더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을까... 고작 이 정도 회상만으로도 유쾌할 수 없는 부러 죽여 버린 삶의 한때였다.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일요일 아침. 급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이끌려 아내가 비척거리며 일어선 날도 추위가 매서운 겨울날이었다. 하나뿐인 형부의 급작스런 절명(絶命)을 전해 듣고 눈과 목으로 곡하던 거실 안으로는 낮은 햇살 한 가닥이 해끔하게 걸려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두 아이는 고작 초등학생만의 어리둥절한 낯빛을 한 채 누님의 양 편으로 아프게 덜럭거렸고,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반쯤 풀어헤쳐 검측한 넥타이가 무겁게 흔들리던 삶의 한때였다. 

바베트의 만찬
국내도서
저자 :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 / 추미옥역
출판 : 문학동네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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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검은 넥타이마냥 아프게 매달고 있는 기억이 있다. 짓뭉개진 담배꽁초마냥 불편하게 바라봐야할 심정이란 것도 있다. 최고의 열정을 다해 살았고 그만큼 돌려받았노라 뿌듯하게 고백할 시간이 있듯... 늘상 주어지는 선택의 순간 이후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을까 문득 회한하거나 강요된 상처 따위에 아파할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아픈 삶이 있기 마련이어서 언젠가는 그렇게 우울한 편린들이 서로 따뜻하게 화해할 때를 여전히 기다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1988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이었던 영화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은 모든 걸 잃었다 자책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무엇이 그리 결여되어 있었는지를 알려주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원작인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 Anecdotes of Destiny>에는 지난 삶의 어딘가로 부터 비롯되었을 불안과 두려움... 부들부들한 떨림마저 오롯이 감싸 안아 버릴 포근한 시선과 더불어 예술·예술가의 가치에 대한 남다른 울림 또한 담겨 있다.

눈이 몹시도 날리던 노르웨이의 바닷가 외딴 마을, 멀리 파리에서 도망 온 바베트 에르상이라는 여성이 수척한 얼굴로 나타나고, 신실한 신앙 하나만으로 늙어버린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가 그녀를 거둔다. 가정부로 기거하던 바베트는 돌아가신 자매의 아버지이자 마을에서 추앙받던 목사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만찬을 제의하고, 복권에서 당첨된 1만 프랑을 비용으로 사용하리라 간절히 요청하는데... 멀리서 들여오는 만찬의 재료는 이들 자매의 눈엔 생경함을 넘어서 마녀의 술책으로 여겨질 만큼 두려움의 대상들이다. 마을 신자들과 두려움을 공유하는 자매... 삶의 그늘에 떨어하는 프랑스의 장군 로렌스 로벤히엘름까지 초대한 자리에서 드디어 그녀의 만찬이 시작된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청교도적 삶의 방식과 사상에 길들여진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 그리고 크게 다르지 않을 마을 신자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죄와 그로 인한 가책, 타인에게 받은 상처 등으로 인해 냉기서린 삶의 와중에 놓여 있다. 다른 편으로... 꿈과 화려함만을 좇았기에 성취한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잃은 듯 허무감에 시달리는 로렌스 로벤히엘름 장군의 회한이 있고, 코뮌 지지자라는 이유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바베트의 상처 또한 놓여 있다.

  바베트가 마련한 만찬은... 늘 커피 한잔 따위로 갈음하던 이들에게 생경한 음식에 대한 거부감 즉 신실함에 반한 죄악으로 이어지는 두려움 자체이게 되고, 젊은 시절 마르티네에게 연정을 품었던 로벤히엘름 장군에겐 알 수 없을 허무감을 풀어야할 기회이게 된다. 원작에서는 고결한 찬양과 감사만으로 혀를 지켜내겠다 서로에게 다짐하는 식의 두려움에 대한 묘사, 장군의 일장 연설 그리고 화해의 여러 과정 등을 통해 각자가 안고 있었던 삶의 어느 때가 지닌 무게를 다소 직설적으로 덜어내는 식이지만.... 영화는 만찬 참석자들의 표정 변화를 통해 이 복잡스러운 심경의 변화를 표현해 낸다. 

  영화에서 일종의 반전을 맛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만찬 참석자들이 표정이었다. 바베트가 마련한 프랑스 요리를 차근차근 맛보면서 얼굴의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생경함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만큼 맛있어서였는지, 바베트의 깊은 내면 간직된 정열과 추억과 열망 등을 미각 저 편에서 감지했음인지... 잿빛으로 굳어 있던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기 시작한다. 반목을 일삼았던 서로가 온기 가득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마다가 지닌 삶 속 날카로운 가시가 무뎌진 듯 어리둥절하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그 시선이, 그 표정과 분위기가 어찌나 따스하고 정겨운지 눈물을 왈칵 쏟게 된다. 언젠가부터 잃고 살았던 낭만적인 꿈이나 긍정적인 마음가짐, 의도 없는 완벽히도 순수한 배려 등... 지금의 내게서 완벽히 상실되었다 싶은 소박했던 바람들을 저들은 되찾았구나 싶은 부러움에 그리고 돌아본 내 자신의 상처에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다.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을 틔웠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 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정의와 축복이 입맞춤하고 자비와 진리가 하나 된 은총과도 같은 순간이라 감사한다는 장군의 소감과 마찬가지로 만찬의 참석자들은 단지 무한한 은총이 허락된 것뿐이라 생각하거나 신앙을 통해 늘 소망했던 것이 이루어진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만찬의 자리에서 그토록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스스로를 자각하고 서로를 존중하게 된 것은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 각자가 지닌 상처들을 보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지난 한때를 가만히 돌이켜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지난 과거와 솔직한 심정으로 조우할 수 있을 때만이 지금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무슨 심정으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픈 상처와 대면할 수 있는... 만일 누군가가 그저 따뜻하게 각자의 아픔과 과오를 마주볼 기회를 마련해 준다면 다소 들뜬 기분으로 진정한 화해를 감히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당신만을 생각했었고 앞으로도 영혼으로 함께 일거라고 뒤늦게 고백하는 노장군의 마주잡은 손에 그제야 지난 삶의 상처와 화해하게 된 온기가 돌았듯 말이다.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예술가의 소명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색다르다.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박수를 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아실 파핑의 말을 옮기며, 자신의 만찬 음식 자체가 예술이었다며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는 바베트의 외침을 듣다보면, 문득 예술의 가치 하나가 선연해진다. 그건... 지난 삶의 한때와 화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다. 예술가 본인이 가지고 있을 내밀한 의식, 경험, 상처나 열정 등이 총화 되어 구현된 결정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 그건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느낌으로나 알아차릴 수 있는 상호 공감의 영역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예술가가 스스로와 대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나 결과에 동참하면서부터 예술가 스스로도... 이를 바라보는 이들도... 각자의 삶에 놓여있을 날카로운 가시와 대면하고 이를 무디게 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바베트, 우리를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쓰다니." "마님들을 위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

   어느 날, 돌아가신 형님네를 들렀다 그림 한 점과 마주한다. 이젠 훌쩍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큰 녀석의 작품 한 점 앞에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버리고야 만다.

  훌쩍 커 버린 그림 속 저 철부지는 아빠의 과로사라는 상처로만 추웠던 그해 겨울 이후를 회상하진 않을 듯싶다. 저 만의 방식으로 삶의 지난 한때와 부단히 싸워내었기에 저리 따스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게 아니었을까? 그림 속에서 슬핏 웃음 짓고 계신 형님의 얼굴 앞으로... 그 시절과 결국 화해했음직한... 하지만 여전히 슬픔을 숨긴 큰 녀석의 눈망울이 겹쳐진다. 여전히 가늠할 수 없는... 감당 안 될 무게가 담겨 있는 녀석만의 멈춰진 시간 앞에서... 이미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한 인간을 엿보고, 그 고통과 눈물을 느껴보며... 내 자신의 한때 또한 돌아본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나를 눈물짓게 했던 바베트... 그녀의 따스함으로 끓는 만찬을 돌이켜 본다.

 

 

모두 같을테니까... '리시 이야기 Lisey's Story'

사색거리들/책 | 2016. 7. 16. 23:01 | ㅇiㅇrrㄱi

  킹이 얘기하는 '멀건이' 상태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든... 제 아무리 사소한 행위에서조차 '기대치'라는 것을 배제하긴 '종나' 어려운 삶들이다.

  적어도 킹이란 작가에 대한 기대치엔 스멀거리는 간지러움과 같은 멜로 따위는 자리 잡을 수 없었다. 그의 작품에선 악(惡)스러운 미지의 존재 또는 벽장 속 호박 빛 안광의 두려움 같은 것들이 더 제자리를 잘 찾아간다는 게 일종의 선입견이었던 셈이고, <리시이야기>의 광고문구인 '스티븐 킹 최초의 사랑 이야기'라는 문구에 시선을 던질 때마다 상기되는 거북스러움은 모던호러의 대가라는 식의 선입견 위에 놓여 있었겠다. 


리시 이야기 1, 2
국내도서
저자 : 스티븐 킹(Stephen King) / 김시현역
출판 : 황금가지 200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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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강렬한 붉은 색 표지의 <리시 이야기>... 적어도 은근히 신경은 쓰고 있었고, 한편 다행으로 인기없음으로 누구도 손대지 않고 있었던 이 책을 읽기 시작한건, 퇴근 시간에 임박해 서둘러 나가야 한다는 조급증과 빈손으로 나가게 됐을 때, 그야말로 한 시간여를 '멀건이' 상태에서 보내야 한다는 짜증 때문이었던 듯.

세상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니. 노래, 달빛, 키스 등 현실 세계가 하루살이로 분류한 것이 때로는 가장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리시는 깨달았다. 쓸데 없는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단호히 망각을 거부할 수 있다. 좋다. 좋고말고...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유명작가 스콧 랜던의 미망인, 리시 랜던에겐 남편이 남기고간 그 모든 흔적들이 사소해야했다. 의미 자체의 가벼움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이 너무도 흘렀어도 남편에 대한 떠올림 일체는 슬픔의 되새김질에 다름 아니었으니, 자의든 타의든 연관된 기억들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꺼내기 힘들 어딘가에 어렴풋이 놓아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겨진 흔적들을 지워나가던 중, 리시는... 스콧과 함께 겪어냈던 과거, 사소한 것들로 이어지는 단서들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은 현실 자체만으로 서 있을 수 없기에 과거로 침전하고, 과거는 슬픔이나 사랑 혹은 낮은 햇살아래 '부야문'으로 이어지는 향기로운 오솔길로 다시 나타난다.

  '알망나니' 혹은 '멀건이'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랜던 일가의 참담한 삶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통해 아니면 망각으로 동참해냈던 리시 자신의 자취들을 되짚어 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일종의 보물찾기! 죽은 남편의 단서들을 통해, 과거의 일부를 찾아내고, 다음의 단서로 또 다른 일부를 찾아내고... 그렇게 찾아낸 과거로 그 다음의 과거를... 떠올리는 식으로 리시는 사소해진 기억 속 보물찾기를 계속해낸다.

  <리시이야기>에도 현재라는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 집요한 인컨크 이야기나, 첫 대면에서 가슴을 도려내려는 짐 둘리... 리시의 기나긴 이야기에 동참하는 언니 아만다의 발작과 현실 속에 놓여진 보물찾기의 단서들... 하지만 대부분은 리시가 불현듯 추억해내는 과거속 한때이니, 굳이 비중을 두자면야 하루살이로 분류되었더라도 망각을 거부한 사소한 것들의 지난 이야기쪽이 오히려 묵직하다. 혹여나, 이 모든 것들을 '리시와 스콧의 사랑놀음에 대한 진부한 나열 정도'로 생각하고, 짧기도 길기도 한 단편들을 지나쳐버리면 더 이상의 책읽기가 어려워질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소설 <리시 이야기>에서도, '주인공 리시'에게도 과거란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닌 스스로 망각을 거부할 만큼의 의지를 지닌 강력한 실체이고 끊임없이 현실을 도발하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리시'의 이야기이긴 하나, 일부의 현실과 방대한 과거가 엮이다 보니 그녀의 끊임없는 상념에 대해 동의해야만 순조로운 책읽기가 가능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단지 죽은 남편에 대한 슬픈 회상이 내용의 전부라면, 킹의 애독자로서 무척이나 낙심했었겠지만... 부야문, 피의 챌, 서늘한 웃음소리의 거대하고 악한 존재, 목을 역류하는 물 한 모금으로의 순간이동 등등 그의 작품에서 접하기 쉬우면서도 비현실적이라는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소재들 또한 등장하기에, 그저 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나 라는 걱정은 접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이곳에서 할 일은 다 끝났어. 이만 갈게. 안녕." 불현듯 망설여졌다.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인가의 느낌밖에. 손을 들어 흔들려다 당황한 듯 다시 내렸다. 살짝 미소 짓는 뺨 위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여보, 사랑해. 모두 같아." 리시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림자가 한동안 머물렀지만, 그것 역시 따라 내려갔다. 방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침묵했다.
  마지막 장면... 스콧이 남긴 편지를 리시가 읽어간다. 얼마 남지 않은 남편과의 시간... 한 장 한 장 읽어갈 수록 줄어드는 편지지...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스콧은 여전히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몇 장이 남았는지 헤아리며 남편의 줄어드는 흔적에 안타까워하는 리시의 조급함에, 나도 마찬가지로 굵은 볼딕체로 인쇄된 편지의 남은 분량이 얼마만큼인지 자꾸 헤아리게 된다. 편지가 마무리되면 리시의 이 길고 긴 이야기도 끝나버릴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킹의 전작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명확한 실체... 논리적인 전개... 사실 이런 걸 느끼긴 힘들었지만, 사랑이야기라는데... 사랑 앞에선 눈이 멀어버림을 대수로 여기면서 이해되지 않는 미지의 존재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는 게 뭐 그리 문제가 되겠나...? 사랑이라는데...

  참고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 리시와 스콧만의 용어들이 무수히도 난무하는데... 예를 들어, 가죽 이기다, 적보가이, 알망나니, 덩, 종나, 종나 대벙한, 챌 등등... 2편의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미리 접해보는 것도 읽기에 도움이 될테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리시의 상념속에 같이 빠져 들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테니 미리 걱정할 필요까지야 없을 듯...

  어찌한들... '모두 같을 테니까' 말이다.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자 바라보기 '그림자 도둑 Le Voleur d'Ombres'

사색거리들/책 | 2016. 7. 16. 22:42 | ㅇiㅇrrㄱi

  어슬어슬해질 무렵 그림자가 나타난다. 불 밝힌 여러 개의 가로등 사이에 놓인 녀석은 속절없이 제 주인의 외양을 닮아 있다. 나를 본뜬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끝에서 떨어질 기미가 없다. 홀로 걷고 있을 뿐인데, 그림자는 하나에서 두 개로 또다시 여러 갈래로 나뉘더니 이젠 잿빛 농담(濃淡)의 정도나 기럭지마저 시시각각 달리한다. 문득, 그와 같은 현란하기까지 한 몸짓엔 살아있음을 스스로 알리려는 듯한 생동감마저 담겨있어 보인다.

  사람 아닌 대상에게 말을 걸다간 뜨악한 주변시선까지 받아내야 할 테니 인적 드문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춰 본다. "넌 누구의 그림자야?" 물어도 별 말이 없다. "나의 그림자여서 행복해?" 여전히 묵묵부답. 사람이 나타나고 그의 그림자가 눈에 띈다. 뒤를 좇다 서로의 그림자끼리 슬쩍 겹쳐본다. 역시 반응이 없다. 뭐 하는 짓인지...

 

그림자 도둑
국내도서
저자 : 마르크 레비(Marc Levy) / 강미란역
출판 : 열림원 20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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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레비의 <그림자 도둑>을 읽은 후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나를 알아차린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여운에 젖어 아무에게나 손바닥을 들이대며 전생의 연을 찾고자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때는 여인네의 등에 손을 슬쩍 얹어보려는 불순한 핑계라도 있었지, 책 읽은 감흥에 빠져 그림자와 대화하려는 시도는 변명의 여지도 없을 정신병 증세다. 온갖 상상력과 모든 힘을 발휘해 상대방을 상상해야 한다는 로맹 가리의 말에서 상대방이란 사람이거나 제한적으로는 이성(異姓)일 텐데 나에겐 그 상대가 그림자인 셈이다. 단순하긴...!

  <그림자 도둑>의 주인공 '나'는 남다를 것 없는... 뒤늦은 신체발육 탓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는 외톨이다. 아지랑이처럼 나타나는 그림자들의 어렴풋한 형체에 두려움마저 느끼는 겁 많은 심성의 소유자. 소년은 어느 날 자신의 별난 능력을 알아차린다. 별나다고 함은 뚜렷한 이유 없음에 대한 갈음일 때가 많다. 연유도 모르게 갖게 된 능력의 실체는 그림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림자끼리 겹쳐내다가는 다른 이의 그림자를 가져올 수도 되돌릴 수도 있다.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비밀 하나가 그렇게 생겨난다.

  그림자와의 대화 내지 교환을 통해 소년이 알아차리는 건 그림자 주인의 불행이다. 지금의 얼굴 뒤로 숨겨진 슬픔이거나 지난 한때의 몹쓸 기억이다. 가치와 무관하게 이고 가게 되는 비밀, 삶의 내내 질기게 떨어지지 않을 불행한 상처를 엿보는 것이다. 소년은 두렵다. 다른 이들의 거짓표정과 불행을 느껴도 왈칵 눈물을 쏟거나 눈과 귀를 막을 뿐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볼 수 없는 흐린 날이기를 바라며 일기예보만을 기다린다.

네가 누군가의 그림자를 뺏어올 때마다 그 사람의 인생을 비춰줄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찾도록 해. 그들에게 숨겨져 있던 추억의 한 부분 그걸 찾아달라는 거야. 그게 우리가 바라는 바야.
  어느 날, 그 모두의 그림자가 바람 하나를 꺼내놓는다. 행복한 자의 그림자가 행복하듯 불행한 자의 그림자는 불행하다. 그림자에겐 투영할 대상을 선택할 여지도 없다. 제 주인의 우울 속에 꿍치어 사는 대신 스스로의 행복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림자의 바람에 깃든 절박함 탓인지 소년은 다른 이들의 불행을 응시해 보기로 한다. 그림자가 말하고 보여주는 다른 이들의 불행에 귀 기울이려 노력한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하기로 한다. 어린 시절 상처를 거짓된 추억으로 가리고 있었던 학교 수위 아저씨의 깊은 응어리를 풀어준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행패를 지독한 외로움 탓이라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클레아가 있다. 휴가지에서 만난 말 못하는 소녀 클레아. 그녀의 그림자가 도움을 청한다. 말 못함에 서린 상처를 보듬던 소년은 서로의 그림자를 겹치며 자신의 비밀을 나눈다. "너는 내 그림자 도둑이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늘 널 생각할게." 클레아의 그림자가 남긴 속삭임은 아이의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애잔하다. 딸기향이 나는 첫 키스의 시간을 건너... 진정으로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서로만을 상상하기에 위대했던 순간이 끝나간다. 헤어져야할 시간... 모래사장엔 다른 한쪽이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긴 반쪽의 하트만이 남아 있다.
과거에 남겨놓고 오는 작은 일들이 있다. 시간의 먼지 속에 박혀버린 삶의 순간들이 있다. 그걸 모르는 척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소했던 그 일들이 하나씩 모여 사슬을 이루고, 그 사슬은 곧 당신을 과거로 이어준다.

  시간이 지나 소년은 의대생이 된다. 어른의 처지로 몸을 밀어 넣는 건 피하기 힘든 성장의 수순이다. 하지만 허물 벗듯 몸만 커간다고 어른이라 할 수는 없다. 이별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의 한때를 기억 저편에 묻고 또 묻으며 떠나는 긴 이별여행이... 다른 이들의 불행을 만져줄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불행은 물어내지 못한 소년. 모르는 척 지나버렸지만 과거의 어느 때로 이끌리게 하는 불행의 순간들을 놓지 못할 처지다. 그래서 어른의 외양을 했을지언정 소년은 아직 과거의 소년 그대로인 셈이다.

  작가인 마크 레비는 간결한 문장을 구사해 등장인물의 심리나 상황에 대해 시종일관 덤덤한 거리를 유지해내고 있다. 1인칭 시점임에도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거리 탓인지 작가 스스로가 낮은 톤으로 들려주는 짧은 동화를 접한 느낌이다. 그림자가 말을 한다는 상상력의 기반 위에 짐작 가능한!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소재로 삼고 있는 그림자 대부분이 타인의 불행을 투영해서인지 문장 곳곳엔 마치 잿빛 그늘이 드리워진 듯 슬픔 또한 얹혀 있다. 사랑도 슬프고 치유도 슬프고, 마지막의 행복도 슬픈 여운을 남긴다.

그림자에 입 맞추는 자 있으니 그림자의 행복만을 얻을 뿐...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상투적인 결말 앞에서도 아쉬움을 물릴 수 있는 건 그림자에 대한 상상력의 잔흔이 크기 때문이다.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바람을 받아들여 기억의 한때에 방치해놓은 추억의 정경을 사랑으로 되살리려 한 소년의 행동에 충분히 납득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사랑만이 남지는 않는다. 그림자에 대한 입맞춤무한한 상상력의 발휘와 닿아있다. 그림자를 바라보며 내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것, 다른 이의 불행과 슬픔을 짐작하고 내 자신의 것과도 당당하게 조우해야한다는 것. 동일한 의미일 수 있다. 

  여전한 망상 하나가 남는다. 빛으로 인해 살갗 깊숙이 스미는 온기를 떠올려본다. 그 닿는 범위는 우리들의 외양만이 아닌 은밀하게 간직한 어느 영역 대일지 모른다. 즐겁거나 불행한 비밀 하나에까지 걸쳐 있을 수 있다. 그림자가 빛의 반대편에 새겨진 존재라면, 각자 지닌 불편한 시간대에 드리운 빛은 어떤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그래서 종종 보게 될 눈앞의 그림자는 외양의 선을 따놓고 그 검은 속은 저마다의 불행 따위로 채워진 것일 수 있다. 하필 불행이냐고? 잿빛 명암이 즐거운 기억일리는 없을테니... 그렇게, 그림자는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상상해야 한다. 내 그림자가 무얼 담고 있는지, 너의 그림자가 무얼 담고 있는지. 우리의 그림자는 무슨 얘길 하는 중인지.

  다시 묻는다. "나의 그림자야, 넌 나의 어떤 기억을 담고 있니?"

 

  여전히... 묵묵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