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비디오방... 섬찟했던 '캐리 Carrie'

사색거리들/책 | 2010. 2. 23. 18:47 | ㅇiㅇrrㄱi

여성의 생리가 악마의 꾀임에 빠지는 첫 징조라는 식으로까지 광적인 신앙심과 청교도적 결벽증에 사로잡힌 엄마와 살아가던 캐리 화이트는, 엄마인 마가렛이 악마의 권능이라 저주하는 신비한 능력, 염력의 소유자다. 마가렛 탓에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한층 소외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던 터라, 학교에서도 늘 친구들의 놀림거리일 수 밖에 없었는데... 캐리에 대한 몹쓸 장난에 죄책감을 느낀 스넬은 남자친구 토미로 하여금 캐리를 고등학교 졸업파티의 파트너로 선택하게끔 한다.
남자와의 데이트 자체가 순결을 잃게 되어 하나님에 반하게 된다는 마가렛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리는 토미와 함께 졸업식 파티에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는데, 캐리 탓에 근신을 받아 졸업식 파티에 참석할 수 없게된 크리스 하겐슨은 남자친구 빌리와 함께 캐리를 위한 무서운 장난을 준비해놓는다.

자칭 '영화광' 또는 '영화음악매니아'를 자처하던 권모군과 종종 비디오방을 찾았던 적이 있었더랬다. 당시 연애 한번 변변히 못해보던 외로운 청춘들이었던터라, 누군가 이상스럽게 생각했을 법한 동성간의 영화감상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캐리(스티븐킹전집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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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근래 비디오방 또는 DVD방이란 곳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떠올리기 어려운 광경이겠지만... 당시 비디오방의 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다.

사무실용 파티션으로 구획을 구분해놓고, 한 구획안엔 기대기도 불편한 조그만 2인용 쇼파 하나, 그리고 이십 몇인치 정도 되는 브라운관TV가 전부였고, 파티션 너머 관객(?)들과의 공정한 관람분위기 유지를 위해 헤드폰 두어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십 몇인치 된다는 TV조차도 비디오방이 들어서고 나서 어느정도 후반의 얘기이지, 초기엔 이십인치도 채 되지 않는 크기였던걸로 기억난다.
 
    

아무튼...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감독이 거장의 대열에 드는 명감독이란 권모군의 설명하에... 만들어진지 20년 가까이 된 '캐리'란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 처절한 장난으로... 주변으로부터 철저한 배신을 느낀 캐리의 광기는 극에 달하고... 모든 것이 파멸한다.

영화포스터는 공포영화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지만, 실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모든 것이 뒤틀려버린 캐리 화이트란 소녀의 성장기(파멸로 결론지어질) 정도의 선을 크게 넘지는 않아 잔혹감을 추구하는 기괴한 발상에 근저한 여타 공포영화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눈을 감아버릴만큼의 공포'가 있다면, 시뻘겋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만큼 강렬한 색의 돼지피를 뒤집어쓴 캐리화이트의 참혹한 희번덕거림도 아닌, 파티장에서의 잔혹한 학살극도 아닌... 십자가의 형상으로 죽어가는 마가렛의 끝없는 광기도 아닌... 오직 철저하게 삶으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느낄, 그래서 나도 남들과 같아 질 수 있다는 그 사소할 수 없는 '바램의 싹을 짓밟힘당한 캐리의 마음 속 슬픔 여러가닥' 그렇지 않았을까...

영화로 보았다는 이유하나로 읽기를 꺼리던 원작을 읽었다. 캐리 화이트로 인한 사건 조사 위원회(?)의 조사 보고서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마치 논픽션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게 나름 신선했고... 책이 영화에 비해 가질 수 밖에 없는 강점... 장면과 소리로 응축되지 않아 보다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벌써 본지 10여년도 더 된 캐리라는 영화에 대한 소회가 새삼스러웠다.

혹 영화를 볼 사람이 있다면... 소프트필터를 사용한 듯... 몽환스럽게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에 유의할 것...^^ (어찌나 놀랐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