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적이고 매혹적인 살육의 추억 '동물들의 생존 게임 Im Fadenkreuz des Schützenfischs. Die raffiniertesten Morde im Tierreich'

사색거리들/책 | 2011. 3. 29. 09:00 | ㅇiㅇrrㄱi

  선뜻한 밤기운에 얼굴의 남은 온기마저 휘발되는 자정 무렵,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치곤 한다. 음식물 분리수거라는 옹색한 핑계 아래 서둘러 채비하고 나서는 짧은 밤 마실. 고단한 하루를 매듭짓기 위한 의식마냥 매일 되풀이되지만 실상은 담배 한 개비의 분량만큼 주어지는 매캐할 여유시간일 뿐이다. 라이터와 담배 등 잊은 준비물이 없는지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가끔은 매의 눈길처럼 뒤꼭지에 꽂혀드는 불편한 시선도 느껴내지만 고집불통으로 집을 나선다. 그런데 정해진 나의 동선 언저리에서 숨죽여 배회 중인 불청객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사방으로 뒤섞인 음식물 냄새에 이끌려 왔다 인기척에 놀라 얼음처럼 굳어 버린 고양이 한 마리. 까닭 없이 미운 고양이 한 마리. 집을 나서며 받아낸 눈길에 몇 배 더한 위협의 신호까지 보태 눈싸움을 벌여보지만 결론은 없다. 어차피, 모종의 승부를 가려보기엔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 턱없이 짧으니까.

  그러고 보면, 자연과 멀찍이 거리를 둔 도시인의 삶을 살면서도 종종 동물들과 같은 호흡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이 이성의 기운을 빌어 자연에 기생할 뿐이라는 미약한 자존감을 극복하는 와중, 동물들은 오히려 인간의 삶에 기생하거나 자연에 부속하는 미물 따위로 평가절하 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간만의 시선이 그러한들, 그들은 도시 친화적인 존재로든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피조물로든 나름대로의 삶을 영민히도 잘 살아내는 편이다. 가끔 공동세대원이라는 주인의식에 도취해, 감히 잠자리를 공유하겠다며 베개 근처를 서성이다 생을 마감하는 집 거미의 안타까운 삶 따위도 있기야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위치에서 현명한 삶의 자세를 모색하는 것이다. 

동물들의 생존 게임
국내도서
저자 : 마르쿠스 베네만(Markus Bennemann) / 유영미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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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쿠스 베네만의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다양한 동물들이 보이는 현명한 삶의 목격담이다. 또는 살육을 소재삼은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s) 여러 편과 같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 선악의 가치판단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살육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들의 삶에서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며 냉철하고 계산된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죽이기는 본능에 의한 이끌림이기보다 또렷한 의도를 갖는 살육의 추억에 가깝다. 누군가가 악(惡)할뿐인 의도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살인의 추억>이 그렇듯 말이다.

  본문은 '기획력이 생존력이다', '호모파베르가 살아남는다', '가장 나약한 것은 욕망' 등으로 명명된 총 14항목의 생존전략 아래 각기 3개씩의 세부 전술이 딸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역을 맡아 여러 번 등장하는 청어나 군대개미 등을 제외하자면 펩시스 말벌, 타란툴라거미, 혹등고래, 침팬지 심지어 간충과 같은 기생충 등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을 총망라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살육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무대 위에서 살육자나 피살육자로서의 수행하는 역할엔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가득이다.

동물... 참혹하지만 유쾌한(?) 그들만의 생존전략...!
  허기로 인해 동면 중 깨어난 아시아흑곰이 인도엘크사슴떼를 만나게 되면 몸을 공처럼 말고 눈 덮인 언덕을 구르기 시작한다. 내려갈수록 더 커다란 눈덩어리로 변하는 곰은 장난감처럼 눈공에서 튀어나와 갑작스러운 눈사태에 어리둥절해하던 사슴 떼를 덮친다. 사막의 독사 사막데스애더는 모래 위로 꼬리만 삐죽 내어놓아 허둥거리는 벌레 흉내를 내곤 이에 이끌린 파란혀도마뱀을 습격한다. 해오라기는 인간이 버린 빵 쪼가리를 연못에 던져 여직 야생에 적응치 못한 관상용 잉어를 사냥하고, 침팬지 무리는 콜로부스 원숭이를 잡아먹기 위해 도주로까지 계산한 몰이식 추격사냥에 나선다. 독 생산능력이 없는 뱀 유혈목이는 부파디에놀리데라는 독성물질을 피부에 갖고 있는 아즈마두꺼비를 먹어 독을 갖춰낸다.

  작가인 마르쿠스 베네만은 생물학 전공자답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도감 따위에서 느껴질 만한 건조한 투의 설명을 지양하는 한편 인간들의 삶까지 돌아볼 매개 점까지 제시하고 있어 시종일관 씁쓸하거나 유쾌할 공감대까지 이끌어낸다. 살육과 피살육의 관계에 놓인 동물들의 특징을 인간사회에서나 통용될 교훈으로 묶어낸 발상도 주효했지만, 더욱 돋보이는 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이다. 아마도 영문학·역사학까지 전공한자로서 갖추고 있을 나름의 식견, 5년여 간의 기자 생활, 그리고 자연에 열광하고 친화적이라는 취향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어느 한쪽의 죽음이라는 참혹함이 전제된 상황에서도, 등장하는 동물들의 생생한 심리상태가 덧붙여진 이야기는 사실의 나열에서 오는 지루함을 효과적으로 피해낸다. 동물들이 갖는 생태학적 학명이 무엇이든, 그들의 관계를 에워싼 과학적 견해가 어찌되었든 독자의 눈은 어느 순간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하나씩, 서두르지 말 것' 편을 보자. 생물학적 시선은 정육점 주인이란 학명을 가진 붉은등때까지의 시체수집행위를 향한다. 하지만 작가는 과학적인 톤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시작은 꽃들이 만발한 봄의 들판에서 한가로이 일광욕 중인 도마뱀의 시선이다. 도마뱀은 봄날 전원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그리고 따스한 햇살의 유쾌함마저 즐기는 중이다. 퍼덕이는 날개소리에 놀라지만 위장 색을 믿고 버텨본다. 다가온 새는 살진 잎벌레를 낚아채간다. 새는 오고가며 메뚜기와 귀뚜라미, 푸른머리되새 새끼와 꿀벌, 들쥐 등을 차례대로 낚아채간다. 마지막은 도마뱀 자신이다.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능력은 도마뱀의 심리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앞서 잡혀간 동물들이 가시나무의 가시에 꽂혀 있는 광경을 목격하곤 경악해하거나, 이런 정신병자와 이웃하여 사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는 때늦은 회한의 대목에선 안타까운 웃음을 참아내기 힘들다.
그렇게 높이높이 올라가면 육지거북은 무서워서 혹은 놀라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게 되어 있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크레타 섬의 가파른 산세를 공중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백수를 누리고자 했던 고향을...
  딱딱한 등껍질의 견고함을 믿고 오만을 부리던 헤르만육지거북이 검독수리에 의해 하늘 높이 올라가는 상황의 묘사다. 상대의 가장 강한 곳을 공격하라는 살육자의 전술적 가치보다 거북이의 마지막 고갯짓이 슬프다. 단 한 번도 볼 수 없을 광경을 하필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보게 되는 그 심정이라니... 그렇게 보면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단순히 살아남은 동물들의 현명한 깨달음에만 집중하진 않는다. 작가는 죽어가는 동물들의 비애까지 포함해 내는 공평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을 통해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유익함과 재미 때론 씁쓸한 슬픔까지 포함해낸 단편 소설의 느낌까지 자아내는 편이다.

  인간과 함께이든, 자연과 함께이든 동물들에겐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다. 창조주의 고뇌였든 오랜 진화의 결과였든 스스로 체화해낸 방식 속엔 현명한 깨달음의 교훈이란 게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이성이라는 무한 융통성의 잣대로 동물들의 삶과의 영원한 분리를 꾀하곤 한다. 동물을 본능이라는 테두리로 옭아매 존재 자체를 평가절하 하려는 못난 의도다. 하지만 인간 또한 동물임을 감안하면 그 둘의 분리는 어색스러울 수 있다. 같은 크기로 갖고 있을 동물스러움에 비춰 보자면, 본능이라 폄하해 마지않는 동물들의 삶의 방식은 인간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그들의 사랑과 질투,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잔혹해 보이는 약육강식의 실상에서조차 인간의 그것을 느껴낼 수 있게 된다.

  오늘 저녁, 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조금은 따뜻한 미소를 담아 눈을 마주쳐야겠다. 어쩌면 음식물 분리수거 봉투에서 쓸 만한 건더기 하나를 골라 던져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슬쩍 물어보련다. 너의 생존전략은 무엇이냐고? 지능적이고 매혹적이진 않더라도 고충 섞인 삶의 방식이 있지 않겠냐고?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련?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 끝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녀석이 앞발 하나를 번쩍 들어 감자를 먹일지 모를 일이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