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자 바라보기 '그림자 도둑 Le Voleur d'Ombres'

사색거리들/책 | 2016. 7. 16. 22:42 | ㅇiㅇrrㄱi

  어슬어슬해질 무렵 그림자가 나타난다. 불 밝힌 여러 개의 가로등 사이에 놓인 녀석은 속절없이 제 주인의 외양을 닮아 있다. 나를 본뜬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끝에서 떨어질 기미가 없다. 홀로 걷고 있을 뿐인데, 그림자는 하나에서 두 개로 또다시 여러 갈래로 나뉘더니 이젠 잿빛 농담(濃淡)의 정도나 기럭지마저 시시각각 달리한다. 문득, 그와 같은 현란하기까지 한 몸짓엔 살아있음을 스스로 알리려는 듯한 생동감마저 담겨있어 보인다.

  사람 아닌 대상에게 말을 걸다간 뜨악한 주변시선까지 받아내야 할 테니 인적 드문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춰 본다. "넌 누구의 그림자야?" 물어도 별 말이 없다. "나의 그림자여서 행복해?" 여전히 묵묵부답. 사람이 나타나고 그의 그림자가 눈에 띈다. 뒤를 좇다 서로의 그림자끼리 슬쩍 겹쳐본다. 역시 반응이 없다. 뭐 하는 짓인지...

 

그림자 도둑
국내도서
저자 : 마르크 레비(Marc Levy) / 강미란역
출판 : 열림원 2010.12.08
상세보기

 

  마크 레비의 <그림자 도둑>을 읽은 후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나를 알아차린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여운에 젖어 아무에게나 손바닥을 들이대며 전생의 연을 찾고자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때는 여인네의 등에 손을 슬쩍 얹어보려는 불순한 핑계라도 있었지, 책 읽은 감흥에 빠져 그림자와 대화하려는 시도는 변명의 여지도 없을 정신병 증세다. 온갖 상상력과 모든 힘을 발휘해 상대방을 상상해야 한다는 로맹 가리의 말에서 상대방이란 사람이거나 제한적으로는 이성(異姓)일 텐데 나에겐 그 상대가 그림자인 셈이다. 단순하긴...!

  <그림자 도둑>의 주인공 '나'는 남다를 것 없는... 뒤늦은 신체발육 탓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는 외톨이다. 아지랑이처럼 나타나는 그림자들의 어렴풋한 형체에 두려움마저 느끼는 겁 많은 심성의 소유자. 소년은 어느 날 자신의 별난 능력을 알아차린다. 별나다고 함은 뚜렷한 이유 없음에 대한 갈음일 때가 많다. 연유도 모르게 갖게 된 능력의 실체는 그림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림자끼리 겹쳐내다가는 다른 이의 그림자를 가져올 수도 되돌릴 수도 있다.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비밀 하나가 그렇게 생겨난다.

  그림자와의 대화 내지 교환을 통해 소년이 알아차리는 건 그림자 주인의 불행이다. 지금의 얼굴 뒤로 숨겨진 슬픔이거나 지난 한때의 몹쓸 기억이다. 가치와 무관하게 이고 가게 되는 비밀, 삶의 내내 질기게 떨어지지 않을 불행한 상처를 엿보는 것이다. 소년은 두렵다. 다른 이들의 거짓표정과 불행을 느껴도 왈칵 눈물을 쏟거나 눈과 귀를 막을 뿐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볼 수 없는 흐린 날이기를 바라며 일기예보만을 기다린다.

네가 누군가의 그림자를 뺏어올 때마다 그 사람의 인생을 비춰줄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찾도록 해. 그들에게 숨겨져 있던 추억의 한 부분 그걸 찾아달라는 거야. 그게 우리가 바라는 바야.
  어느 날, 그 모두의 그림자가 바람 하나를 꺼내놓는다. 행복한 자의 그림자가 행복하듯 불행한 자의 그림자는 불행하다. 그림자에겐 투영할 대상을 선택할 여지도 없다. 제 주인의 우울 속에 꿍치어 사는 대신 스스로의 행복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림자의 바람에 깃든 절박함 탓인지 소년은 다른 이들의 불행을 응시해 보기로 한다. 그림자가 말하고 보여주는 다른 이들의 불행에 귀 기울이려 노력한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하기로 한다. 어린 시절 상처를 거짓된 추억으로 가리고 있었던 학교 수위 아저씨의 깊은 응어리를 풀어준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행패를 지독한 외로움 탓이라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클레아가 있다. 휴가지에서 만난 말 못하는 소녀 클레아. 그녀의 그림자가 도움을 청한다. 말 못함에 서린 상처를 보듬던 소년은 서로의 그림자를 겹치며 자신의 비밀을 나눈다. "너는 내 그림자 도둑이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늘 널 생각할게." 클레아의 그림자가 남긴 속삭임은 아이의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애잔하다. 딸기향이 나는 첫 키스의 시간을 건너... 진정으로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서로만을 상상하기에 위대했던 순간이 끝나간다. 헤어져야할 시간... 모래사장엔 다른 한쪽이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긴 반쪽의 하트만이 남아 있다.
과거에 남겨놓고 오는 작은 일들이 있다. 시간의 먼지 속에 박혀버린 삶의 순간들이 있다. 그걸 모르는 척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소했던 그 일들이 하나씩 모여 사슬을 이루고, 그 사슬은 곧 당신을 과거로 이어준다.

  시간이 지나 소년은 의대생이 된다. 어른의 처지로 몸을 밀어 넣는 건 피하기 힘든 성장의 수순이다. 하지만 허물 벗듯 몸만 커간다고 어른이라 할 수는 없다. 이별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의 한때를 기억 저편에 묻고 또 묻으며 떠나는 긴 이별여행이... 다른 이들의 불행을 만져줄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불행은 물어내지 못한 소년. 모르는 척 지나버렸지만 과거의 어느 때로 이끌리게 하는 불행의 순간들을 놓지 못할 처지다. 그래서 어른의 외양을 했을지언정 소년은 아직 과거의 소년 그대로인 셈이다.

  작가인 마크 레비는 간결한 문장을 구사해 등장인물의 심리나 상황에 대해 시종일관 덤덤한 거리를 유지해내고 있다. 1인칭 시점임에도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거리 탓인지 작가 스스로가 낮은 톤으로 들려주는 짧은 동화를 접한 느낌이다. 그림자가 말을 한다는 상상력의 기반 위에 짐작 가능한!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소재로 삼고 있는 그림자 대부분이 타인의 불행을 투영해서인지 문장 곳곳엔 마치 잿빛 그늘이 드리워진 듯 슬픔 또한 얹혀 있다. 사랑도 슬프고 치유도 슬프고, 마지막의 행복도 슬픈 여운을 남긴다.

그림자에 입 맞추는 자 있으니 그림자의 행복만을 얻을 뿐...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상투적인 결말 앞에서도 아쉬움을 물릴 수 있는 건 그림자에 대한 상상력의 잔흔이 크기 때문이다.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바람을 받아들여 기억의 한때에 방치해놓은 추억의 정경을 사랑으로 되살리려 한 소년의 행동에 충분히 납득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사랑만이 남지는 않는다. 그림자에 대한 입맞춤무한한 상상력의 발휘와 닿아있다. 그림자를 바라보며 내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것, 다른 이의 불행과 슬픔을 짐작하고 내 자신의 것과도 당당하게 조우해야한다는 것. 동일한 의미일 수 있다. 

  여전한 망상 하나가 남는다. 빛으로 인해 살갗 깊숙이 스미는 온기를 떠올려본다. 그 닿는 범위는 우리들의 외양만이 아닌 은밀하게 간직한 어느 영역 대일지 모른다. 즐겁거나 불행한 비밀 하나에까지 걸쳐 있을 수 있다. 그림자가 빛의 반대편에 새겨진 존재라면, 각자 지닌 불편한 시간대에 드리운 빛은 어떤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그래서 종종 보게 될 눈앞의 그림자는 외양의 선을 따놓고 그 검은 속은 저마다의 불행 따위로 채워진 것일 수 있다. 하필 불행이냐고? 잿빛 명암이 즐거운 기억일리는 없을테니... 그렇게, 그림자는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상상해야 한다. 내 그림자가 무얼 담고 있는지, 너의 그림자가 무얼 담고 있는지. 우리의 그림자는 무슨 얘길 하는 중인지.

  다시 묻는다. "나의 그림자야, 넌 나의 어떤 기억을 담고 있니?"

 

  여전히... 묵묵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