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대한 단상...②

잡담거리 | 2016. 8. 22. 16:28 | ㅇiㅇrrㄱi

달리면서 숨이 차오르는 건, 뛰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다고 한들, 냉정한 현실에 대한 영악함을 갖고 있다고 한들... 뛰고 있는 누구에게나 벅찬 숨은 본능이게 되고 그걸 감출 수는 없다. 뛰고 있으면서 숨이 차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뛰고 있는 이가 아무리 표정을 가장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둘러대더라도... 마찬가지다. 급히 산소를 마셔야하기에 헉헉거리는 숨소리는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에야 누군가에게 들릴 수밖에 없는 소리다. 그래... 달리기로 인한 거친 호흡은... 듣지 않으려 귀를 막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들리기 마련이다. 들으려고 관심 두는 이에게는 더욱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내 거친 호흡을 들어보게 된다.

  달리는 와중이라면... 그 호흡은 내 스스로에게는 심장의 쿵쾅거림과 같은 정도의 크기로 들릴 것이며, 행여나 주변에 뛰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 누군가에게 또한 미약할지언정 전달될 것이다. 급한 호흡을 감추어보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도 의지로 감출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뛰고 있지 않다면 모를까, 열심히 다리를 놀리고 있는 와중이라면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표정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입을 앙 다물고 멀쩡한 척 해보일 수 있지. 껄껄거리며 웃을 수 있겠지. 무표정이나, 모든 것에 달관한 도인의 차분함으로 위장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고 있다는 스스로의 현실을 숨길 도리는 없게 된다.

 

  달리고 있음에도 나는 달리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 말을 믿는다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 그 누군가는 무슨 심정이려나. 컥컥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이마를 따라 흐르다 옷 솔기 사이를 눅진하게 적시는 땀방울을 보면서도, 심장에서 급히 밀어 올리는 순혈의 붉은 빛이 온 실핏줄을 뚫을 기세로 번득이는 걸 보면서도, '나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라고 한다면, 더군다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라고 한다면... 그 누군가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거짓부렁을 하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진다.

그건... 믿어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속아봤기 때문이다.

  뛰고 있음에도 뛰지 않는다는... 차오르는 숨을 위장하고 있는 그 신비한 이유의 본바닥을 지켜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심장이 터져 길바닥에 쓰러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식의 약소한 당부의 말을 남길 수야 있겠지만... 실상, 그건 울부짖음에 가까운 호소일 것이다. 뛰지 말라고 악다구니 하고 싶음을 가장한 마찬가지의 거짓말일 것이다. 거친 숨소리를 없애려면 정확히 거기서 멈추고 숨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는 건 진실이다. 그걸 알면서도 뛰고 있는 이에게 뛰고 있지 않다는 걸 믿는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니 양쪽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정도의 차가 있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군가의 거짓말이 더 옳다고 할 수 없는 아이러니에 가까와진다. 

 

  다만... 같은 거짓말이기는 하나 마음에 새겨지는 날카로움의 정도는 다르지 않을까? 뛰고 있음에도 자신이 모든 걸 관장하고 있으며, 표정과 숨소리 모두 조작할 수 있다는 거짓말보다는, 그 거짓말을 믿어준다는 거짓말이 남기는 상처가 깊게 될 것이다. 그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거나, 앞서 거짓말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물론, 뛰면서도 뛰고 있지 않다고 하는 이가 갖는 날카로움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스스로의 의지에서가 아닌, 뛸 수 밖에 없는 녹록한 현실에 내몰릴 때 그럴 테다.

그래서...

  열심히 뛰고 있는 이가 숨소리를 고르게 하는 방법은... 상기된 얼굴빛과 떨어지는 땀방울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뛰지 않는 것 그뿐이다. 그래야만... 거친 숨소리가 내 스스로에게도, 주변을 뛰고 있는 다른 이에게도 들리지 않게 된다. 그뿐이다. 달리는 이가 달리지 않는다는 진심을 알릴 수 있는 길은, 멈추는 것 뿐이다. 달리는 이와 달리는 이... 또 달리는 이... 그들 사이에서 서로가 거짓말쟁이의 상처를 안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걸 다 알면서도... 달리기 중인 모두는 거짓말을 남기는 중이다. 달리는 이를 바라보며 상대의 휘청휘청한 뜀박질을 보고 있지 않다는 이도...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그 눈알 두 개는 파헤쳐 내야할 것이다.

 

  왜들 그런 상처투성이 달음박질을 해야하는 걸까...?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거짓말 자체가 잔인한 상흔을 남길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려나... 순박한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기에는 불가능한만큼의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려나... 고작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그 나이때를 거치고 있기 때문이려나... 고작 그런 결론일 뿐이다. 결국, 믿지 않기로, 웃지 않기로 한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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