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마 키 Duma Key'

사색거리들/책 | 2009. 6. 5. 20:23 | ㅇiㅇrrㄱi

듀마 키... 6월의 검은 하늘 아래로 바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옥철(?)을 통한 출퇴근길, 머리속 무언가를 끊임없이 가다듬어야 하는 일종의 개론서와 같은 책들이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무명의 동행인들에 의한 숨막힘에도 그렇고, 목적지까지의 지리한 잔여역에 대한 반복 덧셈작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몰입할 대상을 필요로 하는 긴 시간. 책 속 끊임없는 사건·상황에 몰입하기엔 스릴러 장르만큼 효과좋은 책이 없다고 느꼈던 때부터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두툼한 스릴러 한 권쯤은 늘 들고 다니려고 했다.

듀마키.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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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키.2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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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도 내 사상적 가벼움에 대한 타인의 시선(정적인 소설류만이 문학적으로 가치있다 고로 읽는 사람도 고상하다?)을 짐작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한 구석이 있었다. 스릴러나 유사한 장르의 소설들은 그냥 재미꺼리일 뿐이다. 시간때우기로 적당하다... 라는 정도?

이런 약간의 생각이 존 카첸바크의 두 작품,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애널리스트>를 읽고 명분을 잃었고, <듀마 키>를 읽고는 완전 허물어져버렸다. 즉흥적인 재미만을 찾을 수 있다고 평가절하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 작가가 사건과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진득한 시선엔 어떤 통찰같은게 깊이 베어있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같은 장르문학이라는게 현란한 기교나 신선한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분야가 아닐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사고로 하루하루를 견디기 힘들어하던 에드거는 '듀마키'라는 섬으로 요양을 떠난다. 유명화가와 예술가들이 기거했던 해변가 저택에 머물면서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그는 매혹적인 그림들을 그려내고, 평단의 주목을 받기까지 한다. 어느 날, 에드거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현실에서도 똑같이 구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의 힘... 사악한 힘을 빌어 살인마를 처단하거나 친구의 눈을 고쳐주는 등 기이한 일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그림의 힘이 점차 거대해지면서 에드거의 주변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에 맞서는 에드거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는데...

단순한 공포소설 작가? 라고 치부하는 분들... 그래서 스티븐 킹의 책은 괜한 찝찝함만 남겨준다라고 느꼈던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1권, 2권 도합 800페이지를 넘겨야 볼 수 있는 위 마지막 구절이 하루 이틀이 아닌 몇 주를 '바람의 꿈틀거림' 이상으로 기묘한 서늘함과 쓸쓸함, 공포... 그 이상의 무언가로 점철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