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게 슬픈 동화 한 편...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2006)'

영화/음악 | 2017. 6. 27. 11:03 | ㅇiㅇrrㄱi

 

우연히 만나게 된 인생영화...???

  사실  사실 무슨 흔적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들은 작문능력을 키우기 위해 감상했던 영화나 책 등에 대한 짧은 소회라도 남기라 하지만, 부족한 글쓰기에 대한 일종의 ''일 수는 있으나, 왠지 건드리면 손상될 것 같은 감흥이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례한 '흔적'을 남기는 건, 기억력이 지닌 몹쓸 제한 – 망각하고 싶지 않아! - 을 넘어서고 싶기 때문이랄까?

 

먼 옛날, 인간들은 모르던 지하왕국,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에 공주가 있었다. 바깥 세상이 그리웠던 공주는 인간 세계로의 문을 열고 말지만 너무나 눈부신 햇살에 기억을 잃은 채로 죽어갔다. 꿈 많은 소녀, 오필리아는 만삭인 엄마와 함께 군인인 새아버지의 부대 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자신을 못 마땅해하는 냉혹한 새아버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된다. 어느 날 오필리아에게 나타난 요정은 그녀를 미로로 이끌고, 거기서 판이라는 기과한 요정을 만나게 된다. 판은 오필리아에게 그녀가 기억을 잃고 죽어간 지하왕국 공주의 환생임을 알리고, 다시 공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 미션을 제안한다. 아픈 엄마, 포악한 새아버지, 그들을 둘러싼 전쟁의 잔혹함... 과연 오필리아는 행복과 평화만이 존재하는 지하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 일 없는 저녁, 별일 없이 늦어가는 저녁 시간... 아니 밝아오는 새벽 시간... 무심코 들여다 본 영화가 눈이 큰 흑발 소녀 오필리아의 슬픈 이야기 한편이다. 쿵 내려앉는 마지막 컷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아... 이건 어쩔 수가 없어진다. 해석이나 이해에 대한 논리를 갖추려는 욕구보다는 가슴 한 켠 저미는 슬픔을 어찌해야할 바 몰라 당혹스러울 뿐이다. 누군가를 붙들고, '이렇게 슬픈 영화를, 이렇게 잔혹한데 아름다운 영화를 본 적이 없어!'라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엔딩 앞에서의 두근거림 탓인지, 며칠 지나 다시 영화를 들여다본다. 다시 며칠 지나 또 들여다 본다. 배우들의 필로그래피를 찾아보고, 여기저기의 프로필 사진으론 오필리아의 사진이 좋을까? 오필리아의 눈물 그렁한 사진이 좋을까? 피 흘리는 사진이 좋으려나? 판의 기괴한 얼굴? 외눈박이 괴물의 끔찍한 눈망울이 좋을까? 그런 고민들만 나열하게 된다.  

이보다 깊고 슬픈 동화를 스크린에서 본적이 없다... by 영화평론가 이동진

  저명한 영화 평론가가 별 다섯 개를 꽝꽝 찍어주며 남긴 감상평에 십분 동의하게 된다. 개봉 당시엔 '해리포터 시리즈'에 이은 최고의 동화니 판타지니 했다가 격분한 관람객들의 평점테러를 받았다는 후문도 있긴 한데, '동화'라는 아이들 대상의 고정관념을 갖고 놀았단 생각이 들진 않는다. 오필리아가 그리고 결국 성취해내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지하세계로의 귀환이라는 기조는 동화라는 단어 말고는 적당히 붙여줄 단어가 없지 않을까? 다만, 그 기조를 돋보이게 해주는 주변장치들이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비동화 요소'를 지나치게 품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될 뿐.

 

 

  누군가들은 스페인 내전당시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등장인물들을 결합시켜 정치적으로 이 영화를 분석해내기도 하지만, 내 눈과 내 마음 속에 깊이 남는 건, 오필리아의 너무나 하얗게 빛나는 잠옷, 강렬하게 물들어가는 핏방울. 그리고 눈부신 노란빛으로 오버랩되는 지하세계의 광경들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 한 구석으론 해석의 메스를 가하고 싶은 요구가 지대해지고... 결론은 당황스러움뿐이게 된다.

 

  차갑게 내리쏟는 달빛을 허옇게 받아내는 오필리아의 낯빛과 함께, 음음음~ 허밍으로 가라앉는 멜로디는... 내 안 어딘가 남아 있을 동심 한 조각, 어른으로 갖는 잔혹한 논리 여러 조각... 그 모든 것들을 슬프게 감싸 안는다. 여전히 슬프다. 떠올리면 울고 싶어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