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1] 야간 라이딩...!

자전거 | 2017. 6. 22. 09:28 | ㅇiㅇrrㄱi

한강변에서들 질주하는 속도를 보자니... 로드가 좀 아쉽긴 하다.

 

 

 

 

 

달리기에 대한 단상...②

잡담거리 | 2016. 8. 22. 16:28 | ㅇiㅇrrㄱi

달리면서 숨이 차오르는 건, 뛰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다고 한들, 냉정한 현실에 대한 영악함을 갖고 있다고 한들... 뛰고 있는 누구에게나 벅찬 숨은 본능이게 되고 그걸 감출 수는 없다. 뛰고 있으면서 숨이 차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뛰고 있는 이가 아무리 표정을 가장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둘러대더라도... 마찬가지다. 급히 산소를 마셔야하기에 헉헉거리는 숨소리는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에야 누군가에게 들릴 수밖에 없는 소리다. 그래... 달리기로 인한 거친 호흡은... 듣지 않으려 귀를 막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들리기 마련이다. 들으려고 관심 두는 이에게는 더욱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내 거친 호흡을 들어보게 된다.

  달리는 와중이라면... 그 호흡은 내 스스로에게는 심장의 쿵쾅거림과 같은 정도의 크기로 들릴 것이며, 행여나 주변에 뛰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 누군가에게 또한 미약할지언정 전달될 것이다. 급한 호흡을 감추어보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도 의지로 감출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뛰고 있지 않다면 모를까, 열심히 다리를 놀리고 있는 와중이라면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표정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입을 앙 다물고 멀쩡한 척 해보일 수 있지. 껄껄거리며 웃을 수 있겠지. 무표정이나, 모든 것에 달관한 도인의 차분함으로 위장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고 있다는 스스로의 현실을 숨길 도리는 없게 된다.

 

  달리고 있음에도 나는 달리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 말을 믿는다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 그 누군가는 무슨 심정이려나. 컥컥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이마를 따라 흐르다 옷 솔기 사이를 눅진하게 적시는 땀방울을 보면서도, 심장에서 급히 밀어 올리는 순혈의 붉은 빛이 온 실핏줄을 뚫을 기세로 번득이는 걸 보면서도, '나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라고 한다면, 더군다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라고 한다면... 그 누군가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거짓부렁을 하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진다.

그건... 믿어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속아봤기 때문이다.

  뛰고 있음에도 뛰지 않는다는... 차오르는 숨을 위장하고 있는 그 신비한 이유의 본바닥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심장이 터져 길바닥에 쓰러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식의 약소한 당부의 말을 남길 수야 있겠지만... 실상, 그건 울부짖음에 가까운 호소일 것이다. 뛰지 말라고 악다구니 하고 싶음을 가장한 마찬가지의 거짓말일 것이다. 거친 숨소리를 없애려면 정확히 거기서 멈추고 숨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는 건 진실이다. 그걸 알면서도 뛰고 있는 이에게 뛰고 있지 않다는 걸 믿는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니 양쪽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정도의 차가 있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군가의 거짓말이 더 옳다고 할 수 없는 아이러니에 가까와진다. 

 

  다만... 같은 거짓말이기는 하나 마음에 새겨지는 날카로움의 정도는 다르지 않을까? 뛰고 있음에도 자신이 모든 걸 관장하고 있으며, 표정과 숨소리 모두 조작할 수 있다는 거짓말보다는, 그 거짓말을 믿어준다는 거짓말이 남기는 상처가 깊게 될 것이다. 그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거나, 앞서 거짓말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물론, 뛰면서도 뛰고 있지 않다고 하는 이가 갖는 날카로움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스스로의 의지에서가 아닌, 뛸 수 밖에 없는 녹록한 현실에 내몰릴 때 그럴 테다.

그래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가 숨소리를 고르게 하는 방법은... 상기된 얼굴빛과 떨어지는 땀방울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뛰지 않는 것 그뿐이다. 그래야만... 거친 숨소리가 내 스스로에게도, 주변을 뛰고 있는 다른 이에게도 들리지 않게 된다. 그뿐이다. 달리는 이가 달리지 않는다는 진심을 알릴 수 있는 길은, 멈추는 것 뿐이다. 달리는 이와 달리는 이... 또 달리는 이... 그들 사이에서 서로가 거짓말쟁이의 상처를 안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걸 다 알면서도... 달리기 중인 모두는 거짓말을 남기는 중이다. 달리는 이를 바라보며 상대의 휘청휘청한 뜀박질을 보고 있지 않다는 이도...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그 눈알 두 개는 파헤쳐 내야할 것이다.

 

  왜들 그런 상처투성이 달음박질을 해야하는 걸까...?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거짓말 자체가 잔인한 상흔을 남길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려나... 순박한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기에는 불가능한만큼의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려나... 고작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그 나이때를 거치고 있기 때문이려나... 고작 그런 결론일 뿐이다. 결국, 믿지 않기로, 웃지 않기로 한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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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불륜을 명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색거리들/책 | 2016. 8. 9. 11:25 | ㅇiㅇrrㄱi

  집으로 돌아가며 던지는 발놀림 하나하나에서 문득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사회적 관계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나를 곱씹어 본다. 개인적인 가치라고 해서 나만의 것인 냥 갖고 있을 명제들 태반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명령된 금기의 부산물일 뿐,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모두 벗어버릴 수 있을까? 사회속의 한 개인으로 자라오며 부여받거나 강제 당했던 것들... 지금도 벗어버리지 못한 무엇을 몽땅 벗어버리는 경지가 가능하다면 그래서 맛볼 수 있는 게 동물적이고 본능적일 생명력의 속성에 닿아있다면 한번쯤 도달해보고자 노력하는 시도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지 않으려나...? 여기... 위대한 혁명구호의 금기에서 영원히 일탈하려는 남녀가 있다.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

  책 표지 위로 치파오 차림의 여자가 고혹적인 뒤태를 보이며 문을 살짝 열어보고 있고 붉은 별 하나가 선명히 박힌 군모(軍帽)를 쓴 남자는 틈 사이로 여자를 응시한다. 그래... 남자와 여자가 있으니 수순으로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남자는 사단장의 사택에서 취사를 전문으로 맡고 있는 공무원 겸 취사분대장으로 인민해방군의 투철한 혁명 사상으로 무장한 우다왕, 여자는 군병원 간호사 출신이자 소문난 미모를 자랑하는 사단장의 젊은 부인 류롄이다. 옌롄커의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 두 남녀의 사랑에 관한 격정적인 불륜 이야기 한편이다. 
  

  이성간의 사랑에 격정적이라는 수식을 더하게 되면, 이는 돌아볼 것도 없이 성애(性愛)로의 연상을, 불륜이라는 도덕적 명제는 성적 본능에 의한 애욕(愛慾)이라는 성애의 사전적 의미에 비도덕적·비윤리적이며 은밀한 육체적인 관계뿐이라는 의미까지 덧대는데 가세한다. 2005년 상당 부분이 삭제된 채로 발간되었음에도 당국의 긴급 명령에 의해 전부 회수 당하고, 출판·홍보·게재·비평·각색의 금지인 5禁 조치를 당했다 하니 그 뒷사정엔 성애묘사의 높은 수위가 있을 거라는 짐작이 있고, 사실 이를 철저하게 배반하진 않는다. 삼분의 일쯤은 이들의 사랑이 불륜일 수밖에 없을 각각의 정황이 나열되고, 나머지 삼분의 이쯤은 밤낮으로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는 육체적인 관계일 수 있으니 내내 관음병 환자마냥 묘하게도 달뜬 심정으로 지켜보는 구석진 심경이란 게 분명 있다.

그는 단지 그녀를 한번 힐끗 곁눈질로 쳐다봤을 뿐인데 눈앞에 무지개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더니 눈알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 왔다

  하지만 성애(性愛)의 묘사에 대한 기대만이 있다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배반 적이기도 하다. 한두 군데 정도에서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을 뿐, 이들의 행위는 허황될 만큼의 아름다움으로 그려진다. 노골적인 체위와 가쁜 숨소리, 찰나의 절정 등은 전지적 작가의 개입을 통해 한시(漢詩)의 대구마냥 온갖 수식과 은유로 가리어져 있어 무지갯빛 마냥 다채롭다. 여기에 각자의 처세원칙과 행위규범의 일탈에서 오는 불안정함, 사랑의 정점에 따라오는 동물적 유희의 기쁨에 대한 세밀한 심리묘사는 읽는 이의 저열할 시선을 가로 막는 장벽이 되고야 만다. 금기의 경계 위에서 벌이는 남녀 간의 사랑은 어느 순간 금기의 위반에서 오는 죄책감을 놓아 버리고 그저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으로... 동물적이지만 그 수식이 갖는 비난을 넘어서는 듯한 황홀감만을 가득 담고 있어 보인다. 이런 둘의 사랑 앞뒤로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상적 구호가 새겨진 나무 팻말 하나가 희롱하듯 놓여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한 목탄 탄광에서의 갱도붕괴로 중국공산당 전사인 장쓰더가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마오쩌둥은 이후의 연설에서 인민의 이익을 위한 장쓰더 동지의 죽음은 태산보다도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수난 당하는 중국 인민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이 연설의 제목이자 중국 공산당의 행동강령이며 혁명정신의 총화를 이루어낸 한 마디가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다. 이 혁명구호가 새겨진 나무 팻말은 사단장의 사택 부엌 위로 걸려 있다. 사단장이 두 달을 기한으로 업무 차 부대를 떠난 다음 날 저녁, 류롄이 나무 팻말을 들어다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앞으로 이 나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있거든 내가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해"

  부인과의 결혼 첫날밤도 간부 승진과 도시 이주에 대한 맹세의 대가로 고단히 풀어내야 했던 우다왕의 성적 쓸쓸함이 있다. 건너편으로는, 도시 호구를 받아 가난한 시골 생활 중인 가족을 데려와야 한다는, 위대한 혁명전사로 거듭나야 하며 불륜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우다왕의 처세원칙과 행위규범이 있다. 류롄의 명령이 가리키는 나무 팻말은 성적 쓸쓸함을 넘어서 사랑의 근원으로 나아가는 욕망의 기제이기도 하지만, 이를 막아서도록 현실세계를 상기시키는 처세원칙과 행위규범이라는 이성적 판단의 기제이기도 하다.

  전혀 다를 두 기제의 경계에서 이성을 앞세워 욕망으로의 유혹을 한차례 억눌러낸 우다왕에게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이유로 사택근무에서 해고한다는 류롄의 명령이 건네진다. 혁명전사로서, 가장으로서의 삶 전체가 결딴날 위기상황에서 고뇌는 계속된다. 혁명정신의 한 고리는 다름 아닌 사단장의 사택 2층 은밀한 침실 안에 있었던 셈이다. 결국 지시에 따라 나신이 되어가는 우다왕 앞으로 상황과 잘 어울리는 한마디가 던져진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

  돌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의 위대한 혁명구호가 사단장과 사단장 가족에게 충심으로 복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의 절박한 처지 속에서 한 여자에게 헌신 내지 복무해야 한다는... 불륜을 명하는 희화화된 상징으로 변질되는 절묘한 순간이다.

일탈의 고뇌 속에서 도달하는 지점...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우다왕과 류롄... 각자에게 주어진 금기가 벗겨지면서 이 둘은 철저하게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소통의 영역을 맛보게 된다. 서로의 처지를 허물면 별 문제 없이 마주할 수 있을 인간 대 인간으로의 시간이 이어진다. 일탈의 고뇌와 그로 인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를 완벽히 망각할 만큼의 원초적인 즐거움은 극치에 도달한다. 사랑은 결국 정신적인 합일만이 아닌 육체적인 교류까지 포함한 인간의 영혼의 반응에 대한 응답이자 영혼의 회귀이자 승화일 수 있다고 전지적인 화자가 이들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그래... 순간의 깨달음은 영원할 수 있어도, 순간의 감각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사단장의 복귀일이 가까워지며 이성적 판단 영역에 있을 현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더불어 육체의 피로와 함께 영혼의 피로 또한 이들을 감싸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철저하게도 소비적이다. 소진되는 만큼 동력으로서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 유지가 가능한 순간의 감흥일 수 있으니, 빈자리로 인한 여백사이로 그간 사라진듯 싶었던 하지만 감춰져 있을 뿐이었던 각자의 죄책감이 스며들고, 사회적 관계가... 금기의 영역이자 마오쩌둥이 주창한 위대한 혁명의 구호가 제 위력을 갖춰낸다.

  폭력적인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간 서로에게 건넸던 자신의 사랑이 더 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택에 모셔져 있는 혁명의 성물(聖物)을 앞 다퉈 부셔 버린다. 마오 주석의 석고상을 짓이기고, 초상화를 갈기갈기 찢으며, 어록을 구기거나, 선집을 찢어버리고, 사진과 조각상을 훼손한다. 각자의 몸짓에 진실만이 있었음을 알리기 위한 처절한 놀음이지만,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필연적으로 배우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파괴된 성물(聖物)은 더욱 선연히 드러낼 뿐이다. 다시 일상만이 남을 것임을... 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단 하나... 그들의 회한을 넘나드는 나무 팻말만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이후가 길고 길게 이어져 예상된 속쓰림을 낳는다... 

Epilogue...

  얼핏 인간의 욕망을 철저히 가두어 놓았을 중국공산당의 당시 폭압적인 정치 현실을 묘하게도 비웃는 듯 바라볼 수도 있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혁명구호가 새겨진 나무 팻말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온갖 사회적 금기에 대한 광의의 상징일 뿐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풍자적인 시선에서의 교훈보다는 우다왕과 류롄이라는 두 인간이 일탈의 유혹 앞에서 각자의 금기를 인식하고 결국 서로에게 진정으로 마주서게 되는 과정, 금기를 벗어버린 인간의 몸뚱아리와 정신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놓여있는 원초적일 무엇의 매혹, 다시 금기를 떠올리며 냉엄할 현실로 원위치할 수밖에 없는 씁쓸함의 여운... 그렇게 인간이 살아가는 우여곡절에 더 눈길이 가는지 모르겠다.   문득, 저 오래 전 마오쩌둥의 명을 받들어 온갖 고뇌와 죄책감을 이겨내고 불륜이라는 금기의 세상을 맛보고 있을 이 땅의 남녀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래... 당신들이 발 들여놓은 게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모든 걸 집어던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자 생명력의 근원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냐고...? 영혼의 반응에 대한 울림이자 영혼의 승화일 정도라는 깨달음의 세계냐고...? 들어설 가치가 있는 가시밭 길이냐고...? 영원히 지속될 것임에 확신하고 있냐고...? 도대체 사랑이 무어냐고...? 진정 긍정적이라면... 넌지시 알려주시라... 나도 한번 시도해 보련다...! 

달리기에 대한 단상...①

잡담거리 | 2016. 8. 4. 19:32 | ㅇiㅇrrㄱi

  심장이 뛴다. 누군가에게는 뜨겁겠지만, 땀 흘리는 중인 내게는 시원할 맞바람이 고마운 순간. 그렇게 1km를 뛰고, 2km를 뛰고... 멈출까 하다가는 계속 달려나간다. 5km를 넘어가고, 7km를 넘어가고 쓰러질 것만 같다. 두근거림이 큰 만큼, 다리가 시큰 거린다. 

 

  맞바람이 사그라져도 심장이 뛴다. 멈춰야할 것 같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뛰어 간다. 저 멀리 철교가 눈 앞으로 다가서고, 그 다음 다리가 또 다가서고, 그래도 계속 뛰게 된다.

 

  2016년 8월 4일, 목요일. 오늘도 뛰어야 한다. 뛰거나 걷거나 심장은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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