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때와 화해하는 저녁 만찬 '바베트의 만찬 Anecdotes of Destiny'

사색거리들/책 | 2016. 7. 16. 23:07 | ㅇiㅇrrㄱi

누구에게나 한때의 아픈 기억들이 있기 마련이다

  허름한 뒷 골목 비디오가게에서 생소할밖에 없는 덴마크 영화 한편을 고른 그날은 지나치다싶게 추운 겨울날이었다. 내 안 어느 구석이 추위 때문이 아닌 냉기로 굳게 얼어있었던 시기였다. 어두움만을 좇아 다니던 그때의 마음이란 게 어떤 저장소에 고대로 남아있다면 물기에 짓뭉개져 찢겨진 담배꽁초마냥 시커먼 진액으로 범벅돼 더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을까... 고작 이 정도 회상만으로도 유쾌할 수 없는 부러 죽여 버린 삶의 한때였다.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일요일 아침. 급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이끌려 아내가 비척거리며 일어선 날도 추위가 매서운 겨울날이었다. 하나뿐인 형부의 급작스런 절명(絶命)을 전해 듣고 눈과 목으로 곡하던 거실 안으로는 낮은 햇살 한 가닥이 해끔하게 걸려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두 아이는 고작 초등학생만의 어리둥절한 낯빛을 한 채 누님의 양 편으로 아프게 덜럭거렸고,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반쯤 풀어헤쳐 검측한 넥타이가 무겁게 흔들리던 삶의 한때였다. 

바베트의 만찬
국내도서
저자 :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 / 추미옥역
출판 : 문학동네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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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검은 넥타이마냥 아프게 매달고 있는 기억이 있다. 짓뭉개진 담배꽁초마냥 불편하게 바라봐야할 심정이란 것도 있다. 최고의 열정을 다해 살았고 그만큼 돌려받았노라 뿌듯하게 고백할 시간이 있듯... 늘상 주어지는 선택의 순간 이후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을까 문득 회한하거나 강요된 상처 따위에 아파할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아픈 삶이 있기 마련이어서 언젠가는 그렇게 우울한 편린들이 서로 따뜻하게 화해할 때를 여전히 기다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1988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이었던 영화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은 모든 걸 잃었다 자책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무엇이 그리 결여되어 있었는지를 알려주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원작인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 Anecdotes of Destiny>에는 지난 삶의 어딘가로 부터 비롯되었을 불안과 두려움... 부들부들한 떨림마저 오롯이 감싸 안아 버릴 포근한 시선과 더불어 예술·예술가의 가치에 대한 남다른 울림 또한 담겨 있다.

눈이 몹시도 날리던 노르웨이의 바닷가 외딴 마을, 멀리 파리에서 도망 온 바베트 에르상이라는 여성이 수척한 얼굴로 나타나고, 신실한 신앙 하나만으로 늙어버린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가 그녀를 거둔다. 가정부로 기거하던 바베트는 돌아가신 자매의 아버지이자 마을에서 추앙받던 목사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만찬을 제의하고, 복권에서 당첨된 1만 프랑을 비용으로 사용하리라 간절히 요청하는데... 멀리서 들여오는 만찬의 재료는 이들 자매의 눈엔 생경함을 넘어서 마녀의 술책으로 여겨질 만큼 두려움의 대상들이다. 마을 신자들과 두려움을 공유하는 자매... 삶의 그늘에 떨어하는 프랑스의 장군 로렌스 로벤히엘름까지 초대한 자리에서 드디어 그녀의 만찬이 시작된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청교도적 삶의 방식과 사상에 길들여진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 그리고 크게 다르지 않을 마을 신자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죄와 그로 인한 가책, 타인에게 받은 상처 등으로 인해 냉기서린 삶의 와중에 놓여 있다. 다른 편으로... 꿈과 화려함만을 좇았기에 성취한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잃은 듯 허무감에 시달리는 로렌스 로벤히엘름 장군의 회한이 있고, 코뮌 지지자라는 이유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바베트의 상처 또한 놓여 있다.

  바베트가 마련한 만찬은... 늘 커피 한잔 따위로 갈음하던 이들에게 생경한 음식에 대한 거부감 즉 신실함에 반한 죄악으로 이어지는 두려움 자체이게 되고, 젊은 시절 마르티네에게 연정을 품었던 로벤히엘름 장군에겐 알 수 없을 허무감을 풀어야할 기회이게 된다. 원작에서는 고결한 찬양과 감사만으로 혀를 지켜내겠다 서로에게 다짐하는 식의 두려움에 대한 묘사, 장군의 일장 연설 그리고 화해의 여러 과정 등을 통해 각자가 안고 있었던 삶의 어느 때가 지닌 무게를 다소 직설적으로 덜어내는 식이지만.... 영화는 만찬 참석자들의 표정 변화를 통해 이 복잡스러운 심경의 변화를 표현해 낸다. 

  영화에서 일종의 반전을 맛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만찬 참석자들이 표정이었다. 바베트가 마련한 프랑스 요리를 차근차근 맛보면서 얼굴의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생경함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만큼 맛있어서였는지, 바베트의 깊은 내면 간직된 정열과 추억과 열망 등을 미각 저 편에서 감지했음인지... 잿빛으로 굳어 있던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기 시작한다. 반목을 일삼았던 서로가 온기 가득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마다가 지닌 삶 속 날카로운 가시가 무뎌진 듯 어리둥절하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는데... 그 시선이, 그 표정과 분위기가 어찌나 따스하고 정겨운지 눈물을 왈칵 쏟게 된다. 언젠가부터 잃고 살았던 낭만적인 꿈이나 긍정적인 마음가짐, 의도 없는 완벽히도 순수한 배려 등... 지금의 내게서 완벽히 상실되었다 싶은 소박했던 바람들을 저들은 되찾았구나 싶은 부러움에 그리고 돌아본 내 자신의 상처에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다.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을 틔웠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 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정의와 축복이 입맞춤하고 자비와 진리가 하나 된 은총과도 같은 순간이라 감사한다는 장군의 소감과 마찬가지로 만찬의 참석자들은 단지 무한한 은총이 허락된 것뿐이라 생각하거나 신앙을 통해 늘 소망했던 것이 이루어진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만찬의 자리에서 그토록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스스로를 자각하고 서로를 존중하게 된 것은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 각자가 지닌 상처들을 보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지난 한때를 가만히 돌이켜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지난 과거와 솔직한 심정으로 조우할 수 있을 때만이 지금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무슨 심정으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픈 상처와 대면할 수 있는... 만일 누군가가 그저 따뜻하게 각자의 아픔과 과오를 마주볼 기회를 마련해 준다면 다소 들뜬 기분으로 진정한 화해를 감히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당신만을 생각했었고 앞으로도 영혼으로 함께 일거라고 뒤늦게 고백하는 노장군의 마주잡은 손에 그제야 지난 삶의 상처와 화해하게 된 온기가 돌았듯 말이다.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예술가의 소명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색다르다.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박수를 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아실 파핑의 말을 옮기며, 자신의 만찬 음식 자체가 예술이었다며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는 바베트의 외침을 듣다보면, 문득 예술의 가치 하나가 선연해진다. 그건... 지난 삶의 한때와 화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다. 예술가 본인이 가지고 있을 내밀한 의식, 경험, 상처나 열정 등이 총화 되어 구현된 결정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 그건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느낌으로나 알아차릴 수 있는 상호 공감의 영역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예술가가 스스로와 대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나 결과에 동참하면서부터 예술가 스스로도... 이를 바라보는 이들도... 각자의 삶에 놓여있을 날카로운 가시와 대면하고 이를 무디게 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바베트, 우리를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쓰다니." "마님들을 위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

   어느 날, 돌아가신 형님네를 들렀다 그림 한 점과 마주한다. 이젠 훌쩍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큰 녀석의 작품 한 점 앞에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버리고야 만다.

  훌쩍 커 버린 그림 속 저 철부지는 아빠의 과로사라는 상처로만 추웠던 그해 겨울 이후를 회상하진 않을 듯싶다. 저 만의 방식으로 삶의 지난 한때와 부단히 싸워내었기에 저리 따스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게 아니었을까? 그림 속에서 슬핏 웃음 짓고 계신 형님의 얼굴 앞으로... 그 시절과 결국 화해했음직한... 하지만 여전히 슬픔을 숨긴 큰 녀석의 눈망울이 겹쳐진다. 여전히 가늠할 수 없는... 감당 안 될 무게가 담겨 있는 녀석만의 멈춰진 시간 앞에서... 이미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한 인간을 엿보고, 그 고통과 눈물을 느껴보며... 내 자신의 한때 또한 돌아본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나를 눈물짓게 했던 바베트... 그녀의 따스함으로 끓는 만찬을 돌이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