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거리의 풍경 '메인 The Main'

사색거리들/책 | 2011. 4. 28. 09:00 | ㅇiㅇrrㄱi

심호흡을 해 본다. 그 사이로 사람의 냄새가 맡아질 때가 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누군가의 체취가 그렇다. 습기가 눅진하게 베인 땀 냄새일 때도 있고, 여운 가득한 영화 말미처럼 질기게 따라오는 향수 냄새일 때도 있다. 둘째 아이에게 장난스럽게 발라주는 베이비 로션의 친숙한 냄새도 종종이거니와 대중목욕탕에서 가끔 바르는 그 흔한 스킨 냄새가 섞여들기도 한다. 아마, 이 남자에게도 그만의 냄새가 있으려니. 메인이란 거리의 수호자 클로드 라프왕트 경위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려나? 

32년간 거리의 순찰을 도는 내내 걸치지 않았을까 싶은 볼품없는 외투의 퀴퀴한 찌든 내? 즐겨 마시는 커피의 쓴 내 아니면 늙고 지친 몸뚱이에서 새어나옴직한 생명력의 비릿한 내음? 아니. 그건 코끝이 아닌 머릿속에서나 감지되는 외로움의 냄새다. 누군가 어떠한 것이냐 묻는다면 이 남자와 주변을 훑고 있는 텍스트의 냄새가 그런 것이라 얼버무릴지도 모를 일이다. 라프왕트에게도, 그가 걷고 있는 메인의 거리나 언뜻 지나치는 모든 이들에게도 외로움의 악취가 물큰 묻어난다 할밖에. 

외로움의 냄새. 그건, 메인이란 거리가 담고 있는 패배의 정서 탓인지 모른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통과 혼잡스러운 길목, 누구의 얼굴에나 비치는 밤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 등은 수호자의 출현을 고대하며 퇴폐의 끝을 향하던 어느 영화 속 도시와 닮아있다. 거리를 채운 이들 또한 노인들이거나 패배자 그리고 신세를 망친 사람들뿐이라니. 그 전부에겐, 빛을 잃기 전 형광등이 점멸(漸滅)하며 자아내는 위태로움이 덧씌워져 있는 듯하다. 
  

메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트리베니언 (비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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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은 몬트리올의 생 로랑 거리와 주변 뒷골목이 뭉뚱그려진 지명이다. 프랑스계와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에 위치하며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자들의 물결이 가장 먼저 닿는 곳. 낯선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공한 삶에 대한 희망이 뒤엉킨 곳. 노숙자, 좀도둑, 포주나 매춘부, 폭력배 등의 삭막한 아우성이 일상 속으로 난무하는 곳. 그들의 삶이 끝장나기 직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거리다. 어느 날, 칼에 찔려 살해된 이탈리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라프왕트와 신참내기 형사는 단서를 찾기 위해 거리 곳곳을 헤집기 시작한다. 

트리베니언의 장편소설 <메인>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완벽한 느와르니 최고의 미스터리물이니 하는 식의 추천사에 기대한 바 있다면 그렇다. 속도감이나 반전에 매진하는 기존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작품들에 익숙해져있다면 혼란의 정도는 더 클 테다. 행여 어린 날 열광했던 더티 해리의 강렬한 인상을 겹쳐볼 수도 있겠지만, 몇 번의 단출한 몸싸움을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정극(靜劇)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은커녕 범인 찾기의 긴박감도, 역동적인 인물유형도 없는 탓이다. 살인사건이나 범인의 실체는 서사의 중심에 있기보다 장치노릇만 일관한다. 메인의 거리 곳곳을 비춰내려는 보조재일 뿐이다. 

라프왕트와 함께 메인의 거리 여기저기를 훑는 작가의 시선은 꽤 무덤덤하다. 다만, 무덤덤이라 함은 굴곡 없이 일관되다는 의미이지 편향자체를 갖지 않은 무심함과는 다르다. 시선은 별다른 일탈 없이 메인의 뒷골목이나 사람들의 핍진한 인상 자체에만 줄곧 맞춰져 있다. 사건해결이라는 명목아래, 벽에 다다르면 문을 열고, 문이 없으면 다른 길로 돌아가며 거리의 각자들이 갖고 있을 삶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그것도 서늘하게, 어둡게, 골똘히. 한결같이. 

그리고 라프왕트의 삶이 있다. 동맥 류머티즘으로 인해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남자. 아내의 죽음 이래 신에 대한 격심한 증오로 모든 감정을 태워버렸으며 공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딸들과의 일상을 즐기는 남자. 에밀 졸라 전집을 되풀이해서 읽거나 파시즘적 정의 구현에 매진하는 남자. 하지만, 그가 부리는 강권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보이는 자신의 것, 외로움 따위를 보듬기 위한 나름의 격한 저항이다. 결국 그도 꿈을 잃은 거리 메인과... 거리의 사람들과 닮아있는 약자일 뿐인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서 어쩌겠다는 건가? 바보짓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아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편이 좋다.

수습형사 거트먼과 매춘부 마리 루이즈가 그의 삶에 끼어들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온기가 스미는 듯 보인다.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으며 상처 따위는 드러내지 않겠다지만 그건 일종의 반어다. 시간이나 열정, 사람,.. 그 무엇에 의해서든 치유에의 바람은 숨을 쉬듯 찾아오기 마련이려니. 그러고 싶다는 바람에 대한 의구심일 뿐이다. 다만, 사람을 잃어 생긴 공동(空洞)을 다시 사람으로 채운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니 라프왕트에게 찾아갈 죽음이 더디고 더디게 발걸음을 떼길... 바라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별 생각이 없다. 불편하다. 그건... 읽는 내내 들여다봤던 메인의 거리 곳곳이 철저하게 주변부의 삶으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크게 상처입어 패배의 거리로 내쫓긴 각자들의 사연은 읽는 이를 힘들게 한다. 거리너머라도 둘러보고 싶지만 눈 돌릴 곳이 없다. 선과 악, 정의 등에 대한 선문답에 솔깃하다가도 불현듯 제 자리, 꿈을 잃은 자들의, 꿈을 잃은 거리 한복판에 던져진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심호흡을 해 보자. 여러 체취가 코끝으로 스밀 테다. 혹, 라프왕트를 비롯한 메인의 거리에서 보았던 외로움 비슷한 기미에 맞닥뜨리면 돌아보자. 상대를 그리고 내 자신을! 

알아차린다는 것. 그건 이미 내가 외롭거나 외로웠거나... 꿈을 잃었거나 그 중 하나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