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智異山)... 이 단어가 눈에 들어오면 할 말이 참으로 많아진다. 고백컨대... 학창시절 내내 오래달리기 꼴등을 수성하고, 고교 연합고사 체력장 16점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달성자였던 내게, 대학 신입생 때 고학번 선배들의 반강압적인 권유로 따라나선 지리산 산행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꽁지작가와 마찬가지로 심해어족 출신인 듯 조금씩 높아지는 고도에 비례해 찾아오는 현기증 탓에 잠시 주어지는 휴식시간마다 까무룩 졸기 일쑤였고, 차마 돌아내려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지점부터는 오로지 여선배의 등산화 뒤꿈치에 눈을 박아놓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그래도 남자인데, 여자도 저리 씩씩하게 오르는 길을 나라고 못갈 리 없다'며 뜻하지 않은 남성우월 사상에 바드득 이를 갈고, 앞선 선배들의 뒤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