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나... '레몬'

사색거리들/책 | 2010. 5. 19. 11:48 | ㅇiㅇrrㄱi

우지이에 마리코는 부모를 닮지 않은 생김새에 의아해하는데, 엄마의 이상스런 태도는 점점 더해져간다. 기숙사에서 돌아왔을 때, 남몰래 눈물 흘리는 엄마의 뒷모습에 감히 그 이유를 묻지 못하는데...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정신이 들어보니 집은 온통 화염에 휩싸여 있고 마리코만 빠져나와 있다. 아빠는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엄마는 잿더미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로 처리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마리코는 모든 것을 함구하는 아빠가 의심스러운 한편 엄마의 죽음에 어떤 비극적인 배경이 있음을 직감하고는 아빠의 대학 학창시절부터 그 행적을 밟아가기 시작한다.
<레몬>의 이야기는, 마리코와 후타바, 이 두 사람의 1인칭 시점 서술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마리코가 엄마의 이상한 죽음과 아빠의 수상한 행각을 되짚어가면서, 후타바가 엄마의 뺑소니 사고 이후 일련의 상황들을 헤쳐 나가면서, 각자가 가진 의문의 삶 속에서 교차되는 지점들이 잦아들게 되고... 레몬이란 공통분모의 의미를 남긴 채, 모든 것들이 맞물리게 된다.
아마추어 그룹의 보컬인 고바야시 후타바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던 중, 격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TV 가요프로그램 출연을 강행한다. TV 출연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는 걸 왠지 두려워하는 엄마의 불안감이 좀처럼 이해되질 않는데... 다음 번 출연을 앞두고 찾아든 비보. 엄마는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다니던 대학엔 의문의 남자가 후타바의 행적을 묻고 다닌다. 사고직전 엄마와 만났다는 의과대학교수가 만남을 제의하고, 권력층에 의해 뺑소니 사고에 대한 조사가 급히 종결되었다는 의문을 뒤로 하고 여정 길에 오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 또는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스포일러성 제목을 서명으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서명인 <분신(分身)>도 이에 해당하는 경우일 듯. <용의자 X의 헌신>이 용의자의 전폭적인(?) 배려를 주축으로 하고 있듯, <분신>도 분신... 요즘 많이들 익숙한 용어로 클론에 관련된 내용이라 충분히 짐작 코도 남는다. 마리코와 후타바가 동일한 외모를 하고 있다는 대목을 접하게 되면, 알 수 없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곤 해도 이들 둘이 어떤 식으로든 복제인간과 가까운 형태의 창조물이란 건 쉽게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내용에 대한 짐작이 가능하다고 해도, 설령 중요한 대목을 알아버린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는 이유는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이니, 그다지 복잡스런 수수께끼도 없고, 머리 아픈 뒷배경 이야기도 없어 가볍게 읽기만 하면 될 듯...

레몬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노블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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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배아복제니 클론이니 하는 일련의 과학용어들이 지금이야 익숙하겠지만, 이 작품이 나온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뜬금없는 비현실적 발상이었을 테니... 그리 기발하지 못한 진부한 소재라고 폄하하기 보다는 당시의 보편적인 과학지식의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춰야 함은 독자 입장에서 양해 해야할 부분으로 보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접하며 늘 느끼는 부분이지만... 이런 기발한 소재거리를 다룬 작품들보다는 사랑이니 배신이니 하는 등 인간 본연의 욕망과 관련된 작품들이 덜 낯설게 느껴지는 듯... 기발함이나 비현실성 뒤에 따라오는 지나치게 우연적인 상황들이란 건 여전히 거북스럽기만 하다.

'쇼윈도 건너편의... 나와 똑같은 마네킹을 마주할 때의 느낌' 그게 불쾌할지도 모르겠거니와 살아생전 그런 일을 겪을 일도 없을 듯...

나와 같은 클론을 만들어낸다는 건...

아마도 와이프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