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怪談)이 아닌 괴담(愧談) '대학괴담 大學怪談'

사색거리들/책 | 2011. 3. 7. 17:34 | ㅇiㅇrrㄱi

  보통 괴담(怪談)이라고 하면 비현실성을 큰 전제로 갖곤 하니, 귀신이나 괴수 등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공포물을 떠올리기 일쑤다. 특히나 그 자체가 폐쇄적인데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젊은 꿈들을 일방적인 목적으로 말살시키는 대표적 공간인 탓에 학교란 장소는 이미 괴담이 기생하기 최적의 양분으로 밑바탕 되어 있기도 하다. 옥상위에서 자신을 떨어뜨린 친구를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발삼아 콩콩 뛰어다니는 거꾸로 귀신이나, 화장실에서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의문의 선택을 강요하는 존재, 학교에 얽힌 비밀을 몽땅 알아내면 죽음을 당한다는 저주 등에 이르기까지 등골을 오싹케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 적인지 기억나지도 않을 학창시절의 한때로부터 그림자 마냥 쫓아다니는 벗과 같았다. 

대학괴담
국내도서
저자 : 김장동
출판 : 북치는마을 201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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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런 학교괴담이... 지성의 전당이자 학문추구의 산실이라는 대학의 상징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기이하고 괴상한 전설 따위가 대학 내에서 과거 진행했고 여직 진행 중이라면...? 음습하기 그지없을 공포물에 대한 끌림으로 읽기 시작한 김장동의 장편소설 제목은 <대학괴담 大學怪談> 이다.

  기대와 달리, 읽다보니... 어쩌면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을 학교괴담과는 영 다른 방향으로 글이 진행된다. 귀신도, 괴수도, 저주나 미스터리한 일련의 사건 등은 일체 없고 교수 위주의 대학 구성원이 벌여내는 난장판 비리 수십여 편이 뷔페의 상차림을 연상케 할 만큼의 정도로 나열된다. 나열되고... 또 나열되는데... 그 끝이 요원할 지경이다.

  대학생이 되려거나 대학생이 된 사람이 대학사회를 직시할 수 있는, 대학생 학부모가 되려거나 된 사람들에게 읽힐 만한, 대학교수가 되려거나 교수로서 대학사회의 실상을 알고 스스로를 자성케 하는 소설이 없을까 라는 고민에서 집필을 시작했고... 대학 강단 30여 년 동안 보고 들었던 소재들을 총 동원해냈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비리교수의, 비리교수에 의한, 비리교수를 위한 일종의 사건 모음집과도 같다. 딱 거기까지... 그리고 하나 더

  일단, 모든 내용은 2년제 교육대학에서 초급대학으로 그리고 4년제 국립대학으로 승격한 DN대학을 배경으로 발생한다.

가 교수는, 소주잔을 입에 넣고 깨물어 가루를 낸 다음 교수임용에 도움을 주었음에도 인사 한마디 없던 상대 교수의 안면에 뱉어낸다.
나 교수는, 교수채용으로 돈 벌 궁리 중이었던 학장으로부터 내침을 당해 하루아침에 강의를 그만둔다.
다 교수는, 돌연 망치를 들고 완공한 건물을 부수며 트집을 잡아내는데 뒤늦게 각성한 건축업자들이 양 손 무겁이 교수 공관을 찾는다.
라 교수는, 막장인생이었지만 지역 유지에다 정치권에 손이 닿아있어 인사위원의 교체까지 강행한 학장의 배려 탓에 전임강사로 발령받는다. 
마 교수는, 학위취득을 위해 제자에게 논문 대필을 시킨 것도 모자라, 명예교수로 정년하기 위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논문 대필을 재차 부탁한다. 
바 교수는, 술자리에서 남자 제자들에게 구강성교를 지시하고 2차 가기를 밥 먹듯, 그 비용까지 일임하다 문제가 된다.
사 교수는, 연구 실적에 의한 성과급 차등을 역설하더니 같은 논문을 학회에 발표하고 등재지에 중복 게재하거나 이를 묶어 책을 내고, 제목만 바꿔 또 발표하는 등의 편법을 통해 성과급을 독차지한다. 
  이 외에도 수도 없는 교수와 각종 비리들이 등장하니 이를 열거하자면 아 교수, 자 교수, 차 교수... 그 뒤를 이어 A 교수, B 교수... 등등으로 명명해 열거해도 끝내기가 힘들 지경이다. 
괴담(怪談)이 아닌 괴담(愧談)
  괴담(怪談)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라고 풀이된다. 언급된 사례들은 비현실적이기 보다는 현실에 가깝고,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진행형일 여지의 성격인데다, 기이하거나 이상하다는 수식이 어색스러울 만큼 주변에서 흔히 마주해낼 수 있는 사건·사고 중 하나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발각되는(되지 않은) 온갖 비위(非違)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과연 이 정도가 괴담(怪談)의 축에나 들까 싶다. 오히려 기이할 괴(怪) 한 글자를 부끄러울 괴(愧)로 바꾸어 부끄러울 이야기 정도로 풀이하면 어울리지 않으려나?

  그것보다는... 집필의도에서 밝힌 작가의 변이 무척 의아스럽다. 가 교수가 이랬고 나 교수가 저랬고, 다 교수는 이랬는데 라 교수는 이랬다... 는 식의 열거법에만 지독히 충실한 글에서, 읽는 이가 무얼 느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 교수라는 지성의 무리들 속에서도 다양한 욕망에 의한 저열한 풍경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으니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교훈...? 대학이란 조직과 그 내부 구성원이 지양해야할 것들을 구체화해 자성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사실 이에 대한 생각을 모아보기도 전에, 오히려 더 기이한 건... 곳곳으로 삽입된 작가의 정치적인 견해들이다.
노무현을 따라 자살 하려다 나무에 걸려 미수에 그친 여성을 덜 떨어진 여성이라 한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자체가 역사의 오류이고 이후 정부의 좌파사고로 한과 복수의 정치가 판을 쳤다... 노무현은 삼당통합 시 은인인 김영삼을 배신하고 국정운영에서의 승기를 잡아내고자 탄핵을 자초한데다 자살이라는 사상최대의 잔머리를 굴려 가족의 평안과 재산, 지지 세력들의 안위까지 지켜내었으니 통밥 굴리거나 잔머리 돌리기의 달인이다... 서러움과 핍박받던 조중동에서 자살의 배경을 언급하지 않았으니 세상은 정의만이 아닌 부당과 불의가 판을 치는 곳이다... 이명박의 당선은 노무현패거리와 그 일당의 개판정치 탓이다... 노무현처럼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는 대통령이라도 하려면 운을 타고 나야한다... 등등
  제 친구 대하듯 노무현은 김대중... 운운하는 뜬금없이 노골적인 정치적 소견들을 왜 단락의 곳곳으로 어울리지도 않게 부려 놓았는지 수긍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문학적인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명목은 상황에 대한 부연이겠지만... 일종의 정치적 편견을 그것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수준의 노골적인 표현들을 써가며 언급하고 있는데다 작가 스스로의 입장이라 빤히 내세우고 있어 일종의 은유라 여기고 넘길 수도 없을 노릇이다.  

  그러니 읽는 도중, 기이하고 괴상하며 심지어 부끄럽기까지한 대상은 슬그머니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괴담(怪談)도 아닌데다 온통 괴담(愧談)스러울 지경이니 용케 400페이지를 넘게 읽어 낸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