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날아오르고 싶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MR MERCEDES'

사색거리들/책 | 2016. 7. 21. 15:55 | ㅇiㅇrrㄱi

잠자리가 허공을 메우기 시작했다

  돌계단에 가까워지자, 빠른 날갯짓의 잠자리가 한두 마리씩 날아오른다. 순식간에 그 수가 불더니만... 어느덧 시야 너머 하늘은 수많은 잠자리 형상들이 만들어 낸 짧은 궤적으로 추상화 한 점이 그려진다. 책을 잡고 있던 오른 손을 하늘 위로 뻗어서는 궤적 사이로 휘휘 젖는다. 뭐랄까...? 고만고만하게 생긴 그네들의 자유로운 비행이 부럽기도 했거니와 그 중 어느 한 개체와 우연이라도 닿기만 한다면 둥둥 낮은 하늘을 같이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발칙한 상상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허기를 채우려고 들 저러는 건지, 짝짓기에 혈안이 된 상황인지 알 턱은 없으나, 부럽기는 하다. 나도 날고 싶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국내도서
저자 : 스티븐 킹(Stephen King) / 이은선역
출판 : 황금가지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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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책을 손에 잡아보자 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당연히 '스티븐 킹'... 열혈 팬임을 자처하던 시기에는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신간이었는데, 책을 떠나 있던 사이 앞으로 몇 주 정도는 버틸 정도의 소설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으셨더라. 참으로 뜻밖인게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추리물이라니... 마이클 코넬리가 은퇴한 보스턴 경찰 해리 보슈를 주인공으로 크라임 스릴러를 만들어 냈듯, 스티븐 킹도 호지스라는 은퇴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보슈 보다 호지스가 훨씬 연배 높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매 사건마다 만나게 될 연인과의 잠자리가 몹시도 부담스럽다는 차이가 있을 뿐.  

형사반장에서 갓 퇴직한 호지스는 늘 자살을 떠올리는 일상을 살고 있다. 입속에 힘들게 밀어 넣곤 하는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길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피폐한 노년이다.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조롱 가득한 스마일마크가 붙어 있는 그 편지의 발신자는 자칭 '미스터 메르세데스'라는 인물이다. 훔친 메르세데스 차량으로 사람들을 치어 아기를 비롯해 8명의 희생을 내고 도주한 범인! 희대의 살인마인 나조차 검거하지 못한 주제에 명예로운 은퇴라고 할 수 있냐는 신랄한 비웃음에 호지스는 단신으로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한다.

  추리물을 표방하곤 있으나 숨겨진 범인과 뒤통수를 치는 반전 따위는 없다. 하나의 사건과 사건 사이, 한 명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수십에서 수백여 장으로 메꾸고도 남을만한 작가 특유의 경륜을 과신했나보다. 약 600여 페이지를 통해, 주인공과 범인이 맞닥뜨리는 과정을 느릿느릿 보여주고 있다. 은퇴한 경찰이 왜 총부리를 자신의 입속에 밀어 넣는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범인이 왜 저 하늘 높이 닿기 위해 다른 이들을 향해 차로 돌진해야했는지... 소소한 공감 속에 이사람 저 사람의 시선과 삶을 따라가게 될 뿐이다.

 

  그런데 그 소소함이 아쉽다. 그의 작품 <쿠조, CUZO>에서 보이듯 개 한 마리도 어떤 고통과 고뇌 속에 광견(狂犬)으로 바뀌어 가는지를 그려내는 세밀함이 작가의 매력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덜 한 감이 크다. 여러 밤을 함께 보낸 연인의 덜컥거리는 팔 덩어리를 목도하고도 적당한 슬픔과, 적당한 분노, 알맞은 수준의 앙갚음만이 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동화되는 대상은 개성 뚜렷한 살인마 브래디다. 동생의 목에 걸린 사과 조각 하나로 피폐해진 그의 삶이 안타깝고, 두 눈 감지 못하고 침대위에 누워있어야 했던 하츠필드 부인의 부패가 몹시도 고약하게 느껴지는 연유이기도 하다.

 

  브래디는 왜? 그런 방식으로 하늘에 닿고 싶었을까? 누구나 살다보면... 물리적인 주변 환경이든 내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내밀한 상상이든... 스스로는 저지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치는 그런 게 있을테다.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싶어도 그러질 못해 안달 난 짝사랑 남정네들의 연정처럼 말이야. 매일 밤 비틀거릴 때까지 뛰어도 출차할 기미 없는 흰색 차처럼 말이야.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받아들여도, 정리됐다 싶지만 다시 코앞으로 다가오니, 너희들은 너희들 방식대로 다가오라 하고, 나는 저 높은 곳으로 훌훌 털고 가버리고 싶다는 충동쯤이야 일상적이게 된다. 실행에 옮기고 그러지 못하고의 차이가 있겠지. 그는 실행에 옮긴 것이다.

언젠가는 날아오를테다...

  돌계단 바로 앞에서... 내딤 발을 높이 들었다 아래 계단으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계단 한개, 계단 두개와 세개, 네개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갈 뿐이다. 날지 못하는 신세의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내려가는 신세의 나는 참으로 처량 맞고 기운 없다. 하지만, 두 눈 감기 전까진 비행을 꿈 꿀 테다. 심지어 잠자리조차 부러운 이유다. 누구나가 그럴 테다.

 

  아마, 브래디도 단지 날고 싶었을 뿐일 거야. 타인들의 희생이 필요했을 뿐...

 

  그렇게 생각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